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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몰라 만든 제단, 드디어 정답이 오다

사도행전 17:22–34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의 제목은 ‘혹시 몰라 만든 제단, 드디어 정답이 오다’입니다. 여러분, 사람은요? 많이 가지면 만족할 것 같은데, 많이 가져도 오히려 마음이 비는 것을 보게 됩니다. 특히 요즘은 손안의 전화기, 즉 핸드폰으로 개인의 만족을 만들지 않습니까? 무슨 이야기냐? 핸드폰으로 뉴스도 보고, 영상도 보고, 은행 일도 보고, 물건도 사고, 길도 찾는다는 이야기에요? 그래서 간편한 상황을 만듭니다. 하지만 영적인 문제에서는 오히려 “나는 왜 허전할까?”라는 질문 앞에 있게 합니다. 오늘 본문의 아덴 사람들도 그랬습니다. 당시 최고의 지성 도시고, 철학과 문화와 예술이 있는데, 무엇보다도 영혼 문제를 해결하려고 우상으로 가득하며, 수많은 신들을 섬겼어도 혹시라도 빠뜨린 신이 있을까 두려워서 “알지 못하는 신에게”까지 제단을 만들었는데도 정작 허전하다는 것입니다. 왜요? 참 하나님을 모르니까 그런 것입니다. 이 불안한 도시인, 이 아덴의 제단 앞에서 바울은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들의 허전을 해결하는 정답이 무엇이신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그가 전하는 그 현장으로 함께 들어가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정답을 주기 위해 접촉점을 찾은 바울입니다. 22절을 다시 봅니다.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아레오바고’라는 곳에 바울이 섰습니다. 이죠? ‘아레오바고’는 이 단어는, 헬라어로 “아레스의 언덕” 영어로는 Areopagus입니다. 단순한 언덕이 아니라, 당시 아덴의 중요한 회의 장소이고, 재판과 토론의 장소였으며, 철학자들과 지식인들이 모여 새로운 사상과 가르침을 듣고 판단하던 곳이었습니다. 아덴의 자랑이죠? 이 지성의 중심 한복판에 바울이 서서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을 전하고자, 즉 그들의 허전을 해결하는 정답을 주고자 그들이 마음을 열 수 있는 접촉점, 즉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라고 말문을 연 것이죠? 그러면서 23절에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라고 정답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합니다.

 

 

무엇을 말하냐면요? “여러분을 보니 참으로 신을 찾는 마음이 많네요? 도시 곳곳에 제단도 있고, 신전도 있고, 우상도 많고, 그래서 이것을 보니 여러분은 영적인 것에 관심이 많다는 것은 분명하다.”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 두 번째로 그들이 찾아야 하는 진짜 정답, 진짜 참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이어서 전합니다. 24절을 보세요?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그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모르니까 신을 “사람이 만든 신전 안에 모셔 두는 존재”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지금 전하고 있는 참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신데, 그분은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이고, 천지의 주재시며 손으로 지은, 즉 너희가 지은 이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무슨 이야기냐? “너희가 찾는 하나님은 너희가 만든 신전 안에 갇혀 계신 분이 아니다. 너희가 조각한 우상 안에 계신 분도 아니다. 그분은 이 모든 세계를 만드신 창조주이시다.”라는 이 정답을 전합니다.

 

 

왜냐하면, 참 하나님이 누구신지, 즉 창조주 하나님을 알아야 인간의 위치를 알고, 창조주 하나님을 알아야 우상의 헛됨이 무엇인지가 드러나기에 그렇습니다. 쉽게 말하면 이 말입니다. “지금 이 모든 것들은, 사람이 만든 것이잖아? 사람이 나무를 깎고, 돌을 다듬고, 금과 은으로 모양을 만들어 놓았잖아? 심지어 거기에 절한다는 것은 모순이잖아? 자기가 만든 것 앞에 자기가 무릎을 꿇는 것이 모순이잖아?” 이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요? 강하게 아덴 사람들에게 선포하는데, “너희가 만든 것이 너희를 구원할 수 없다. 너희 손으로 만든 신은 너희 영혼을 살릴 수 없다. 참 하나님은 너희 손으로 만든 분이 아니라, 너희를 만드신 분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인간은 세상으로 채워지도록 지음을 받은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으로 채워지도록 지음을 받은 존재라고 전합니다.

 

 

그러면서 세 번째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심을 선포합니다. 25절을 보세요?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하나님은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분이 아니라는 것이죠? 오히려 사람에게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라고 아덴 사람들의 잘못된 것을 밝힙니다. 아시다시피 아덴 사람들은요? 신전을 만들고, 제단을 만들고, 거기에 제물도 바치면서 신들을 섬겼습니다. 마치 신들이 사람의 섬김을 받아야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잘못된 것을 알게 한 것이죠? “하나님은 부족하신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도와드려야 하는 분도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명과 호흡과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다.”라고 알게 합니다.

 

 

네 번째로 하나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우리 가까이에 계신 분이라고 전합니다. 26–27절,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하나님은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신데, 나라의 경계도, 시대의 흐름도, 삶의 자리도 다 하나님 손안에 있다는 말입니다. 즉 우리가 언제 태어날지, 어디에서 살지, 누구를 만날지, 어떤 시대를 살아갈지, 하나님은 다 아시고 계시고, 우리의 생애도 알고 계시고, 우리의 날을 정하시고, 우리의 걸음을 보고 계신다는 사실, 그래서 우리 인생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다는 것, 그 크신 하나님이 멀리 계시지 않다고,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은 성공한 사람에게만 가까이 계시는 분이 아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만 가까이 계시는 분도 아니다. 기도가 술술 나오고, 믿음이 흔들림 없이 서 있는 사람에게만 가까이 계시는 분도 아니다. 울고 있는 사람에게도 가까이 계시며, 실패하고 주저앉은 사람에게도 가까이 계시고, 죄책감에 눌려 고개를 들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가까이 계시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할 아픔을 가슴에 품고, 밤마다 홀로 눈물 흘리는 사람에게도 가까이 계신다” 이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요? 예수님은요? 우리 곁에 계십니다. 여러분 곁에, 아니, 내 곁에 계십니다. 우리의 눈물, 여러분의 눈물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한숨, 여러분의 한숨 가까이에 계시며 우리의 눈물, 여러분의 눈물과 부르짖음, 가까이에 계십니다. 우리의 무너진 현실 한가운데 계십니다. 시편 기자가요? 시편 34편 18절에서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라고 고백하는데, 그의 고백 안에는 자신의 믿음이 약해졌다고 해서 하나님이 멀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 인생이 흔들린다고 해서 하나님이 나를 포기하신 것이 아니기에 오히려 그 앞에 나가 통회할 때 만나 주시고, 그 아픔의 자리에서 붙들어 주시며 다시 일으켜 주신다는 고백입니다. 그죠? 이 은혜가 여러분에게 넘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아멘.

 

 

다섯 번째는 그러기에 하나님을 우리가 만든 형상으로 제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28~29절입니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움직이며 존재한다.” 기동하며 존재한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살고, 움직이고, 존재한다” 우리는 하나님 없이 한순간도 살 수 없고, 하나님 없이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으며, 하나님 없이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 사람은 스스로 사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생명을 주시기 때문에 사는 것이고, 내 힘으로 움직이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호흡과 힘을 주시기 때문에 움직이고, 내가 그냥 존재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붙들고 계시기 때문에 오늘도 존재하는 것이라고 전하죠? 쉽게 말하면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듯이, 사람은 하나님을 떠나 살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공기가 보이지 않아도 우리가 공기 안에서 숨 쉬고 사는 것처럼, 하나님은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생명과 호흡과 존재 전체를 붙들고 계신다고 전합니다.

 

 

여러분, 이것은 사실 아닙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필요할 때만 찾는 존재가 아니잖아요? 우리는 하나님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의 장식품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우리가 아침에 눈을 뜨는 것도, 숨을 쉬는 것도, 걸어가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견디는 것도, 다 하나님 안에서 가능한 일입니다.” 즉 우리의 생명, 움직임, 존재 자체가 모두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살고, 하나님 안에서 움직이고, 하나님 안에서 존재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로 만든 우상처럼 생각할 수 없고요? 사람이 만든 모양 안에 갇히지 않으며, 인간의 생각보다 크시고, 우리의 계산보다 크시며, 우리의 경험보다 크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하나님을 작게 만들 때가 있어요? “하나님은 내 문제는 해결 못 하실 거야.” “하나님은 나 같은 사람은 사랑하지 않으실 거야.” “하나님은 내 가정은 회복시키지 못하실 거야.” “하나님은 내 자녀는 변화시키지 못하실 거야.”라고 종종 하나님을 작게 만들 때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은 내가 원하는 대로 제한을 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또한 내 생각 안에 당신을 가두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아멘.

 

 

여섯 번째는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신 하나님입니다. 30–31절입니다.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바울이 전하는 핵심이 무엇이에요? “이제는 회개하라.” 이것입니다. 왜냐하면? 죄에서 돌아서는 것이 정답이고, 하나님 없이 살던 자리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정답이며, 내가 주인 되어 살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는 것이 정답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심판의 날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공의로 세상을 심판하실 날을 정하셨다고 그래서 회개하라고 정답을 전합니다. 그 정답이 누구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을 받은 그 심판자가 누구냐?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것이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예수 믿으라, 이것이 정답이라고 전한 것이죠?

 

 

그랬더니 마지막 일곱 번째가 이들에게 나타난 세 가지 반응입니다. 32~34절입니다. “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어떤 사람은 조롱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이에 바울이 그들 가운데서 떠나매, 몇 사람이 그를 가까이하여 믿으니, 그중에는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바울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의 세 가지 반응이 있었는데, 하나는 조롱하는 사람이 있었다, 즉 부활을 듣고 비웃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미루는 사람이 있었다, “다시 듣겠다”라고, 결단을 미룬 반응이 있었다는 것이고, 마지막은 믿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들이 디오누시오, 다마리와 또 다른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믿은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 영혼이 주께 돌아오는 천하보다 귀한 일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말씀 앞에 무너지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고, 변화된 삶을 사는 하나님 나라의 열매가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은 끝을 맺고 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여러분, 아덴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는 제단까지 만들었습니다. 왜요? 불안하니까, 공허하니까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가니까 헤매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제단 앞에서 바울은 정답을 이야기하였고 정답을 선포했습니다. “당신들이 알지 못하던 그 하나님을 내가 전합니다.”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이런 제단이 있습니다. 혹시 몰라 붙들고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 영혼의 정답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 자리에서 예수님에게 오셔야 합니다. 우리의 정답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의 공허함을 채우시는 분도 예수님이고, 우리의 죄를 씻으시는 분도 예수님이며, 우리의 죽음을 넘어 영생으로 인도하시는 분도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멀리 계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 가까이에 계시고, 우리의 생명과 호흡을 붙들고 계시며 우리의 남은 인생도 붙들고 계십니다. 주님만이 나의 창조주이시고, 나의 생명이며 나의 구원입니다. 예수만이 정답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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