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매”

(행 19:1-7)

 

여러분, 학문 중에 철학이라는 학문이 있습니다. 이 철학은 어떻게 보면 끊임없는 질문의 연속이라는 학문 아닙니까? 그래서 철학을 ‘질문학이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 끊임없는 질문 안에는 삶에 대한 질문과 진리에 대한 질문이 있고, 역사에 대한 질문이 들어있습니다. 이 질문을 던지고 나름대로 정답이 아닌 정답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 솔직히 철학인데, 칸트의 순수이성비판도요,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무슨 이야기냐면 결국 인식론에 대한 문제가 바로 ‘순수이성비판’이라는 결론을 만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질문은요, 답을 만들어 내고 독일의 격언처럼 ‘질문이 없으면 해답이 없다’라는 말이 되도록 합니다. 오늘 본문도 사도바울이 이것을 요구하고 있고, 에베소 교인들에게 던진 문제의 질문이 인사성으로 던진 질문이 아니라, 값진 답이 나오게 했던 질문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이에요.

 

아시다시피 오늘 본문은 사도바울의 3차 전도여행에서 생겼던 일입니다. 사도바울이 에베소교회에 도착하여 에베소교인들과의 첫 만난 가운데 생긴 일인데, 그 당시의 에베소 교회의 교인들은 12명 정도가 있었고, 이들과 함께 사도바울이 3차 전도여행의 중심지로 삼데 된 계기 오늘 본문입니다. 그러면 이 에베소라는 곳이 어떤 곳일까요? 소아시아의 중요한 항구도시입니다. 교통과 무역의 중심지이며, 아데미 신전이 있었던, 즉 이교적 우상 숭배가 범람한 도시가 에베소입니다. 이 도시에 있는 에베소 교회성도들과 만나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신 일인 성령을 주시고자 하여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는 질문을 던졌고, 성령을 받기는커녕, 성령에 대해서 들어본 일조차도 없었다고 하였으며, 그러면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고 물으니까 요한의 세례만 받았다는 그들에게 사도바울이 안수하매 성령을 받고 방언하고 예언을 하게 되었다는 내용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이 짧은 구절 안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계시는지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성령을 받았느냐?’라는 질문입니다. 2절 앞부분입니다.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행 19:2) 여러분, 이 질문은요, 사도바울의 문제적 질문입니다. 그러니까 사도바울이 문제적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러면 사도바울은 왜? 이 문제적 질문을 던졌을까요? 복음의 사명을 위해 던졌고요, 사실적으로도 그들에게 부족한 것인 너무나도 좋은 성령이 저들에게 없었기 때문에 던졌습니다. 즉 사도바울이 성령을 받았느냐는 질문을 던졌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주님이 부어주시고자 하는 성령이 저들에게 없었던 것을 감지하도록 했고, 아볼로에게 영향을 받은 이들이 에베소에 머물고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하나님은 이들과 함께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에 주목했던 바울이라 그래서 사도바울은 세례를 주는 것으로 에베소 사역을 시작했지 않습니까? 그랬더니 무슨 일이요? 좋은 성령이 그들에 임한 것입니다. 6절을 볼까요?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행 19:6)

 

이 좋은 성령이 저들에게 임했는데 여러분, 그러면 왜? 성령이 너무나도 좋은 것일까요? 눅 11:9-13절에 보면 주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들어보세요.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눅 11:9-11) 성령이 가장 좋은 것이자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신 가장 고귀한 선물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일까요? 먼저 하나는요, 각종 좋은 것이 성령께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사도바울은 이 가장 좋은 것을 받았느냐고 하였던 것이고, 그들의 답이 2절 하반절,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행 19:2)고 답을 했는데, 이 말에 담긴 의미는, 무엇이냐면 우리는 아볼로에게 배웠다는 말, 즉 요한의 세례, 구약에만 머문 구원만을 알고 따랐다는 이야기를 그들이 한 것입니다.

 

솔직히 아볼로도 그랬지 않았습니까? 부르스길라와 아굴라가 가르침을 주지 않았다면 그도 계속 요한의 세례만을 알았을 것이고, 성령에 대해 몰랐을 것입니다. 안 그래요? 그렇지만 하나님이 부르스길라와 아굴라를 통해 성령을 가슴에 품도록 하였고, 가슴에 품은 성령님과 함께 고린도 지방에 머물었던 아볼로 아닙니까? 그리고 바울은 에베소로 갔다는 이야기가 1절인데,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중요한 성령은 받아도 되고 안 받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요? 왜냐하면요, ‘하나님의 의’가 머문 이유가 여기에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것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인데 이 사실에 대해 사도바울은 롬 1:17절에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라고 말하였습니다. 한마디도 말하면 하나님의 의가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에요. 이 일의 역사를 성령님이 하는 것이고, 그러기에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아멘!

 

여러분, 생각해봅시다. 유대교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율법이에요. 율법은요,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언어로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이 뿌리를 모세를 통해 하셨고, 시내 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비롯해서 많은 율법을 받았어요. 그 중심 내용이 바로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에 기록되어 있는 ‘토라’에 있는데, 하나님이 언어로 주신 이 율법의 근본적인 의미가 바로 롬 10:5절 말씀,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롬 10:5)이고요, 율법을 행하면 의를 얻고, 의를 이루며, 율법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고 그것을 실천하여야 하는 책임이 따랐던 것입니다. 여기 실천하는 책임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 아닙니까? 이 율법의 근본정신을 유대인들이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감당해야 했는데, 어떻게 했어요? 그들은 ‘사람의 의’에 머물렀습니다. 사람의 의를 세우려고 했던 것이 문제이었어요. 그러기에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예수님의 충돌이 바로 이것이었잖습니까? 그들이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고 입과 마음에 담고 있는 율법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정작 메시아가 오셨는데도 알지도 못하고 거부한 것 아닙니까? 이것을 사도요한은 요 1:5절에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요 1:5)라고 표현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의 의’입니다. 아멘! 십자가에 달리면 저주를 받은 것으로 여겼던 그들의 생각은, 어떻게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십자가에 달려 죽은 이가 하나님의 의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 동의를 할 수가 없었고, 하나님의 의의 최종 결론인 부활을 몰랐으며, 알 수가 없죠?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더 이상 귀한 것으로 여길 수가 없다는 이 사실을 몰랐습니다. 아니 모를 수밖에 없었어요. 왜요? 왜냐하면? 주님께서 요 10:14-15절에 말씀하셨던 것처럼 주님, 당신의 목자의 양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 10:14-15) 그래서 사도바울의 외침도 롬 10:9절,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롬 10:9)라고 한 것이고, 요 14:6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말씀하신 것, 무슨 이야기이에요? 예수님만이 ‘구원의 길’이고,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의’라는 사실입니다. 아멘!

 

그래서요. ‘하나님의 의’를 알고 믿는 사람은 더 이상 자기 의에 매달리지도 않고 매달릴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의’, 이것의 바탕이 아니 아주 깊이 깔려 있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용서 아닙니까? 이것을 알고 믿는 자는요,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라는 찬양이 절러 나옵니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같이 불러봅시다.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하나님 크신 사랑 그 어찌 다 쓸까 저 하늘 높이 쌓아도 채우지 못하리 [후렴]하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 다 못하며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이것을 알지도 듣지도 못한 이들이었기에 사도바울의 재차 질문이,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로라”(행 19:3)이었던 것이었고, 저들의 답, 요한의 세례, 즉 아볼로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한 그들의 답을 지금까지 물세례만 받으면 다 되는 줄 알았던 이들에게, 아니 성령에 대하여 무지했던 이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이렇게 성령을 받으라고 한 성령님은 누구일까요?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 가운데 제3위 하나님이 성령님이고 하나님의 영이요, 그리스도의 영이며 인격적인 신이자 보혜사 하나님이 성령님입니다. 그분이 우리의 곁에 계시면서 변호하고 위로하시는 영이고, 바울은 그러기에 물세례만 가지고는 부족하니 성령 하나님을 받으라고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도 질문을 하나 던져봅니다. 우리는, 아니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도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습니까?” 그렇다면 이 질문이라는 여기에 어떤 답을 내리겠습니까? 받았다?, 못 받았다?, 개중에는 모르겠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이것에 대해 고민한다고요? 고민이라면 요, 절대로 받은 것이 아닙니다. 아니 ‘안 받은 것’이에요. 왜냐하면 성령은 하나님의 선물이고 선물은 기쁨으로 가득하게 만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행 2:38절을 보면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행 2:38)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분명하게 성령이 선물이라고 했고,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선물을 받는다는 것은 아주 즐거운 일이지 않습니까? 한 예를 들어봅시다. 좀 작은 것을 해봅시다.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스타벅스 GIFT카드 20불짜리를 선물로 주었다고 가정해봅시다. 여러분이 스타벅스 커피를 주문하면서 이 받은 GIFT카드를 아주 즐겁게 사용하지 않겠습니까? 선물을 슬픈 마음으로 사용하는 자가 어디 있느냐는 이야기에요. 받은 사람은 선물로 인하여 즐거운 것입니다. 그런데 받았는지 모른다고 한다면 안 받은 것 아닌가요? 선물은 당연히 좋잖아요? 왜요? 선물이니까요? 선물로 인한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이 좋은 성령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말씀대로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이유가 모두가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라고 했기 때문에 그랬잖아요? 행 1:4-5절입니다.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 1:4-5) 여기에 말씀하신 예수님의 명령, 무엇입니까?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는 것이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는 것이며, 그것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이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이야기이에요. 왜냐하면 성령을 받지 않으면 부르신 목적을 위하여 쓰일 수가 없기 때문이고, 성령을 받지 않으면 주의 증인으로 쓰일 수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는 것은 믿는 단계에서 체험하는 단계로 나가는 것이고, 성령을 받는 것은 머리로 믿던 예수님을 가슴으로 믿는 것이며, 성령을 받는 것은, 씻는 단계에서 죄의 뿌리를 태워 버리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는 것은 예수님을 증거 하게 하는 자리에 나가게 하는 것이잖아요? 그러기에 행 1: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이것을 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아멘! 우리가 이것을 위해 부름을 받았어요. 그렇다면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다시 묻습니다. 여러분은 성령을 받았습니까? 여러분 자신에게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세요? 나는 과연 성령을 받았는지, 성령이 주시는 참 기쁨, 예수의 충만으로 가득하기를 소원하는지를 여러분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성령을 받을 수 있을까요? 사모하고 간절히 구하여야 성령을 주십니다. 행 1:14절입니다.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행 1:14) 이 구절 안에 담긴 부사와 동사는요, ‘전혀, 즉 뜨겁게, 간절히, 같이 하여, 합심하여 기도하였다, 기도에 힘썼다’입니다. 무엇이에요? 기도가 없으면 성령의 역사도 없고, 합심해서 기도할 때 거룩하신 영인 성령이 임하셔서 모든 죄를 토해내게 하실 것이며, 우리로 하여금 깨끗한 심령이 되게 하신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좋은 성령이 여러분에게 충만하기를 원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성령을 받으라고 한 바울이 이어서 한 행동이 무엇이었습니까? 안수이었습니다. 6절을 다시 봅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그다음에 무엇이 임했다고요,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그 다음에는요,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행 19:6)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을 향해 손을 얹었고, 그랬을 때 성령이 임하였으며 그 증거로 방언과 예언을 하였습니다. 성령의 은사 가운데 하나인 방언을 하였고요, 성령의 내적 역사가 임했다는 말입니다. 우리에게도 이 은혜가 가득하기를 원합니다. 그 이후에 예수님을 닮아 성령의 열매를 맺었을 에베소 교인들처럼, 여러분에게도 성령의 열매가 가득하기를 원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모할 때 임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의’를 믿었을 때 임합니다.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성령이 임하기를 소원해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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