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행 11:1-18)

 

여러분, 오늘 본문은 이방인들에게 말씀을 선포하고 세례를 받은 것에 대한 트집을 하는 유대인들에게 왜? 그가 이렇게 한 것인지에 대한 간증입니다. 간증이 무엇입니까? ‘자기의 신앙생활에서 얻은 특별한 신앙적 체험을 고백하는 것’ 아닙니까? 베드로 자신이 특별하게 경험한 것들을 구약의 전통과 율법 속에 살고 있고 할례를 받은 초대교회 유대인들에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 오늘 본문인데, 이 베드로의 간증 안에 담긴 하나님의 은혜를 이 시간에 나누면서 함께 은혜 받고자 합니다. 사실 이들은 이방인들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에 대한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했습니다. 이방인들에게 구원과 성령이 임했다는 사실을 믿기가 어려웠고, 특히 이 일을 진행한 장본인이 바로 베드로라는 것 때문에 더 충격이었습니다. 이방인인 고넬료의 집에 들어가 설교도 하고 밥도 먹고 교제와 세례까지 주었다는 이것이 그들이 생각하는 베드로가 아닐 것이라는 생각, 초대교회의 큰 힘이 된다고 여기는 이들의 베드로가 어떻게 구약의 전통과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하면서 까지 이 일들을 했느냐는 분개와 공격과 질책을 하고 있는 것이 오늘 본문의 시작입니다.

 

먼저 1-3절을 봅니다.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었더니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비난하여 이르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행 11:1-3) 무슨 말이냐면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자기들처럼 성령을 받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는 소식에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 베드로가 어떻게 이방인의 집에 들어갔느냐는 것이고, 들어가서 왜? 그들과 함께 먹었고, 왜? 하나님의 율법의 계명을 무시한 행동을 했냐는 비난을 한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베드로도 자기들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인데 왜? 변했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세요, 솔직히 이들의 생각은 베드로가 환상을 보기 전에 가졌던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세 번이나 부인한 것이 그 증거인데 이들 또한 자기들의 베드로가 이런 행동을 한 것에 대한 납득이 안 간 것이거든요. 그러면 베드로가 이렇게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베드로의 간증이고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의 4절부터 10절까지 이야기와 11절부터 18절까지이 이야기입니다. 4-10절의 이야기는 환상에 대한 이야기이고 11-18절은 고넬료의 집에서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베드로가 기도하고 있는데 환상이 나타났습니다. 그 환상가운데 성령의 음성이 들려 왔고, 그 환상은 하늘에서 흰 보자기가 내려와, 그 보자기 안에 있는 것들, 그러니까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분명하게 규정한 불결한 짐승들과 곤충들과 새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단지 본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잡아먹으라 하였고, 당연히 하나님의 금지하는 것들이기에 그리할 수가 없다고 무려 세 번씩이나 부인했지만 하나님은 당신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어찌 베드로 네가 속되다 하냐고, 하나님이 깨끗하게 했다는 말씀을 하심으로 베드로에 있어서 어렵고 고통스러운 문제였고 신앙적으로 볼 때 일대 혼란에 빠지게 한 문제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4-10절입니다. “베드로가 그들에게 이 일을 차례로 설명하여 이르되 내가 욥바 시에서 기도할 때에 황홀한 중에 환상을 보니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이 네 귀에 매어 하늘로부터 내리어 내 앞에까지 드리워지거늘 이것을 주목하여 보니 땅에 네 발 가진 것과 들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보이더라 또 들으니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으라 하거늘 내가 이르되 주님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거나 깨끗하지 아니한 것은 결코 내 입에 들어간 일이 없나이다 하니 또 하늘로부터 두 번째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고 하지 말라 하더라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에 모든 것이 다시 하늘로 끌려 올라가더라”(행 11:4-10)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라 고민하던 차에, 고넬료의 종들이 자기를 만나러 찾아왔고, 고넬료 백부장이 당신을 초대한다는 이야기를 들음으로 그 순간 갈등하고 있는 자신에게 성령은 다시 ‘일어나 내려가라고, 의심치 말고 함께 가라고 이들은 내가 보내었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습니까? 이 음성에 순종하여 그가 고넬료의 집으로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초대한 당사자인 고넬료도 만나고 고넬료의 간증을 듣게 되면서 그렇구나, 이 일이 바로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고넬료에게 네 기도를 응답하셨고, 베드로에게 종을 보내어 베드로를 초청하라는 것이구나, 참으로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고 각 나라 중의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신다는 사실을 깨달음으로 그동안 자신이 가졌던 민족주의 생각과, 전통 속에 갇혀있던 생각을 벗어버리게 되었다는 것, 마음의 문을 열어 생각을 바꿨다는 이야기, 왜?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서 먹고 말씀을 전했고 세례를 베풀었는지를 설명한 것입니다.

 

11-18절입니다. “마침 세 사람이 내가 유숙한 집 앞에 서 있으니 가이사랴에서 내게로 보낸 사람이라 성령이 내게 명하사 아무 의심 말고 함께 가라 하시매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가서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가 우리에게 말하기를 천사가 내 집에 서서 말하되 네가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가 너와 네 온 집이 구원 받을 말씀을 네게 이르리라 함을 보았다 하거늘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행 11:11-18)

 

그러면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크게 두 가지만 같이 생각하고 은혜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구원은 이스라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은 이방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택했던 것이지 이스라엘만을 위한 구원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이방 민족 가운데 택해 최초의 히브리인을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을 통해 하나님 자신이 인간들에게 어떤 삶을 바라는지 보여주고자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나 그의 후손인 유대인들이 다른 민족보다 더 뛰어나서 하나님께 선택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사도바울은 롬 4장 23-25절에 이 사실을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들어보세요.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3-25)

 

그에게 의로 여겨진 것이 무엇입니까?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의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즉 이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고, 이것이 아브라함의 특별히 잘 나서가 아니라 위로부터 오는 선물을 받은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을 불러 준비시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 준비시킴이 무엇입니까? 바로 이방 민족들 앞에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실천하게 하는 것, 즉 하나님의 소금이 되게 하심으로 학생들인 이방민족들이 하나님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시청각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삶을 사용하신 것이고 그 이유가 바로 구원 때문에, 이 구원이 이스라엘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기에 그랬습니다. 그래서 히브리 민족에게 말씀을 주신 것이고, 이방 민족들 앞에서 그 말씀대로 믿고 살아야 했으며, 하나님의 교훈을 그들의 관례로 삼아야 했고, 율법을 그들의 삶의 지침으로 삼게 하여 이들을 바라보는 이방민족들이 하나님을 향한 갈증을 느끼도록 이스라엘을 선택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원이 세상 모든 민족을 향하도록 하기 위함이기 때문에,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사 11:19)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어떻게 했습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만이 선택 받은 백성이고 다른 민족들은 다 개로 여겼습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부름을 받기 전에는 메소포타미아 갈대아 우르에 사는 한 이방인이었고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었다는 이 사실을 모르는 것이고 극상품 포도가 들 포도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구약에서 얼마나 많이 봅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모른 것이고, 그래서 이방인들이 구원 받고 성령 받았다는 이 사실에 대해 마음의 문을 열수가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베드로가 17절 하반 절에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께 대항하겠느냐?’고, 즉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이 하는 일을 막겠느냐면서 하나님이 분명히 이방인을 선택하셨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 아닙니까?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택하였기에 오늘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자녀로 삼으셨고, 이루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전통을 뛰어 넘게 하셨으며, 전통과 신념에 묶여 있는 예루살렘 교회를 흔드셔서 오늘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베드로로 하여금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들어가 음식을 함께 먹게 한 것이고,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게 하신 것이며, 유대인들이 원수로 여겼던 로마군대의 백부장의 집에서 이 원수를 친구로 맞아들임으로 성령을 이방인들에게도 동일하게 부어주심입니다.

 

마지막 두 번째는 그러기에 하나님의 목표, 아니 목적은 우리, 바로 저와 여러분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면 무엇이 하나님의 목표요, 목적입니까? 바로 ‘하나님이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다’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이 목적이 앞에서도 잠시 거론했듯이 바로 우리인데, 그러면 무엇을 위한 목적일까요? 바로 거룩한 과정입니다. 여러분, 거룩한 과정이라는 말이 무거워 보이지만 사실 거룩한 과정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따르도록 함이고, 그럼으로 발견된 죄에 대한 올바른 견해의 변화에 부응하는 것입니다. 죄에 대한 올바른 감정을 가져, 호감이 아니라 죄를 멀리하려고 노력하는 것이고 죄가 과거에는 당연시 했지만 추악하고 혐오스럽게 여겨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살고,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며,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의 삶을 살아 어두운데서 불러내신 하나님의 뜻과 빛의 자녀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여주고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는 삶,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삶을 사는 것이 거룩한 과정입니다. 이것을 말씀하시려고 10장의 처음부터 끝까지 고넬료라 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고, 오늘 본문의 11장에서도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이 이방을 향하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세밀하신 간섭 안에는 바로 저와 여러분 때문이라는 말씀, 바로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의 목표요 목적이고, 이 목표가 생명을 만드시고 자라나게 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의 인격으로 요구하시는 그 자리,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 대접하시는 것입니다. 아멘!

 

그러기에 복음이 이방으로 들어가는 첫 사건에 하나님이 이 모든 일을 주선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계획하시고 이루신 것입니다. 이 일에 베드로를 설득하였고 고넬료를 설득하는 장면이 번거롭게 나오는 것입니다. 이 보자기 안에 들어 있는, 아니 여기 있는 짐승을 잡아먹으라고, 이런 것들을 절대 먹지 않겠다, 내가 깨끗하다고 했는데 네가 거부할 것이냐는 설득을 하신 것입니다. 왜요? 여러분이 하나님의 목적이고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그러기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히 4장 16절,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 갈 것이니라”(히 4:16) 그런데 우리는 은혜를 구하기 위해 나가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아주 작은 것 하나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하면 무척 좋아하십니다. 과거의 못된 모습이 있다 하더라도, 그래서 때론 납득이 안 가는 부분을 보여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여러분, 아합왕이 누굽니까? 기원전 873년경 분열 이스라엘 왕국의 7대 왕이 아합왕입니다. 열왕기하의 기록에 의하면 어떤 이스라엘 왕보다 더 악한 짓을 한 왕이었고, 엘리야 선지자가 그 때 활동했습니다. 정말로 죽어 마땅한 왕 아닙니까? 그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이 탐나 돈을 주고 사려하니까 나봇이 안파는 것입니다. 그것을 아내 이세벨에게 말하였고 이세벨의 농간으로 나봇이 죽은 것 아닙니까? 아합이 나봇의 죽었다함을 듣고 나봇의 포도원을 취하러 내려가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아합에게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아합왕의 피, 곧 몸의 피도 핥은다고 말하니까 그런 그가 어떻게 해요?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며 회개하니까 하나님은 재앙을 그의 시대에 내리지 않고 그 아들의 시대에 내신다고 말씀을 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뿐입니까? 창세기 18장에 보면 소돔 고모라를 멸망시키기 위해 하나님 당신께서 친히 강림을 하십니다. 그런데 그 전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만나 당신이 하시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고,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다는 말씀,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죄악이 심히 중해서 당신이 직접 보고 알려 하노라 하면서 이 도시를 멸망하겠다고 하니까 아브라함이 어떻게 간청합니까?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 하냐고 의인 50명이 있으면 멸하시지 않겠느냐는 부탁을 합니다. 결국 몇 명까지 깎아요? 열 명까지 깎는 아브라함을 봅니다. 여러분, 아합왕 이야기나 아브라함의 이야기나, 제가 이야기를 하는 핵심은 의인 50명과 10명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는 하나님의 목표가 아브라함이라는 것이고, 회개하는 아합왕입니다. 이것은 동일하게 우리에게 적용되며 여러분이 하나님의 목표라는 사실입니다. 무엇을 시키려는 것 때문에 부른 것 이전에 그 가운데에 여러분이 있다는 것이고 그 이유는 여러분의 인생을 통하여 여러분을 거룩케 되게 하시려고 하나님과 더불어 기쁨을 나누시는 삶이 되게 하시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신 예수그리스도가 직접 이 땅에 오신 것 아닙니까? 혹시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이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향한 목표를 위한 일이고 여러분을 거룩하게 하시려는 은혜, 그래서 때론 고되게 하시지만 훗날 당신의 약속과 복 주심과 인도하심이 부어지게 하시는 은혜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베드로 자신이 경험한 바에 따라 사실 그대로 증거를 한 내용입니다. 아무 의심 말고 함께 고넬료의 집에 따라 가라고 하시는 성령의 명령을 받고 가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하는 중,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는 것을 보았고, 성령은 처음 자기들에게 임하심과 동일하게 임하신다는 사실 앞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하신 주의 말씀, 결론적으로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저희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관데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고 하면서 구원은 이스라엘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그렇지만 그가 경험했던 이야기를 나눔으로 베드로를 힐난한 일로 문제가 제기된 이 일이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오늘 본문인데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다는 결론은 결국 누구의 목표? 바로 하나님의 목표요, 이 하나님의 목적이자 목표가 바로 저와 여러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위해 하나님은 유대인과 이방인들의 담이 무너트렸고 오늘 이렇게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던 것입니다.

 

무엇을 위해서요?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 대접하시기 위해, 거룩의 과정을 이루는 삶을 위해, 예수님을 믿고 따르도록 함이고, 죄에 대한 올바른 견해의 변화에 부응함으로 죄에 대한 올바른 감정을 가져, 죄는 호감이 아니라 추악하고 혐오스럽게 여기는 삶을 살도록,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살고,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삶을 사는 것이고,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의 삶을 살아 어두운데서 불러내신 하나님의 뜻과 빛의 자녀로서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기 위함이란 것,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하도록 우리를 부르셨고 사용하심으로 아직 주를 모르는 자들에게 나타내 보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이것이 오늘 본문이 말씀하신 핵심입니다. 여러분, 이제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아직도 신앙생활 속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보다는 필요할 때만 찾고 그냥 모른채 하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의 목표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만나는 사건, 사건 안에 여러분을 향하는 하나님의 마음이 바로 여러분이 목표라는 것을 가슴에 품고 이번 한 주간도 주 앞으로 더 가까이 가는 여러분, 거룩의 과정을 이루는 여러분 모두가 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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