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지치면 입을 닫고 싶어집니다.
아무리 말해도 변하지 않을 때, 아무리 사랑해도 돌아오지 않을 때, 아무리 애써도 오해만 돌아올 때,
마음은 조용히 문을 닫습니다.
“이제 그만하자.” “더 말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렇게 영혼의 입술이 먼저 닫혀 버립니다.
사도 바울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는 아덴에서 철학자들과 논쟁했고, 고린도에 와서는 더 깊은 어둠을 마주했습니다.
고린도는 화려했지만 타락했고, 번성했지만 영적으로 병든 도시였습니다.
돈과 욕망과 우상과 음란이 넘치는 그곳에서 바울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따뜻한 환영이 아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대적하고 비방했습니다.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복음을 전했는데 대적이 돌아왔습니다.
사랑을 말했는데 비방이 돌아왔습니다.
생명을 전했는데 거절이 돌아왔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무너졌겠습니까?
바울은 강한 사람이었지만, 상처가 없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사명자는 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도 아픕니다. 믿음의 사람도 지칩니다.
목회자도 무너질 때가 있고, 성도도 말문이 막힐 때가 있습니다.
사랑했기에 아프고, 기대했기에 낙심하고, 기도했기에 더 크게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그때 주님이 밤에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주명개구(主命開口), 주님의 명령으로 입을 여는 것입니다.
내 마음은 닫고 싶지만, 주님이 말씀하시기에 다시 여는 것입니다.
내 감정은 멈추고 싶지만, 주님의 뜻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에 다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이유는 상황이 좋아졌기 때문도, 사람들이 갑자기 변했기 때문도 아닙니다.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침묵하지 말라.” “말하라.”
우리도 때때로 입을 닫고 싶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침묵하지 말라.” “말하라.”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복음의 입술입니다.
사랑의 입술, 기도의 입술, 생명을 살리는 입술입니다.
주님은 바울에게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다”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사람들의 반응만 보았지만, 주님은 그 도시 안에 숨겨진 영혼들을 보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입을 열어야 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으니, 이제 다시 입을 열 때입니다.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