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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과 아나니아”

(행 9:10-22)

 

여러분도 뉴스를 통해 들었고 보았겠지만, 지금 현재 대한민국은 최아무개 때문에 난리가 아닙니다. 정권 비선 실세인데다가, 이 최씨가 현 대통령의 각종 연설문을 비롯하여 정부요직의 전반에 관여한 사실이 들어나, 현 대통령을 ‘하야’시키려는 움직임 등등과 청와대 내각의 총사퇴라는 혼란에 혼란들은 한마디로 핵폭탄 이상입니다. 이 가운데 한 점의 의혹이 없이 하려는 목소리도 들리고 있지만 과연 법원 판사들이나, 검찰의 검사들이 제대로 수사할 지도 의문이 있기도 합니다. 이 사태를 바라보면서 저를 비롯하여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이 사실 때문에 패배의식으로 가득한 주간을 보냈을 것이고 ‘이건 정말 나라도 아니다’는 생각은 많은 혼란을 가져와 누구를 탓하기 이전에 나 자신부터 회개하는 자리, 기도하여야겠다는 생각이 무척 들었던 한 주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사실 대한민국 현 상황은 이 나라 수준이전에, 아니 국민 수준이전에, 그리고 교회 수준이전에 아니 내 수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의 한 사람도 너무나도 큰 사건을 경험하고 이로 인해 패배의식과 혼란이 몰려와 좌절 가운데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사건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오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이었고, 무엇보다도 의기양양의 그였지만, 갑자기 하늘로서 강열한 빛에 둘러싸인 것부터, 심지어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라는 음성과 함께 꼬꾸라짐과 시력까지 잃어버려 결국 다른 사람에 의해 이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게 되어 버린 것입니다. 심지어 유다라고 하는 작은 집안에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생각하면서 절망과 혼란을 간직한 채, 기도로 나가는 사울을 보여주고 있고 그 가운데서 하나님이 준비하신 아나니아를 통해 하나님의 격려와, 위로와, 치유함을 받는 이야기가 오늘 본문이며, 그의 입에서 예수를 그리스도라 말함으로 모든 사람들이 충격을 받는 이야기가 오늘의 본문입니다. 이 내용이 담긴 말씀을 나누면서 함께 은혜를 받기 원합니다.

 

첫째로 사울의 회심을 보는 관점입니다. 아시다시피 사울이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체포할 수 있는 증명서를 지참하고, 몇몇 사람들과 함께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예수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인간적으로 볼 때 신학적인 문제가 대두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예수님이 빛으로 나타난 것도 그렇고 다른 이들에게는 들리지 않았다는 것과 유독 바울의 귀에만 들린 이 특별한 경험이 모태로부터 택정하시고 은혜로 부르신 이 은혜를 이해하고 믿지만 예수를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어떻게 설명하겠느냐는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뿐만 아니라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분은 이미 승천하셨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 분인데, 사울을 찾아오셨다는 것에 대한 것 또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어느 누구의 주장대로 누가가 바울의 사도적 권위를 확보하기 위해 만든 창작물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fact는 바울이 기독교를 박해했던 사람이었다는 것과, 다메섹에서의 회심과 그리고 이 아나니아라는 사람에 의해 세례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누가가 아주 세밀하게 적고 있는 이것은 결국 누가가 무엇을 말하려는 의도가 있기에 이렇게 세밀하게 적은 의도가 바로 누가가 바라보는 사울의 회심 관점이고, 그것은 이제 그가 그동안에는 박해자이었지만 이제는 박해를 받는 자가 되었다는 것이며, 무엇보다도 그가 이렇게 예수를 만난 이 일에 대한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이 역사에 직접 참여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이 아나니아라는 사람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은혜로우시다’라는 이 이름의 의미를 가진 아나니아에 대해 성경은 특별한 기록을 별로 내놓고 있지 않지만, 오늘 본문과 사도바울의 간증에서 그에 대한 이야기는 매우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먼저 10절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행 9:10) 다메섹에 이 아나니아라는 주님의 제자가 있는데, 사실 그는 열두 사도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일곱 집사도 아닌 이 다메섹이라는 도시의 한 성도로서 예수님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제자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울을 위해 준비된 사람으로 이 아나니아가 사울에게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치는데, 사도행전 22장 12절에 보면 사도바울이 이 아나니아를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들어보세요? “율법에 따라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행 22:12)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나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도 칭찬을 받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나 주위로부터 칭찬을 받는 일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바라고 원하기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나 주위로부터 칭찬을 받는 이 주인공이 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본문을 묵상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은 대개 출신과 배경을 우선으로 보는 것이 있는데, 대개 ‘어디서 사느냐? 어떤 직분을 가지고 있느냐? 어떤 위치에 서 있느냐’를 따지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또한 이런 경우로 인하여 차별 한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 아나니아는 이런 것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 앞에서 누구냐?’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평범한 시골 성도이지만 하나님이 쓰시는데 결정적인 자기 역할을 잘하였던 자이고, ‘하나님 앞에서’의 삶이 아름다워 예수님을 무척 사랑함은 언제나 기도의 자리로 나가 하나님을 만나는 모습이 가득하였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보듯이, 주님과의 대화는 너무나도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충만한 모습은 말씀을 준비하면서 참으로 부럽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원하기는 여러분도 이렇게 주님과 기도로 그리고 대화의 모습으로 자리 매김 되기를 축원 드립니다.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 부분이 바로 이것입니다. 바쁘고 분주한 시대에 살고 있어서 기도도 생략하고, 하나님을 말씀으로 만나는 것도 생략하는 경우가 허다한 우리에게는 결국 참 믿음의 경험을 놓치게 되는 경우가 많이 생깁니다. 참 믿음은 하나님이 어떻게 움직이시고, 어떻게 말씀하시고, 어떻게 운행하시며, 어떻게 기적을 베푸시는 가를 목격하고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득한 신앙생활을 하시는 여러분, 기쁨이 충만한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세 번째로 순종입니다. 순종은 아나니아나 사울 모두에게 볼 수 있습니다. 아나니아는 거리 이름과 누구의 집에 누가 있다는 구체적인 명령을 듣고 순종하는 모습을 보였고, 사울 또한 아나니아라는 자가 와서 안수를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듣고 그를 맞이하는 순종입니다. 아나니아에게서 하나님의 구체적인 명령이 11절인데 보겠습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행 9:11) 무엇이에요? ‘직가’, Straight Street, ‘곧은 길가’로 가서 유다라고 하는 사람의 집에 있는 다소 출신의 사울을 만나라는 구체적 명령을 받게 됩니다. 심지어 확신을 주기 위해 ‘네가 만나야 하는 이 다소 출신 사울도 네가 와서 안수하게 되는 것을 보았다’라는 말씀까지 하고 있습니다. 12절,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행 9:12) 이 명령에 아나니아가 잠시 놀라며 당황하게 되는데, 이어서 13-14절도 봅니다.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행 9:13-14)

 

이 말의 표현은 ‘아니 그 다소사람 사울을 말입니까? 그에 대한 소문을 저도 들었는데, 그가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대제사장의 체포영장을 가지고 우리를 잡으러 왔다고 들었습니다. 그를 만나라고요?’라는 당황함으로 그가 순종을 안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 구체적인 명령에 등장되는 사울 때문에 당황함을 보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의 명령에 순종하여 사울을 찾아가는 아나니아 아닙니까? 또 하나는 이 다소출신의 사울입니다. 그의 순종은 ‘저가 기도하는 중’이라는 문구에서 찾을 수 있고,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아나니아를 보낸 것과 그도 또한 아나니아가 찾아와 자신에게 안수할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신 사실 때문에 순종을 자리로 나가지만 다른 각도로 생각할 때 혼란과 절망이 아나니아를 거부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울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고 아나니아의 안수를 받는 사울을 보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을 생각해보면, 솔직히 주님의 말씀은 단지 몇 마디이었고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라고 하시면서 주님은 스스로를 밝히시며 이제 그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몇 마디 이르시기만 하셨는데, 이 짧은 만남이 사울의 모든 것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안 그래요? 그의 가치관과 신앙관은 물론 그의 인생 전체가 바뀜으로 혼란과 두려움과 심지어 눈까지 보이지 않아 별의별 생각이 다 머리를 스쳐가, 도대체 이전에 내가 배운 것은 무엇이고, 내가 예수를 인정하면 나의 신앙관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등등의 끊임없는 생각이 그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지 않았을까요?

 

이 혼란을 방치할 수 없어 기도하기 시작했고, 그가 무슨 기도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넋 나간 사람처럼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 앞에 잘못했다는 고백의 사흘을 보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상한 심령이 되었고, 폭탄 맞은 마음으로 그동안 하나님을 잘못 알았던 모든 지난날의 편견과 아집을 깨트리는 기도를 하였을 것으로 추론해볼 수 있습니다. 이 기도를 하는 중, 하나님은 아나니아를 보내 그에게 안수함으로 회복의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힘은 육체의 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그의 영혼이 철저하게 부서지고 깨트려 져서 하나님 그 분 앞에서 매달리느냐에 달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이 상황은 바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이고 하나님은 구원의 역사에서 새로운 터닝 포인트를 마련하실 적마다 반드시 기도의 사람들을 세우시고 그 기도의 사람들을 통해서 당신의 놀라운 역사들을 보게 하신다는 사실인데,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쓰임 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무엇에 힘써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귀한 해답이 바로 이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솔직한 것은 바울이 되기 전 사울이나 아나니아나 사실 내놓을 만한 업적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아나니아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그가 기도의 사람이었다는 것으로 하나님은 많이 배운 사람이나 재물이 많은 사람이나 종교적인 명분이 있는 사람들을 사용하시는 것보다 이렇게 기도하는 중에 있는 사람들을 찾으셔서 당신의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 또한 본문입니다. 그 이유는 기도하는 사람은 그냥 기도하는 사람이 아니라, 깨트려진 마음, 상한 심령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사람이고 하나님만을 온전히 바라보면서 마음이 깨트려져 영혼이 거룩하신 하나님만을 주시하고 그러면서 자신의 죄악 된 모습을 온전히 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돌아보신다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마음이 깨졌다는 것은 상한 심령이 되었다는 의미이고, 자기 자신에게 철저하게 실망한 것이자 자신에 대해 철저하게 좌절했기 때문에 하나님만 붙들 수밖에 없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통해서 당신의 놀라운 뜻들을 이루시고 그들을 도구로 사용하여 크고 놀라운 일들을 이룬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기에 여러분, 기도로 마음을 하나님께 열고, 하나님이 계심으로 내가 있고, 주님이 계시지 아니하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주님을 향한 절대적인 의존 방식의 기를 가까이 하기를 원합니다.

 

순종은 자기의 두려움, 자기의 선입관, 자기의 염려들을 전부 덮어두고 따르는 자리로 나갑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비밀을 보게 되고 하나님의 비밀의 축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주님은 사울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말씀하고 있는데, 그것이 15-16절입니다. 보겠습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행 9:15-16) 바꿔 말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찾기 위하여 아나니아를 보내기 원한다는 말씀으로 바라고 원하기는 여러분도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찾기 위해 보내기를 원하시는 그 중의 한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원합니다.

 

네 번째로 이것은 먼저 온 성령의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이 의미가 무엇일까요? 17절을 보면,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행 9:17) 아나니아가 주의 명령에 따라 순종하여 사울이 머물고 있는 곳으로 갔고 거기 가서 안수를 했는데 성령이 먼저 왔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사도행전에는 놀라운 하나의 법칙이 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성령의 사건이 먼저 왔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사마리아 사람이 예수를 믿었다고 할 때도 베드로와 요한이 가서 성령의 임재를 이야기 하였고, 심지어 고넬료도 마찬가지인데, 사도행전의 역사는 성령의 역사로서 이렇게 사울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물세례를 받는 사울을 이야기 하지 않습니까? 18절,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행 9:18) 안수를 하니까 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져 다시 보았다는 것이고, 일어나 세례를 받은 것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말하는데, 이어 19절도 봅니다.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행 9:19) 즉 성령이 먼저 오고 나중에 물세례를 받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로 사울에게 있어서 변화입니다. 20절입니다.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행 9:20) 사울에게 있어서 변화는 그의 입에서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다는 것이고,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울의 입에서 예수에 대해 얘기를 시작하니까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는데, 21-22절입니다.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행 9:21-22)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행 9:22) 여러분, 사울의 삶을 근본적으로 흔들어 놓은 이 사건은 그가 다메섹에 가까이 올 때 일어난 것이지만, 이것을 사울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전에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무너뜨리는 자였지만 앞으로는 교회를 세우는 자가 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었고 이 계획은 사울과 교회의 관계회복을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자 가기를 꺼려하는 아나니아를 사울에게 굳이 보내신 이유가 바로 불편한 관계요, 원수의 관계에서 사울도 교회의 일원이 되게 하심으로 교회를 세우는 사역을 감당하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20-22절의 이야기는 누가가 바로 본문에 삽입했던 것이지만 사실 아나니아와 사울이 대면한지 2년의 세월이 흐른 뒤의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아나니아의 안수를 받고 눈을 뜨고 성령 충만함을 받은 사울은 아라비아로 가게 되는데, 나중에 나누겠지만 이러한 사실을 갈리디아서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사울은 시내산, 즉 아라비아에서 거의 3년 동안 주님과 인격적인 사귐의 시간을 가짐으로 이 기간이 주님의 종으로서 부르심을 감당하기 위해 자신을 준비하는 과정이었고, 주님과 개인시간을 가진 후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와 예수를 증거 하는 그가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과거에는 예수 믿는 자들을 결박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왔지만 지금은 나사렛 예수를 통한 생명의 도를 전파하기 위해 왔다는 것이고, 그는 핍박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할 위대한 사도로 다메섹에 돌아온 것이자, 핍박자에서 핍박을 받는 자로서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것은 복음이 이방 땅으로 확장되는 역사적인 순간이 되게 한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주시는 몇 가장 중요한 영적인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은 자기 백성들을 다스리시고, 또한 그 백성들을 통하여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시며, 그를 통하여 사람을 인도하시어 세상을 향한 당신의 역사하심을 확장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나니아에게 보인 환상과 사울에게 보이신 환상, 그리고 그들을 만나게 하시는 이야기들은 결국 부활의 주님께서는 지금도 자신의 사역을 행하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굳게 믿고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 주님의 마음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이것은 성령의 주권적인 역사이고, 주권적으로 이루시는 성령님의 역사에 우리의 자세가 겸손한 순종이라는 것, 아나니아가 그렇게 하였듯 우리 또한 순종의 사람이 되어야 함이 오늘 본문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원하기는 이번 한주간도 주권적으로 이루어 가시는 성령님의 역사에 겸손히 순종하는 여러분이 되시면서 하나님의 구속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는 여러분 모두가 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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