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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을 받으면”

(행 8:14-25)

 

여러분, 사도행전의 핵심적인 구절을 말하라고 한다면 바로 행 1:8절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이 행 1:8절이 사도행전의 역사와 사도행전의 총 28장까지의 결정을 하는데,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예루살렘의 한 다락방에 임한 오순절 성령으로 말미암아, 제자들이 예수그리스도를 선포하기 시작했고 그럼으로 예루살렘에 복음이 편만 되어 120명, 그리고 3천명, 5천명,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부흥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스데반의 순교로 교회는 핍박이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주의 백성들이 흩어졌는데,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어 온 유대와 사마리아, 그리고 나중에는 로마의 까지 이르는 복음의 역사가 만들어진 것 아닙니까? 이 복음의 역사는 지금도 수많은 선교사님들과 주의 백성들에 의해 진행되고 있고, 그래서 하용조 목사님은 사도행전이 28장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써지고 있다고 하시면서 Acts 29라는 슬러건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이 사도행전이, 1장에서 7장까지는 예루살렘의 내용을 다루고 있고, 8장에서 12장까지는 온 유다와 사마리아의 내용을, 그리고 13장에서 마지막 28장까지는 땅 끝까지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에서 잊어서는 안 되는 핵심적인 것은 성령이 역사하면 원하지 않는 곳도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유대인중심과 예루살렘중심을 초월하여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지난주에 우리는 8장의 앞부분을 다루었습니다. 이 8장부터 등장되는 인물이 사울이고 사울의 등장은 예루살렘에서의 탈피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8장부터 사마리아에서의 역사가 시작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히브리파 유대인과 헬라파 유대인들과 다툼 때문에 일곱 집사를 세운 것부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곱 집사 인 스데반이 순교하지 않습니까? 그가 순교한 후 교회는 큰 핍박이 왔고, 이 핍박으로 인하여 주의 제자들이 흩어졌습니다. 흩어졌지만 거하는 곳곳에서 낙망과 좌절이 아니라 주의 복음을 전하였는데, 빌립은 사마리아성에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가 행 1:8의 말씀을 실행하기 위해 사마리아를 찾아갔는지는 모르지만, 빌립이 전한 복음의 말씀을사마리아 성의 사람들은 주목하여 들었고, 그 가운데 표적과 전한 복음으로 인하여 치유의 역사, 중풍 병자와 앉은뱅이가 일어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성이 큰 기쁨으로 가득하였습니다. 이것을 마술사인 시몬이 보고 놀랐던 것이고 사마리아에 일어난 이 소식이 예루살렘교회에 전해져 이 전해진 이야기의 계속이 오늘 본문입니다. 크게 세 가지만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로 사마리아도입니다. 14절입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행 8:14) 무슨 이야기에요? 사마리아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것을 사도들이 들었다는 이야기로 이것은 흩어진 주의 백성들에 의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뛰어 넘는 일, 즉 사마리아를 품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솔직히 유대인들의 기본적인 생각은요, 사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이 안 가는 것이 좋다는 생각입니다. 그들의 바탕에는 하나님은 이 사마리아를 버렸다고 보았습니다. 이 사마리아를 ‘나블루스, 또한 쉬켐’이라고 불렀는데, 유대인들은 쉬켐(세겜)으로 불렀고, 아랍인들은‘ 나블루스’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지금 이곳은 그리심 산과 에발 산 사이에 위치하는 지금의 팔레스타인의 자치구입니다. 아직도 이스라엘과 크고 작은 분쟁이 계속되는 곳이 이곳인데, 이 ‘세겜’은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이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 아래 머물렀던 곳입니다. 그리고 야곱도 밧단아람에서 가나안으로 돌아가는 중에 이르러 장막을 쳤던 곳이고, 여호수아도 에브라임 지파와 단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게 기업으로 준 땅이 이곳입니다. 바로 축복의 산 ‘그리심’과 저주의 산 ‘에발산’을 나누는 경계선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훗날 열왕의 시대에 여로보암이 세겜을 건축하여 북 왕조의 기초를 삼았던 곳입니다.

 

그러면 왜? 세겜이 사마리아가 된 것일까요? 사마리아를 히브리 음으로 표현하면 ‘쉬므론’입니다. 이렇게 부른 이유는, 북 이스라엘의 오므리 왕이 사마리아 지역을 그 땅 주인 ‘세멜’에게 은화 두 달란트에 주고 산 것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 땅 주인의 이름인 ‘세멜’이고 이 세멜이 ‘쉬므론’으로 불러져 결국 사마리아라는 이름이 나온 것인데,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이곳이 북 이스라엘 아닙니까? 앗수르 왕 살만에셀에 의해서 이 땅의 거민들이 포로가 되고 맙니다. 그러니까 앗수르로 잡혀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북 이스라엘 백성들이 빠진 이곳에 앗수르 사람들이 이주해 와서 살게 되었는데 살면서 북 이스라엘 백성들과 혼합되기 시작하였고, 앗수르가 멸망한 후에도 바벨론의 사람들도 이곳에 거주함으로 결국 사마리아는 이방인의 장소로 전락되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알렉산더 대왕도 이곳에 헬라 문화를 정착시킨다는 취지 아래 혼혈정책을 펴나가면서, 사마리아는 이방인의 도시, 혈통이 섞인 땅, 우상숭배가 행해지는 곳, 유대인들의 눈에 미운 물건의 장소가 되고 말았는데, 이런 사마리아에 복음이 들어간 것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에게는 어떤 곳이든 버려지는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생각하는 저주의 땅에 잃어버렸던 당신의 백성들을 찾으시는 것이고, 그동안의 흩어졌던 잘못된 뿌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뿌리에 접붙임 되게 하신 것인데, 우리 또한 마땅히 저주 받은 인생이며 망할 수밖에 없는 자였지만 하나님이 창세전에 예정하시고 택정하셔서 이렇게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나와 예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두 번째로 살아있는 반응입니다. 살아있는 반응이란 즉각적인 응답입니다. 빌립이 사마리아에서 전한 복음으로 성령께서 근본을 뒤 흔든 역사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 소식이 예루살렘 교회에 들렸고 이에 대한 즉각적인 응답이 바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인데, 그것도 사도와 제자들 가운데 당시의 최고의 지도자급이 파송되었습니다. 이것은 살아있는 반응입니다. 여러분, 교회는 살아있는 반응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비만증을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비만증은 전통에 얽매이고, 법에 얽매여 법과 전통을 핑계로 주의 일을 더디 하는 모순을 만듭니다. 특히 성령의 일이라 하면서 의논만 하다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반응이 이 반응 아닙니까? 주님이 마음을 만지면 살아있는 반응은 순종입니다. 제가요 20대 후반 쯤 인 것 같습니다. 복음성가 가수로 사역할 때의 일입니다. 필리핀과 싱가포르에 찬양집회를 인도하러 갔었습니다. 필리핀에서 사역을 잘 마치고 그날 밤 비행기를 타고 싱가포르로 달려갔습니다. 그 다음 날, 싱가포르 한인교회에서 하나님의 많은 은혜가 부어진 집회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려는데, 그 교회 장로님이 차 한잔하자고 당신의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이때 같이 동행한 어느 젊은 선교사 부부가 있었어요. 그와 함께 차를 마시고 있는데, 그분이 이 말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앞에 솔직히 고백하나 할 것이 있습니다. 들어주시겠습니까? 저는 이제 요르단으로 떠나려는 선교사입니다. 솔직히 저는 오늘 집회 전까지 요르단을 가는 것 그 자체를 포기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하나님은 저를 부르셨고 담대히 요르단을 떠나게 됩니다’라고 하면서 ‘저 멀리 뵈는 나의 시온성’이라는 찬양을 부르는 것입니다. “저 멀리 뵈는 나의 시온성 오 거룩한 곳 아버지 집 내 사모하는 집에 가고자 한밤을 새웠네 저 망망한 바다 위에 이 몸이 상할지라도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 주 복음 전하라” 2절은 같이 불렀습니다. “아득한 나의 갈길 다가고 저 동산에서 편히 쉴 때 내 고생하는 모든 일들을 주께서 아시리 빈 들이나 사막에서 이 몸이 곤할 지라도 오 내 주 예수 날 사랑하사 날 지켜 주시리”

 

무엇이에요? 성령이 임하니까 주님께 맡기는 것이고 살아있는 행동을 보인 것입니다. 가는 길이 비합리적인 것 같아도, 주어진 상황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따라 가는 것이 살아있는 행동이고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는 행동을 하지 않습니까? 요르단에서의 그의 행적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그 이후로 저는 모르지만 그분은 요르단이라는 이 산지를 내게 달라고 하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갔고 살아있는 행동을 보였습니다. 어찌 이분뿐이겠습니까? 많은 분들이 세계를 품으며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데, 어느 분은 중국의 지하교회 지도자들과 교인들을 찾아가 세례를 베풀고 교육을 하면서 빌립이 한 것처럼 그렇게 합니다. 왜냐하면 살아있는 행동은 바로 하나님의 순종의 적극개입이고 하나님의 기뻐하심의 즉각적인 반응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마리아에서 사도들이 한 일이 15절입니다. 15절을 볼까요? “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행 8:15)

 

세 번째로 성령 세례입니다. 사도들의 최초의 일이 성령 받기를 위한 기도였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16절,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더라”(행 8:16) 무슨 말이에요? 성령 세례가 없고 물세례만 받았다는 이유입니다. 여러분, 세례에는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받는 물세례가 있고, 다른 하나는 성령 세례가 있습니다. 보통 우리는 물세례를 받으면서 구원을 받았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빌립이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 ‘유앙게리온’을 전파 즉 ‘케루소’ 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더러운 귀신이 떠나갔고, 앉은뱅이가 일어났으며, 중풍 병자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성에 큰 기쁨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빌립이 물세례를 베풀었는데,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준 것입니다. 이 사실에 대해 성경은 그런데 이들이 성령으로 세례 받은 일이 없다고 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집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 성령의 세례와 예수의 이름으로 받는 물세례와의 차이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는 구원의 세례이고, 이것은 위치의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세상에서 하늘로 옮겨진 것이고, 마귀의 자리에서 하나님께로 옮겨진 것이며 죄인에서 의인으로 바뀐 것을 말합니다.

 

성령의 세례는요, 성령의 역사로 구원을 받은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구원의 순간에 하나님의 영이 믿는 자들을 예수님과 연합시킨 것이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할 때 성령께서 믿는 자들 안으로 영구적인 내재를 하신 것입니다. 성령세례가 몇 안 되는 사람들을 위한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 고전 12:12-13절에서 말하듯이 ‘우리 모두가 성령세례를 받았다’가 되는 것이고 ‘모든 믿는 자들이 구원을 의미하는 세례를 받았다’가 되데, 이것은 그의 죽으심과 합하게 되면서 그와 함께 장사가 되게 한 은혜, 그러기에 한 영을 마신 것이고, 성령의 내재하심으로 예수님의 몸에 속한 것이며,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을 실현하는 역사, 갈 2:20절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아멘! 이 성령의 세례를 베드로와 요한이 그들에게 안수하니 그들에게 임하여 성령의 세례를 받았다고 17절이 말합니다.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행 8:17) 저는 시간 때문에 안수의 특징과 능력을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일을 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성령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고, 이러한 방법을 결정하신 분도 하나님이라는 사실이에요? 성령님은 누구입니까? 영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 아닙니까? 따라서 성령의 세례는 바로 영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한 것입니다. 영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가득 채우는 것인데, 하나님이 이 사마리아 사람들이 이것을 소유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시몬이라는 마술사가 자신도 이 능력을 갖고 싶은 것 아닙니까? 마지막 네 번째로 은혜는 인위적이지 않습니다. 18-19절입니다.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행 8:18-19)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성령의 세례를 기술로 본 시몬이고 돈으로 사려는 시몬이라는 말입니다. 시몬은 마술을 행하는 점쟁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이것을 사람을 끌 수 있는 기술로 보았고, 이 능력을 사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인위적인 것, 즉 기술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성령을 상품화하고 물질화하였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복음을 능력 있게 전하는데 있는 것 아닙니까? 선교가 따라오게 하고, 전도가 따라오게 하며 구제를 통해 가난한 자들을 돕도록 하게 합니다. 시몬의 행동이 바로 성직매매입니다. 영어로 SIMONY라고 합니다. 즉 시몬이라는 단어에 Y가 붙어 성직매매라는 SIMONY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느 교계신문에서 이런 내용을 보았습니다. 어느 교회에서 담임목사를 청빙하는 과정에서 어느 목사가 지원을 하였는데 그 지원 대가로 자신이 1억을 내 놓으니 자신을 뽑아달라는 기사였습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자리가 어떻게 상품화되고 매매할 수 있습니까? 이 시몬에게 사도들이 20-21절의 이야기를 합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행 8:20-21) 돈과 함께 망한다는 말이고 하나님의 일은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는 말, 하나님의 은혜는 인위적이지 않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겸손한 마음으로 사모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 말을 들은 시몬이 22-24절의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않게 하소서 하니라”(행 8:22-24) 무엇이에요? 회개하고 주님께 기도하고 돌아오면 용서해 주신다는 말씀을 자신에게 임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요청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회개는 동기가 선해지게 합니다. 성령께서 마음에 역사하시기 때문에 선해지는데, 마음의 동기를 바꾸면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실지 모른다는 말을 재앙을 받지 않게만 해 달라는 부탁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성경은 그를 위해 기도해줬다는 말도, 용서해줬다는 말도, 회개했다는 말도 없습니다. 다만 베드로와 요한이 다른 사마리아 많은 지방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다는 것으로 본문은 끝맺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동기이고 회개입니다. 이것을 놓치지 않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 이후의 시몬에 대해 이야기가 없습니다. 다만 전해지는 전설이 있는데, 이레니우스는 시몬이 베드로에게 혼이 난 후 테라라는 곳에서 헬레나라는 창녀를 돈을 주고 사서, “이 여자가 만물의 어머니고 천사이며 천사장인데, 이 헬레나를 통해 모든 것이 만들어졌다”라는 헛소리를 하였다고 하고 있습니다. 제롬도 자신이 번역한 ‘라틴 벌게이트’라는 라틴어 성경에 “내가 하나님의 말씀이고 내가 보혜사며, 전능자이고 완전한 하나님이다”라는 헛소리를 하는 시몬이라고 거론했고, 저스틴 마터도 로마 클로디우스 황제 때 시몬이 로마에서 마술적인 능력을 발휘하여 신으로 섬김을 받아 디베라 강가에다 자신의 동상에다 “거룩한 신, 시몬에게”라는 글귀를 새겼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클레멘타인도 베드로와 시몬이 계속 대적했는데, 시몬이 로마 황제를 비롯하여 자신을 따르는 사람이 많아지니까 뭔가를 보여 주려고 공중 부양하며 하나님을 향해 간다고 하니까 그것을 본 베드로가 밑에서 “주여, 떨어뜨리시옵소서!”라 기도했더니 시몬이 바로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고 하였습니다. 마음의 동기와 생각이 잘못 되어 불쌍한 인생을 마친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왜? 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는 인위적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동기가 순수해야 은혜가 채워지는 것입니다. 동기가 순수하지 않아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고 이용하면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힘든 길을 가게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항상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마리아성의 사람들은 하나님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강한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성령세례가 없다는 사실을 아신 하나님이 베드로와 요한을 그곳으로 급파시켰던 것이고, 그들의 안수를 통해 성령의 세례를 받게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그들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가득하기를 원하신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이것은 인위적인 데서는 나오지 않습니다. 성령을 받는 것은 인위적이지 않습니다. 위로부터 공급되는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가득하게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게 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사람일까요? 성령을 받은 사람이라면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 정상입니다. 일터에서나 가정에서나 어디에서든지 주의 이름으로 높이고 주의 복음을 전하는 자리에 서야 하는 것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상황을 따지고 미루지 않습니다. 성령을 받고자 하는 마음의 동기가 놓치지 않고 이번 한주간도 주님의 뜻을 이루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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