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6-15(주일-Father’s Day)
“하나님 아버지를 닮은 아버지”
(에베소서 6:4)
우리가 잘 아는 예화로 오늘 말씀을 시작하겠습니다. 한 청년이 가출했습니다. 아버지와 싸운 후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라고 집을 나갔습니다. 몇 년이 지나고, 마음이 무너진 청년은 결국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아버지, 제가 너무 죄송합니다. 돌아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혹시 여전히 저를 반기실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용서하신다면, 제가 기차를 타고 집 근처를 지날 때, 마당의 감나무에 흰 손수건을 매달아 주세요. 그게 보이면 내리겠습니다.” 기차가 그 마을에 다가오자, 청년은 떨리는 마음으로 창밖을 봤습니다. 그런데 감나무에는 단 한 장의 손수건이 아니라, 온 나무에 하얀 손수건이 수십 개 매달려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혹시 하나만 봐도 못 알아볼까 봐, 눈에 잘 띄게 많이 달아뒀다.” 여러분, 아버지는요? 자녀가 잘못했어도 돌아올 길을 준비해 주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도, 우리 육신의 아버지도 그러한 사랑을 품고 계십니다.
오늘은 Father’s Day입니다. Father’s Day는 가정 안에서, 교회 안에서, 그리고 하나님 나라 안에서 아버지로서의 부르심을 되새기는 날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시대의 아버지는 점점 ‘아버지다움’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가정에서 아버지의 권위는 흔들리고, 세상은 아버지를 실패한 존재로 조롱하며, 자녀들은 아버지 없이 자라나는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현대사회는요? 가부장적 아버지상을 비판하면서, 아버지의 권위와 책임까지 부정합니다. 특히 미디어 속 아버지상은, 그러니까 뉴스라든지 드라마든지 거기에서 아버지상은 대부분 무능하거나 무관심한 존재로 묘사됩니다. 그래서 “아버지란 존재가 사라졌다”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아버지가 계시지만 가정에서의 아버지는 존재가치가 매우 약합니다. 무엇보다도 자녀와의 관계가 단절되고, 대화도 단절되고, 그래서 청소년 문제, 정체성 혼란 등등 가정의 붕괴가 초래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아버지는 하나님을 닮은 존재요, 하나님을 전하는 자”라고요.
오늘 본문 에베소서 6장 4절은, 아버지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그러면 성경이 말하는 아버지다움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첫째로 ‘책임지는 사랑’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를 끝까지 책임지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대표적인 예가 바로 요 3장 16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런데 오늘날 사랑은 어떻습니까? 너무 가볍죠? 감정으로 시작해서, 조건으로 유지되고, 상황이 틀어지면 그 사랑은 쉽게 포기되는 것이 오늘날 사랑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끝까지 책임지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말로만이 아닌 피로 증명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곧바로 독생자를 내어주는 사건으로 이어졌습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이고, 인류의 죄에 대해 “내가 책임지겠다”입니다.
즉 우리 죄의 무게를 우리 대신 짊어지신 사랑의 책임이었고, 그것이 바로 “독생자를 주셨으니”입니다. “좋아하는 감정”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주셨습니다” 놓아주셨습니다. 심장이 찢어지도록 고통스러운 그 사랑을 감당하신 것입니다. 마치 어느 아버지처럼 말입니다. 그의 아들이 잘못을 저질러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고, 감옥에 갔지만, 아버지는, 매주 면회를 갔습니다. 사람들이 물었어요? “왜 아직도 그 아이를 찾아가십니까?” 그 아버지의 답이 이러하였습니다. “그래도 제 아들입니다. 그 아이가 어떤 잘못을 했든, 제가 아니면 누가 그 아이를 책임지겠습니까?” 우리를 끝까지 책임지신 하나님 아버지를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그렇게 끝까지 사랑받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인데, 그것이 바로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입니다. 무엇이에요? 구원의 길을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말씀이고, 죄에 빠진 인간을 멸망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살리기 위해” 독생자를 보내셨어요. 단지 “용서”에 그치지 않고, 우리를 생명으로 이끌어 가는 구속의 사랑입니다. 무엇 때문에?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를 위해, 그 안에서 날마다 살아가는 새 생명의 삶을 위함이죠? 하나님은 이렇게 책임지는 사랑으로 우리를 대하셨습니다. 그 사랑 앞에서 책임 있게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말씀 앞에 책임 있게 서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기분 따라 믿는 신앙이 아니라, 말씀 앞에 순종하는 믿음으로 사는 아버지가 되기를 원합니다. 아버지 되기를 포기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완벽한 아버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닮은 아버지가 되기를 원합니다. 무너져 가는 세상을 보며 손가락질만 하는 아버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아, 이 세대를 품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합니다.
두 번째는 자녀를 위해서 양육과 훈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노엽게 하지 말고”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단순히 소리를 지르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이에요? 감정적으로 상처 주지 말며, 훈련과 교훈을 주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왜? 입니까? 아버지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하나가 자녀의 자존감, 믿음,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에 큰 영향을 끼치기에 그렇습니다. 여기 ‘양육하라’라는 의미는 ‘부드럽게 먹이다, 자라도록 돌보다’입니다. 단지 지시하고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주의 말씀으로 자녀의 내면을 키우고, 자라도록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원하기는, 우리 사랑의교회 아버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여 자녀에게 말씀을 전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가정의 제사장은 아버지이기에 그렇습니다. 즉 “아버지는 가정의 목사이며, 그의 기도는 자녀의 미래를 연다.”라는 것입니다. 매일 아침 자녀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하며 기도하는 아버지를 보며, 자녀는 하나님을 배우도록 하기를 원합니다.
아버지의 말 한마디가 ‘정체성’을 만들고, 자녀는 아버지의 말과 눈빛을 통해 “나는 누구인가?”를 배우고, “너는 왜 그것밖에 못하냐?”라는 말로 자존감을 움츠러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괜찮아, 아빠는 너를 믿어” 이 한마디로 아이의 심장이 살아나게 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말은 하나님의 음성처럼 들린다고 하였습니다. 즉 아버지의 표정이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를 만든다고 합니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아이들은 아버지를 통해 하나님을 상상합니다. 무엇이냐면? 냉정하고 무표정한 아버지를 가진 아이는, 하나님도 나에게 관심이 없다고 느끼게 하고, 늘 무섭게 화내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자녀는, 하나님도 실수하면 벌주시는 분으로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따뜻하고 기다려 주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자녀는, 하나님도 품고 기다리는 분으로 느끼게 합니다.
원하기는 축복하는 아버지가 되기를 원합니다. 아버지의 축복으로 ‘신앙의 유산’을 이루기를 원합니다. 성경을 보면, 아버지의 축복이 대를 이어 믿음이 되는 역사를 보여줍니다. 이삭은 야곱을 축복했고,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 안수했고, 신약에서는 탕자의 아버지가 말없이 아들을 안아주었고, 즉 자녀에게 주는 신앙의 유산이 재산이 아니라, “너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야”라는 아버지의 믿음이 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아버지가 되신 여러분은 자녀에게 축복의 말들을 하시기를 원합니다. “사랑한다.” “잘하고 있어.” “아빠는 너의 편이야.” 이 짧은 말들로 자녀의 내면에 평생 남는 믿음의 씨앗이 생기는 아버지가 되기를 원합니다. 아버지이신 여러분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로 자녀의 자존감, 믿음,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갖게 하기를 원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아버지는 하나님을 닮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어느 아버지가 완벽합니까? 완벽할 수 없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러나 닮아갈 수가 있잖아요? 하나님 아버지처럼 자비롭고 은혜로우며, 분노에 더디고 인자함이 풍성하며, 죄를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처럼,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하나님 아버지를 바라볼 때, 가능합니다. 그렇게 하면 매일 조금씩 그분을 닮아갑니다. 우리 사랑의 교회 아버지들은 하나님 아버지를 닮은 아버지가 되기를 원합니다. 한 아이가요? 어릴 때는 아버지의 퇴근을 기다리며 아버지의 의자에 앉지 않았답니다. 왜냐하면, 그 자리는 아버지의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의자가 비어 있고, 누가 앉아도 상관없는 자리가 되어버렸습니다. 아버지다움이란,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존재만으로도 안정감을 주는 자리입니다.
“이 땅의 많은 자녀들이 아버지의 품을 그리워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존재입니다. 이 시대, 아버지 됨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를 바라볼 때 열립니다. 다시 하나님께 돌아가 아버지로 서는 아버지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아버지다움’의 향기를 전해 주기를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아버지의 마음을 배우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아버지들이 자녀의 마음을 지키고, 말씀으로 세우며,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자로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