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다시 사셨네”

(마 28:1-10)

 

라인 홀트 니버는 이런 말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십자가 안에서 내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다.”라고요. 여러분, 혹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장소, 그곳이 어디인지 아십니까? 우리의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친히 지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그곳은 해골이라 부르는 골고다라는 장소입니다. 그런데 이 장소에 세기의 모든 집중이 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이 장소에 가장 집중하고 계시는 분이 바로 아들을 그곳으로 보내신 하나님이시고, 천사들,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을 무너뜨리려는 마귀와 사탄이 숨을 죽인 채 주목하면서 집중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잠시 후면 엄청난 극과 극이 충돌되는 결과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고, 앞으로 펼쳐질 것도 모르고 이겼다고 파티를 하려는 무리들과는 전혀 상관이 되지 않는 전 인류의 운명을 뒤 바뀌어 놓을 최대의 사건이 이 골고다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 최대의 사건, 즉 빅 이벤트는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의 당신의 하나 밖에 없는 독생자를 죽여야만 하는 사랑이었던 것이고, 그가 죽어야만 살아나는 사랑이었습니다. 이 빅 이벤트를 하나님께서 직접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이 빅 이벤트를 직접 하신 것일까요? 죽음이 바로 앞에 있는데도 모르고 즐기고 있는 이들을 그냥 죽도록 내 버려둘 수 없었기 때문에, 사망이 찾아오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세상의 것에 머물고 있는 이들을 죽도록 내버려 둘 수가 없었기 때문에 이들을 너무나 사랑하신 당신께서 아들이 죽어야만 모두가 살게 되는 결정을 하셨던 것이고, 대신 죽어야만 되는 길을 위해 대신 죽어야만 하는 인간이 되셨던 것이며, 죄가 없는 사람으로 하나님이신 당신이 직접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잉카네이션 하심으로 친히 저주의 길목으로, 죽음의 길목으로 직접 섰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5) 이 이유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은 우연히 아닌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이자, 죄에 빠져 영원히 죽게 될 소망 없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 당신께서 직접 실시하신 일이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의 완성이 골고다에서 시작되고 있었고, 이 일에 하나님을 비롯하여 천사들과 사탄, 그리고 온 인류가 갈보리 골고다 언덕을 주목하였던 것입니다. 특히 사탄은 자신이 이겼다고, 자신이 성공했다고 파티를 벌리려는 생각까지 했었지만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것을 완전하게 부셔 버리게 되는 놀라움은 바로 사흘 뒤에 부활의 영광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지혜였고 이 하나님의 지혜는 승리의 나팔을 부는 그 외침이 되게 했으며, 영광의 덮음의 날이 되는 역사가 되게 함과 함께, 사망 권세를 깨치고 부활하신 그 날을 기념하는 날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기념하고 예배드리는 부활주일을 맞았습니다. 할렐루야!

 

이 역사의 현장을 오늘 본문에서는 빌라도 법정에 고발이 되어 십자가 위에서 처형 당하사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묻히셨지만 사흘 되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세 여인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사실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장사한 시간은 안식일 바로 전날, 오후 늦은 때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음 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에 이 두 사람은 서둘러서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바르고 세마포로 싸 무덤에 장사를 했는데, 이때 몇 명의 여인들이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장사하는 것을 지켜보았던 것입니다. 이것을 누가는 눅 23:55-56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는데, 들어보세요.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이 뒤를 따라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두었는지 보고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더라”(눅 23:55-56) 그러니까 이 여인들은 시간이 급해서 예수님의 장사가 미흡했다고 생각했기에 돌아가 향품을 준비해두었다가 안식일이 지나자마자 새벽에 무덤으로 갔다고 누가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24장 1절 하반절에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눅 24:1하) 라고 하고 있습니다.

 

마가도 이날 새벽에 무덤으로 갔던 여인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기록하고 있는데, 마가복음 16장 1-2절에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 두었다가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막 16:1-2)라고 하면서 무덤에 왔던 이들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는 없지만 요한복음을 보면 무덤 입구에 막혀 있던 돌문과 무덤 속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데, 열려 있었다고 하였고, 무덤 속도 텅텅 비어있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이 장사되신 이 무덤은 바위 속을 파서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입구는 큰 돌로 막아두었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들이 예수님이 장사된 무덤을 향하여 가고 있지만 그들 마음에는 무덤 문을 누가 열어줄 것인지에 대한 염려를 하였던 것이고 막상 무덤에 도착했는데, 그 막았던 돌이 굴려져 있는 것으 ㄹ본 것입니다. 요한복음 20장 1절에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요 20:1)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은 오늘 본문인 마태복음에는 없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것을 본 여인들이 깜짝 놀라 즉시 베드로와 요한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알렸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자들의 말을 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즉시 예수님의 무덤으로 달려가서 무덤을 보니까 정말로 비어 있는 것을 확인한 장면을 보여줍니다. 무엇이에요? 무덤은 비어 있었고 예수님의 시신은 그곳에 없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무덤 안에다 예수님의 시신을 쌌던 세마포가 그대로 놓여 있었던 것이고, 머리를 쌌던 수건도 예수님의 머리가 놓여 있던 그 자리에 놓여 있었다는 기록을 볼 수 있는데, 여기에 중요한 부분을 말하고 있는 것은 ‘쌌던 대로 놓여 있었다는 말’의 의미입니다. 이것은 수건을 풀거나 다시 개켜 놓은 것이 아닌 머리를 쌌던 그 상태로, 그러니까 머리만 빠져나가고 남을 상태로 놓여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무엇이에요? 무덤 안의 정황으로 미루어볼 때 누군가가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무덤 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요?

 

우리는 당연하게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수의와 머리를 쌌던 수건을 그대로 두시고 신비롭게 빠져나오셨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와 요한은 빈 무덤을 보고 8절에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요 20:8)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었다는 뜻이 아닌 9절 말씀, 무덤이 비어 있고 예수님의 시신이 거기 없다는 사실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무덤이 비어 있다는 이 사실에 그들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심한 절망과 좌절을 안고 집으로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사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하셨던 말씀, 즉 눅 9:22절의 말씀, “가라사대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눅 9:22)을 기억했어야 합니다. 그랬더라면 크게 기뻐했고 찬양을 했을 텐데, 그들은 말씀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와 요한은 돌아갔던 것이고 마리아는 울면서 무덤 속을 들어다본 것 아닙니까? 그때 흰 옷을 입은 두 천사가 왜? 우냐고, 무서워 말라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안다고 하면서 말한 것이 오늘 본문인 6절인데, 6절을 봅니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마 28:6) 무슨 말이에요? ‘와서 빈 무덤을 보라’는 것이고, 예수님의 시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의 의미는 생명의 주님은 무덤에 갇혀 있을 수가 없었다는 의미이고, 부활의 주님은 무덤 속에 갇혀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부활하셨다는 선언인 것입니다. 아멘!

 

그러기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여인들에게 하신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이 무엇입니까? 첫째가 평안하뇨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샬롬’이라는 말인데, 이 샤롬이라는 말 안에는 근심을 버리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왜? 입니까? “그렇다. 근심을 버려야 하는 이유가 있는데, 그 이유는 내가 살아났다”가 되었기 때문이고, 근심을 해결하셨다는 말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면 왜? 그럴까요? 바로 부활의 주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증거이고,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서 마음속에 기쁨과 평안을 회복하라는 뜻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바라고 원하기는 우리 또한 빌 4:6-7절에서 바울이 선포하였던 것처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가득하시기를 원합니다.

 

두 번째로 하신 말씀이 무서워 말라였습니다. 여러분, 여기에 ‘무서워 말라’라고 하신 이것은 곧바로 변화를 일으키게 하는 기쁜 소식을 듣도록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8절에 나온 말씀처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음질할 새”(마 28:8)가 되게 하였던 것인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이 기쁜 소식이고, “사셨네! 사셨네! 예수 다시 사셨네!”를 전하기 위해 달리는 소식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부활의 주님을 만난기쁨을 안고 염려도 걱정도 벗어 던지면서 두려워하는 다른 제자들에게 전할 소식이 무엇일까요? 10절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마 28:10) 무엇이에요? 약속대로 “갈릴리”에서 만나자는 전갈이었고, 제자들이 예수를 처음 만났던 장소, 주님과 함께 다녔던 장소에서 만나자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부활은 승리이고, 부활은 하나님의 아들임에 증명하심입니다. 즉 행 4;12절의 말씀처럼, “다른 이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의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도다”(행 4:12)의 결론이고, 요 11:25-26절의 말씀처럼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가 부활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처형되시고 사홀 동안 무덤 속에 있었던 것은 [예수님이 패했다]는 슬픈 소식이 될 수가 없었던 것이고, [예수의 패배]가 아닌 [예수가 죽음을 패배시켰다]이고 [사셨네! 사셨네! 예수 다시 사셨네!]가 되게 하심입니다. 그러기에 부활은 우리가 믿는 신앙의 핵심이고 우리 부활의 첫 열매입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되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부활의 주님이 오늘도 당신을 믿는 모두와 함께 하십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셨습니다. 죽음이 정복되었습니다. 이제 죽음은 우리에게는 더 이상 끝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죽음이라는 한계가 깨졌습니다. 우리는 죽어도 주님처럼 다시 살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지극한 영광중에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다시 살아나셨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살아계시며 영원히 살아계셔서 온 우주만물을 홀로 다스리십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2:9-11) 무엇이에요? 부활신앙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재림의 신앙을 가지며 살아야 합니다.

 

재림의 신앙이 무엇입니까? 제가 아는 어느 분이 Met Life라는 보험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자기 앞에 일하고 있는 흑인여성의 모습을 보고 큰 은혜를 받았다고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것이 무엇입니까? 라고 불었더니 그는 주일 예배에서 은혜를 받고 있고 다음 주일 예배를 기다려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재림 신앙을 가진 사람의 삶은 매순간 주님과 동행을 하기 때문에 주일에 드리는 예배 또한 주님 나라에서 드리는 예배를 소망하며 드리는 삶을 삽니다. 우리가 이 재림신앙의 사람, 부활신앙의 사람들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멋진 크리스천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번 한 주간동안 이 은혜가 가득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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