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제14일 (목) 마 14:13-21 오천 명을 먹이심
오늘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말씀입니다. 벳세다 광야에 여자와 어린아이를 제외한 오 천 명의 사람들의 모여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다 먹지 못한 상태라 제자들의 걱정은 이만저만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저들을 그만 돌려보내시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보낼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는 말도 안 되는 말씀을 하신 것이고 이에 순종하는 제자들을 보게 됩니다.
먼저 ‘보낼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는 말도 안 되는 이 말씀은 너희가 먹일 책임이 있다는 말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본문에는 없지만 빌립과 안드레의 대조적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즉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빌립의 제안은 200데나리온이 있어도 부족하다는 주장이고, 안드레는 무리들 앞으로 나아간 방법입니다. 안드레의 방법은 어린 소년의 비상식량이자 도시락이었고 예수님은 이 어린아이의 도시락을 크게 기뻐하시고 축사하심으로 5000명이 배부르게 먹고 12광주리를 남겼습니다.
사순절 14일을 맞이하는 오늘 가슴에 담을 구절은 무엇일까요? 바로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제자들에게는 많은 무리를 먹일 능력이 없는데도 이 말씀을 주님은 하셨습니다. 그러면 왜? 하셨을까요? 요한복음에서는 빌립을 시험하기 위해서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현실과 믿음의 경계는 뚜렷하게 구분 되겠지만, 주님은 우리가 믿음의 자리에 서도록 요구하신다는 것이고, 무엇보다도 이것의 완성을 이루시는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바로 그 자리에 계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주님의 요구는 믿고 순종하는 자리에 나가는 것이 우선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불가능합니다!”라는 대답을 합니다. 엄밀하게 따지면 안드레의 행동도 불가능 안에 포함됩니다. 요 6:9절에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라고 하면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밖에 없다는 부정, 이것으로 어떻게 이 많은 사람에게 먹도록 해주겠느냐는 부정이 담겨있어 어쩌면 이백 데나리온의 빵을 사서 먹일까요? 라는 되물음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 주님의 요구는 주님이 하시는 것을 믿음으로 보는 자리에 나가는 것이고, 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예수님의 손에 드리는 것이며 주님이 그 자리에 계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도 이 자리에 나가기를 원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려 이 땅에 오신 주님 앞으로 나가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이루시는 주님의 손에 드리는 하루가 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