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행 19:8-20)

 

오늘 본문은 바울이 에베소에서 두란노에서 있었던 사건입니다. 인터넷 신문 허핏포스트 코리아에 미국 조지아 주립대 언어연구소에서 생후 9개월 때부터 언어를 배운 수컷 보노보 원숭이에 대한 글이 소개되었습니다. 이 원숭이의 이름은 칸지, 이 칸지가 의사소통법을 익힌 천재원숭이라고 하였는데, 실제 나이는 35살 정도랍니다. 그가 렉시그램이라는 소통도구로 200개 넘는 단어를 익혔고, 600가지 넘는 과제를 수행하는 능력을 보임으로 천재라고 난리가 난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으로 본다면 3살 아이 수준의 소통능력이에요. 허핏포스트 기자는 이 칸지를 소개하면서 원숭이가 아닌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것 많은 특징 중에, 호기심이라는 것이 더욱 인간만의 특징이라 하였습니다. 여러분, 호기심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 부족함을 느끼는, 인지적 불만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어쩌면 오늘 본문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하는 중에 일어난 두 가지 사건 중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보고 호기심을 가졌던 아니 욕심을 가졌던 이들의 흉내가 결국 귀신에게 혼쭐나는 결과를 소개하였는데, 이것 또한 같은 의미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은 희한한 능력이 행하여진 것에 더 해진 결과가 에베소에 하나님의 말씀이 더욱 흥왕하게 되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내용을 나누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는지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먼저 바울에게서 나타난 희한한 능력입니다. 11-12절을 봅니다.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행 19:11-12) 말 그대로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바울의 몸에 닿았던 물건 들, 즉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자에게 얹으면 병도 낫고 악귀 들린 사람도 귀신이 떨며 나갔다는 이야기인데, 여기에서 누가는 ‘희한한 능’이라 표현하고 있습니다. 누가는 이렇게 표현한 이유는 바울의 영적인 파워가 아니라 하나님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고, 이 희한한 능력의 주체가 바울이 아닌 오직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대부분 사람들은요, 능을 행하는 그 사람에 초점을 맞춥니다. 능을 행한 그 사람을 마치 하나님 보듯이 하고 추종하며 따르는데, 그러기에 누가의 강조는 바울이 아니라 하나님이고 손수건이나 앞치마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확신하는 것은 우리 하나님은 이런 일을 행할 뿐 아니라 더 큰일도 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믿는 여러분이 되었을 때 여러분은 하나님의 큰 기적을 보게 될 것입니다. 시 139:14절에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 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시 139:14)하였습니다. 무엇이에요? 결국 아는 사람만이 아는 것이고 경험된 자만이 아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에게 문제가 찾아왔습니까? 찾아 왔다면 먼저 낙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문제는 엄밀히 볼 때 기적의 씨앗이고, 기적을 창조하는 재료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되고요, 그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본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이 찾아온다면 반기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찾아오지 않습니까? 와서 고통을 안겨주기도 하고 상처를 주기도 하며 불편하게 할 뿐만 아니라, 갈등을 유발하고 위기에 직면하게 만듭니다. 마치 벼랑 끝에 선 느낌을 갖게 하고 그래서 좌절되고 낙심케 만들지 않습니까? 그래서 싫어요. 하지만 여기에 중요한 것은 이 문제로 인하여 문제에 머문다면 이러한 것들이 계속 우리를 공격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문제를 하나님께 들고나가면 하나님은 이 문제를 기적의 재료로 사용하십니다. 아멘!

 

가나 혼인 잔치 집의 문제가 무엇이었습니까? 모자란 포도주 아닌가요? 하지만 이것을 시킨 대로 갖다 준 하인들은 이것이 물이었다는 것과 물이 포도주가 되게 하신 분이 저분, 바로 예수님임을 알고 믿었잖아요? 빈들에서의 문제는 무엇이었어요? 그 자리에 먹을 것이 없었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는 겨우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뿐, 그런데 이것이 무려 남자만 5000명이나 먹게 했지 않습니까? 누가 알아요? 축사하시고 먹이시는 예수님의 기적을 바로 앞에서 경험한 자, 제자들만이 알고 있고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제공한 어린아이는 바로 이 역사를 이루신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안 것 아닙니까? 그러기에 예수님의 손에 여러분의 문제를 올려놓으면 하나님은 기적을 창조해 주실 것이고 이 일을 행하시는 분, 창조주 하나님, 오직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이 하신 다는 것을 믿고 나가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는 기적은 하나님의 필요에 의해 나타났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울의 이 손수건의 기적 사건은 오직 이곳에서만 나와 있습니다. 솔직히 이곳 이외에는 언급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보았을 때 하나님의 기적은 때론 하나님이 보실 때 필요하실 때만 나타난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안 그래요? 이요한 목사님에게 들은 이야기이에요. 예전에 중국에서 선교하는 현장에서 병든 자가 걸어 일어난 것을 보고 같이 가신 장로님을 비롯하여 모두가 놀랐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엔 잘 없었다는 말씀을 들으면서 이것은 하나님이 보실 때 필요하셨기에 그 역사가 나타난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정목사님도 팰팍에서 교회를 하실 때 이러한 일들이 예배 가운데 비일비재하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이 두 분의 목사님께서 능이 엄청나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난 것일까요? 없다고 하면 좀 서운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때가 하나님이 필요할 때였고 그 역사가 나타나야 할 이유가 있어서 하나님의 능이 났다고 저는 본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결론적으로 볼 때 이 하나님의 하신 일로 인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2001년 2월 국민일보에 났던 기사입니다. 경북 영덕군 남정면 구계리 구계교회에 김상태 집사님이 계시는데, 이 집사님에게 한국판 베드로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의 직업은 어부에요. 하루는 엄청나게 많은 방어를 잡았습니다. 마치 그물이 찢어지도록 잡았기에 베드로의 기적이라고 신문기사가 났는데, 방어를 잡힌 그날 다른 어부들은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가 잡은 물고기는 10kg짜리 방어 2,370마리이었고, 당시 방어 한 마리 가격이 16만 9천원이니까, 순식간에 약 4억7천만 원의 수입을 거둔 것입니다. 이렇게 고기를 잡힌 배경이 있었어요. 그는 늘 하나님을 향한 마음과 교회를 향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어부들은 고기가 잘 잡히도록 돼지머리 놓고 용왕을 찾아 제사를 드렸지만 그렇게 하라고 권유를 받았어도 그는 고기가 잡히지 않더라도 끝까지 신앙을 지키며 거부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구계교회가 20년 동안 한 번도 성전 수리를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려 목사님에게 ‘이번에 고기가 좀 많이 잡혀야 성전을 수리할 수 있을 턴데요’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의 마음에는 방어를 잡은 수익금으로 예배당을 아름답게 지을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에요. 그런데 그렇게 마음을 먹은 후에 한 달이 지났습니다. 갑자기 자신의 어망에 5m 자리 밍크고래가 잡혀서 5천만 원에 그 고래를 팔았고, 이번에는 엄청난 방어로 인하여 성전을 아름답게 수리하게 되었다고 그가 간증을 한 것이 기사로 나왔는데, 무엇을 말하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필요하시기에 필요할 때, 역사로 나타난 결과 아닙니까? 따라서 바라고 원하기는 여러분에게도 매일 매일 이러한 은혜로 풍성하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호기심과 욕심이에요. 앞에서도 말했듯이 호기심이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 부족함을 느끼는, 인지적 불만 상태라 했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자세히 보니 까 처음에는 호기심이었지만 나중에는 욕심을 바뀌어버린 이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바울이 행하는 희한한 기적이 부러워하며 탐냈다는 말이고, 바울이 얹은 손, 그가 입던 옷이나 수건, 이것을 갖다 댔는데 병이 떠나고 귀신이 물러가는 이 능을 자신들도 갖고 싶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자신들은 눈속임을 했었지만 이것은 필요에 따라 기적을 행하는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탐이 난 이것을 할 때마다 바울이 예수라는 이름이 외쳐지는 것을 들은 그들이 이 ‘예수’라는 이름은 무슨 기적을 이뤄내는 신비의 주문으로 여겨 많은 마술사들이 예수의 이름을 빙자하여 사람들의 병을 고치려고 시도한 것 아닙니까? 13절입니다.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적으로 악귀들린 자들에게 대하여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의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너희를 명하노라 하더라”(행19:13)

 

그런데 이들 중에 스게와의 일곱 아들들이 있었어요. 이들은 유대의 제사장 아들이라 하였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목사자녀들이에요. 이들이 어찌하다가 마술을 좋아하며 마술사가 되었는지 모르지만, 이 스게와의 일곱 아들들이 악귀 들린 자에게 바울의 흉내를 내면서 예수 이름으로 명하니까, 귀신들린 사람이 갑자기 귀신의 힘으로 스게와의 일곱 아들들 중 두 사람에게 덤벼들어 짓눌러버렸고 그가 두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한 것 아닙니까? 14-15절,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악귀가 대답하여 가로되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행 19:15) 무엇이에요? 귀신도 예수가 누군지 알고 바울도 누군지 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는 누구냐고 한 것 아닙니까? 여기에 ‘안다’는 의미는요, 서로 알고 지내는 그 정도가 아니라 아주 몹시 두려워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왜? 두려워 한다는 것입니까? 인격적으로 알기에 두려워한 것입니다. 여러분, 인격적으로 알고 믿는 것과 이 제사장의 아들들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주문이잖아요? 즉 이들은 예수의 이름을 빙자한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을 시험적으로 사용했다는 말이에요. 어떻게 예수님의 이름이 시험적으로 사용됩니까?

 

그러면 예수라는 이름의 의미가 무엇이에요? 여러분, ‘여호와는 구원이시다’ 또는 ‘여호와의 구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히브리어 이름 ‘예수아’ 혹은 ‘여호수아’의 헬라식 명칭이잖아요? 그런데요, 당시엔 매우 흔한 이름이었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이 그랬지만 나사렛 예수만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심으로써, 그 이름의 충분한 의미를 실현하였잖아요. 요셉과 마리아가 임의로 정한 것이 아니라, 세상 구주를 위해 이미 하나님의 주권으로 선택되어진 이름입니다. 세상을 구원하실 구세주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이름이 예수인데, 그러기에 ‘예수의 이름’ 그 자체가 바로 복음이요, 신앙 아닙니까? 따라서 예수의 이름은 능력의 이름이고, 예수의 이름은 치료의 이름이며, 예수의 이름은 모든 이름 중에 뛰어난 이름입니다. 아멘! 이 이름으로 바울이 전할 때는 귀신이 떨며 나갔지만 이것이 아닌 것들은 거짓으로 들어났다는 것,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자신의 인격으로 그 이름을 의지하지만, 빙자, 즉 주문을 외우듯이 입술로만 행하는 것은 결국 행함이 없는 결과, 예수이름으로 서로 사랑하자고 외치고 헌신을 외지만 말 뿐인 결과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린 아무런 능력도 못 보고 사탄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는 것 아닙니까? 우리에게 이것이 없기를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맺으면서 이 모든 것들이 결국 하나님의 말씀들을 흥왕하게 만들었다는 데에 우리가 초점을 두어봅니다. 여러분, 이 일들은 3차 전도여행 중에 에베소에서 일어난 일들이라고 했습니다. 두란노 서원에서 일어난 사건들입니다. 다음 주에 오늘 본문을 가지고 더 말씀을 나눌 예정인데, 생각해보세요? ‘아시아의 로마’라 부르는 이 에베소에서 일어난 일들입니다. 오늘 본문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 것일까요?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는 요한 웨슬리 목사의 “almost christian”이라는 단어가 생각났습니다. 여러분, 이 단어가 주는 의미는 “거의 비슷한데 실제는 아닌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따라가야 하고 추구해야 하는 것은 문제를 하나님께 들고 나오는 것이고요, 그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면서 아는 사람은 안다는 모습들이 되어야 하는데, 비슷한 모습만 된다면 문제 아닌가요? 비슷한 것이 아니라 진짜 크리스천이 되어야 하고 대강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니라 진짜 예수 믿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랬을 때 오늘 주의 말씀이 흥왕하니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 누가가 희한한 능력이라 하였던 이것도 우리에게도 나타나 이 “희한한 능력”을 행하신 주체자가 바로 하나님이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우리 모두가 되는 것입니다. 바울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희한한 능력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한 것이 아니라 말씀이 흥왕하게 되었기 때문에 희한한 능력이 나타난 결과, 어떻게 우리가 흥왕 되어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게 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할 때 흥왕하게 되고,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의사가 질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가 여러분에게도 임하기를 원합니다. 2년 3개월 동안 말씀과 기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전하였던 그것은 에베소에 임했고 이 임한 역사가 여러분 개개인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변화를 일으키는 역사 또한 임하기를 원합니다. 이것은 결국 하나님이 워하는 나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이 역사가 여러분으로부터 시작되기를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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