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을 떠날 때 사람마다 가방에 담는 것이 다릅니다.
옷을 챙기고, 약을 챙기고, 필요한 서류와 물건을 챙깁니다.
바울의 여행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의 가방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하나, 위로가 들어있었습니다.
행 20:1~2절을 보면 에베소의 큰 소동 후 바울은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여러 지역을 지나가면서 그곳의 성도들에게 “여러 말로 권하고” 헬라에 이르렀습니다.
‘권하다’는, 명령하고 훈계한다는 뜻만이 아닙니다.
곁으로 불러 세우고, 낙심한 사람을 격려하고,지친 사람에게 다시 일어설 힘을 주는 위로의 의미입니다.
생각해 보면 바울 자신이 누구보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는 편안한 여행이 거의 없었습니다.
매를 맞았고, 감옥에 갇혔고, 쫓겨났으며, 오해받았습니다.
에베소에서는 복음 때문에 도시 전체가 소란스러워졌습니다.
사람들은 바울을 죽이려고 했고, 그가 사랑하던 교회들도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바울이 자신의 상처를 가방에 담아 다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을 만날 때마다 꺼내 놓은 것은 자신의 상처가 아니라 위로였습니다.
상처 입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마음에 상처가 가득하면 입술에서도 상처가 나오기 쉽습니다.
억울함을 오래 품으면 말에도 억울함이 묻어납니다.
섭섭함을 오래 품으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섭섭함이 흘러나옵니다.
그래서 우리의 말은 마음의 가방 속에 무엇을 넣고 다니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을 만나고 나면요? 이상하게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그 사람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다시 살아갈 힘이 생기고 그 말이 하루를 견디게 합니다.
어쩌면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사역 가운데 하나인지 모릅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살 수 있습니다.
대단한 말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화 한 통이면 됩니다.
문자 한 줄이면 됩니다.
교회에서 지나가는 성도의 손을 한번 잡아 주어도 됩니다.
누군가에게는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건넨 한마디가 그날을 버티게 하는 하나님의 손길이 될 수 있습니다.
바울이 위로를 줄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원래 따뜻한 성격의 사람이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바울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위로를 받은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고린도후서에서 하나님을 이렇게 부릅니다. “모든 위로의 하나님.”
모든 환난 중에서 위로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받은 그 위로로 다른 사람을 위로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없는 위로를 만들어 내라는 것이 아닙니다.
받은 위로를 나누라는 것입니다.
내가 울 때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셨다면 그 손길을 기억하면 됩니다.
내가 무너졌을 때 누군가의 말 한마디로 다시 일어났다면 그 말을 다른 사람에게 건네면 됩니다.
내가 가장 외로웠을 때 주님께서 나를 버리지 않으셨다면 외로운 사람의 곁에 가면 됩니다.
오늘 우리의 가방을 한번 열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내 마음의 가방에는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위로를 나르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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