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리”라는 말은 보통 혼란, 소동, 뒤집힘을 의미합니다.
질서가 깨지고 평온이 흔들리는 상태를 가리킬 때 쓰는 말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도 문제처럼 보이는 상태입니다.
사도행전 17:6에서 사람들은 바울과 실라를 향해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어지럽게 하다”는 말은 “뒤집어 놓다, 전복시키다”라는 뜻입으로 단순한 소란이 아니라
삶의 기준을 뒤집고, 가치관이 바뀌며, 왕이 바뀌는 변화를 의미합니다.
데살로니가 사람들의 외침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이 말은 비난이었지만,
사실은 복음의 능력을 증언하는 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이 들어가면 조용하던 삶에 거룩한 소란이 일어나기에, 잠자던 양심이 깨어나고, 익숙한 죄가 불편해지고,
하나님 없이 잘 살 수 있다고 믿던 마음이 흔들리기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위한 난리는 무질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거짓 평안을 깨뜨리고 참된 평안을 찾게 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죄와 타협하며 조용히 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복음은 그 침묵을 흔듭니다.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로 만들기에 그렇습니다.
인간의 마음속 왕좌를 바꾸게 합니다.
예수님이 왕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때문에 일어나는 난리는 은혜입니다.
가정 안에 말씀 때문에 고민이 생깁니까? 은혜입니다.
직장에서 신앙 때문에 선택이 어려워집니까? 은혜입니다.
내 마음속에서 죄와 믿음이 싸우기 시작했다면 살아나는 징조, 은혜입니다.
죽은 물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생명이 들어오면 움직입니다.
복음은 우리를 편하게만 만들지 않습니다.
먼저 우리를 깨웁니다.
무너진 자리 위에 그리스도의 나라가 세워지게 합니다.
오늘 이런 난리가 필요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내 생각이 흔들리고, 내 우상이 무너져야 합니다.
내 삶의 방향이 바뀌는 거룩한 소동이 필요합니다.
세상은 그것을 불편하다고 말하겠지만, 하나님은 회복이라 부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 때문에 누군가의 마음에 질문을 남기는 사람이 됩시다.
복음 때문에 어둠을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이 됩시다.
“이 사람들 때문에 난리 났다.”라는 이야기를 듣기를 소망합니다.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