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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은 안식일이니

(요 5장 10절~18절)

 

 

 

베스트셀러 작가인 모간 블레이즈가 [비난]에 대하여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는 힘과 기술이 있다. 나는, 상대방을 죽이지 않고도 승리할 수 있다. 나는, 가정과 국가, 그리고 어떤 조직도 파괴할 수 있고, 수많은 사람을 파멸시킬 수 있다. 나는, 바람의 날개를 타고 여행한다. 아무리 순결한 사람이라도, 내게는 무력하고, 아무리 깨끗한 사람이라도, 내게는 더럽다. 나는, 바다보다 더 많은 노예를 거느리고 있으며, 나는, 결코 망각하지 않으며,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내 이름은, 비난이다.” 비난이 무엇입니까? 남의 잘못이나 결점을 책잡아서 나쁘게 말하는 것입니다. 비판과는 달라요? 사실과 논리에 입각하여, 상대의 주장을 반박하거나, 지적하는 것이 비판이라면, 자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 대상에서, 사건이 발생하거나, 트집 잡힐 거리가 생길 시비를, 사실 관계를 떠나 욕하고 조롱하는 것이 비난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38년 된 병자를 예수님이 고쳐주셨습니다. 기쁘고 감사할 일인데 비난으로 마무리되어 버렸어요? 불치병이고, 도와줄 가족도 없이 홀로 남은 자에게 친히 찾아오셔서, 온전한 사람으로 걷게 하셨는데, 비난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왜? 일까요? 그리고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일까? 이것들을 나누면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먼저 오늘 사건은 자비, 혹은 친절이라는 이름을 가진 베데스다 연못에 있는 38년 된 병자를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고쳐주셨던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연못은, 양이 출입하는 양문 가까이 있던 샘솟는 못으로, 다섯 개의 파빌리온, 즉 다섯 개의 행각이 있어서, 이곳에 모인 환자들은 물이 동하기를 기다렸습니다. 천사가 내려와 물이 움직이도록 한다는 이 미신에 의하여 물이 동할 때, 물속에 제일 먼저 들어간 자는 어떤 병에 걸렸던지 다 낫는다는전설입니다. 크기는 길이가 9미터, 바위를 파서 만든 큰 웅덩이로, 동서로는 16.7m, 넓이는 3.8m, 성의 북쪽벽 밖 가까운 곳, 성전으로 들어가는 양문, 즉 Sheep Gate 곁에 위치한 연못에는 환자들로 북적하였고, 자리 때문에 고성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곳에 38년 된 병자가 있었어요? 이를 찾아온 예수님이 그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물었습니다. 보통이면, “네, 낫고 싶습니다”가 정상인데,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이 연못에 넣어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간다”라고 하였고, 이에 예수님이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라고 하심으로 그가 고침을 받았던 것이 시작되어 오늘 사건이 생겼습니다. 문제가 안식일을 범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고침을 받은 자에게 안식일을 범하게 한 자에 대해 물었고, 예수님은 이미 그 자리를 피했기에 안 보여 말을 못했지만, 후에 성전에서 예수님이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당부하셨다는 것, 이가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을 일러바쳤고,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박해했다는 것,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라는 말에 안식일을 범한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고,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는 다고, ㄱ래서 죽이고자 했던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우리가 오늘 본문에서 몇 가지를 보게 됩니다. 그 첫째가 뭐냐? 난리친 이유입니다. 그것이 안식일을 범했다는 것입니다. 9~10절입니다.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여러분, 안식일에 대하여 거론한 말씀이 출 20장 8~11절입니다. 들어보세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하나님의 명령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입니다. 이 말씀에 유대인들은, 안식일이 그들 자신이 누구인지를 의미하는 것이기에 중요하게 여겼기에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저녁까지, 이 날을 지킴으로 유대인과 유대인이 아닌 것을 결정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이요? 사사건건 예수님과 제자들이 안식일을 잘 지키는지에 집중했던 것을 성경에서 보게 됩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의 제자들이요?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지나다가, 배가 고파서 이삭을 잘라먹으니까 제자들이 안식일을 어겼다고 시비를 걸죠?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주신 안식일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일까요? 의미가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입니다. 히브리어로 ‘샤바트’, 창 2장에, 하나님께서 창조사역을 마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는 말씀이 나와요? 이것은요? 하나님이 피곤하셔서 7일째 되는 날에 쉬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6일 동안의 흐트러진 몸과 마음을 원래대로 돌려놓는다는 의미입니다. 6일의 노동 때문에 피폐해진 채로 살지 말라는 것이고, 삶이 이끄는 대로 끌려가지 말라는 것이며, 쉬면서 하나님의 눈으로 다시금 자신의 인생을 바라보고, 다시금 주어지는 6일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하나님께 물으라는 것입니다.

 

또 다른 의미는요? 회복입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 그리고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38년 병자를 고쳤습니다. 안식일을 어겼다고 유대인들이 난리가 났죠? 고치는 노동을 했다고 안식일을 어겼다는 것입니다. 즉 이들이 정한 규정에 위반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만든 규정은?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하신 것에다가 일하지 않는 정도와 일함의 정도를 집어 넣어 39가지의 규정을 만들었고, 여기에다 391가지의 세부 사항들로 채웠습니다. 그래서 등잔을 옳기는 것도, 아기를 들어올리는 것도, 두 글자 이상 글씨를 쓰는 것도, 걸었을 때 땀이 나는 지점에다 회당을 짓는 것도 규정했습니다. ‘안식일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의 문제가 ‘안식일을 어떻게 어기지 않을 것인가?’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니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는 것이 옳습니까?”라는 항의는, 예수님은 율법을 어긴 사람이 되었고, 죄인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은요? 엄밀히 말하면 일하지 않는 날이 아니라 일하는 날입니다. 왜냐? 회복의 일을 하는 날이기에 그습니다. 나의 회복의 날이고, 가정의 회복의 날이고, 이웃의 회복을 위한 날이고, 다시금 하나님의 백성으로 모두가 세워지는 날이 안식일입니다.

 

또한 안식일은요? 주인을 고백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이요?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말씀입니다. 주인이신 주님께 속한 날, 주인 맘대로, 주인의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날이 바로 안식일입니다. 이 안식일에 일을 했다고 난리를 치니까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셨어요? 그 두 번째가 일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일을 하시니 자신도 일한다고”하신 이 의미는 먼저 하나님의 안식을 깨뜨린 자가 누구인지에서 지작됩니다. 누구예요? 아담과 하와죠? 이들로 인하여 하나님은 진정한 안식이 주어지는 날까지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일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 일하심의 연장선이 바로 때가 차매 친히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그러니 당당하게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라고, 자신을 공경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모르니까 안식일을 고의적으로 범했다고, 자신을 하나님과 동일시한다고 죽이려고 했습니다.

 

여러분? 38년동안 누워있된 병자가요? 그날이 안식일이니까 ‘아, 오늘은 안식일이네? 거룩하게 지켜야지?’라고 했겠어요? 그의 눈과 마음은요? 물이 동하는 그 부분에 멈춰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간다”라고 했습니다. 심지어 병이 나은 다음, ‘안식일 지난 내일 일어나야지?’라고 했겠어요? 아니예요? 이날은 안식일 맞고, 안식일을 범한 이들의 규정에 비추면 범한 것은 사실입니다. 말씀을 준비하다가 옛날 일이 생각이 났습니다. 제 모교가 충현교회인데, 저는 유년부부터 출석했기에 안식일에 관한 이야기를 엄청나게 들었습니다. 김창인 목사님이요? 주일에 토큰도 못사게 했고, 주일에 식사를 하려고 근처에 있는 식당에 간다? 꿈도 못 꾸었습니다. 언젠가요? 사랑의교회에 손봉호 교수님이 주일예배에 간증과 말씀을 전한 적이 있었던 날입니다. 그때 행정수석 목사님이? 충현교회 출신의 남창우 목사님이었는데, 옥한흠 목사님이? 점심시간에 식사 대접하라고 하신 말씀에 엄청 부담을 느낀 남목사님이 “목사님, 오늘 주일이고, 너무나 바쁜 날인데, 언제 밥을 해서 대접합니까?”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에 “무슨 말이야? 밖에 있는 식당으로 모시고 가서 대접해드려?”라고 했답니다. 엄청난 부담을 안고 교회 근처, 일식당에서 식사를 대접하였데요?

 

손 교수님은 식사를 잘하는데, 자신은 음식이 자꾸 목에 걸려 먹을 수가 없었답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교회 장로님들을 입구에서 만났데요? 이구동성으로 식사 맛있게 하셨냐고 물었을 때 얼굴이 붉어져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계율을 초월한 하나님의 은혜가 비난과 시비가 될까봐 두려움이 찾아온 것이죠? 이들이 따진 것이 16과 17절입니다.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핍박하였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비약적인 답을 하신 것입니다. 이 답이 이해될 리가 없죠? 왜냐?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모르기에, 이 말씀의 의도를 모르기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엿새 동안, 세상을 창조하셨고, 이레 되는 날에 쉬셨습니다. 쉬었다는 것은요? 멈춘 것이 아니라 이레 되는 날도 하나님의 창조 역사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엿새 동안 창조하시고, 즉 완성하시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창조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이지, 결코 정지가 아니라는 것,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과 구원의 역사가 더 강하게 더 완전하게 이루어지는 날, 즉 행동의 제약이 아니라 새로운 힘을 얻고 회복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높은 차원의 말씀인 것입니다.

 

이것을 몰랐던 유대인들이 화가 많이 났습니다? 자신들의 저의가 노출되었어요?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심에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함”이 된 것이고, “예수님이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고,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았다고”인 것입니다. 무엇이에요? 비뚤어진 마음으로 비뚤어지게 들었습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은 사실 아닙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이잖아요? 천지 창조에 같이 계셨고 같이 하셨잖아요? 이 사실을 요 1장 1~3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무엇이에요? 태초에요? 말씀, 로고스인 당신, 바로 예수님,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어졌고, 지은 것이 그가 없이는 된 것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아버지와 아들로서 동등해서 동등한 것이고, 시비가 붙을 이유가 없어요? 그래서 나도 일하심은 예수님을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고, 이것을 믿게 함으로 영생을 얻게 하는,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는, 아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것,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듣게 함으로, 살아나게 하는 것이고,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던 것, 이것을 말합니다. 아멘.

 

마지막은 더하신 말씀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이 고침을 받은 38년된 자에게 이 말씀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14절,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이스라엘 사람들은요? 고통과 질병을 모두 죄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이 의미로 볼 때, 어쩌면 이 환자에게 있는 어떤 큰 죄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예수님이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라고 하신 것이고, “더 나쁜 것이 네 위에 임하지 않게 죄를 끊어라”라는 말씀입니다. 핵심은 자신의 희생으로 우리를 구속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 자신의 몸에 우리의 죄들을 품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을 때, 예수님은 죄에 대하여 죽으셨고, 우리도 그분 안에서 죽었다는 것, 그러기에 마땅히 죄로부터 끊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영광에 사는 것, 그리스도만 바라보며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 담긴 말씀의 의미들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구원은요? 우리의 공로로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결점으로 파괴될 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대가 없이 의롭게 되었습니다. 38년 병자가 오랫동안 “나 여기에 있다”라고 신호를 보냈나요? 아니에요?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담이 생겨, 죽음의 자리, 마음의 큰 비통 아래 사는 불쌍한 우리를 살리려고, 찾아오셨습니다. 왜요? 계속해서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살게 하시려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이 사실을 롬 8장 1~2절은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들어보세요?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다”다고, 즉 성령의 법, 은혜의 법이 죄와 사망의 율법에서 우리를 해방해서 자유롭게 승리의 삶을 살게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왜요? 참된 안식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이 날은 안식일이니”는 ‘치유의 연못’, “베데스다”, “긍휼의 집”, “은혜의 집”, “베데스다”,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할 때”라는 미신이 아니라, 물보다, 하나님의 은혜에 속한 구원이고, 죄인들에게 베풀어지는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와 선하심이고, 여기에 예수님, 고친 이는 동해지는 물이 아닌 예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보혈의 샘, 모든 죄로부터 씻음 받고 깨끗하게 되는 샘, 모든 질병을 치유하시는 샘,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 이것이 “이 날은 안식일이니”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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