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고린도에 도착했을 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만났습니다.
그들은 로마에서 쫓겨나 고린도에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겉으로 보면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입니다.
안정된 자리를 빼앗기고 낯선 도시에서 다시 살아야 했던 이민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고린도에서 바울과 만나게 하셨습니다.
“그 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행 18:3)
바울도 일했습니다. 그는 복음 전도자였지만 손을 놓고 살지 않았습니다.
그는 천막을 만들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낮에는 손으로 천막을 만들고, 안식일에는 회당에서 유대인과 헬라인에게 예수를 전했습니다. 그
의 손에는 천막을 만드는 도구가 있었지만, 그의 가슴에는 복음이 있었습니다.
그의 생업은 천막이었지만, 그의 본업은 복음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일을 하며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가게를 운영하고, 어떤 사람은 회사에 다닙니다.
어떤 사람은 아이를 돌보고, 어떤 사람은 몸이 아파도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아갑니다.
겉으로 보면 모두 생업입니다.
먹고살기 위한 일입니다.
가족을 책임지기 위한 일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에게 일터는 단지 돈을 버는 장소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사명의 자리입니다.
바울은 천막 만드는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일을 통해 사람들과 가까워졌고, 그 자리에서 복음을 살아냈습니다.
복음은 강단 위에서만 전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가게 카운터에서도, 공장에서도, 사무실에서도, 식탁에서도 전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목회자가 아니니까, 나는 선교사가 아니니까,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을 수 없다.”라고.
그러나 하나님은 바울의 설교만 사용하신 것이 아닙니다.
바울의 천막 만드는 손도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집도 사용하셨고, 그들의 직업도 사용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만남도 사용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직업의 종류가 아닙니다.
그 일을 누구를 위해 하느냐입니다.
같은 일을 해도 어떤 사람은 돈만 위해 살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삽니다.
같은 직장을 다녀도 어떤 사람은 월급만 바라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곳을 하나님이 맡기신 선교지로 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터, 가정, 사업장, 이민자의 삶, 외로운 자리에도 주님은 함께하십니다.
보기에는 단지 생계를 위한 자리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그곳을 복음의 자리로 바꾸십니다.
여러분, 우리의 직업은 잠시 맡겨진 자리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영원한 사명입니다. 생업은 바뀔 수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천막을 만듭니다. 땀 흘려 일합니다.
생업은 천막이어도, 본업은 복음입니다.
손에는 일이 있어도, 마음에는 예수가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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