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전남 고흥의 한 교회에서 부흥집회를 인도한 적이 있습니다.
집회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말씀을 마치고 예수님을 영접하기 원하는 분들을 초청했는데, 뜻밖의 한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 지역에서 무당으로 살아오던 분이었습니다.
그분에게 무당의 일은 단순한 직업이 아니었습니다.
오랫동안 의지해 온 삶의 방식이었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신분이었으며, 생계를 이어 가는 수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하나님의 말씀이 그 마음에 들어가자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평생 붙잡고 살아왔던 것이 자신을 살리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길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분은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종교 하나를 더 갖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지금까지 의지해 온 것을 내려놓고, 앞으로 무엇을 먹고살아야 할지 알 수 없는 자리에서 예수님을 선택한 결단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과 수군거림을 감당해야 했고, 익숙한 삶의 방식도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세상에서 얻는 이익보다 예수님을 더 귀하게 여겼습니다.
사도행전 19장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납니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하자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마술을 행하던 사람들은 값비싼 마술책을 가지고 와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불태웠습니다.
우상을 섬기던 사람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께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은으로 아데미 신전의 모형을 만들어 팔던 데메드리오와 장인들의 장사가 어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으면서 우상을 사지 않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데메드리오는 장인들을 모아 놓고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풍족한 생활이 이 생업에 있는데.” 말했습니다.
그의 관심은 진리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도 아니었습니다.
자기의 수입과 풍족한 생활이었습니다.
아데미 여신의 위엄이 무너질 것을 염려하는 것처럼 말했지만, 장사가 무너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복음이 에베소에 들어가자 우상 장사가 되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참된 복음의 능력입니다.
복음은 사람의 마음에 잠시 위로를 주는 말로 끝나지 않습니다.
복음이 한 사람의 마음에 들어가면 삶의 주인이 바뀌고, 돈을 사용하는 방법이 달라지며, 즐거워하는 것이 달라지고, 버려야 할 것을 버리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세상에서 원하는 모든 것을 얻기 위해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 때문에 포기할 것을 포기하고, 끊을 것을 끊으며, 버릴 것을 버리는 것입니다.
복음이 들어오면 어떤 장사는 잘되지 않아야 합니다.
거짓으로 얻던 이익이 줄어들어야 합니다.
반대로 복음이 들어오면 새롭게 시작되는 일도 있습니다.
용서가 시작되고, 정직이 시작되며, 사랑과 섬김이 시작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축복으로 사업도 잘 됩니다.
전남 고흥의 그 무당이 예수님을 영접하던 날, 세상적인 계산으로 보면 잃은 것이 많았을 것입니다.
익숙했던 직업을 잃고, 사람들의 신뢰와 수입까지 잃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장사를 잃은 것이 아니라 생명을 얻었습니다.
돈을 벌어 주던 길을 내려놓았지만 영원한 길이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복음이 들어오니 죄의 것은 버리고 하나님의 것이 잘되고 사업도 측복으로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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