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늘 ‘막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권력으로, 제도로, 여론으로, 심지어 폭력으로도 말입니다. 그
러나 역사는 한 가지 사실을 반복해서 증언합니다.
사람은 말씀을 가둘 수 있어도, 말씀은 결코 사람에게 갇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3장에서 바울과 바나바가 전한 복음은 거센 반대와 추방을 만납니다.
회당에서 쫓겨나고 성읍에서 내몰립니다.
하지만 결과는 아이러니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온 지방에 퍼지니라.”
막으려 할수록 더 멀리, 더 깊이 번져 갔습니다.
복음은 문이 닫힐 때 길을 바꾸지, 멈추지 않습니다.
역사는 이를 생생히 증언합니다.
로마 제국은 초대교회를 박해했지만, 피 흘린 순교의 자리는 복음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중세의 검열과 화형 속에서도 말씀은 필사본으로 살아남았고, 인쇄술을 만났을 때 유럽 전역으로 퍼졌습니다.
근대의 무신론적 억압과 현대의 전체주의 체제 속에서도 성경은 숨은 가정과 지하 모임을 통해 다음 세대로 전해졌습니다.
권력은 잠시 성공한 듯 보였으나, 말씀은 늘 다음 장을 써 내려갔습니다.
오늘의 현실도 다르지 않습니다.
디지털 검열, 가치의 혼탁, 진리에 대한 냉소가 교묘하게 말씀의 자리를 밀어내려 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플랫폼을 가리지 않습니다.
화면이 닫히면 관계로, 제도가 막히면 삶의 증언으로, 강단이 좁아지면 가정의 식탁으로 흘러갑니다.
말씀은 형태를 바꿀 뿐, 본질을 잃지 않습니다.
말씀을 막으려는 시대일수록, 그 말씀을 살아내는 한 사람의 순종은 더욱 또렷해집니다.
제도는 복음을 가둘 수 있어도, 말씀에 붙들린 한 사람의 삶은 가둘 수 없습니다.
그 삶 자체가 이미 설교이기 때문입니다.
환경이 메시지를 지우는 법은 없습니다.
말씀은 평탄할 때보다 어려울 때 더 선명해진다는 것입니다.
반대와 박해는 복음을 소멸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그 진정성을 드러내는 배경이 됩니다.
그래서 성령은 닫힌 문 앞에서 침묵하지 않고, 늘 새로운 문을 여십니다.
결국 질문은 이것입니다.
말씀이 막힐 수 있는가가 아니라, 우리는 그 말씀에 붙들릴 것인가입니다.
세상은 여전히 흔들리고, 교회는 때로 밀려나며, 신앙은 불편한 진실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로 막을 수 없습니다.
그 말씀은 오늘도 한 사람의 마음에서 시작해, 한 가정으로, 한 공동체로, 그리고 다시 세상으로 흘러갑니다.
문이 닫혀도 길은 남아 있습니다.
길이 없어 보여도 말씀은 갑니다.
막을 수 없는 것은 말씀이고, 멈출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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