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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히 11:1-2)

 

교회를 다니면서 가장 많이 듣는 단어는 믿음입니다.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믿음이 없이는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삶의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믿지 않아야 할 것에 많은 믿음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권력을 믿는 사람은 권력으로 만용을 부려보지만 이것은 영원하지 않기에 한순간은 무너지고 마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재력을 믿는 사람 또한 이 재력을 가지고 재주를 부려보지만 이 재력 또한 영원하지 못하기에 효력이 없는 것입니다. 결국 무엇이에요? 전도자가 말하고 있듯이 다 헛됨으로 끝나고 맙니다. 그 어떤 것도 믿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인데, 그런 가운데 [믿음]에 대해 카세이드는 “감각은 창조의 움직임을 보는 것이요, 믿음은 하나님의 움직임을 보는 것이다”라 하였습니다. 왜? 그가 이렇게 말을 하였을까요? 아마도 하나님의 움직임을 본다는 것이 바로 큰 축복이기 때문에 그가 이 고백을 하였으리라 믿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은 믿음에 대해 이“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고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믿음의 정의를 두 가지로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는 [바라는 것들의 실상]과 다른 하나는 [보지 못하는 증거]라고요. 그러면 ‘바라는 것이란 무엇일까요? 이것은 어떤 것에 대한 기대와 원칙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기대와 원칙은 이것에 대하 믿음이 있기 때문에 바라고 기대를 갖는 것입니다. 이것도 없이 바라는 것은 헛된 것입니다. 생각해보세요? 바라지도 않는데 무슨 기대를 가집니까? 말도 안 되는 말입니다. 그리고 실상이란 실제 모양이나 상태를 말하는데, 마치 열매가 가득 차 있는 것을 들어다 보는 것을 말합니다. 바꿔 말하면 목표와 소망이 동일하다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심에 대한 확신과 기대가 가득 차 있는 것, 이것을 들어다 보는 것이 실상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모든 것들에 대한 하나님이 행하실 것에 대한 확신과 기대로 가득한 믿음을 수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시라는 확신과 기대가 현실로 나타나는 구체적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응답이 현실로 나타나는 역사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우리에게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눅 11:10)라고 하였습니다. 어윈 대령이라고 우주선을 타고 처음으로 달에 다녀온 그입니다. 그가 한국에 와서 간증한 내용인데 그는 달에서 지구를 볼 때 눈에 잡히는 광경은 우리가 여기서 달을 볼 때의 그것과는 판이하고 여기서 달을 보면 작아 보이고 흑백으로 보이지만 달에서 지구를 보면 엄청나게 커 보이고 총천연색이라고 하였습니다. 만리장성도 보인다고 하는데, 얼마나 장관이겠습니까! 이런저런 놀라운 이야기를 많이 한 그는 그러나 그 모든 것보다도 더욱 중요하고도 심각한 것이 있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우주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캡슐을 타고 지구를 향하여 떨어질 때, 낙하산두개가 펼쳐져야 합니다. 두 개의 큰 낙하산이 펼쳐져 공기 저항을 받음으로 조용히 안착하게 되는데, 낙하산은 하나만 펼쳐지고 다른 하나는 펼쳐지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비상수단을 써도 안 되니까 휴스턴 사령탑에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왜냐하면 그대로 떨어지는 날에는 아주 박살이 나고 말기 때문입니다. 모두들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바로 그 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하늘과 땅 위에서 그들은 모두 딱 한마디를 외쳤답니다. “기도하자!”라고요. 하나님께 기도하는 길밖에 다른 길이 없다고 생각하여 그들도 그리고 지구를 향해 떨어지고 있는 어윈 대령도, 휴스턴에 있는 모든 사람들도 다 같이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이 발생했는데, 느닷없이 땅에서부터 회오리바람이 일어나 치솟아 올랐습니다. 그 바람이 낙하산 둘을 펼쳐지게 하였고 그래서 같은 속도로 안전하게 떨어질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기적이었고 그는 말하기를 우주선은 휴스턴 사령탑에서 조정하는 줄 알았는데 그 뒤에 하나님께서 계셨다는 것을 그 사건을 통하여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 더 이야기 해볼까요? 아직 예수를 믿지 않은 어느 말기 암 환자가 죽음을 앞두고 있었는데, 그를 그렇게 보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어느 모 교회 여전도사님이 어느 목사님을 모시고 그 환자를 만났습니다. 막상 만났지만 그와의 대화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 짧은 만남에서 목사님이 자그마한 소리로 그가 듣든 말든 “예수를 믿으면 좋으련만”라고 거의 중얼 거렸는데 그 환자가 “그럼 한번 믿어보지요”라고 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즉시 그가 예수를 영접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두는 병실을 나왔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궁금하였지만 기도만 드리고 3개월이 지났답니다. 그러니까 이상하게 찾아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누군가에게 전화가 왔는데, 그 번호는 모르는 번호이어서 그냥 지나쳐 버렸습니다. 그 일이 몇 번 있다가 나중에는 그가 직접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그가 이렇게 인사하는 것 아닙니까? “안녕하세요! 목사님! 혹시 저 모르겠습니까?” “잘~ 모르겠는데요? 누구시죠?” “정말로 저를 모르나요?” “아, 네” “제가 병실에서~ 그럼 예수를 믿어 보지요라고 했던 그 말기 암 환자입니다” 빠짝 말라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던 그가 살까지 쪄서 찾아온 것이고 그의 간증은 그날 예수님을 영접하고 난 그 날 밤에 매스꺼워 화장실에서 속에 있었던 것들을 다 토해냈더니 덩어리도 나오고 피도 나오고, 이런 과정을 무려 10분 간 했더니 병이 나아 이렇게 건강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믿기지 않는 일을 경험한 것 아닙니까?

 

무엇을 말합니까? 그에게 있어서의 믿음의 목표와 소망은 고침이고 어윈 대령과 휴스턴의 사령탑과 시민들의 목표와 소망은 살려달라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이것은 결국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하신 모든 것들에 대한 구체적인 이룸에 대한 결과의 확신과 기대가 이렇게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난 것 아닙니까? 여기에는 응답이라는 확신, 즉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으로 나갔던 것이고, 이루어 질 것이라는 말씀 그대로 믿었던 믿음이 바탕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믿음은 순수한 확신이 포함되고 이것은 기도로 이어지게 만든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누가 기도를 해바라기 꽃이라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해바라기는 아침에는 동쪽을 향하여 몸을 돌리고 어두움 속에서도 찬란하게 떠오른 해를 사모하며 기다리기 때문이고, 점심때가 되고 저녁노을이 질 때에도 계속 해를 따라 움직이고 해가 져서 캄캄한 밤이 되어도 실망하지 않는다는 것, 왜냐하면 해바라기는 내일 또 다시 해가 뜰 것을 굳게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 16:24)라고 하였습니다. 이 은혜가 여러분에게 가득하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그래서 바라는 실상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보지 못한 것들인데 증거가 되는 것일까요? “육체의 눈으로 식별할 수 없지만 그것들의 실체를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어려운 말입니다. 하지만 믿음의 선배들은 이구동성으로 내 눈에는 지금 보이지 않지만 결과를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이라고 말들을 하였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바로 바라는 것의 실상이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고, 이것이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로 나타나게 하는 가능함으로 묶어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당장이 아니더라도 기도하면 반드시 행하시는 주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두에 꺼낸 카세이드의 [믿음]에 대해 말, “감각은 창조의 움직임을 보는 것이요, 믿음은 하나님의 움직임을 보는 것이다”입니다. 그리고 찬송가 344장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믿음만을 가지고서 늘 걸으며 이 귀에 아무소리 아니 들려도 하나님의 약속위에 서리라 걸어가세 믿음위에 서서 나가세 나가세 의심 버리고 걸어가세 믿음위에 서서 눈과 귀에 아무 증거 없어도]의 고백이 되는 것이고 막 9:23절의 말씀처럼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막 9:23)입니다. 아멘! 왜? 입니까? 믿는 자들에게 영혼의 눈과 같은 역할을 하도록 주어지는 것이고, 때론 허황되게 보일 수도 있어도 결론은 행하신 증거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누가 하신 것일까요?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렘 29:13은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렘 29:13)라 하였고, 이런 자의 특징은 당당히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 6:6)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하기도 전에 응답을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 (사 65:24) 그래서 본문 2절은 믿음을 실천하며 살았던 사람들에게 주어진 명예를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으니라”(히 11:2)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 주인공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2절의 이 말씀은 강한 어조요 아주 힘 있는 문체입니다. 왜냐하면 이 믿음은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요 이 땅에 살았던 믿음의 선진들이 자신들의 삶에서 나타낸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로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목숨 앞에서도 믿음을 지키는 명예를 얻게 하였을 뿐 아니라 두려움 없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고백과 함께 순교로 이어지는 기쁨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이 증거는 바로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인 죄인이 구원을 받은 것이고, 이것을 위해 당신께서 친히 오신 일이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제물이 되신 증거입니다. 여러분, 우리나라의 [한국 선교 역사에 있어서 아름다운 3가지 커다란 축복]은 우리나라에 파송된 선교사가 없었을 때 조국의 젊은이들이 능동적으로 중국에 나가 복음을 가지고 들어와 자주적으로 교회를 세운 것이고 선교사가 들어오기도 전에 능동적인 젊은이들의 도움으로 우리말 성경이 번역되어 우리 손에 들어오게 된 것이며 가난한 동방의 조그마한 나라에 선교사들이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토마스, 닥터 홀, 아펜젤러, 언더우드, 알렌, 사무엘 모페트…. 수많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민족이 겪는 고통과 고난도 함께 동참하였고 같이 살아갔습니다. 외세의 침략을 수없이 받았던 볼품없는 나라에 올 이유가 전혀 없는 사람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복음 때문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위해 하나님의 일꾼으로서의 삶을 살았으며 믿음의 모범을 보여주었던 것이 증거인 것입니다. 고향을 떠날 필요도, 고생할 필요도 없었던 그들의 가슴에는 타오르는 복음의 영정이 사그라질 때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드린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 안에 있는 복음은 생명을 투자하지 않고는 전달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요 주님이 하셨던 것처럼 그들 또한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로 오늘날 이 땅에 수많은 교회가 들어서게 하였고 어떤 비난이 쏟아져도 주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위한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포스딕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두려움은 감금시키지만 믿음은 해방케 하며, 두려움은 마비시키지만 믿음은 능력을 부어주며, 두려움은 실망케 하고 믿음은 격려해 주며, 두려움은 병들게 하고 믿음은 고쳐주며, 두려움은 망치게 하고 믿음은 유용하게 하며, 두려움은 소스라치게 하고 믿음은 피어나게 한다.”라고요.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여러분! 노아는 홍수가 있을 것을 알았기에 방주를 만들었고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것으로 만들겠다는 것을 알았기에 하나님이 주실 그 나라를 찾아 나섰습니다. 믿음은 마치 은행이 우리를 위해 우리의 돈을 보관할 수 있다고 믿지만 우리가 우리의 돈을 은행에 맡길 때까지는 은행에 대한 믿음을 행사한 것이 아닌 것이고 자동문이 앞에 서서 그 자동문이 자동이라는 사실을 알고 실천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이것을 순종이라고 합니다. 예스하고 문턱을 넘었을 때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순종의 출발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이고, 성령께서 말씀을 깨닫게 하신 말씀을 행동으로 옮기는 그 자리입니다. 믿음은 우리에게 있어서 이 세상에 대한 4가지를 알려줍니다. 첫째는 이 세상은 영원한 것도 또 스스로 존재하게 된 것도 아니며 누구에 의해서인가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고, 둘째는 믿음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이가 다름아 아닌 바로 우리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믿음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 말씀으로 창조하셨고 자신의 뜻대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고 마지막 네 번째는 이 세상은 무로부터 창조되었다는 것을 알려준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믿음이고, 이것이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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