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와 찬송의 비밀”

(행 16:22-32 )

 

오늘 말씀은 채찍에 맞고 옥에 갇히어서 족쇄에 채워져 있는 바울과 실라가 밤중에 기도하고 찬송하니, 지진이 나고 옥토가 움직여 문이 다 열렸을 뿐 아니라 채웠던 차꼬가 다 풀어지는 기적에 대한 기록, 바울과 실라의 놀라운 믿음의 결과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왜? 바울과 실라의 놀라운 믿음으로 연결이 되는 것일까요? 말씀을 준비하면서 제 마음속에 계속 남아 있는 한가지의 의심이 있었는데, 그것은 과연 나에게도 이같이 바울과 실라와 같은 믿음이 있는가? 라는 부분입니다. 솔직히 바울과 실라와 같아지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현실은 막상 안 된다는 사실 앞에 좌절과 갈등이 곁에 남게 되는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러면 왜? 안 되는 것일까요? 이것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훈련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기도를 많이 하는 분들을 만나면 그들이 드리는 기도시간에 주눅이 듭니다. 누구는 기본으로 3시간 기도를 한다는 소리가 왠지 주눅이 들게 만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은 갑자기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하나의 훈련의 과정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제가 옥한흠 목사님을 모셨을 때 매주 화요일 마다 교역자회의를 가지는 시간 안에는 옥목사님의 간단한 설교와 당부하시는 말씀의 시간이 있습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시간이 합심해서 기도하는 시간인데, 몇 가지 기도제목을 나누면서 합심해서 기도를 합니다. 그 기도가 끝나면 목사님은 교역자 이름을 부르면서 대표기도를 시킵니다. 기도가 시원찮게 느껴지면 당장 요즘 뭐하고 지내느냐면서 야단 아닌 야단을 치십니다. 그것을 본 저는 이러다가 제명에 못살겠다는 생각으로 방송실에 부탁하여 옥한흠 목사님 기도드리는 것을 녹음 부탁했습니다. 녹음한 것을 전달 받아 그것을 녹취해보는데 너무나 힘 있는 기도였고 군더더기가 전혀 없는 깊이가 깊은 기도임을 발견하였습니다. 이것을 녹취하면서 드는 생각이 왜? 이렇게 기도가 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순간 이렇게 까지 하기 위해 아니 이 과정 속에서 목사님은 얼마나 주님을 만났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의 포커스는 바울과 실라, 아니 믿음의 선배들은 도대체 어디서 그런 신앙을 소유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부분이라는 것이고 이 해답이 오늘 본문에 등장하고 있다는 부분입니다. 무슨 이야기냐면 나의 눈이 계속 머문 한 구절 하나가 제가 서론에서 장황하게 이야기를 한 해답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이 25절인데, 이 25절에는 이러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같이 읽어볼까요?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행 16:25) 그러니까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했다’라는 이 수식어가 바울과 실라에게 붙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을 보면서 저에게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는데, 우리는 어떨 때 찬송을 부르느냐는 질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떨 때 찬송이 나옵니까? 보통 힘들고 처절할 때보다는 형통할 때 나오는 것이 찬송입니다. 반면에 기도는 형통보다는 좌절했을 때, 어려울 때 나오는데, 안 그래요? 제가 왜? 이 이야기를 하냐면 이것이 오늘 본문을 푸는 열쇠가 되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면 왜? 이것이 오늘 본문을 푸는 열쇠가 되는 것일까요? 기도를 한다는 다른 표현이 무엇일 것 같습니까? ‘하늘을 쳐다본다’입니다. 왜? 하늘을 쳐다보는 것이 기도일까요? 여러분이 밤에 강아지를 데리고 나오든 사랑하는 자와 같이 나오든 산책을 하다가 순간 하늘을 쳐다보았는데, 하늘에 떠있는 수많은 별과 아주 밝게 빛나는 달로 인하여 하나님이 만드신 이 아름다운 세상에 대해 감사를 합니다. 이것이 정상이지만 현실은 이런 하늘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먹고 살기에 바빠서 이 하늘을 쳐다볼 여유조차 없단느 것이고 분주하게 땅만 쳐다보고 산다는 것입니다.

 

하늘을 쳐다보며 사는 특별한 사람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이렇게 하늘도 쳐다보지 못하고 땅만 바라보며 분주하게 살아갑니다. 이 특별한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하늘에 대해 관측하고 연구하는 학자들이고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과 기류의 방향을 바라보면서 날씨와 하늘의 현상을 연구하는 기상관측자들입니다. 이들만이 거의 매일 하늘을 쳐다보지만 일반적으로는 하늘을 쳐다본다는 여유, 아니 행동은 거리가 먼 현실에 사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늘을 쳐다본다는 의미는 위로부터 내려오는 참된 평안과 기쁨이 있다는 것이고 이것은 결국 이사야 선지자가 하늘을 바라보면서 인생은 하늘을 바라보는 가에 따라 달라진다는 이야기를 했듯이 믿는 자로서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 즉 위로부터 공급되는 은혜, 피곤한 사람에게 능력을 주시고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 새 힘을 주시는 이 은혜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상을 다르게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다르게 살아가는데 있어서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기도입니다. 무엇이냐면 우리가 하늘을 본다는 것은 바로 기도라는 것입니다.

 

기도는 보통 언제 많이 찾습니까? 죄절할 때, 힘들 때, 몹시 어려움에 처했을 때 찾습니다. 제가 매주 월요일마다 카운슬러 학교인 블렌트 필에서 진행하는 피어그룹이라는 집단상담과목에서 만난 학생이야기를 잠시 하겠습니다. 그녀는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여자집사님으로 최근에 유방암 진단을 받아 10월 5일 수술을 앞두고 있습니다. 여자에게 있어서 암 진단을 받았을 때 다가오는 두려움이 엄청나다고 들었습니다. 집사님은 얼마나 이 소식에 무너졌겠습니까? 제 카톡에 10월 첫째 주에 수술이 잡혔다고 기도부탁을 해왔는데, 여러분들도 기도해주셨으면 합니다. 성함은 이수영집사님입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우리 모두는 좌절에 도달할 때 많이 찾는 것이 기도라는 생각입니다. 바울과 실라에게도 이 모습이었다고 저는 봅니다. 그들은 상당히 좌절감에 빠져 있었을 것이고 그 가운데 기도를 했으리라고 여겨집니다. 그리고 무엇이에요? 기도 끝에 해답을 얻었던 것이고 그 해답은 찬송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모습은 성경 전체에 흐르는 부분입니다. 바울과 실라뿐 아니라 믿음의 선배들, 그리고 우리가 아는 모든 분들의 일반적인 모습이 어려울 때 주님을 찾았고 주의 응답은 곧 찬양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시편은 어떤 성경입니까? 기도와 찬송이 가장 많이 모여져 있는 성경이 시편 아닙니까? 시편을 둘로 나누라고 하면 찬송시와 기도시입니다. 시편을 자세히 들어다보면 기도와 찬송을 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결국 찬양과 구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바꿔 말하면 기도와 찬송이라는 전혀 반대되는 상황과 조건 속에서 나오는 것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기도와 찬송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의 어느 목사님은 기도는 분명히 절망과 좌절과 무슨 다른 방법이 없는 곳에서 나오는 신음이라면, 찬송은 모든 것이 얻어지고 형통할 때 일어나는 감사의 시라고요. 즉 기도가 어떻게 찬송으로 끝나느냐 하는 것이 답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두려워하며 불안해하며 절망 속에 있었지만 그래서 주님을 찾는 기도로 시작을 하였지만 당신을 찾는 하나님은 절대 얼굴을 돌리지 않으신다는 사실이고, 비천하고 미약하고 그 가슴을 찢고 회개하는 자리로 나오고, 아니 범죄 하여 정말로 방법이 없는 것을 인하여 세상 사람들이 이제 우리에게 다 끝났다고 할지라도 기도하는 자리로 나오면 다시 일으켜 세우시고 외면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영광스럽게 회복시켜 줄 것을 인하여 감사함이 찬송이 되게 하고 전혀 상반된 상황 속에서 기도와 찬송이 함께 묶일 수 있는 비결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지금 당한 일에 대해 다른 방법이 없어 보이는 것 같은 이 촉급하고 다급한 절망과 불가능의 상태 속에서, 아니 불가능과 절망 때문에 결국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기도하다 보니 하나님이 여러분을 기억하시고 구원하시며 편을 드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발견되게 하고 그래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과 역사하심으로 인하여 찬송으로 기도를 마치게 되는 것, 이것을 깨닫는 순간이 바로 바울과 실라가 하나님을 찬미했던 부분이고, 비록 채찍으로 인하여 몸은 몹시 아프고 신음과 고통에 찬 비명이 절로 나왔겠지만 이것이 절대로 방해가 되지 못하는 상황, 주님으로 인하여 찬송으로 변하게 되는 상황이 바로 오늘 본문에서 보여주고 있는 바울과 실라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바울과 실라가 밤중까지 기도했다는 부분이 오늘 해답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기도했을까요? 25절에 “죄수들이 듣더라”는 부분이 등장합니다. 무슨 이야기에요? 조용히 기도한 것이 아니라 상당히 울부짖었다는 것이고, 크게 울면서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동안의 걸었던 일들을 생각하면서 기도했을 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감옥에 갇힌 이유는 귀신들인 여종을 해방시켜준 것 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들이 하고 있는 전도여행은 2차전도 여행인데, 솔직히 바울의 전도여행을 자세히 들어다보면 너무나 기뻐 환대를 했던 것은 전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1차 때 어땠습니까? 에베소서에 들렸다가 돌에 맞아서 죽을 뻔 했었고, 사람들은 그가 죽은 줄로 알고 내다 버렸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일으켜 세워 다시 들어갔던 것 아닙니까? 이 2차전도 여행도 들어다보면 자신들이 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여기까지 오게 했습니다. 안 그래요? 그런데 하나님이 하신 이 일에 보면 반기는 자보다는 여자 몇 명이지 않습니까? 물론 루디아를 만난 일이 있지만 솔직히 좀 무언가 이루어지려고 하니까 이렇게 붙잡혀서 엄청난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힌 것입니다. 무엇이에요? 이 상황은 절망이라는 것입니다. 그 절망이 지금 바울과 실라를 억누르고 있었을 것이고 이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호소하고 울부짖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울부짖음이 찬송으로 이어진 것 아닙니까?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사도바울이요, 이 사실을 기억하면서 고후 1:8-9절에 이렇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들어보세요.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고후 1:8-9) 무엇이에요? ‘왜 하나님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우리에게 이런 환난을, 그것도 목숨이 붙었다 떨어졌다 하는 환난을 당하게 하실까?’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서 결론은 바로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려고 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바울과 실라는 비록 감옥에 갇혀 매 맞고 족쇄 차고 있었고 거기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 그렇지만 오직 할 수 있는 것, 하나님 앞에 기도요, 죽었다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에게 호소할 수 밖에 없었는데 하나님은 하나님, 당신으로만 힘을 삼아라는 이야기, 그래서 기도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이 결국 최고의 진리였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 입니까? 하나님은 다른 무엇으로도 하나님 일을 방해받지 않기 때문이고 우리가 기대하고 우리가 예상하는 방법, 우리가 아는 방식을 가지고 일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시며 결국 승리를 보게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이 가르쳐주고 있고 말하는 핵심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을 붙잡기 원합니다.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 정답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찾아가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역사하시고 하나님이 당신의 일을 이루는 것을 보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자리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그렇게 한 후에 찬송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요? 빌립보서 4:6-7절,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빌 4:6-9)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바울은 빌립보서 4장 6-9절의 말씀을 그냥 던진 것이 아닙니다. 빌립보서가 어떤 성경입니까? 바울이 3차전도 여행 끝에 로마에 압송되어 로마의 감옥에서 쓴 편지가 빌립보서입니다. 로마의 감옥에 바울이 갇혔다는 소식을 들은 빌립보 교회가 바울에게 위문품과 함께 위문단을 보냈던 것을 받은 바울이 기뻐하며 이 소식을 전한 것이 빌립보서인데, 이것은 결국 빌립보교인들이 감옥 생활의 어려움을 위로하는 마당에 자신이 처음 감옥에 갇혔던 곳인 빌립보 감옥 때의 일을 회상하면서 로마 감옥에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빌립보서를 썼던 것입니다.

 

무엇을요? 빌립보 감옥에서 배운 것이 바로 기도였고, 비록 감옥과 채찍과 차꼬로 인하여 구속되어 있었지만 이것이 방해가 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방해될 수 없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일이고 하나님의 일을 세상적인 어떤 것으로 방해할 수 없다는 것을 그가 배운 것입니다. 그것이 진리이고 그것이 사실인데 그러면 우리의 현주소는 어디에 있습니까? 지금 여러분에게 닥친 문제로 인하여 낙심하고 계십니까? 이것은 누구나 하는 모습입니다. 당연히 할 수 있다는 것이고 마음이 상하심이 충분하게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것이 신앙 문제를 흔들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우선이 기도하는 것이고 믿음으로 바라는 찬송입니다. 이 사실을 굳게 믿는 여러분, 주님으로부터 오는 은혜, 위로부터 임한 은혜를 경험하는 여러분 모두가 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그랬을 때 나타나는 결과는 바로 오늘 본문 이후의 말씀, 사도행전 16:26-34절의 결과, 아니 이것을 초월하는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기도와 찬송의 비밀입니다.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검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바울이 크게 소리질러 가로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부복하고 저희를 데리고 나가 가로되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밤 그 시각에 간수가 저희를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기고 자기와 그 권속이 다 세례를 받은 후 저희를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사도행전 16:26-34)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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