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리스트 첵 엑켄스가 만든 [Sail]이라는 연주곡이 있습니다. 이 곡은 배를 타고 바다를 나가 멀리 항해를 하는 느낌과 무사히 항해를 마치고 다시 항구로 돌아오는 느낌을 받게 하는데, 곡을 듣다보면 나 자신이 마치 낭만적인 항해를 하고 있는 것처럼 만듭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낭만적인 항해를 선호하지 않습니까? 낭만적인 항해라는 것은 드넓은 바다와 망망대해 위에 한 척의 배를 타고 가면서 돛을 올리고 순풍을 맞으며 미끄러지듯 달려가는 그것인데, 솔직히 항해는 늘 낭만만을 주지 않습니다. 때론 폭풍을 만나 낭만보다는 사느냐 죽느냐가 문제되고 특히 어부들에게는 낭만보다는 생사의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고기를 잡지 못해 그 날을 포기하기 싫어 빈 배로 돌아갈 수 없는 마음으로 다시 바다를 나간다 하지만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폭풍을 만나면 심각해지는 것이 행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2017년이라는 바다를 향하여 나가려고 하지 않습니까? 한 번도 가보지 않은 2017년의 바다를 항하여 떠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면 이 항해에 대한 이야기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한 예로 우리가 잘 아는 요나서를 보면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해” 니느웨로 간 것이 아니라 지금의 스페인인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달아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보내신 폭풍을 만나지 않습니까? 그리고 공관복음에도 예수님과 제자들이 탄 배가 폭풍을 맞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유리귤라는 돌풍인데, 이 돌풍이 일어난 장소는 진짜 바다가 아니라 갈릴리라는 커다란 호수라는 것, 그러니까 그만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항해는 낯선 이야기입니다 그 이류가 바다가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즉 이스라엘에게는 바다가 생소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이 낯선 항해에 대해 아주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항해를 해보지 않은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배를 타고 항해를 하는 내용들을 담고 있는데, 사실 시편107편은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로서 많은 고생을 하다가 고국으로 돌아온 후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회고하며 쓴 시입니다. 특별히 위태한 풍랑 속에서 구원받은 이스라엘을 비유하고 있는 본문을 나누면서 2017년 바다를 떠나는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무엇인지 나누는 이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첫째로 기이한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23절입니다. “배들을 바다에 띄우며 큰물에서 일을 하는 자는”(시 107:23) 먼저 기이한 일을 경험하는 자들에 대해 거론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배들’이란 꽤 많은 배들을 가리키고 있고 큰물에서 항해를 할 수 있는 큰 배들을 가리킵니다. 여기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을 거론하고 있는데, 이들은 바로 여러 척의 배를 가지고 큰 바다를 오가며 장사하는 해상 무역업자들 가리킵니다. 이들이 바로 기이한 일들을 본다고 하고 있는데, 24절입니다.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들과 그의 기이한 일들을 깊은 바다에서 보나니”(시 107:24) 그러면 기이한 일들이라고 하는 이것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이고, 바다에서 펼쳐지는 일들을 가리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배는 당시로서는 최고의 배들이고, 자신만만한 배들입니다. 그런데 기이한 일, 즉 폭풍을 만나면 십중팔구 침몰할 수밖에 없다는 기인한 일들을 말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25-27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명령하신즉 광풍이 일어나 바다 물결을 일으키는도다 그들이 하늘로 솟구쳤다가 깊은 곳으로 내려가나니 그 위험 때문에 그들의 영혼이 녹는도다 그들이 이리저리 구르며 취한 자 같이 비틀거리니 그들의 모든 지각이 혼돈 속에 빠지는도다”(시 107:25-27)

 

큰 폭풍이 엄청난 광풍으로 나타나, 바다 물결을 일게 하여 배가 그 파도에 휩쓸려 하늘 높이 솟구쳤다가 그 다음 순간 바다 속 깊이 처박히게 된다는 이야기, 이것으로 인하여 배 안에 있는 선원들은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마치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데, 여러분, 식스 플래그에서 롤로코스트를 타보신적이 있습니까? 롤러코스트가 회전하면서 앞뒤로 움직이지 않습니까? 갑자기 밑으로 쳐 박히듯 내려가고 다시 솟구쳐 올라가는 과정을 통해 정말로 미치게 만드는 것이 롤러코스터 아닙니까?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는 타면 완전히 숨이 멎는 느낌 때문에 싫어합니다. 그래서 무서운 바다로 인하여 파도가 위로 솟구치게 하고 다시 아래로 떨어지게 함으로 느끼는 공포는 상상 그 이상이 되는데, 26절이 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 위험 때문에 그들의 영혼이 녹는도다”라고. 무엇이에요? “이젠 끝이구나, 끝났구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이한 일이에요.

 

인생이라는 항해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때론 순풍을 만나 돛을 단 배가 잔잔한 수면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가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예기치 않는 폭풍으로 인하여 롤러코스터가 되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큰 타격을 주게 됩니다. 집채만 한 파도에 의해 하늘 높이 솟구쳤다가 곧바로 바닥도 모를 저 아래로 곤두박질치듯 떨어지기도 하는 인생 속에서 두려움과 공포가 영혼을 다 녹아버리게 하고 좌절과 낙망가운데 있게 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이런 순간에 도대체 누가 나를 도울 수 있겠냐며 무슨 희망이 있겠느냐고 질문을 한다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 누가 도울 수 있겠으며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고 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1장 2절을 보면 “네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약 1:2)고 했습니다. 무슨 이야기에요? 예수를 믿든지 믿지 않든지 인생에는 여러 가지 시험이 있다는 이야기이고, 다양한 풍랑을 만난다는 이야기, 즉 인생은 풍랑의 연속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을 자기만 겪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다 겪는 것이 풍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하는 고난을 믿음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이 그 해답을 제시하잖아요? 그 해답이 무엇입니까?

 

두 번째로 부르짖음입니다. 19절을 볼까요?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되”(시 107:19) 인생의 폭풍을 만나도 믿음의 눈을 가지고 ‘부르짖으라’는 것인데,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인생은 폭풍은 다양하지 않습니까? 암이나 여러 가지 질병일 수도 있고, 때론 가정의 문제로, 경제적인 문제로, 자녀의 문제로 신분의 문제로 다가옵니다. 힘들게 하고 무섭게 만들어 마치 침몰하고 마는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그렇지만 오늘 본문은 부르짖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구에게 부르짖는 것일까요? 세상의 방법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께 부르짖으라고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바다에서 일어나는 폭풍과 인생의 폭풍 모두가 하나님의 소관 아래 있기 때문이고, 그 어떤 폭풍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일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25절에 “여호와께서 명하신 즉 광풍이 일어난다”고 한 것이고 그에게 부르짖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가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널 때 갑자기 큰 광풍이 일어나 물결들이 배에 부딪치게 되고 파도로 인하여 배에 물이 가득 차, 배가 가라앉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사색이 되어 큰 물결과 싸우지만 정작 주님은 배를 타고 있지만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주무시고 있지 않습니까? 죽어라고 싸우고 있는 제자들과 상관없이 주님은 무슨 일 있냐는 듯 아무 반응도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섭섭하게 느끼도록 하고 답답하게 느끼도록 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주무시고 계신 것처럼 보이지만 그분은 다른 곳에 계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타고 있는 배, 즉 내가 타고 있는 배 안에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내 인생의 배에 함께 타고 계시고, 내가 지금 맞고 있는 이 인생의 폭풍도 함께 맞고 계신다는 것인데, 제자들이 어떻게 해요? 배 안에 계신 예수님을 깨우지 않습니까? 이것이 바로 부르짖음이에요.

 

그러면 어떻게 부르짖음일까요? 마가복음 4장 38절처럼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않으십니까?”(막 4:38)인 것입니다. 주님밖에 구해 주실 분이 없다고, 살려달라고 부르짖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랬을 때 바람을 향해 바다를 향해 꾸짖으시는 소리, “잠잠하라, 고요하라”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고, 즉시 잠잠해 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29절입니다. “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물결도 잔잔하게 하시는도다”(시 107:29) 여러분, 세상은 인생의 풍랑 앞에 당당히 맞서라고 말합니다. 이 말이 멋져 보이고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주님 없이 맞서는 것은 아주 위험하고 무모한 일입니다. 주님을 의지할 때 안전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만 의지하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아들인 당신이 여러분의 인생의 배에 함께 타고 계시고 여러분이 맞는 폭풍도 함께 맞고 계셔서 부르짖을 때 잠잠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부르짖는다는 것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2017년이라는 바다를 향해 떠나는 우리 모두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함으로 주님이 당신을 괴롭게 하는 광풍을 평정히 하실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신다고 했습니다. 30-31절입니다.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시 107:30-31) 이것은 결과를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여기 ‘바라는 항구’라는 말은 ‘소원의 항구’를 말합니다. 아무리 큰 폭풍을 만나도 하나님께 부르짖음으로 도착하는 곳이 소원의 항구이고 그 항구에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으로 하나님의 행하시는 기적이 담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에요? 하나님의 도움을 실제적으로 받으면서 살아가는 인생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 땅에 보내신 섭리와 뜻을 깨달으며 마음속의 소원을 이루며 살아가면서 파도가 잠잠해도 혹은 광풍과 폭풍이 불어와도 삶의 태도가 변하지 않으며, 목적지를 이루기 위하여 서서히 나아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소원을 심어 주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기이한 일”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은 2017년의 한 해의 시작입니다. 그것도 1월 1일 주일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한다고요? 파도 뒤에서 그 파도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여러분의 인생의 배에 함께 타고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하며, 그 큰 폭풍을 헤치고 끝내 도달하게 될 소원의 항구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우리의 자세는 바라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르지는 것을 붙잡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부르짖을 때 크고 놀라운 비밀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2017년 여러분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기이한 일을 자랑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늘 감사함으로 여러분의 광야에서 생수를 내시고, 광야에 강도 내시고 광야를 삼림으로 바꾸시는 기적을 이루어 살아계신 하나님을 나타내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기적의 현실이 아직은 구체화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2017년의 바다를 향해 떠나는 우리에게 오직 여호와 하나님으로만 가능하다는 말씀을 붙잡고, 부르짖되 오직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의 이름으로만 가능하다는 이 사실을 잊지 않음으로 승리하는 여러분 모두가 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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