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영수증을 꺼내보니
(사도행전 20장 17~27절)
여러분, 물건을 사고 나면 반드시 따라오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영수증입니다. 그런데 영수증을 대하는 태도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분은 받자마자 쓰레기통에 버리지만, 어떤 분은 지갑 속에 차곡차곡 모아 둡니다. 그런데 몇 달 후 지갑을 열어 보면 돈은 없고 영수증만 가득합니다. 돈이 어디로 갔는지 궁금했는데, 영수증들이 일제히 이렇게 대답하죠? “저희가 증인입니다!” 영수증을 자세히 보면 참으로 정직합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까지 모두 기억합니다. “내가 이것을 샀던가?” 싶지만 영수증은 말합니다. “분명히 사셨습니다. 날짜도 있고, 시간도 있고, 카드번호도 있습니다. 부인하실 수 없습니다.” 특별히 아내든 남편이든 “이건 왜 샀어요?”라고 물을 때, 영수증은 내 편을 들어 주지 않습니다. 영수증은 언제나 사실만 말합니다. 그래서 어떤 분에게 영수증은 구매의 증거이지만, 어떤 분에게는 심판의 증거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물건에만 영수증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에도 영수증이 있습니다. 인생의 영수증에는 우리가 무엇을 샀는가보다 더 중요한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시간을 지불했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 땀을 흘렸는가? 나는 누구를 위해 눈물을 흘렸는가? 젊었을 때는 영수증을 확인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왜냐? 앞만 보고 달렸기에 그렇습니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일했고, 자녀를 키우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맸고, 아파도 출근했고, 속상해도 내색하지 않았으며, 때로는 자존심이 상해도 가족을 생각하며 참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나이를 먹어가잖아요? 가끔 지나온 인생의 영수증을 꺼내보게 되면,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살았을까?”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정말 소중한 것이었을까?” “내가 그렇게 마음 아파했던 일이 지금도 그만한 가치가 있는가?” “내가 하나님께 보여 드릴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자신의 인생 영수증을 꺼내 보이는 장면입니다. 바울은 밀레도에서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불렀습니다. 이것은 평범한 회의가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그들과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마지막 만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은 바울의 고별 설교이자 동시에 그의 사역 결산보고서입니다. 이제 나누겠지만, 바울은 자신의 영수증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바울의 영수증에는 무엇이 기록되어 있었을까요? 먼저 오늘 본문은 바울의 제3차 선교여행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 일어난 사건으로 마게도냐와 아가야의 여러 교회가 모은 구제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가능하면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도착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에 직접 들어가지 않고, 에베소 남쪽의 항구도시 밀레도에 머물렀습니다. 밀레도는 소아시아 서쪽 해안의 중요한 항구도시로 철학과 상업으로도 이름난 곳입니다. 바울은 이곳으로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불렀습니다. 아시다시피 바울에게 에베소는 특별한 곳이었죠? 약 3년 동안 사역했습니다.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말씀을 가르쳤고, 그 결과 아시아 지역에 복음이 널리 전해졌으며, 우상 제조업자들의 반발로 큰 소동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밀레도로 달려온 에베소의 장로들은 단순한 동역자들이 아니라 바울과 함께 울고 웃으며 복음을 위해 싸웠던 사람들입니다. 바울의 설교를 들으며 자랐고, 그의 기도를 받았으며, 그가 당한 고난을 곁에서 지켜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들 앞에서 자신의 사역을 변호하지 않았고, 조용히 자신의 인생 영수증을 꺼냅니다.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 무엇이에요? “내가 무엇을 말했는지”에 앞서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에베소 장로들에게 전한 이 말씀은 지도자들에게 직접 전한 독특한 고별 설교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여기에는 바울의 목회와 선교에 대한 자기 성찰, 앞으로 닥칠 고난, 그리고 다음 세대 지도자들에게 맡기는 부탁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그 영수증을 한 줄씩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바울의 영수증 첫째 줄에는 ‘겸손과 눈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9절,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 첫째 줄에 “겸손”이 기록되어 있는데, 바울은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길리기아 다소 출신이었고 로마 시민권자였습니다. 당시 최고의 랍비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했고,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었고, 율법으로는 바리새인, 그러니까 인간적으로 자랑할 것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만난 이후 그의 인생에서 가장 먼저 나타난 표시는 높아짐이 아니라 낮아짐이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십자가를 제대로 본 사람은 교만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바울의 영수증 두 번째 항목은 “눈물”이었습니다. 바울은 강한 사람이었지만 눈물이 없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복음을 대적하는 사람들 때문에 울었고, 믿음에서 떠나는 사람들 때문에 울었으며, 교회를 사랑했기 때문에 울었습니다. 이것은 약한 사람의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눈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랑하지 않으면 울지 않기에 그렇습니다. 관심이 없으면 마음이 아프지 않아요?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자녀 문제로 울고,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에, 교회의 아픔을 품고 울고, 영혼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영혼이 하나님을 떠날 때 가슴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세 번째로 바울의 영수증 둘째 줄에는 ‘남김없이 전한 복음’이 기록되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20절과 21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유대인과 헬라 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바울은 유익한 것을 거리낌 없이 전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만이 아니라 공중 앞에서도, 각 집에서도 가르쳤습니다. 여러분, 큰 무대가 있어야만 일한 것이 아닙니다. 박수 치는 사람이 있어야만 충성한 것도 아닙니다. 한 사람이든 백 사람이든 그곳에 영혼이 있으면 말씀을 전했습니다. 바울은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만 골라 전하지 않았습니다. 죄를 죄라고 말했고, 회개해야 한다고 외쳤으며 동시에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증언했습니다.
27절,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 여기서 “하나님의 뜻을 다 전했다”라는 것은 자기가 아는 모든 지식을 한 번에 쏟아 놓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구원과 믿음, 교회와 성도의 삶에 필요한 하나님의 계획을 사람들의 반응 때문에 축소하거나 감추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인기 있는 설교자가 되려고 진리를 할인하지 않았고, 사람들이 떠날까 봐 복음의 날을 무디게 만들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취향에 맞게 잘라 내지 않았습니다. 원하기는 우리도 우리 자녀에게 복음을 남겨 주기를 원합니다. “나는 자녀에게 예수님을 전했다.” “나는 자녀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했다.” “나는 완전한 부모는 아니었지만, 예수님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의 영수증을 자녀들에게 보여 주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네 번째는 바울의 모든 계산법은 다메섹에서 바뀌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바울은 어떻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복음을 위해 살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자신의 생명조차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고백할 수 있었을까요? 그 답은 바로 다메섹에 있습니다. 바울이 아직 사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때, 그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으러 다메섹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의 손에는 대제사장의 공문이 들려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 일한다고 확신했습니다. 그 당시 사울의 인생 영수증에는 자랑할 것이 많았습니다.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 베냐민 지파, 율법으로는 바리새인,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한 사람,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자부하던 사람, 사울의 계산으로는 모두 “이익”이었습니다. 학벌도 이익이었고, 혈통도 이익이었으며, 종교적 열심도 이익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영수증에 찍힌 항목들을 바라보며 성공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를 만나셨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그 순간 사울의 인생 결산이 완전히 뒤집어졌습니다. 자신은 하나님을 위해 충성한다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하나님의 아들을 대적하고 있었습니다. 옳은 길을 달린다고 확신했는데, 가장 빠른 속도로 잘못된 방향을 향해 달리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인생의 비극은 천천히 가는 데 있지 않습니다. 잘못된 방향으로 빨리 가는 데 있습니다. 사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눈이 멀었습니다. 그러나 육신의 눈이 닫히자, 영혼의 눈이 열렸습니다. 자기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만 보던 눈이 감기고,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보는 눈이 열렸습니다. 그날 이후 바울의 인생 계산법이 바뀌었습니다. 그는 빌립보서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겼다.”라고요. 과거에 자랑하던 것을 단지 덜 중요하게 여긴 정도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과 비교할 때 그것들을 손해로 계산했습니다. 그리스도가 너무도 귀했기 때문에 다른 모든 자랑의 가치가 사라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울의 소유 목록에 하나 더 추가된 보물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의 가치를 다시 결정하는 기준이 되셨습니다. 복음은 내가 가진 것에 예수님 하나를 더 보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때문에 내 인생의 가치표 전체가 바뀌는 것입니다. 다메섹에서 바울은 주님을 만났고, 그 자리에서 새로운 길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주님은 바울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예수님의 이름을 전할 그릇으로 부르셨습니다. 그 부르심은 바울이 편안한 삶을 살게 하겠다는 약속이 아니었고 주님의 이름을 위해 고난받게 될 길이었습니다. 바울은 그 길을 걸었습니다. 다메섹에서 시작해 아라비아와 예루살렘으로, 안디옥과 구브로로, 소아시아와 마게도냐로, 빌립보와 데살로니가로, 아덴과 고린도로, 그리고 에베소를 지나 지금 밀레도에 서 있습니다. 다메섹에서 “너는 내 이름을 전할 사람이다”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던 그 사람이, 이제 밀레도에서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을 마치려 한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섯 번째로 바울의 영수증 셋째 줄에는 ‘생명보다 귀한 사명’이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22절부터 미래를 향합니다.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몰랐습니다. 그러나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라는 말을 합니다. 이 말은 생명을 함부로 다루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죽음을 찾아가겠다는 과장된 영웅주의도 아닙니다. 바울도 생명을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생명을 보존하는 것보다 생명을 주신 분의 뜻에 사용하는 것을 더 귀하게 여겼습니다. 여섯 번째로 바울의 영수증 넷째 줄에는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깨끗함’이 기록되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26절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증언하거니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여러분, 이 말은 바울이 죄가 전혀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것은 에스겔서에 나오는 파수꾼의 책임을 배경으로 한 표현입니다.
파수꾼이 위험을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않으면 백성이 죽을 때 그 책임을 파수꾼에게 묻습니다. 그러나 파수꾼이 분명히 경고했다면 그 책임에서 자유롭습니다. 바울은 유대인과 헬라 인에게 회개와 믿음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람들이 듣기 싫어해도 전했고, 떠나가도 전했으며, 박해해도 전했습니다. 이 말씀 앞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구원은 하나님께 속한 일입니다. 그러나 사랑으로 전하고, 눈물로 기도하며, 삶으로 보여 주는 책임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내가 그때 한 번만 더 예수님을 이야기 했더라면.”라는 후회가 없기를 원합니다.
조폭과 목욕탕 이야기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밤 집에 돌아가셔서 지갑 속의 영수증을 한 장 꺼내보세요? 무엇을 샀는지, 얼마를 지불했는지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조용히 여러분의 인생 영수증도 꺼내보세요? 그 영수증에는 무엇이 적혀 있을까요? 우리의 인생 영수증에는 갚을 수 없는 죄의 빚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아무리 선하게 살아도, 아무리 종교적으로 노력해도 우리가 지불할 수 없는 빚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죗값을 대신 지불하셨습니다. 주님은 마지막 숨을 내쉬시며 “다 이루었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는 구원의 대가가 온전히 지불되었다는 승리의 선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의 실패로 끝나지 않고요? 십자가 아래에서는 찢어진 인생도 다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지나간 영수증은 바꿀 수 없지만, 오늘부터 기록될 영수증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마지막 날 주님 앞에 섰을 때, 우리가 주님께 내놓을 수 있는 것은요? 주님의 은혜로 살아온 인생의 영수증 한 장뿐, 그 영수증이 낡고 구겨져 있어도, 눈물에 젖어 글씨가 번져 있어도 괜찮습니다.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기록되어 있기를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지나온 인생의 영수증을 꺼내어 봅니다. 우리 힘으로 갚을 수 없는 죗값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대신 지불해 주신 그 은혜를 잊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를 처음 만나 주셨던 그 은혜를 다시 기억하게 하옵시고 세월이 흘러 몸은 약해지고 할 수 있는 일은 줄어들어도,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을 놓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 자녀와 다음 세대에게 믿음을 남기게 하시고, 삶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 주게 하옵소서. 그래서 마지막 날 주님 앞에 섰을 때 “주님, 제가 달려갈 길을 다 달리고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을 마쳤습니다”라고 고백하게 하시며, 주님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칭찬을 듣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