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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계속해서 우리가 사도행전을 나누고 있는데, 사도행전은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이 사 복음서 다음에 등장하는 성경 아닙니까? 아시다시피 사복음서는 예수님의 생애와 그리고 태어나서부터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기까지의 과정을 가능한 한 충실하게 기록하고 있는 성경이 사도행전입니다. 그리고 이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승천 이후 사도들이 성령의 힘을 받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면서, 교회가 세워나가는 과정이 기록되어 있는 성경인데, 그래서 ‘사도들의 행적이 담겨 있다’고 해서 사도행전이라 하는 것 아닙니까? 무엇보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마태 16:18절의 응답입니다. 그 말씀이 바로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는 이 주님의 말씀의 응답이 사도행전아닙니까?, 이 사도행전 안에는 교회의 주인 되신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든든하게 세워져야 하는 이 교회를 말하고 있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인 행 1:8절인,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권능이 임하게 되면,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는 이 말씀의 실제 성취가 사도행전입니다.

 

오늘은 이 사도행전 9장 31절, 이 한 말씀만을 나누게 되는데, 비록 짧은 구절이지만 이 짧은 구절 안에는 그동안 초대교회에 있었던 사건들을 총 집약해서 정리해 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이상적이고 건강한 교회가 무엇인지를 말씀하고 있는 것 또한 오늘 본문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오순절 성령감림은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10일 만에 성령이 강림한 것 아닙니까? 이것이 바로 오순절 사건이에요? 성령이 강림하심으로 이 땅에 교회가 탄생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회심하여 변화를 받아 믿는 사람들이 날마다 증가하였던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서로 물건을 통용하고, 서로 격려하고 나누는 건강한 공동체가 이루어 졌는데, 그러다보니 세상으로부터 칭송을 받았고, 베드로 또한 성령을 받아 담대하게 전도하였습니다. 그가 예수를 전하는 곳마다 앉은뱅이가 일어났고 3천명, 5천 명씩 회심하는 역사가 일어났던 것 아닙니까? 교회로 몰려오는 이들을 돌보고 양육할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하여, 일곱 집사를 선출하였고, 그로 말미암아 교회가 부흥하였지만 교회는 외부로부터 핍박을 받아 결국 스데반이 순교하게 되는 일이 생겼습니다. 이 핍박의 시작이 결국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각각 여러 곳으로 흩어지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비록 흩어졌어도 그곳에서 복음을 넓게 확장되게 하는 역사들을 만들었다는 사실 아닙니까?

 

뿐만 아니라 핍박의 주역이었던 사울이 회심하여 예수님의 제자들과 합류하게 됨으로, 복음전파의 흐름이 마치 고여 있던 댐의 물이 터짐과 같이 거침없고 거세게 흘러, 격렬하게 퍼져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모습의 표현이 바로 오늘 본문인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 지니라”입니다. 이 짧은 구절이지만 이 구절 안에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이 있어요. 그것이 무엇인지 오늘 같이 나누면서 우리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우리 다시 한 번 한목소리로 31절 본문을 읽어봅니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행 9:31)

 

그런데 보세요? 오늘 본문은 먼저 ‘그리하여’라는 접속사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그리하여’라는 접속사는 무엇에 대한 접속사일까요? 바로 31절에 나오는 여러 교회, 그러니까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의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를 덧붙이는 접속사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유다와 사마리아에까지 확산되었는가에 대한 그 모든 내용들을 요약하고 있는 접속사인데, 무엇보다도 오순절 성령이 역사하여 초대교회가 이루어져서 이 초대교회에 역사한 이 복음이, 유대와 사마리아와 갈릴리 지방까지 확산되는 데 있어 그냥이 아니라, 여러 가지 고통스러운 위기와 고난과 환란이 있었다는 것을 포함하고 있는 접속사입니다. 그리고 이 초대교회가 바로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았고, 사도들에 의해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었으며, 사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고, 사도들에 의해 말씀을 배울 수 있었다는 접속사이기도 합니다.

 

아시다시피 건물도 없었고, 교파도 없었던 이 초대교회가 이러한 본질적인 요소 때문에 비록 유대인에게서 시작이 되었지만, 유대인에게 제한될 수 없었고,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 되었어도 예루살렘에 제한되지 않았던 것 아닙니까? 왜? 그럴까요? 그것은 예루살렘의 교회도 아니고, 유대의 교회도 아니며, 갈릴리의 교회도 아니고, 사마리아의 교회도 아닌, 진정한 그리스도를 위한 교회요, 그리스도에게 속한 교회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러한 뜻이 담긴 교회에 대해 오늘 본문은 교회의 특징과 본질을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의 첫째가 바로 평안하여입니다. 여러분, 평안이란 평화와 같은 의미입니다. 마음의 갈등과 불안과 비극과 절망이 없는 상태를 가리키는 단어이고, 삶의 자족이 넘치며 기쁨이 충만한 상태를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가 영어로는 [Peace]이고, 히브리어로는 [샬롬]이며, 그리고 헬라어로는 [에이레네]입니다. 이 모두 다 영혼의 평화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요한 삼서 2절의 말씀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 2절) 무슨 말입니까? 곧 영혼의 평안이 넘치기를 바라는 간구입니다. 세상에는 진정한 평화가 없지만 마음속에는 진정한 평안으로 채워진다는 의미라는 것이에요. 왜냐하면 평안은 자체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유입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요 14:27절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왜? 입니까? 바로 예수님만이 진정한 평강의 왕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지미 핸드릭스라고 록 음악의 기타 연주자가 있습니다. 음악을 한느 사람이라면 이 사람이 누구인지 잘 압니다. 사실 그는 마약 중독자이었고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한 자입니다. 그가 요, 무대 위에서나 밖에서 난폭하게 행동하며 문란한 삶을 살았는데, 1970년, 어느 공연의 마지막에서 그는 자기 기타를 부숴버립니다. 로버트 맥기와 도날드 사포가 쓴 [평안을 찾아서]라는 글을 보면, 어느 날, 지미 핸드릭스가 공연을 끝내면서 관중들의 열광하던 박수갈채를 멈추게 하면서 무릎을 꿇은 자세로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있게 됩니다. 이러한 그의 행동에 관중들은 고요해졌습니다. 그가 이 고요한 정적을 깨며 관중들을 향해 이 말을 했답니다. “여기에 누구 참된 평안을 아는 사람이 있으면 저는 무대 뒤에서 만나고 싶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이 갑작스런 초청에 응한 사람이 없었고, 며칠 후, 약물과용으로 죽고 말았습니다.

 

무엇이에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만이 참된 평안을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진정한 평안이 예수그리스도에게서만 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뉴스를 보고 사람들에게 듣게 되며, 우리가 때론 경험하는 것들은 이 시대가 점점 평안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 아닙니까? 조국 소식들을 들을 때 더욱더 평안을 그리워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물질은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였지만, 마음에는 평안하지가 않다고들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교회와 뗄 수 없는 단어가 바로 평안이잖아요? 그런데 평안을 잃어버린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아는 교회의 소식들을 들었을 때 그 교회가 아직도 시끄럽다는 소식을 접하면 먼저 찾아오는 것이 무엇이에요? 안타까움이 아닙니까? 왜? 싸웁니까? 그 내용은 거짓 때문이고, 그 내용은 돈 때문이며, 질투 때문에, 그리고 용서하지 않아서 싸우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핵심은 평안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싸우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부터 지금까지 법이라는 빌미로 싸우는 것이잖아요? 솔직히 이들 모두는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성령 받은 사람들인데 싸우는 것입니다.

 

하나 더 해봅니다. 여러분이 보실 때 이 미국이 평안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볼 때에 더욱더 평안하지 않는 곳이 바로 이 미국입니다. 솔직히 이 미국은요, 이미 가라앉고 있는 타이타닉 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 위에 떠 있지만 가라앉고 있는 타이타닉입니다. 가라앉는 속도가 늦어지느냐, 빨라지느냐는 결정이 있을 뿐, 이미 이 배는 가라앉고 있다는 것이 어쩌면 솔직한 이 미국의 현실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저는 이 가라앉는 것을 늦춘 일이 바로 이번 대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트럼프가 좋아서 뽑은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힐러리가 어떻다? 해서 떨어진 것도 아닙니다. 각 당의 아젠다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그래도 얼마나 더 가까운가? 라는 결정을 이번 미국 대선에서 선택하였다고 저는 봅니다. 그렇게 보았을 때 이 미국에 있는 교회들의 역할은 가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교회되어야 하고, 세상의 방법과 사조와 생각이 교회 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면서 비록 세상 속에 있지만 세상을 이기는 교회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였을 때, 때론 폭풍이 와도 교회는 빨리 가는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든든히 서가고입니다. 이 의미는 교회가 결코 ‘완성되었다, 완벽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동안 가장 핍박에 앞장 서 있던 사울이 회심하고, 주의 제자가 됨으로 이제는 핍박자가 없어졌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역사적으로 볼 때, 당시 로마황제인 칼리굴라가 자신의 동상을 예루살렘 성전에 세우려고 혈안이 되니까, 유대인들이 목숨을 걸고 반대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지만 이 황제가 암살당함으로 핍박이 현저하게 감소하게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본문의 표현대로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갔다”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든든히 서간다’는 단어 안에는 오늘 본문의 ‘진행 한다’라는 단어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여러분, 아시다시피 ‘진행 한다’는 의미는 어떤 목표를 향해 ‘움직인다, 걸어간다, 함께 간다’라는 의미 아닙니까? 그러니까 이것은 어떤 한 목표를 향하여 전진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이 목표가 무엇일까요? 바로 ‘주님의 지상명령’인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네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목표입니다. 그리고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천하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목표이고,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목표입니다.

 

이 목표를 향하여 ‘진행하라’는 것이고, 교회는 마땅히 해야 하는 사명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당연하게 ‘수가 더 많아지니라’라는 결론으로 남게 된다는 것, 단순히 ‘더 해진다’를 뛰어 넘어 ‘재생산’한다는 것이 됩니다. 여러분, ‘재생산’이 무엇일까요? 재생산은 바로 나를 통하여 구원받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나를 통하여 구원받은 사람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게 하는 일, 이 일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은혜의 주인공이 바로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목표를 따라갈 수 있을까요? 두 가지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 첫째가 주를 경외함으로입니다. 여러분, 이 말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주님이 주님 되게 하심이며, 하나님을 최고 가치로 인정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 단어는 왕을 향한 공포심이 아닙니다. 두려움 없이, 바로 사랑하는 아버지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잘 아는 성경말씀, 히 4:16절,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4-16)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담대히 나갑니까? 기도로 말씀 앞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성령의 위로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성령의 힘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의 힘으로 하니까 교회가 평안해지고 교회가 성장하여 사람들이 와서 붙는다는 말이 이 말입니다. 붙는 다는 말은 붙어 있다는 말 또한 포함합니다. 이 은혜가 우리 사랑의 교회에 있기를 소망해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가정이 이런 집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언급하고 있는 ‘위로’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파라클레시스’인데, 이 의미가 바로 ‘격려’, ‘권면’을 의미합니다. 무엇에 대한 격려입니까? ‘성령의 용기 북돋음’입니다. 이것을 통해 모든 교회들이 부흥했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소극적인 의미로 위로이지만, 적극적인 의미가 바로 ‘용기를 북돋음’이라는 말이에요. 어떻게 가능합니까? 성령께서 개인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어루만져 힘을 주시기 때문에 가능하고, 우리 생애 전반에 걸쳐 우리가 이 세상에서의 삶을 마무리 할 때까지 도와주시며 격려하시며 보듬어 주심으로 힘들고 어려워 낙심할 때도 강하게 하신다는 이 사실을 믿을 때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은혜가 여러분의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결국 교회가 건강하게 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가 건강하려면 네 가지 조건이 있어야 합니다. 먼저 일치된 마음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요구에요. 엡 4:4-6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엡 4:4-7) 무엇이에요? 한마음을 유지하면 그에 성령의 위로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성령의 임재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요, 성령님이 보내시는 것입니다. 교회성장도 사람이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성령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래서 교회에는 반드시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성도들에게 회심의 역사가 일어나고 치유의 역사와 감동의 역사와 자신을 부수고 깨는 역사가 일어나도록 하는 것이 바로 성령님이 하시는 일이기에 이런 역사가 우리 교회에도 가득하기를 소망해봅니다.

 

세 번째는 제자훈련입니다. 이 이야기는 교회는 반드시 지도자들이 탄생되고 양육되며, 성장하고 훈련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이 지도자들이 세상으로 내 보내어져야 하기 때문에 그래요. 여러분이 왜? 제자훈련을 받았습니까? 바로 이 목적 때문입니다. 이 작은 교회에 무슨 꿈이 있겠느냐 하겠지만 저는 우리 교회가 끊임없이 갱신하며 인재를 양육하는 교회로, 그래서 이 사역자들이 세상에 내 보내지는 교회가 되기를 꿈꿉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살아있는 예배입니다. “주를 경외하였다”는 이 의미의 또 다른 의미는 성도들이 살아있는 예배를 하나님께 드렸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교회가 가져야 할 가장 큰 사명입니다. 왜냐하면 예배가 살면 모든 것이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오늘 교회들의 문제는 이 예배를 경시하는 데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예배는 축제입니다. 무엇에 대한 축제일까요? 여러분에게 행하신 그 사건들에 대한 축제이고, 그것들이 예배 때 재생되어 하나님을 더욱 높이는 자리로 나가는 것 아닙니까? 이것이 바로 참된 교회의 모습이고, 이렇게 예배할 때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졌다”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2016년도 점점 역사의 그늘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참된 교회를 찾고 계십니다. 우리가 참된 교회를 지향하기를 원합니다. 우리 사랑의교회가 참된 교회의 든든한 위치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함으로 하나님을 더욱 높이고 귀하게 쓰임 받는 여러분과 우리 사랑의교회가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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