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며 보며, 꿈을 꾸며”

(욜 2:23-32)

 

여러분, 오늘 우리는 요엘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2018년 행하실 하나님의 은혜가 담겨져 있어서 우리의 올 한해의 지표로 삼고자 이 말씀을 선택했습니다. 아시다시피 구약의 선지자들 중에서 거의 무명이다시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바로 요엘 선지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예언된 말씀들은 초기 기독교에서 두 번이나 인용할 정도로 주목을 받았는데, 그가 선포하였던 말씀들은 지극히 평범할 때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극심한 흉년이 있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그 예를 1장 4절과 10-12절에서 찾아보게 되는데, 4절은 “팥중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느치가 먹고 느치가 남긴 것을 황충이가 먹었도다”라고 말 그대로 생존 자체의 위태로운 상황이었고, 그 상황은 들판과 밭은 망그러져 메말랐고 그래서 곡식과 포도주와 올리브기름은 바닥이 날 뿐만 아니라 말라 버려 이들에게 있어서의 기쁨은 아예 사라져 버린 극한적인 대재앙의 때에 선포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본문을 보면 그가 이 대재앙을 피할 수 있는 요령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결론적인 외침, 즉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강조의 한 마디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극심한 가뭄이 생존자체의 엄청난 위협이었지만, 해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 왜냐하면 지켜주시는 것은 기본이요 구원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 당신의 백성들은 망하게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 조롱당하지 않게 하고 위로하시고 축복하시는 하나님만이 정답이라고 외쳤는데, 오늘 읽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본문 앞 절인 2:21절에는 ‘땅이여 두려워하지 말고 기뻐하며 즐거워하라. 여호와께서 큰일을 행하셨다’라 하였던 것이고,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닌 당신의 백성이 머문 곳에 사는 들짐승들에게까지 해당된다고 축복의 확장까지 말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본문은 이것이 가능하게 된 증거의 믿음이 됩니다. 우리는 오늘 이 내용을 나누면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먼저 25-27절 말씀입니다. “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 곧 메뚜기와 느치와 황충과 팥중이가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 주리니 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그런즉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욜 2:25-27) 아시다시피 여기에 등장하는 큰 군대가 메뚜기, 느치, 황충, 팥중이입니다. 이 모두가 무엇이냐? 메뚜기를 가리키는 다른 표현들인데, 설명을 해보면 ‘팥중이’는 잘라 먹는 모습에서 딴 이름이고, ‘메뚜기’는 많은 떼로 몰려다니는 모습에서 딴 이름이며, ‘느치’는 빠르게 먹어 치우는 모습에서 따온 이름이고, ‘황충이’는 아주 끝장을 내고 마는 모습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이게 다 메뚜기에 대한 수사학적 표현을 요엘이 했던 것입니다. 무엇을 이야기하려고요? 메뚜기 재앙으로 인한 비참함을 이야기 했고, 그러니 이 재앙은 너무나도 심각했음을 말한 것입니다.

 

하지만 본문 25-27절을 보니 그것보다 이 재앙 때문에 당한 것을 회복시켜주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인데, 그러면 이 극심한 재앙이 왜? 온 것일까요?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에게서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하는 백성들입니다. 왜? 하나님을 떠났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무슨 이야기냐면 바로 세속화가 된 이스라엘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모습이 아니라 세상의 옷을 입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영적 곤고함이 왔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에 대한 것도 형식만 남아, 여호와께 돌아가야 한다는 요엘의 외침을 귀담아 듣지도 않았고, 하나님의 지켜주신다는 이 말을 수없이 들었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보다 세상에 더 기울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도 예레미야 8:22절에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그 곳에는 의사가 있지 아니한가 딸 내 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함은 어찌 됨인고”(렘 8:22)라면서 이스라엘의 세속화를 지적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여러분, 길르앗이라는 곳은 치료하는 유향이 나는 아주 유명한 곳입니다. 자연스럽게 병원도 있었을 것이고 좋은 의사도 있지 않겠어요? 그런데 나아야 하는 환자가 정작 치료를 받지 못했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이야기했던 것입니까? 치료자인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통일된 왕국으로서 이스라엘의 전성기가 길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못했습니다. 영적 전성기인 다윗 시대를 지나, 물질적으로도 전성기를 누렸던 솔로몬의 때가 끝나자 이스라엘은 두 나라로 분열이 되고 말았습니다. 북쪽의 이스라엘과 남쪽의 유다로 말입니다. 열왕기상과 열왕기하는 다윗의 죽음에서 시작해서 솔로몬의 통치, 그리고 분열된 두 왕국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데, 그 안을 들어다 보면 왕들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평가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내린 평가인데, 기준이 얼마나 이들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군사적으로 나라를 잘 다스렸느냐가 아니라 오직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있었느냐 않았느냐에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자가 누구입니까? 다윗이고 후자는 여로보암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행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실제로 완벽했을까요? 아니에요? 그런데 그의 마음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향해 있었습니다. 나단 선지자로부터 책망을 받았을 때 죄를 변명하거나 축소하지 않았고, 즉시로 죄를 자백했으며 인구 조사 때도 마음에 가책을 느꼈던 자입니다. 그러니까 다윗의 마음은 하나님께서 왕들에게 원하셨던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반면에 여로보암은 악한 왕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솔로몬의 종이었고 뛰어난 용사였으며 성실한 자였습니다. 솔로몬의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떠나 다른 우상들을 숭배하자, 하나님께서는 여로보암에게 이스라엘의 10지파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거기에다 다윗을 위하여 세운 것 같이 견고한 집을 세우고 이스라엘을 준다는 놀라운 약속까지 했는데, 이 놀라운 약속이 실현되는 것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수없이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경고를 받게 되지만 악한 길에서 돌이키지 않았고, 그와 그의 집은 하나님의 진노에 멸망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많은 왕들은 다윗과 같지 않았고, 오히려 “여로보암의 길”로 행했는데, 하나님의 기준은 동일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그랬던 것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말씀이 돌아오라는 것이고 오늘 본문도 여호와께로 돌아오면 메뚜기, 느치, 황충, 팥중이가 먹었던 모든 것을 회복시켜주겠다는 말씀, 그래서 놀라운 일을 행하신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하게 되고,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게 한다는 말씀과 함께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이스라엘 가운데에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알게 된다는 놀라운 축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호와께로 돌아간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회개를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회개는 돌이키는 것으로 죄로부터, 돌이키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돌이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말입니다. 왜냐하면 구원의 문제와 관련이 되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문제는 어디에 근거합니까? 믿음과 회개입니다. 무슨 이야기냐면 구원은 믿음과 회개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이야기입니다. 회개가 죄로부터 돌아서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믿음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로 돌아가는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둘은 분리가 될 수도 없고 언제나 동시에 이루어진다는데 있습니다. 이것 아세요? 믿음에는 3가지 요소가 있는데, 그 첫째가 지식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교회만 다니는 것이 아니라 배워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성경의 내용을 알아야하며, 복음의 내용을 알아야한다는 말, 맹목적인 도약이 될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두 번째는 동의인데, 이것은 성경이 말하는 진리를 따라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가 신뢰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구주가 되심에 대한 신뢰이고, 그가 우리의 삶의 주인 되심의 신뢰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은 우리의 수고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사실입니다. 주님이 엡 2:8-9절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 2:8-9) 무슨 이야기냐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영적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진리를 억제할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저와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도 하나님의 선물,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선택하셨기에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의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유일한 근거입니다. 그러기에 믿음이 주는 역할은 그리스도와 연합, 즉 그리스도에게로 연결시켜주는 것입니다. 아멘!

 

이 모든 것에게 있어서 반드시 따라와야 하는 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큰일은 그들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시는 것인데, 이것의 첫 출발이 바로 회개이었습니다. 회개가 뭐에요? 죄로부터 돌아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메타노이아’, 방향을 180도 바꾸는데, 지옥을 향해 가던 발걸음을 천국을 향해 바꾸는 것이고, 내 뜻과 내 고집대로 살던 데서 주님의 뜻대로 사는 삶으로 바꾸는 것이 회개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요구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해야 성령 충만을 받습니까? 회개 후에 오는 은혜가 있어야 성령 충만이 찾아옵니다. 여러분, 믿음의 역사도 회개와 성령 충만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러기에 있지 말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오늘을 사는 가 회개의 사람, 믿음의 사람, 성령의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아니 하나님은 회개의 사람, 성령의 사람, 믿음의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주인공이 되기를 원합니다. 먼 미래가 아니라 2018년, 금년 당장에 이루어지는 역사가 있기를 원합니다. 27절의 말씀처럼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라”(욜 2:27)고, 여호와 외에 다른 하나님이 없는데, 하나님이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존재를 뛰어 넘는 분, 살다보니 우리의 계산을 초월하는 방식으로 지켜주시고 역사하시는 분이라는 간증으로 가득 경험되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각성에 이르는 순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28절과 29절,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욜 2:28-29) 여기에 반복되고 있는 표현은 ‘영을 부어준다’, ‘자녀들은 장래 일을 말하고, 늙은이는 꿈을 꾸고, 젊은이는 이상을 본다’, 즉 장래와 꿈, 그리고 이상은, 다 현실 너머의 종말론적 시각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아주 중요한 것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 역사가 오순절 다락방에서 일어났는데, 또 하나는 우리가 종말의 시대, 즉 마지막 때에 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종말이라는 단어는 마음에 그리 와 닿지 않다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부활신앙을 가지고 살아야 하고 종말론적 사고방식으로 살아야 하지만 우리가 무뎌졌기 때문에 마지막 때는 뜬구름 잡은 것으로 여기게 됩니다. 또한 시한부종말론자들처럼 문자적인 차원에서의 휴거와 불 심판에 집착하여 감당할 실존의 무게 때문에 종말 도피처를 찾는 모습들도 보입니다. 안 그래요?

 

오늘 이 본문의 말씀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 요엘 선지자가 전하고 싶은 마음이 뭐겠습니까? 종말론적 시각입니다. 그러면 정말로 종말론적인 시각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이것은 ‘생명 완성의 순간을 향한 열망이자 설렘이자 희망’인데, 무엇에 대한 생명 완성의 순간이고 열망이자 설렘이고 희망이냐면 구원에 대한 생명의 완성의 순간이고 열망이자 설렘이고 희망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되는 은혜, 요엘 선지자도 그래서 32절에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는 외침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한 다른 표현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종말론적 통치를 갈망한다는 뜻인 것입니다. 이것은 31절에 나온 말씀처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욜 2:31)가 되는 것이고, 하나님이 이 세상을 완전히 새롭게 하신다는 긍정의 표현을 담고 있는데, 이것이 적용되는 자가 바로 ‘남은 자 중에서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이고, 여호와의 ‘부름’을 받은 자만이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을 내다보며 여호와의 이름을 ‘부를’ 수 있다는 것, 그 날이 바로 구원의 날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결국 어디에로 집중됩니까? 여호와를 찬양하는 자리, 왜요? 하나님의 통치에 사로잡힌 사람의 인격에서 나오는 삶의 태도는 바로 여기에 머물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마음이 간절하기에 저는 2018년 우리 사랑의교회 표어를 ‘일상 속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나라’라고 정했습니다. 이 표어의 말씀은 민수기 6:8절 말씀입니다. 들어보세요? “자기의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 그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니라”(민 6:8) 무슨 이야기냐면 하나님을 중요하게 여기는 삶이 되자는 것이고, 여호와 하나님만을 높이자는 이야기이며, 저와 여러분의 삶에서 하나님이 구체적인 행위자로 나타나게 하자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이 바로 ‘일상 속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게 됩니까? 회개와 믿음이, 주의 이름을 부를 때 일어납니다. 이 은혜의 주인공이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이 요엘의 이 선포는 이미 이루어진 현실이 아니라 아직 일어나지 않은 약속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담긴 중요한 것은 “진심으로 뉘우쳐”입니다. 즉 하나님께 돌아오면 하나님이 놀라운 일을 일으키신다는 약속입니다. 또 하나는 우리를 살리는 하나님의 영의 부여입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이것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부르되 열정적으로 부릅니다. 왜냐하면 성령을 부여받은 사람에게만 가능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언어와 사유를 근본적으로 뛰어넘는 하나님의 배타적 사건이 되게 합니다. 하나님이 행하실 새로운 세상이 2018년인데, 마치 아침을 기다리는 파수꾼처럼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일들로, 하나님의 행하신 일들의 역사를 믿음으로 바라보는 이들로 역사하시는 응답을 기다림으로 가득하는 2018년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말하며’ ‘꿈을 꾸며’ ‘보는’ 올 한해가 여러분의 것으로 자리매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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