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바울의 여행 가방에는 위로가 있었다”

(사도행전 20장 1~6절)

 

 

여러분, 여행을 떠날 때 우리는 가방을 챙깁니다. 만일 한 달 정도 한국에 다녀온다고 가정하면 옷도 넣고, 세면도구도 넣고, 약도 넣고, 필요한 서류도 챙길 것입니다. 긴 비행시간을 생각해서 읽을 책도 넣고, 필요한 것들을 하나하나 확인할 것입니다. 저는 말씀을 준비하다가 그러면 바울은 자신의 여행 가방에는 무엇을 넣었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바울은 당시 사람으로서는 믿기 어려울 만큼 먼 거리를 여행했습니다. 아시아와 유럽을 오갔고, 아테네도 갔고, 고린도도 갔으며, 에베소도 갔습니다. 바울이 선교했던 그 거리를 계산하면 구만 마일이 넘습니다. 그는 관광객이 아니었습니다. 아테네의 파르테논을 구경하러 간 것도 아니고, 고린도의 번화한 문화를 즐기러 간 것도 아니며, 에베소의 거대한 아데미 신전을 보기 위해 여행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의 여행은 사명이었습니다. 본문은 바울이 어디를 가든 그의 가방에서 반복해서 꺼내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위로이었습니다.

 

 

1절, “소요가 그치매 바울은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 그리고 2절에도 “그 지방으로 다녀가며 여러 말로 제자들에게 권하고 헬라에 이르러.” 1절에도 “권하고”, 2절에도 “권하고”입니다. 여러분, 여기 ‘권하다’는, 헬라어로 ‘파라칼레오’입니다. 이 말에는 단순히 야단치고 훈계한다는 의미보다는 격려하고, 위로하고, 낙심한 사람을 가까이 불러 세워 준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바울은 가는 곳마다 사람을 일으켰습니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 교회가 세워졌고, 그가 머물렀던 자리에 하나님의 말씀이 남았으며 그가 떠난 자리에는 위로가 남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나누는 말씀의 제목이 “바울의 여행 가방에는 위로가 있었다.” 이것입니다. 무엇이 그에게 있었기에 이 아름다운 모습일까요? 몇 가지를 나누면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성령 하나님이 우리에게 큰 은혜와 깨닫도록 하실 것입니다. 첫째로 자기보다 남아 있는 사람들을 먼저 생각한 바울입니다. 먼저 본문의 시작은 “소요가 그치매.”입니다. 어떤 소요입니까? 앞장 19장에서 일어난 일, 에베소가 뒤집혔던 소요입니다.

 

 

데메드리오를 중심으로 한 은장색들이 바울 때문에 자신들의 생업이 위협받는다고 생각하여 사람들을 선동하여 야외극장으로 몰려갔고, 심지어 바울의 동역자 가이오와 아리스다고까지 붙잡혀 끌려갔었던 소요, 두 시간 동안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라고 외쳤던 이 소요가 서기관, 즉 행정관으로 인하여 진정되었습니다. 다 해산되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큰일 날 뻔했다. 빨리 이 도시를 떠나자.”의 마음으로 여행 가방을 싼 것이 아니라 “바울은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제자들을 불러 권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즉 위로합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남아 있는 에베소 성도들은 걱정이 가득했습니다. “앞으로 또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하나? 바울 선생님이 떠나면 우리는 어떻게 하지?” “우리가 정말 끝까지 믿음을 지킬 수 있을까?” 이런 걱정이 가득한 그들을 불러 “두려워하지 말라. 복음이 패배한 것이 아니다. 오늘 우리가 겪은 소요가 하나님의 실패를 의미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소리를 질렀지만, 주님은 여전히 살아 계신다. 내가 지금 떠나도 주님은 여러분을 떠나지 않으신다.”라고 위로하였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그런데 바울 자신도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도행전을 쭉 보면서 생각하는 지금까지의 바울의 모습은 매우 강한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돌을 맞아도 다시 일어나고, 감옥에서도 찬송하고, 매를 맞아도 복음을 전하고, 어디서든 담대하게 설교하는 바울이었기에 상처도 안 받은 자일 것이고, 정신력이 아주 높은 자로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바울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누구보다 위로가 필요한 자입니다. 1절을 보면요? 에베소를 떠난 바울은 드로아를 거쳐 마게도냐로 향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안 나오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것은 고린도 교회의 상황을 알아보도록 보낸 디도를 드로아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의 문이 이 드로아에서 열렸다고 하였거든요? 이 드로아는 아시다시피 바울이 마게도냐로 오라는 환상을 본 장소입니다. 복음의 문이 열렸지만. 전하지 못하고 건너갑니다. 복음의 문이 열렸어도 마음이 편하지 않아요? 왜냐? 디도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린 바울이었기에 그렇습니다.

 

 

이 마음을 고후 7장에서 보게 됩니다. 바울은 마게도냐에 도착했을 때 이렇게 말합니다. 들어보세요.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노라.” 무슨 이야기냐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 있었다는 것, 즉 육체적으로도 편하지 않았고, 마음속에 두려움과 걱정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위로가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디도를 보내 위로하셨다고 말합니다. 고린도후서 7장 6절입니다.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하나님의 위로를 받은 바울이 그 위로를 다시 다른 사람에게 나누잖아요? 하나님께서 디도를 보내 그의 얼굴을 보게 하시고, 소식을 듣게 하시고, 그의 곁에 앉게 하셔서 다시 일어설 힘을 주셔서 위로받은 바울이 다시 위로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아픔을 낭비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예를 들어 사업 때문에 앞이 캄캄했던 날이 있었고, 믿었던 사람에게 상처받아 아무도 모르게 혼자 울었던 밤이 있었고, 기도해도 아무 대답이 없는 것 같아서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 하고 울었던 적이 있었다면, 그 시간이 다 쓸모없는 시간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어느 날 내가 지나왔던 바로 그 길을 똑같이 걷고 있는 어느 한 사람 옆에 여러분을 앉힙니다. 그에게 이렇게 말하게 하죠? “저도 그 길을 지나왔어요?” “밤새 울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저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니 당신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무엇이에요? 인생에서 가장 아팠던 이야기가 ‘훗날 누군가를 살리는 이야기’라는 것, 즉 내 눈물이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 주는 손수건이 되고, 내가 견딘 밤이 누군가에게 아침이 올 것이라고 말해 주는 증거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바울의 여행 가방에는 위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울어 본 사람의 위로였고, 넘어져 본 사람의 위로였으며,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다시 일어나 본 사람의 위로였습니다. 그러기에 상처만 품고 살지 말고 하나님께서 그 상처를 만지시도록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로 바울의 여행은 사람을 모은 것이 아니라 사람을 세웠다는 사실입니다. 2절을 보세요? “그 지방으로 다녀가며 여러 말로 제자들에게 권하고.” 아시다시피 마게도냐에는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가 있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이곳들은 추억이 좋은 관광지가 아니라 아픈 추억이 있는 곳입니다. 빌립보에서는 매를 맞았고, 감옥에 갇혔으며 두 발이 차꼬까지 채워진 곳이고, 데살로니가는 박해의 장소였고, 베뢰아에서는 반대자들이 따라왔던 곳입니다. 고난과 위험을 경험했던 땅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다시 갑니다. 왜요? 왜 갑니까? 그곳에 사람이 있는 사람, 자기를 때린 사람이 아니라, 복음을 전해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들이 믿음을 잘 지키고 있을까?” “빌립보 성도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데살로니가의 어린 신자들이 박해를 견디고 있을까?” “베뢰아 성도들은 여전히 말씀을 붙들고 있을까?” 이 마음을 가지고 찾아가 또 권하고, 위로하고 말씀으로 세웁니다.

 

 

네 번째로 바울의 가방에는 말로만 하는 위로가 아니라 손에 잡히는 위로도 있었습니다. 4절에 보면 많은 이름들이 나오죠? 소바더, 아리스다고, 세군도, 가이오, 디모데, 두기고, 드로비모, 누가가 이 이르들을 소개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중요한 이름들이기에 그렇습니다. 이들은 다른 지역의 교회들을 대표하는 인물들입니다. 서로 다른 지역의 교회들을 대표하는 인물들이라 중요할까요? 아닙니다. 누가는요? 모두 예루살렘의 어려운 성도들을 위한 연보와 연결하여 이 동행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이방 교회들로부터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돕기 위한 연보를 모았는데, 마게도냐에 있는 성도가 헌금한 것을 받아서, 아가야에 있는 성도가 헌금을 한 것을 받아서, 아시아에 있는 성도가 헌금을 받아서 이 각 지역의 대표들이 그것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입니다. 즉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한 몸입니다.” “당신들이 힘들면 우리도 함께 아픕니다.” “당신들의 배고픔을 모른 척하지 않겠습니다.”라는 위로가 담겼다는 것, 이렇게 바울의 여행 가방에는 말의 위로만이 아니라 손에 잡히는 위로가 있었습니다.

 

 

다섯 번째로 막혔지만, 사명은 막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3절에 보면 또 사건이 생겼는데, 헬라에서 석 달을 머물렀다고 나옵니다. 헬라는 고린도를 말합니다. 이 시기에 바울은 로마서를 기록하죠? 어려운 환경에서도 바울의 관심이 멀리 있는 성도들에게까지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배를 타고 수리아 쪽으로 가려고 합니다. 자신을 파송한 수이라 안디옥 교회로 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유대인들이 바울을 해하려고 공모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획을 바꾸어요? 다시 마게도냐를 거쳐 돌아가기로 합니다. 성경은 그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의 암살 계획이었는지를 상세히 설명하지 않아 자세히 모릅니다. 특정 암살단이 배에서 바울을 죽이려고 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 유대인들의 음모 때문에 여행 경로, 즉 길이 바뀝니다. 그런데 그의 사명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배를 타지 못하면 돌아갔고, 길이 막히면 다른 길로 갔어요? 복음을 포기하지 않은 바울입니다. 이 우회 과정에서 ‘우리’라는 표현을 누가는 다시 사용하고 있습니다. 누가는 사도행전의 마지막 여정까지 바울과의 동행의 흔적을 계속 남깁니다. 바울의 사명, 자신의 사명은 막히지 않음을 기록하면서 오늘 본문은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말씀을 준비하다가 아주 오래전에 봤던 어떤 드라마 장면이 생각났습니다. 그룹의 회장님이 갑자기 아파 비서가 주치의를 부른 것입니다. 급하게 연락을 받은 주치의가 왕진 가방을 들고 오더라고요? 그리고 왕진 가방을 열더니 청진기를 먼저 꺼내 회장님의 가슴과 목, 등에다 대고 소리를 들어봅니다. 그러면서 “회장님, 예전의 회장님이 아닙니다. 이제는 조심하셔야 합니다”라고 하면서 회장님과 대화하고 그가 늘 먹는 약을 건네는 장면이 생각났습니다. 그 의사의 왕진 가방에 그것 말고 아픈 사람을 살리는 다른 물건들도 들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죠? 그렇다면 우리의 인생 가방에는 무엇이 나올까요? 주치의 왕진 가방에 붕대가 있듯이 우리 가방에도 붕대 하나쯤은 있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그 붕대는 상처 난 마음을 싸매 줄 말이고, 눈물을 닦아 줄 손수건이며,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줄 말씀이기에 그렇습니다. “괜찮아~ 다시 시작할 수 있어~” “내가 옆에 있을게~” “하나님께서 아직 당신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가방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가방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의 여행 가방에는 위로가 있었다는 사실을 오늘 본문에서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요? 바울의 위로도 원래 바울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바울을 위로하셨습니다.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바울에게 디도를 보내셨고, 지쳐 있을 때 동역자를 붙여 주셨고, 위험한 길에서는 피할 길도 열어 주셔서 위로하셨습니다. 그 위로를 받은 바울은요? 복음 위에 다시 위로를 들고 사람들에게 갔습니다. 바울은 십자가에서 일으킴을 받았습니다. 우리 또한 십자가에서 일으킴을 받았습니다. 그러기에 이 사실로 인하여 우리 또한 다른 사람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사랑받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고요? 우리가 먼저 용서받았기 때문에 용서하는 것이며, 우리가 먼저 위로받았기 때문에 위로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은 상처받은 사람을 외면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울고 있는 사람 곁에 가셨고, 죄인 곁에 앉으셨고, 병든 사람에게 손을 대셨고요? 낙심하여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에게 부활하신 당신께서 친히 찾아가 “왜 내려가니?”라는 야단이 아니라 같이 걸으셨고 말씀을 풀어 주셨으며, 식탁에 앉으셨고, 꺼져 가는 마음에 다시 불을 붙여 주셨습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누군가에게 디도처럼 보내실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바울이 지나간 자리에는 복음이 남았고 교회가 남았고, 제자가 남았습니다. 그 가운데는요? “바울이 다녀가면 힘이 났다.”라는 말들을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 역사가 임하기를 원합니다. 나와 통화한 사람이 “당신 때문에 내가 다시 일어났어~” “당신 때문에 교회를 떠나지 않았어~” “당신 때문에 절망하던 때 다시 기도했어~”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여행 가방 안에는 복음과 사랑과 용서와 상처 난 사람을 감싸 줄 붕대를 넣고, 눈물을 닦아 줄 손수건도 넣고 무엇보다, 위로를 넣어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오래도록 남기시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겠습니다.

 

 

[주님, 우리를 먼저 찾아오시고, 넘어졌을 때 일으켜 주시며, 낙심했을 때 사람을 보내 위로해 주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바울처럼 우리도 주님께 받은 위로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집을 나설 때 위로를 가지고 나가고, 교회에 올 때 위로를 가지고 오며, 일터에서도 낙심한 사람을 일으키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길이 막혀도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계획이 바뀌어도 사명을 잃지 않게 하시며, 우리의 우회로까지 누군가를 살리는 은혜의 길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생애가 끝나는 날, 사람들이 우리를 기억하며 “그 사람 때문에 예수님을 조금 더 사랑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영원히 위로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List of Articles
번호 듣기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44 [사도행전강해] 내 인생의 영수증을 꺼내보니 (사도행전 20장 17~27절) 2026년 9월 6일 주일설교   admin 2026.09.06 1888
243 [사도행전강해] 에베소야 미안하다, 지금은 지나가야 한다 (행 20:13~16) 2026년 8월 30일 주일설교   admin 2026.09.05 1898
242 [사도행전 강해] 설교가 길어져도 창가에는 앉지 마세요(행 20:7~12) 2026 8월 23일 주일설교     file admin 2026.08.29 1945
» [사도행전 강해] “바울의 여행 가방에는 위로가 있었다” (사도행전 20장 1~6절) / 2026년 8월 16일 주일설교   admin 2026.08.16 2164
240 [사도행전강해] 복음이 들어오자 장사가 안되기 시작하였다 (사도행전 19장 23~41절) 2026년 8월 9일 주일설교   admin 2026.08.09 2216
239 [사도행전 강해] 예수의 이름은 주문이 아닙니다 사도행전 19장 11~22절  2026-8-2 주일설교   admin 2026.08.02 2275
238 [사도행전강해] 믿음에도 UPDATE가 필요합니다 (행 19:1~10)/2026년 7월 26일 주일설교   admin 2026.07.26 3429
237 [사도행전강해] 2026년 7월 12일 주일설교/아볼로, 아직 끝나지 않은 설교자 사도행전 18:24~28   admin 2026.07.12 5131
236 [맥추감사주일 및 미 독립기념감사주일] 자유의 여신상이 아니라 자유의 예수님이다 (요한복음 8:31~36)   admin 2026.07.12 5169
235 [사도행전 강해] 복음은 피고석에도 전진한다 사도행전 18:12~17 / 2026-6-21 주일설교   admin 2026.06.21 5193
234 [사도행전 강해] “입은 닫고 싶은데, 주님은 말씀하셨다” (행 18:5~11절) 2026년 6월 14일 주일설교   admin 2026.06.14 5178
233 [사도행전 강해] 생업은 천막, 본업은 복음 (행 18:1–4) 2026년 6월 7일 주일설교   admin 2026.06.07 5179
232 [사도행전 강해] 2026년 5월 31일 주일설교/혹시 몰라 만든 제단, 드디어 정답이 오다( 사도행전 17:22–34)   admin 2026.05.31 5292
231 [사도행전 강해] 새로운 것에 목마른 도시, 영원한 복음을 만나다 (행 17:16~21) 2026년 5월 24일 주일설교   admin 2026.05.24 5295
230 [사도행전 강해] “베뢰아는 왜? 달랐는가?” (사도행전 17장 10~15절) 2026 5월 3일 주일설교     file admin 2026.05.03 6506
229 [사도행전 강헤] 2026년 4월 26일 주일설교 이 사람들 때문에 난리 났다 (행 17:1–9절)   admin 2026.04.26 6549
228 [사도행전 강해] 2026년 4월 19일 주일설교 “조용히 나가지 않는다” (사도행전 16장 35~40절)   admin 2026.04.26 5282
227 [사도행전 강해] “갇혔는데 예배가 시작되었다” (사도행전 16장 25~34절) 2026. 4. 12 주일설교   admin 2026.04.26 5345
226 [부활주일] 2026-4-5 부활주일설교/“무덤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마태복음 28:1–10)     file admin 2026.04.05 6447
225 [사도행전 강해] 2026 3월 22일 주일설교/하나님의 뜻대로 하였는데, 왜? 잡혀가죠? (사도행전 16:11-24)     file admin 2026.04.05 6317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3 Next
/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