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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일설교-“믿음은(히 11:1-2) 5일전

    “믿음은” (히 11:1-2)   교회를 다니면서 가장 많이 듣는 단어는 믿음입니다.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믿음이 없이는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삶의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믿지 않아야 할 것에 많은 믿음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권력을 믿는 사람은 권력으로 만용을 부려보지만 이것은 영원하지 않기에 한순간은 무너지고 마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재력을 믿는 사람 또한 이 재력을 가지고 재주를 부려보지만 이 재력 또한 영원하지 못하기에 효력이 없는 것입니다. 결국 무엇이에요? 전도자가 말하고 있듯이 다 헛됨으로 끝나고 맙니다. 그 어떤 것도 믿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인데, 그런 가운데 [믿음]에 대해 카세이드는 “감각은 창조의 움직임을 보는 것이요, 믿음은 하나님의 움직임을 보는 것이다”라 하였습니다. 왜? 그가 이렇게 말을 하였을까요? 아마도 하나님의 움직임을 본다는 것이 바로 큰 축복이기 때문에 그가 이 고백을 하였으리라 믿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은 믿음에 대해 이“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고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믿음의 정의를 두 가지로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는 [바라는 것들의 실상]과 다른 하나는 [보지 못하는 증거]라고요. 그러면 ‘바라는 것’이란 무엇일까요? 이것은 어떤 것에 대한 기대와 원칙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기대와 원칙은 이것에 대하 믿음이 있기 때문에 바라고 기대를 갖는 것입니다. 이것도 없이 바라는 것은 헛된 것입니다. 생각해보세요? 바라지도 않는데 무슨 기대를 가집니까? 말도 안 되는 말입니다. 그리고 실상이란 실제 모양이나 상태를 말하는데, 마치 열매가 가득 차 있는 것을 들어다 보는 것을 말합니다. 바꿔 말하면 목표와 소망이 동일하다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심에 대한 확신과 기대가 가득 차 있는 것, 이것을 들어다 보는 것이 실상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모든 것들에 대한 하나님이 행하실 것에 대한 확신과 기대로 가득한 믿음을 수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시라는 확신과 기대가 현실로 나타나는 구체적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응답이 현실로 나타나는 역사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우리에게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눅 11:10)라고 하였습니다. 어윈 대령이라고 우주선을 타고 처음으로 달에 다녀온 그입니다. 그가 한국에 와서 간증한 내용인데 그는 달에서 지구를 볼 때 눈에 잡히는 광경은 우리가 여기서 달을 볼 때의 그것과는 판이하고 여기서 달을 보면 작아 보이고 흑백으로 보이지만 달에서 지구를 보면 엄청나게 커 보이고 총천연색이라고 하였습니다. 만리장성도 보인다고 하는데, 얼마나 장관이겠습니까! 이런저런 놀라운 이야기를 많이 한 그는 그러나 그 모든 것보다도 더욱 중요하고도 심각한 것이 있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우주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캡슐을 타고 지구를 향하여 떨어질 때, 낙하산두개가 펼쳐져야 합니다. 두 개의 큰 낙하산이 펼쳐져 공기 저항을 받음으로 조용히 안착하게 되는데, 낙하산은 하나만 펼쳐지고 다른 하나는 펼쳐지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비상수단을 써도 안 되니까 휴스턴 사령탑에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왜냐하면 그대로 떨어지는 날에는 아주 박살이 나고 말기 때문입니다. 모두들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바로 그 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하늘과 땅 위에서 그들은 모두 딱 한마디를 외쳤답니다. “기도하자!”라고요. 하나님께 기도하는 길밖에 다른 길이 없다고 생각하여 그들도 그리고 지구를 향해 떨어지고 있는 어윈 대령도, 휴스턴에 있는 모든 사람들도 다 같이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이 발생했는데, 느닷없이 땅에서부터 회오리바람이 일어나 치솟아 올랐습니다. 그 바람이 낙하산 둘을 펼쳐지게 하였고 그래서 같은 속도로 안전하게 떨어질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기적이었고 그는 말하기를 우주선은 휴스턴 사령탑에서 조정하는 줄 알았는데 그 뒤에 하나님께서 계셨다는 것을 그 사건을 통하여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 더 이야기 해볼까요? 아직 예수를 믿지 않은 어느 말기 암 환자가 죽음을 앞두고 있었는데, 그를 그렇게 보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어느 모 교회 여전도사님이 어느 목사님을 모시고 그 환자를 만났습니다. 막상 만났지만 그와의 대화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 짧은 만남에서 목사님이 자그마한 소리로 그가 듣든 말든 “예수를 믿으면 좋으련만”라고 거의 중얼 거렸는데 그 환자가 “그럼 한번 믿어보지요”라고 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즉시 그가 예수를 영접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두는 병실을 나왔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궁금하였지만 기도만 드리고 3개월이 지났답니다. 그러니까 이상하게 찾아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누군가에게 전화가 왔는데, 그 번호는 모르는 번호이어서 그냥 지나쳐 버렸습니다. 그 일이 몇 번 있다가 나중에는 그가 직접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그가 이렇게 인사하는 것 아닙니까? “안녕하세요! 목사님! 혹시 저 모르겠습니까?” “잘~ 모르겠는데요? 누구시죠?” “정말로 저를 모르나요?” “아, 네” “제가 병실에서~ 그럼 예수를 믿어 보지요라고 했던 그 말기 암 환자입니다” 빠짝 말라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던 그가 살까지 쪄서 찾아온 것이고 그의 간증은 그날 예수님을 영접하고 난 그 날 밤에 매스꺼워 화장실에서 속에 있었던 것들을 다 토해냈더니 덩어리도 나오고 피도 나오고, 이런 과정을 무려 10분 간 했더니 병이 나아 이렇게 건강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믿기지 않는 일을 경험한 것 아닙니까?   무엇을 말합니까? 그에게 있어서의 믿음의 목표와 소망은 고침이고 어윈 대령과 휴스턴의 사령탑과 시민들의 목표와 소망은 살려달라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이것은 결국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하신 모든 것들에 대한 구체적인 이룸에 대한 결과의 확신과 기대가 이렇게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난 것 아닙니까? 여기에는 응답이라는 확신, 즉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으로 나갔던 것이고, 이루어 질 것이라는 말씀 그대로 믿었던 믿음이 바탕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믿음은 순수한 확신이 포함되고 이것은 기도로 이어지게 만든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누가 기도를 해바라기 꽃이라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해바라기는 아침에는 동쪽을 향하여 몸을 돌리고 어두움 속에서도 찬란하게 떠오른 해를 사모하며 기다리기 때문이고, 점심때가 되고 저녁노을이 질 때에도 계속 해를 따라 움직이고 해가 져서 캄캄한 밤이 되어도 실망하지 않는다는 것, 왜냐하면 해바라기는 내일 또 다시 해가 뜰 것을 굳게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 16:24)라고 하였습니다. 이 은혜가 여러분에게 가득하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그래서 바라는 실상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보지 못한 것들인데 증거가 되는 것일까요? “육체의 눈으로 식별할 수 없지만 그것들의 실체를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어려운 말입니다. 하지만 믿음의 선배들은 이구동성으로 “내 눈에는 지금 보이지 않지만 결과를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이라고 말들을 하였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바로 바라는 것의 실상이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고, 이것이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로 나타나게 하는 가능함으로 묶어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당장이 아니더라도 기도하면 반드시 행하시는 주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두에 꺼낸 카세이드의 [믿음]에 대해 말, “감각은 창조의 움직임을 보는 것이요, 믿음은 하나님의 움직임을 보는 것이다”입니다. 그리고 찬송가 344장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믿음만을 가지고서 늘 걸으며 이 귀에 아무소리 아니 들려도 하나님의 약속위에 서리라 걸어가세 믿음위에 서서 나가세 나가세 의심 버리고 걸어가세 믿음위에 서서 눈과 귀에 아무 증거 없어도]의 고백이 되는 것이고 막 9:23절의 말씀처럼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막 9:23)입니다. 아멘! 왜? 입니까? 믿는 자들에게 영혼의 눈과 같은 역할을 하도록 주어지는 것이고, 때론 허황되게 보일 수도 있어도 결론은 행하신 증거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누가 하신 것일까요?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렘 29:13은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렘 29:13)라 하였고, 이런 자의 특징은 당당히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 6:6)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하기도 전에 응답을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 (사 65:24) 그래서 본문 2절은 믿음을 실천하며 살았던 사람들에게 주어진 명예를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으니라”(히 11:2)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 주인공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2절의 이 말씀은 강한 어조요 아주 힘 있는 문체입니다. 왜냐하면 이 믿음은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요 이 땅에 살았던 믿음의 선진들이 자신들의 삶에서 나타낸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로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목숨 앞에서도 믿음을 지키는 명예를 얻게 하였을 뿐 아니라 두려움 없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고백과 함께 순교로 이어지는 기쁨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이 증거는 바로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인 죄인이 구원을 받은 것이고, 이것을 위해 당신께서 친히 오신 일이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제물이 되신 증거입니다. 여러분, 우리나라의 [한국 선교 역사에 있어서 아름다운 3가지 커다란 축복]은 우리나라에 파송된 선교사가 없었을 때 조국의 젊은이들이 능동적으로 중국에 나가 복음을 가지고 들어와 자주적으로 교회를 세운 것이고 선교사가 들어오기도 전에 능동적인 젊은이들의 도움으로 우리말 성경이 번역되어 우리 손에 들어오게 된 것이며 가난한 동방의 조그마한 나라에 선교사들이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토마스, 닥터 홀, 아펜젤러, 언더우드, 알렌, 사무엘 모페트…. 수많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민족이 겪는 고통과 고난도 함께 동참하였고 같이 살아갔습니다. 외세의 침략을 수없이 받았던 볼품없는 나라에 올 이유가 전혀 없는 사람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복음 때문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위해 하나님의 일꾼으로서의 삶을 살았으며 믿음의 모범을 보여주었던 것이 증거인 것입니다. 고향을 떠날 필요도, 고생할 필요도 없었던 그들의 가슴에는 타오르는 복음의 영정이 사그라질 때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드린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 안에 있는 복음은 생명을 투자하지 않고는 전달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요 주님이 하셨던 것처럼 그들 또한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로 오늘날 이 땅에 수많은 교회가 들어서게 하였고 어떤 비난이 쏟아져도 주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위한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포스딕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두려움은 감금시키지만 믿음은 해방케 하며, 두려움은 마비시키지만 믿음은 능력을 부어주며, 두려움은 실망케 하고 믿음은 격려해 주며, 두려움은 병들게 하고 믿음은 고쳐주며, 두려움은 망치게 하고 믿음은 유용하게 하며, 두려움은 소스라치게 하고 믿음은 피어나게 한다.”라고요.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여러분! 노아는 홍수가 있을 것을 알았기에 방주를 만들었고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것으로 만들겠다는 것을 알았기에 하나님이 주실 그 나라를 찾아 나섰습니다. 믿음은 마치 은행이 우리를 위해 우리의 돈을 보관할 수 있다고 믿지만 우리가 우리의 돈을 은행에 맡길 때까지는 은행에 대한 믿음을 행사한 것이 아닌 것이고 자동문이 앞에 서서 그 자동문이 자동이라는 사실을 알고 실천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이것을 순종이라고 합니다. 예스하고 문턱을 넘었을 때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순종의 출발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이고, 성령께서 말씀을 깨닫게 하신 말씀을 행동으로 옮기는 그 자리입니다. 믿음은 우리에게 있어서 이 세상에 대한 4가지를 알려줍니다. 첫째는 이 세상은 영원한 것도 또 스스로 존재하게 된 것도 아니며 누구에 의해서인가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고, 둘째는 믿음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이가 다름아 아닌 바로 우리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믿음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 말씀으로 창조하셨고 자신의 뜻대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고 마지막 네 번째는 이 세상은 무로부터 창조되었다는 것을 알려준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믿음이고, 이것이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 주일설교-“여러분은 하나님의 목적입니다”(행 11:1-18) 11일전

    “여러분은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행 11:1-18)   여러분, 오늘 본문은 이방인들에게 말씀을 선포하고 세례를 받은 것에 대한 트집을 하는 유대인들에게 왜? 그가 이렇게 한 것인지에 대한 간증입니다. 간증이 무엇입니까? ‘자기의 신앙생활에서 얻은 특별한 신앙적 체험을 고백하는 것’ 아닙니까? 베드로 자신이 특별하게 경험한 것들을 구약의 전통과 율법 속에 살고 있고 할례를 받은 초대교회 유대인들에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 오늘 본문인데, 이 베드로의 간증 안에 담긴 하나님의 은혜를 이 시간에 나누면서 함께 은혜 받고자 합니다. 사실 이들은 이방인들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에 대한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했습니다. 이방인들에게 구원과 성령이 임했다는 사실을 믿기가 어려웠고, 특히 이 일을 진행한 장본인이 바로 베드로라는 것 때문에 더 충격이었습니다. 이방인인 고넬료의 집에 들어가 설교도 하고 밥도 먹고 교제와 세례까지 주었다는 이것이 그들이 생각하는 베드로가 아닐 것이라는 생각, 초대교회의 큰 힘이 된다고 여기는 이들의 베드로가 어떻게 구약의 전통과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하면서 까지 이 일들을 했느냐는 분개와 공격과 질책을 하고 있는 것이 오늘 본문의 시작입니다.   먼저 1-3절을 봅니다.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었더니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비난하여 이르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행 11:1-3) 무슨 말이냐면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자기들처럼 성령을 받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는 소식에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 베드로가 어떻게 이방인의 집에 들어갔느냐는 것이고, 들어가서 왜? 그들과 함께 먹었고, 왜? 하나님의 율법의 계명을 무시한 행동을 했냐는 비난을 한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베드로도 자기들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인데 왜? 변했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세요, 솔직히 이들의 생각은 베드로가 환상을 보기 전에 가졌던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세 번이나 부인한 것이 그 증거인데 이들 또한 자기들의 베드로가 이런 행동을 한 것에 대한 납득이 안 간 것이거든요. 그러면 베드로가 이렇게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베드로의 간증이고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의 4절부터 10절까지 이야기와 11절부터 18절까지이 이야기입니다. 4-10절의 이야기는 환상에 대한 이야기이고 11-18절은 고넬료의 집에서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베드로가 기도하고 있는데 환상이 나타났습니다. 그 환상가운데 성령의 음성이 들려 왔고, 그 환상은 하늘에서 흰 보자기가 내려와, 그 보자기 안에 있는 것들, 그러니까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분명하게 규정한 불결한 짐승들과 곤충들과 새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단지 본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잡아먹으라 하였고, 당연히 하나님의 금지하는 것들이기에 그리할 수가 없다고 무려 세 번씩이나 부인했지만 하나님은 당신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어찌 베드로 네가 속되다 하냐고, 하나님이 깨끗하게 했다는 말씀을 하심으로 베드로에 있어서 어렵고 고통스러운 문제였고 신앙적으로 볼 때 일대 혼란에 빠지게 한 문제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4-10절입니다. “베드로가 그들에게 이 일을 차례로 설명하여 이르되 내가 욥바 시에서 기도할 때에 황홀한 중에 환상을 보니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이 네 귀에 매어 하늘로부터 내리어 내 앞에까지 드리워지거늘 이것을 주목하여 보니 땅에 네 발 가진 것과 들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보이더라 또 들으니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으라 하거늘 내가 이르되 주님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거나 깨끗하지 아니한 것은 결코 내 입에 들어간 일이 없나이다 하니 또 하늘로부터 두 번째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고 하지 말라 하더라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에 모든 것이 다시 하늘로 끌려 올라가더라”(행 11:4-10)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라 고민하던 차에, 고넬료의 종들이 자기를 만나러 찾아왔고, 고넬료 백부장이 당신을 초대한다는 이야기를 들음으로 그 순간 갈등하고 있는 자신에게 성령은 다시 ‘일어나 내려가라고, 의심치 말고 함께 가라고 이들은 내가 보내었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습니까? 이 음성에 순종하여 그가 고넬료의 집으로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초대한 당사자인 고넬료도 만나고 고넬료의 간증을 듣게 되면서 그렇구나, 이 일이 바로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고넬료에게 네 기도를 응답하셨고, 베드로에게 종을 보내어 베드로를 초청하라는 것이구나, 참으로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고 각 나라 중의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신다는 사실을 깨달음으로 그동안 자신이 가졌던 민족주의 생각과, 전통 속에 갇혀있던 생각을 벗어버리게 되었다는 것, 마음의 문을 열어 생각을 바꿨다는 이야기, 왜?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서 먹고 말씀을 전했고 세례를 베풀었는지를 설명한 것입니다.   11-18절입니다. “마침 세 사람이 내가 유숙한 집 앞에 서 있으니 가이사랴에서 내게로 보낸 사람이라 성령이 내게 명하사 아무 의심 말고 함께 가라 하시매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가서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가 우리에게 말하기를 천사가 내 집에 서서 말하되 네가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가 너와 네 온 집이 구원 받을 말씀을 네게 이르리라 함을 보았다 하거늘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행 11:11-18)   그러면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크게 두 가지만 같이 생각하고 은혜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구원은 이스라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은 이방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택했던 것이지 이스라엘만을 위한 구원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이방 민족 가운데 택해 최초의 히브리인을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을 통해 하나님 자신이 인간들에게 어떤 삶을 바라는지 보여주고자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나 그의 후손인 유대인들이 다른 민족보다 더 뛰어나서 하나님께 선택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사도바울은 롬 4장 23-25절에 이 사실을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들어보세요.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3-25)   그에게 의로 여겨진 것이 무엇입니까?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의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즉 이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고, 이것이 아브라함의 특별히 잘 나서가 아니라 위로부터 오는 선물을 받은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을 불러 준비시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 준비시킴이 무엇입니까? 바로 이방 민족들 앞에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실천하게 하는 것, 즉 하나님의 소금이 되게 하심으로 학생들인 이방민족들이 하나님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시청각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삶을 사용하신 것이고 그 이유가 바로 구원 때문에, 이 구원이 이스라엘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기에 그랬습니다. 그래서 히브리 민족에게 말씀을 주신 것이고, 이방 민족들 앞에서 그 말씀대로 믿고 살아야 했으며, 하나님의 교훈을 그들의 관례로 삼아야 했고, 율법을 그들의 삶의 지침으로 삼게 하여 이들을 바라보는 이방민족들이 하나님을 향한 갈증을 느끼도록 이스라엘을 선택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원이 세상 모든 민족을 향하도록 하기 위함이기 때문에,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사 11:19)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어떻게 했습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만이 선택 받은 백성이고 다른 민족들은 다 개로 여겼습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부름을 받기 전에는 메소포타미아 갈대아 우르에 사는 한 이방인이었고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었다는 이 사실을 모르는 것이고 극상품 포도가 들 포도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구약에서 얼마나 많이 봅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모른 것이고, 그래서 이방인들이 구원 받고 성령 받았다는 이 사실에 대해 마음의 문을 열수가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베드로가 17절 하반 절에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께 대항하겠느냐?’고, 즉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이 하는 일을 막겠느냐면서 하나님이 분명히 이방인을 선택하셨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 아닙니까?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택하였기에 오늘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자녀로 삼으셨고, 이루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전통을 뛰어 넘게 하셨으며, 전통과 신념에 묶여 있는 예루살렘 교회를 흔드셔서 오늘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베드로로 하여금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들어가 음식을 함께 먹게 한 것이고,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게 하신 것이며, 유대인들이 원수로 여겼던 로마군대의 백부장의 집에서 이 원수를 친구로 맞아들임으로 성령을 이방인들에게도 동일하게 부어주심입니다.   마지막 두 번째는 그러기에 하나님의 목표, 아니 목적은 우리, 바로 저와 여러분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면 무엇이 하나님의 목표요, 목적입니까? 바로 ‘하나님이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다’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이 목적이 앞에서도 잠시 거론했듯이 바로 우리인데, 그러면 무엇을 위한 목적일까요? 바로 거룩한 과정입니다. 여러분, 거룩한 과정이라는 말이 무거워 보이지만 사실 거룩한 과정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따르도록 함이고, 그럼으로 발견된 죄에 대한 올바른 견해의 변화에 부응하는 것입니다. 죄에 대한 올바른 감정을 가져, 호감이 아니라 죄를 멀리하려고 노력하는 것이고 죄가 과거에는 당연시 했지만 추악하고 혐오스럽게 여겨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살고,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며,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의 삶을 살아 어두운데서 불러내신 하나님의 뜻과 빛의 자녀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여주고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는 삶,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삶을 사는 것이 거룩한 과정입니다. 이것을 말씀하시려고 10장의 처음부터 끝까지 고넬료라 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고, 오늘 본문의 11장에서도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이 이방을 향하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세밀하신 간섭 안에는 바로 저와 여러분 때문이라는 말씀, 바로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의 목표요 목적이고, 이 목표가 생명을 만드시고 자라나게 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의 인격으로 요구하시는 그 자리,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 대접하시는 것입니다. 아멘!   그러기에 복음이 이방으로 들어가는 첫 사건에 하나님이 이 모든 일을 주선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계획하시고 이루신 것입니다. 이 일에 베드로를 설득하였고 고넬료를 설득하는 장면이 번거롭게 나오는 것입니다. 이 보자기 안에 들어 있는, 아니 여기 있는 짐승을 잡아먹으라고, 이런 것들을 절대 먹지 않겠다, 내가 깨끗하다고 했는데 네가 거부할 것이냐는 설득을 하신 것입니다. 왜요? 여러분이 하나님의 목적이고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그러기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히 4장 16절,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 갈 것이니라”(히 4:16) 그런데 우리는 은혜를 구하기 위해 나가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아주 작은 것 하나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하면 무척 좋아하십니다. 과거의 못된 모습이 있다 하더라도, 그래서 때론 납득이 안 가는 부분을 보여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여러분, 아합왕이 누굽니까? 기원전 873년경 분열 이스라엘 왕국의 7대 왕이 아합왕입니다. 열왕기하의 기록에 의하면 어떤 이스라엘 왕보다 더 악한 짓을 한 왕이었고, 엘리야 선지자가 그 때 활동했습니다. 정말로 죽어 마땅한 왕 아닙니까? 그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이 탐나 돈을 주고 사려하니까 나봇이 안파는 것입니다. 그것을 아내 이세벨에게 말하였고 이세벨의 농간으로 나봇이 죽은 것 아닙니까? 아합이 나봇의 죽었다함을 듣고 나봇의 포도원을 취하러 내려가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아합에게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아합왕의 피, 곧 몸의 피도 핥은다고 말하니까 그런 그가 어떻게 해요?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며 회개하니까 하나님은 재앙을 그의 시대에 내리지 않고 그 아들의 시대에 내신다고 말씀을 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뿐입니까? 창세기 18장에 보면 소돔 고모라를 멸망시키기 위해 하나님 당신께서 친히 강림을 하십니다. 그런데 그 전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만나 당신이 하시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고,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다는 말씀,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죄악이 심히 중해서 당신이 직접 보고 알려 하노라 하면서 이 도시를 멸망하겠다고 하니까 아브라함이 어떻게 간청합니까?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 하냐고 의인 50명이 있으면 멸하시지 않겠느냐는 부탁을 합니다. 결국 몇 명까지 깎아요? 열 명까지 깎는 아브라함을 봅니다. 여러분, 아합왕 이야기나 아브라함의 이야기나, 제가 이야기를 하는 핵심은 의인 50명과 10명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는 하나님의 목표가 아브라함이라는 것이고, 회개하는 아합왕입니다. 이것은 동일하게 우리에게 적용되며 여러분이 하나님의 목표라는 사실입니다. 무엇을 시키려는 것 때문에 부른 것 이전에 그 가운데에 여러분이 있다는 것이고 그 이유는 여러분의 인생을 통하여 여러분을 거룩케 되게 하시려고 하나님과 더불어 기쁨을 나누시는 삶이 되게 하시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신 예수그리스도가 직접 이 땅에 오신 것 아닙니까? 혹시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이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향한 목표를 위한 일이고 여러분을 거룩하게 하시려는 은혜, 그래서 때론 고되게 하시지만 훗날 당신의 약속과 복 주심과 인도하심이 부어지게 하시는 은혜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베드로 자신이 경험한 바에 따라 사실 그대로 증거를 한 내용입니다. 아무 의심 말고 함께 고넬료의 집에 따라 가라고 하시는 성령의 명령을 받고 가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하는 중,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는 것을 보았고, 성령은 처음 자기들에게 임하심과 동일하게 임하신다는 사실 앞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하신 주의 말씀, 결론적으로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저희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관데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고 하면서 구원은 이스라엘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그렇지만 그가 경험했던 이야기를 나눔으로 베드로를 힐난한 일로 문제가 제기된 이 일이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오늘 본문인데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다는 결론은 결국 누구의 목표? 바로 하나님의 목표요, 이 하나님의 목적이자 목표가 바로 저와 여러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위해 하나님은 유대인과 이방인들의 담이 무너트렸고 오늘 이렇게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던 것입니다.   무엇을 위해서요?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 대접하시기 위해, 거룩의 과정을 이루는 삶을 위해, 예수님을 믿고 따르도록 함이고, 죄에 대한 올바른 견해의 변화에 부응함으로 죄에 대한 올바른 감정을 가져, 죄는 호감이 아니라 추악하고 혐오스럽게 여기는 삶을 살도록,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살고,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삶을 사는 것이고,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의 삶을 살아 어두운데서 불러내신 하나님의 뜻과 빛의 자녀로서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기 위함이란 것,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하도록 우리를 부르셨고 사용하심으로 아직 주를 모르는 자들에게 나타내 보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이것이 오늘 본문이 말씀하신 핵심입니다. 여러분, 이제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아직도 신앙생활 속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보다는 필요할 때만 찾고 그냥 모른채 하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의 목표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만나는 사건, 사건 안에 여러분을 향하는 하나님의 마음이 바로 여러분이 목표라는 것을 가슴에 품고 이번 한 주간도 주 앞으로 더 가까이 가는 여러분, 거룩의 과정을 이루는 여러분 모두가 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기도하겠습니다.  

  • 주일설교-“2017년의 바다를 향하며”(시 107편 23-32) 19일전

    기타리스트 첵 엑켄스가 만든 [Sail]이라는 연주곡이 있습니다. 이 곡은 배를 타고 바다를 나가 멀리 항해를 하는 느낌과 무사히 항해를 마치고 다시 항구로 돌아오는 느낌을 받게 하는데, 곡을 듣다보면 나 자신이 마치 낭만적인 항해를 하고 있는 것처럼 만듭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낭만적인 항해를 선호하지 않습니까? 낭만적인 항해라는 것은 드넓은 바다와 망망대해 위에 한 척의 배를 타고 가면서 돛을 올리고 순풍을 맞으며 미끄러지듯 달려가는 그것인데, 솔직히 항해는 늘 낭만만을 주지 않습니다. 때론 폭풍을 만나 낭만보다는 사느냐 죽느냐가 문제되고 특히 어부들에게는 낭만보다는 생사의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고기를 잡지 못해 그 날을 포기하기 싫어 빈 배로 돌아갈 수 없는 마음으로 다시 바다를 나간다 하지만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폭풍을 만나면 심각해지는 것이 행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2017년이라는 바다를 향하여 나가려고 하지 않습니까? 한 번도 가보지 않은 2017년의 바다를 항하여 떠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면 이 항해에 대한 이야기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한 예로 우리가 잘 아는 요나서를 보면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해” 니느웨로 간 것이 아니라 지금의 스페인인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달아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보내신 폭풍을 만나지 않습니까? 그리고 공관복음에도 예수님과 제자들이 탄 배가 폭풍을 맞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유리귤라는 돌풍인데, 이 돌풍이 일어난 장소는 진짜 바다가 아니라 갈릴리라는 커다란 호수라는 것, 그러니까 그만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항해는 낯선 이야기입니다 그 이류가 바다가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즉 이스라엘에게는 바다가 생소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이 낯선 항해에 대해 아주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항해를 해보지 않은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배를 타고 항해를 하는 내용들을 담고 있는데, 사실 시편107편은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로서 많은 고생을 하다가 고국으로 돌아온 후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회고하며 쓴 시입니다. 특별히 위태한 풍랑 속에서 구원받은 이스라엘을 비유하고 있는 본문을 나누면서 2017년 바다를 떠나는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무엇인지 나누는 이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첫째로 ‘기이한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23절입니다. “배들을 바다에 띄우며 큰물에서 일을 하는 자는”(시 107:23) 먼저 기이한 일을 경험하는 자들에 대해 거론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배들’이란 꽤 많은 배들을 가리키고 있고 큰물에서 항해를 할 수 있는 큰 배들을 가리킵니다. 여기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을 거론하고 있는데, 이들은 바로 여러 척의 배를 가지고 큰 바다를 오가며 장사하는 해상 무역업자들 가리킵니다. 이들이 바로 기이한 일들을 본다고 하고 있는데, 24절입니다.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들과 그의 기이한 일들을 깊은 바다에서 보나니”(시 107:24) 그러면 기이한 일들이라고 하는 이것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이고, 바다에서 펼쳐지는 일들을 가리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배는 당시로서는 최고의 배들이고, 자신만만한 배들입니다. 그런데 기이한 일, 즉 폭풍을 만나면 십중팔구 침몰할 수밖에 없다는 기인한 일들을 말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25-27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명령하신즉 광풍이 일어나 바다 물결을 일으키는도다 그들이 하늘로 솟구쳤다가 깊은 곳으로 내려가나니 그 위험 때문에 그들의 영혼이 녹는도다 그들이 이리저리 구르며 취한 자 같이 비틀거리니 그들의 모든 지각이 혼돈 속에 빠지는도다”(시 107:25-27)   큰 폭풍이 엄청난 광풍으로 나타나, 바다 물결을 일게 하여 배가 그 파도에 휩쓸려 하늘 높이 솟구쳤다가 그 다음 순간 바다 속 깊이 처박히게 된다는 이야기, 이것으로 인하여 배 안에 있는 선원들은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마치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데, 여러분, 식스 플래그에서 롤로코스트를 타보신적이 있습니까? 롤러코스트가 회전하면서 앞뒤로 움직이지 않습니까? 갑자기 밑으로 쳐 박히듯 내려가고 다시 솟구쳐 올라가는 과정을 통해 정말로 미치게 만드는 것이 롤러코스터 아닙니까?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는 타면 완전히 숨이 멎는 느낌 때문에 싫어합니다. 그래서 무서운 바다로 인하여 파도가 위로 솟구치게 하고 다시 아래로 떨어지게 함으로 느끼는 공포는 상상 그 이상이 되는데, 26절이 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 위험 때문에 그들의 영혼이 녹는도다”라고. 무엇이에요? “이젠 끝이구나, 끝났구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이한 일이에요.   인생이라는 항해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때론 순풍을 만나 돛을 단 배가 잔잔한 수면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가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예기치 않는 폭풍으로 인하여 롤러코스터가 되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큰 타격을 주게 됩니다. 집채만 한 파도에 의해 하늘 높이 솟구쳤다가 곧바로 바닥도 모를 저 아래로 곤두박질치듯 떨어지기도 하는 인생 속에서 두려움과 공포가 영혼을 다 녹아버리게 하고 좌절과 낙망가운데 있게 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이런 순간에 도대체 누가 나를 도울 수 있겠냐며 무슨 희망이 있겠느냐고 질문을 한다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 누가 도울 수 있겠으며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고 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1장 2절을 보면 “네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약 1:2)고 했습니다. 무슨 이야기에요? 예수를 믿든지 믿지 않든지 인생에는 여러 가지 시험이 있다는 이야기이고, 다양한 풍랑을 만난다는 이야기, 즉 인생은 풍랑의 연속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을 자기만 겪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다 겪는 것이 풍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하는 고난을 믿음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이 그 해답을 제시하잖아요? 그 해답이 무엇입니까?   두 번째로 부르짖음입니다. 19절을 볼까요?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되”(시 107:19) 인생의 폭풍을 만나도 믿음의 눈을 가지고 ‘부르짖으라’는 것인데,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인생은 폭풍은 다양하지 않습니까? 암이나 여러 가지 질병일 수도 있고, 때론 가정의 문제로, 경제적인 문제로, 자녀의 문제로 신분의 문제로 다가옵니다. 힘들게 하고 무섭게 만들어 마치 침몰하고 마는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그렇지만 오늘 본문은 부르짖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구에게 부르짖는 것일까요? 세상의 방법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께 부르짖으라고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바다에서 일어나는 폭풍과 인생의 폭풍 모두가 하나님의 소관 아래 있기 때문이고, 그 어떤 폭풍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일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25절에 “여호와께서 명하신 즉 광풍이 일어난다”고 한 것이고 그에게 부르짖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가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널 때 갑자기 큰 광풍이 일어나 물결들이 배에 부딪치게 되고 파도로 인하여 배에 물이 가득 차, 배가 가라앉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사색이 되어 큰 물결과 싸우지만 정작 주님은 배를 타고 있지만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주무시고 있지 않습니까? 죽어라고 싸우고 있는 제자들과 상관없이 주님은 무슨 일 있냐는 듯 아무 반응도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섭섭하게 느끼도록 하고 답답하게 느끼도록 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주무시고 계신 것처럼 보이지만 그분은 다른 곳에 계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타고 있는 배, 즉 내가 타고 있는 배 안에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내 인생의 배에 함께 타고 계시고, 내가 지금 맞고 있는 이 인생의 폭풍도 함께 맞고 계신다는 것인데, 제자들이 어떻게 해요? 배 안에 계신 예수님을 깨우지 않습니까? 이것이 바로 부르짖음이에요.   그러면 어떻게 부르짖음일까요? 마가복음 4장 38절처럼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않으십니까?”(막 4:38)인 것입니다. 주님밖에 구해 주실 분이 없다고, 살려달라고 부르짖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랬을 때 바람을 향해 바다를 향해 꾸짖으시는 소리, “잠잠하라, 고요하라”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고, 즉시 잠잠해 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29절입니다. “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물결도 잔잔하게 하시는도다”(시 107:29) 여러분, 세상은 인생의 풍랑 앞에 당당히 맞서라고 말합니다. 이 말이 멋져 보이고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주님 없이 맞서는 것은 아주 위험하고 무모한 일입니다. 주님을 의지할 때 안전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만 의지하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아들인 당신이 여러분의 인생의 배에 함께 타고 계시고 여러분이 맞는 폭풍도 함께 맞고 계셔서 부르짖을 때 잠잠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부르짖는다는 것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2017년이라는 바다를 향해 떠나는 우리 모두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함으로 주님이 당신을 괴롭게 하는 광풍을 평정히 하실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신다고 했습니다. 30-31절입니다.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시 107:30-31) 이것은 결과를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여기 ‘바라는 항구’라는 말은 ‘소원의 항구’를 말합니다. 아무리 큰 폭풍을 만나도 하나님께 부르짖음으로 도착하는 곳이 소원의 항구이고 그 항구에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으로 하나님의 행하시는 기적이 담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에요? 하나님의 도움을 실제적으로 받으면서 살아가는 인생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 땅에 보내신 섭리와 뜻을 깨달으며 마음속의 소원을 이루며 살아가면서 파도가 잠잠해도 혹은 광풍과 폭풍이 불어와도 삶의 태도가 변하지 않으며, 목적지를 이루기 위하여 서서히 나아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소원을 심어 주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기이한 일”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은 2017년의 한 해의 시작입니다. 그것도 1월 1일 주일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한다고요? 파도 뒤에서 그 파도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여러분의 인생의 배에 함께 타고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하며, 그 큰 폭풍을 헤치고 끝내 도달하게 될 소원의 항구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우리의 자세는 바라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르지는 것을 붙잡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부르짖을 때 크고 놀라운 비밀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2017년 여러분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기이한 일을 자랑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늘 감사함으로 여러분의 광야에서 생수를 내시고, 광야에 강도 내시고 광야를 삼림으로 바꾸시는 기적을 이루어 살아계신 하나님을 나타내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기적의 현실이 아직은 구체화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2017년의 바다를 향해 떠나는 우리에게 오직 여호와 하나님으로만 가능하다는 말씀을 붙잡고, 부르짖되 오직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의 이름으로만 가능하다는 이 사실을 잊지 않음으로 승리하는 여러분 모두가 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기도하겠습니다.

  • 2017년 은혜의 말씀 성구들 25일전

    2017년 은혜의 말씀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창 13:14~15)   2017년 은혜의 말씀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창 22:17)   2017년 은혜의 말씀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창 26:4)   2017년 은혜의 말씀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 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창 28:14)   2017년 은혜의 말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창 28:15)   2017년 은혜의 말씀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출 13:21~22)   2017년 은혜의 말씀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 19:5~6)   2017년 은혜의 말씀 “너희는 내 법도를 따르며 나의 규례를 지켜 그대로 행하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너희는 내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레 18:4~5)   2017년 은혜의 말씀 “네 하나님 여호와는 자비하신 하나님이심이라 그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며 너를 멸하지 아니하시며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잊지 아니하시리라”(신 4:31)   2017년 은혜의 말씀 “오늘날 내가 네게 명령하는 여호와의 규례와 명령을 지키라 너와 네 후손이 복을 받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한 없이 오래 살리라”(신 4:40)   2017년 은혜의 말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신 5:10)   2017년 은혜의 말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복이 너희에게 있을 것이며 너희가 차지한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리라”(신 5:33) 2017년 은혜의 말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고 선량한 일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그 땅에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겠다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아름다운 땅을 차지하리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으리라”(신 6:18~19)   2017년 은혜의 말씀 “그런즉 너는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할지니라 너희가 이 모든 법도를 듣고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지켜 네게 인애를 베푸실 것이라”(신 7:11~12)   2017년 은혜의 말씀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내리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반드시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신 15:4~5)   2017년 은혜의 말씀 “여호와께서도 네게 말씀하신대로 오늘 너를 그의 보배로운 백성이 되게 하시고 그의 모든 명령을 지키라 하리라 확언하셨느니라 그런즉 여호와께서 너를 그 지으신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사 찬송과 명예와 영광을 삼으시고 그가 말씀하신 대로 너를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라”(신 26:18~19)   2017년 은혜의 말씀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신 28:1)   2017년 은혜의 말씀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신 28:2-6)   2017년 은혜의 말씀 “여호와께서 너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날 네게 명령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신 28:13~14)   2017년 은혜의 말씀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이 율법책에 기록된 그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고 네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여호와 네 하나님께 돌아오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과 네 몸의 소생과 네 육축의 새끼와 네 토지 소산을 많게 하시고 네게 복을 주시되 곧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을 기뻐하신 것과 같이 너를 다시 기뻐하사 네게 복을 주시리라”(신 30:9~10)   2017년 은혜의 말씀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신 31:6)   2017년 은혜의 말씀 “여호와 그가 네 앞에서 가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신 31:8)   2017년 은혜의 말씀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신 32:10)   2017년 은혜의 말씀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는 그 곁에 안전히 살리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날이 마치도록 보호하시고 그를 자기 어깨 사이에 있게 하시리로다”(신 33:12)   2017년 은혜의 말씀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수 1:8)   2017년 은혜의 말씀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땅에서 위대한 자들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삼하 7:9)   2017년 은혜의 말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릇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왕상 2:3)     2017년 은혜의 말씀 “네가 어디로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들의 이름 같은 이름을 네게 만들어 주리라”(대상 17:8)   2017년 은혜의 말씀 “하나님은 헤아릴 수 없이 큰일을 행하시며 기이한 일을 셀 수 없이 행하시나니 비를 땅에 내리시고 물을 밭에 보내시며 낮은 자를 높이 드시고 애곡하는 자를 일으키사 구원에 이르게 하시느니라.”(욥 5:9~11)   2017년 은혜의 말씀 “네가 만일 하나님을 찾으며 전능하신 이에게 구하고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반드시 너를 돌보시고 네 의로운 처소를 평안하게 하실 것이라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 8:5~7)   2017년 은혜의 말씀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욥 22:21)     2017년 은혜의 말씀 “네가 무엇을 결정하면 이루어질 것이요 네 길에 빛이 비치리라”(욥 22:28)     2017년 은혜의 말씀 “내가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       2017년 은혜의 말씀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시 1:1~3)   2017년 은혜의 말씀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시 3:3~4)   2017년 은혜의 말씀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시 18:1~2)   2017년 은혜의 말씀 “내가 환난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의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시 18:6)   2017년 은혜의 말씀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시 19:7~8)   2017년 은혜의 말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받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시 23:1~3)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 23:4)   2017년 은혜의 말씀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바라나이다”(시 25:4~5)   2017년 은혜의 말씀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시 27:1)   2017년 은혜의 말씀 “내가 주의 인자하심을 기뻐하며 즐거워할 것은 주께서 나의 고난을 보시고 환난 중에 있는 내 영혼을 아셨으며 나를 원수의 수중에 가드지 아니하셨고 내 발을 넓은 곳에 세우셨음이니이다”(시 31:7~8)   2017년 은혜의 말씀 “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두르시리이다”(시 32:7)       2017년 은혜의 말씀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시 34:7~9)   2017년 은혜의 말씀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여호와의 얼굴은 행하는 자를 향하사 그들의 자취를 땅에서 끊으려 하시는도다 의인이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들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시 34:15~17)   2017년 은혜의 말씀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시 34:18~19)   2017년 은혜의 말씀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을지어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시 37:3~4)   2017년 은혜의 말씀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시 37:5~6)       2017년 은혜의 말씀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시 37:23~24)     2017년 은혜의 말씀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시 46:1~3)     2017년 은혜의 말씀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시 55:22)     2017년 은혜의 말씀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시 62:1~2)     2017년 은혜의 말씀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하나님이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시오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니 여호와여 지체하지 마소서” (시 70:5) 2017년 은혜의 말씀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시 84:11)     2017년 은혜의 말씀 “여호와여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가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께 부르짖으리니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이다”(시 86:6~7)     2017년 은혜의 말씀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 이는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리로다.”(시 92:12~13)     2017년 은혜의 말씀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시 103:8)     2017년 은혜의 말씀 “우리의 죄를 따라 처벌하지는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는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시 103:10~11)   2017년 은혜의 말씀 “여호와께서 우리를 생각하사 복을 주시되 이스라엘 집에도 복을 주시고 아론의 집에도 복을 주시며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을 막론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시리로다”(시 115:12~13)     2017년 은혜의 말씀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시 121:5~6)     2017년 은혜의 말씀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시 121:7~8)     2017년 은혜의 말씀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 126:5~6)     2017년 은혜의 말씀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시 128:1~2)   2017년 은혜의 말씀 “내가 환난 중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를 살아나게 하시고 주의 손을 펴사 내 원수들의 분노를 막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구원하시리이다”(시 138:7)     2017년 은혜의 말씀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시 139:7~10)     2017년 은혜의 말씀 “여호와는 나의 사랑시요 나의 요새이시요 나의 산성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방패이시니 내가 그에게 피하였고 그가 내 백성을 내게 복종하게 하셨나이다 ”(시 144:2)   2017년 은혜의 말씀 “여호와께서는 그 모든 행위에 의로우시며 그 모든 일에 은혜로우시도다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시 145:17~18)   2017년 은혜의 말씀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잠 3:1~2) 2017년 은혜의 말씀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잠 3:3~4)     2017년 은혜의 말씀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5~6)     2017년 은혜의 말씀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잠 3:9~10)     2017년 은혜의 말씀 “지혜를 버리지 말라 그가 너를 보호하리라 그를 사랑하라 그가 너를 지키리라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네가 얻은 모든 것을 가지고 명철을 얻을지니라.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잠 4:6~8)   2017년 은혜의 말씀 “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잠 8:34~35) 2017년 은혜의 말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나 지혜로 말미암아 네 날이 많아질 것이요 네 생명의 해가 네게 더하리라”(잠 9:10~11)     2017년 은혜의 말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니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잠 14:26~27)     2017년 은혜의 말씀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잠 16:1~3)     2017년 은혜의 말씀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 16:9)     2017년 은혜의 말씀 “너는 가서 기쁨으로 네 음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실지어다 이는 하나님이 네가 하는 일들을 벌써 기쁘게 받으셨음이니라”(전 9:7) 2017년 은혜의 말씀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사 12:2~3)

  • 주일설교-“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사 9:6-7) 26일전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사 9:6-7)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옆에 계신 분들과 기쁘게 인사를 나누어 주시기 바랍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오늘은 우리를 위해,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스스로 우리 가운데 오신 하나님, God with Us, 하신 주님이 탄생하신 날입니다. 원하기는 예수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가슴깊이 새기는 특별한 성탄절이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소련 우주 비행사 유리 가가린이요, 한 초등학교를 방문했습니다. 열광하는 어린이들에게는 우상과 같은 그가 교단 위에 올라서서 엄숙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 저는 지구 밖을 다녀왔고, 지구 밖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며 우주인으로 되게 한 조국에 감사하며 자부심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람이 베들레헴 말구유에 탄생하여 결국 십자가에서 죽었고, 그 죽은 예수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났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우주선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 하나님과 예수가 있는 곳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하나님과 예수는 없었습니다. 오직 위에는 태양과 달만 있었고 아래는 아름다운 지구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천국과 하나님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의 이 말에 아이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 박수 소리가 멎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한 작은 어린아이가 일어나 “가가린 동무, 그 하나님과 그 천국은 유대 땅 베들레헴에 탄생하신 후로부터 지금까지 나의 마음속에 나와 같이 있습니다. 가가린 동무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가가린 동무가 예수를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난 그 천국과 예수가 나에게 있기에 우주선을 타고 지구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고 이 교실 안에서도 예수를 보고 있습니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파스칼이 말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을 알 수 없고 우리 자신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생과 사를 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700년 전에 예언한 말씀으로, BC 759년에 이사야가 기록한 예언의 말씀이 오늘 본문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이 오시기 700년 전에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 아기는 온 세계를 다스리고, 인간들을 위해 고난을 그 어깨에 걸머지게 될 것’이라는 예언한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인데 먼저 6절을 봅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 9:6)   참으로 놀라운 이야기 아닙니까? 안 그래요? 한 아기가 태어나는데, 이 아기의 어깨에 정사를 메고 있다고 합니다. 정사가 무엇이에요? 세계를 다스릴 수 있는 권리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태어나는 이 아기가 우주를 통치하고 세계사와 민족사와 역사를 주관할 힘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바꿔 말하면 개인과 민족들의 운명이 이 아기에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렇게 세계를 통치하고 모든 사람을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짊어지신 분이 막중한 책임과 권세를 가지고, 가장 나약하고, 유약한 아기로 오신 것입니다. 태어나실 방도 없어서 베들레헴의 한 구유 안에서 자신의 거처를 삼았고, 그것도 너무나 초라하게 탄생하신 것 아닙니까? 이렇게 탄생하시는 예수님에 대해 오늘 본문은 이렇게 소개하고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를 나누면서 오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기묘자’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기묘자라는 의미는 ‘놀랍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어성경에는 ‘Wonderful’로 되어 있는데, 한마디로 말하면 이 아기의 이름이 아주 ‘놀랍다’라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왜? 놀라운 것일까요? 이 만큼 더 설명이 나올 수 없기 때문에 ‘놀랍다’라는 단어 외에는 다른 단어로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에 ‘놀랍다’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놀랍다가 되게 한 것일까요? 탄생부터 놀라운 것입니다. 생각해보세요? 남자도 모르는 처녀가 성령님을 통해, 즉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이 땅에 탄생하셨는데, 이 사실이 놀라운 것입니다. 믿기지 않는 내용 아닙니까? 이것을 상식적으로 믿으라고 하면 믿겠습니까? 우리가 아는 상식은 아기의 탄생은 남녀의 관계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 아니에요? 그런데 전혀 관계가 없는 처녀에서 아이가 태어난다는 것은 우리 인간의 지혜와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안 그래요? 그래서 이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납득이 가지 않아 거짓된 사실을 날조했다고, 이성과 논리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기에 신화라고 까지 주장을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죄 사함까지 하십니다.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 초대를 받은 예수님에게 어떤 한 여인이 들어와 예수님의 발에 값비싼 향유를 한 방울도 남기지 않은 채 다 부었을 때 예수님이 그에게 “네 사함을 받았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때 같이 있었던 바리새인들, 즉 종교 당국자들이 어떻게 반응합니까? 눅 7:49절에 “함께 앉아 있는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눅 7:49)고 반응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어떻고요?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은 많은 사람들은 그분의 권위 있는 가르침에 다들 놀랍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막 1:22절에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 일러라”(막 1:22)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에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요? 모든 인류의 모든 죄를 위한 죽음 아닙니까? 무슨 이야기이에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입니다. 그리고 삼일 만에 부활하셔서 많은 제자들에게 당신의 부활한 몸을 보여주셨는데, 여러분, 상식의 답은 죽음은 그냥 죽음 아닙니까? 안 그래요? 죽은 자는 살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든 권세들을 이기시고, 무덤 속에서 삼일 만에 부활하셨는데, 중요한 것은 부활하신 당신께서 오늘 우리가 드리는 이 성탄감사예배 가운데 함께 하시면서, 우리의 모든 예배를 받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는 ‘모사’라고 하였습니다. ‘모사’라는 말의 의미는 ‘상담자’라는 의미입니다. 영어로 ‘Counselor’이에요. 요즘에야 이 단어가 익숙하지만 성경을 한글말로 번역할 당시에는 이 ‘상담’이라는 단어가 익숙하지 않아 ‘지혜를 가지고 문제를 풀어 주는 놀라운 분이라는 의미’로 이 ‘모사’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여하튼 우리 주님이 상담자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무엇에 대한 상담일까요? 바로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에 관한 진정한 해답을 알고 계시기에 우리를 위해서 친절한 상담자가 되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선포하고 있어요. 히 4:15절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 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5) 그러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아픔을 공감하신다는 이야기이고, 우리의 눈물뿐만 아니라, 우리의 고독과 아픔과 불안과 절망을 아신다는 것, 그래서 이 상담자가 되신 주님이 우리 곁에 오셔서 함께 그 고통을 겪고, 눈물을 흘리며, 위로해 주시고, 치료해 주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세 번째는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이런 찬양이 있어요. “예수 산을 옮기시는 내 주는 능력의 주” 무엇이에요? 이 성탄절에 우리에게 오신 아기 예수님은 평범한 아기가 아니셨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누구입니까? 본질에 있어서 하나님입니다. 골로새서 1장 15-17절입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로새서 1:15-17) 그러니까 하나님이 인간의 모습을 입고, 아기로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엄청난 역설은 갈릴리의 베들레헴의 초라한 한 마구간에서 탄생하신 것으로 시작되었고, 어느 특정인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다 만나도록 하셨다는 사실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가 지난주에 나눴듯이 고넬료 주님을 만나는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사도요한은 요한복음 1장 18절에서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 하신 하나님이 나타나셨느니라”(요 1:18)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은 정말 인간의 지혜와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이야기 아닙니까? 그러면서 인간의 몸을 입으신 하나님이 친히 세상에 제시한 자신인데, 이것을 받아들이든지 거부하든지 모두 다 예수님에 해당되는 이야기라는 사실입니다. 안 그래요? 자신을 제시한 그 당시, 그러니까 BC 6년은 살기에 척박한 때였습니다. 유대인의 왕인 헤롯이요, 유혈 음모와 로마의 정치 후원으로 이스라엘을 장악했고, 유대인의 행세를 하며 지냈지만 모든 사람에게는 끔찍한 압제의 시기였습니다. 그때, 유대 산골의 엘리사벳이 첫 아이를 잉태하지 않았습니까? 가임기를 훌쩍 넘겨 폐경까지 겪은 여인에게 일어난 사건이 생긴 것입니다. 이 잉태된 아이가 아주 특별한 목적, 무엇이에요? 그러니까 메시아의 선구자가 될 사람으로 잉태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해가 안 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은 그렇게 하실 수가 있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절망의 이중적 상징인 엘리사벳의 불임과 노령은 하나님께서 불가능이 없음을 알리는 수단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고, 병든 자를 치유하시고, 물을 포도주로 바꾸시는 분, 이 전능하신 하나님이 오신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살리려고,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기 위하여 친히 오셨습니다. 그래서 평범한 아기가 아닙니다. 본질에 있어서 전능한 하나님입니다. 이 분이 지금도 살아계셔서 여러분의 기도를 들으시고 여러분을 도우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네 번째로 ‘영존하시는 아버지입니다. 영어로 ‘Everlasting Father‘인데, 이것은 ‘언제나 변함없이 자기 백성에게 아버지같이 대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다른 표현으로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 하신다는 말씀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그 분과 함께하면 세상이 두렵지 않고요, 사람들이 두렵지 않고 실패가 두렵지 않는 것 아닙니까? 이 영존하신 하나님이 넓은 들에서 말씀을 전하실 때 남자 오천 명과 그 가족들이 산비탈에 그룹을 지으며 모였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빌립에게 이런 말을 하십니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요 6:5) 이 질문은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신 질문 아닙니까? 사실 하나님은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분이시고 약속 없이 일을 시키지 않습니다. 이것을 잘 이해 못한 빌립이 사람의 수와 그에 드는 빵 값을 계산하지만,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몇 십 배의 풍요로 그 많은 사람들을 돌리신 영존하신 아버지이신 예수님입니다. 왜? 입니까? 덧셈이 아니라 곱셈으로 답하시는 영존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기에 주님이 마 6장 26절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 6:26)고 하셨던 것입니다. 원하기는 우리를 세상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며 우리를 기르고 돌보시는 놀라운 그분, 영존하시는 아버지가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로 ‘평강의 왕’입니다. 누가는요, 누가복음 2장 14절에서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그날 밤에 하늘에 있는 천사들이 노래하며 외친 내용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 여기에 중요한 포인트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누가 평화를 경험하느냐?’입니다. 이 평화는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임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세상은 전력투구하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이 형 안에는 자수성가하고, 생활력이 강하고, 혁명가, 경쟁의식이 강한 사람, 실력자라를 결과물을 담아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들에게 나타난 공통점은 분노와, 우울과, 좌절, 불만, 탐욕, 권력욕, 혼란의 감정들을 바견하게 됩니다. 물론 그렇지 않는 분들도 있지만 로버트 와이즈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것은 다분하게 생산적인 활동을 만들지만 ‘뒤집히는 속’을 양성한다‘라고. 왜? 그러냐면 아무리 에너지를 쏟아 부어도 채워지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에요. 여러분, 이것의 반대가 무엇이에요? 바로 안식입니다. 안식은요, 들음과 믿음을 포함시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공급이기 때문입니다.   안식은 곧 평안입니다. 여러분, 세상은 요란하잖아요? 요란한 세상이지만 우리들의 마음은 평안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상은 이 평화를 전혀 알지 못하고, 맛볼 수 없지만 예수를 영접한 사람만이 누리는 평안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요 14:17절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요 14:27)라고 하셨습니다. 이 평안을 주시려고 주님이 오셨고, 한 아기로 태어나셨습니다.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는 하늘의 평안을 주시려고 싸우려는 총을 내려놓게 만들고 다툼의 벽을 사랑으로 바꿔버리려고, 여러분의 삶 속에서 마귀의 세력들이 마지막 숨을 거두는 것을 보게 하시려고 태어나셨습니다. ‘Prince of Peace’, 이것은 내면에 진정한 평안과 기쁨의 충만입니다. 즉 우리를 평화로 다스리신다는 뜻, 불안한 장래와 무한경쟁 사회 속에 살고 있지만 평강의 왕으로 말미암아 참 평안을 누리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이 나라가 영원무궁하다고 7절에 말하고 있습니다.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 9:7)   세상 나라는 흥망성쇠하며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린다는 것, 쉽게 말하면 로마도 멸망했고, 언젠가는 이 강대한 미국도 결국 망한다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주님이 다스리는 그 분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는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한 아기로 오시면서 시작된 이 나라는 영광의 왕으로 다시 오실 때 완성된다는 말씀, 우리를 평화로 다스리고 평안을 주시는 놀라운 그분의 이름은 평강의 왕이시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놀라운 한 아기를 주시겠다는 예언의 말씀은 700년 후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몸을 빌어 한 아기로 탄생하사 성취되었습니다. 이 한 아기 예수님으로 흑암에 있던 우리가 큰 빛을 보게 되었고, 우리의 어깨를 짓누르던 죄와 사망의 멍에를 십자가와 부활로 완전히 꺾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요 왕 같은 제사장으로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기묘자라 모사요 전능한 아버지가 되셔서 우리의 인생 문제를 해결하신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영존하시는 아버지로 우리를 돌보시며 평강의 왕으로 우리를 다스리는데, 여러분, 만약에 한 아기 예수님이 우리에게 나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떤 모습의 존재로 있게 되었을까요? 아직도 고통과 멸시를 받으며 흑암 속에 행하고 있을 것입니다. 구원과 전혀 상관이 없는 존재로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이 은혜를 주시려고 오셨고, 우리가 누리는 이 구원과 축복이 한 아기 예수님의 탄생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래서 한 아기 예수님의 탄생은 모든 사람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한 아기의 이름이 무엇이라고요?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영존하시는 아버지요, 평강의 왕이시라는 이 사실을 굳게 붙잡고 그 분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으면서 이번 성탄도 세상을 이길 수 있고 평안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사랑하며 감사하며 전하는 우리 모두가 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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