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님, 우리 사모님
[장행자]라는 이름으로 삼행시를 이렇게 지어봅니다.
장 : 장미보다 더 깊은 향기로 교회를 사랑하시고, 행 : 행여 한 영혼이라도 힘들까 이름을 불러 기도하시며, 자 : 자신보다 주님과 성도들을 먼저 생각하신 우리 사모님, 그 이름이 장행자입니다. 교회에는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교회를 교회 되게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강단에 서지는 않지만, 강단을 위해 기도하고, 앞에 나서지는 않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 사랑의교회에는 그런 분이 계십니다. 장행자 사모님입니다. 저는 사모님을 생각할 때마다 ‘사랑은 말이 아니라 길을 건너오는 것’이라는 생각합니다. 사랑은 마음속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사랑은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찾아옵니다. 사랑은 피곤한 몸을 일으키고, 불편한 눈으로 길을 바라보며, 누군가를 위해 한 시간을 운전하게 합니다.
85세가 넘으신 사모님께서 교회까지 오시려면 한 시간가량 직접 운전하셔야 합니다. 젊은 사람에게도 결코, 짧지 않은 거리입니다. 더구나 한쪽 눈이 온전하지 못한 형편에서 그 길은 얼마나 조심스럽고 힘든 길이었겠습니까. 그런데도 사모님은 오셨습니다. “주님께 맡기고 왔어요.”라고 한 말씀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됩니다. 그 한마디 속에 얼마나 큰 믿음이 담겨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는 길을 사모님은 기도로 건너오셨습니다. 핸들을 붙든 손보다 주님의 손을 더 의지하며 오셨을 것입니다. 앞을 바라보는 눈은 불편했지만, 주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눈은 누구보다 밝았습니다.
저는 때때로 사모님이 교회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모습을 보며 ‘사모님은 예배에 참석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사랑하러 오셨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모님은 우리 사랑의교회를 오랫동안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사랑하고 계십니다. 우리 교회는 크지 않습니다. 아주 작고 작은 교회입니다. 한 성도가 떠나면 너무나 자리가 크게 비어있음이 느끼는 교회입니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화려한 예배당도 아니고, 이름난 강사가 서는 큰 강단도 아니지만, 사모님은 부족한 종의 입술을 통해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받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목사님이 설교하실 때 보면, 꼭 만 명이 넘게 모인 곳에서 설교하는 것 같아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부끄럽기도 했고, 가슴이 뜨거워지기도 했습니다. 사모님은 작은 교회를 작게 보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의 숫자로 강단의 가치를 판단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곳에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한 영혼이 살아나는 일이 있다면, 그 자리를 만 명이 모인 자리처럼 존귀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사모님의 그 말은 칭찬 이상의 말이었습니다. 지치지 말고 말씀을 전하라는 격려였고, 작은 교회를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위로였으며, 한 영혼을 만 명처럼 귀하게 여기라는 목회적 당부였습니다. 사모님은 아주 작은 우리 사랑의교회를 그렇게 큰 교회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사모님 한 분이 예배 자리에 앉아 말씀을 사모하며 ‘아멘’으로 화답해 주셨기에, 부족한 설교자는 다시 용기를 얻어 강단에 설 수 있었습니다.
사모님은 커피를 좋아하는 저를 위해 직접 타오셨습니다. 그러나 그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었습니다. 사모님은 집에서 떠올린 맑은 물로 직접 커피를 내리셔서 식을 까봐 던킨 보온병에 정성스럽게 담아 교회로 가져오셨습니다. 한 시간 동안 운전해 오시면서도 커피가 식지 않도록 보온병에 담아 오셨던 그 마음. 그것은 커피 한 잔이 아니라 사랑 한 병이었고 성도들을 향한 마음과 교회를 향한 사랑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커피를 마셨지만, 사실은 사모님의 사랑을 마셨고, 커피의 향기를 맡았지만, 사실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맡았습니다.
누구보다도 사모님은 교회의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셨습니다. 사정이 있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셨고, 아픈 사람을 위해 마음 아파하셨으며, 낙심한 사람을 위해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누구도 쉽게 지나치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 기도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하나님 앞에서 포기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사모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을 기도로 붙들었습니다. 우리가 잊고 있을 때에도 기억하셨고, 우리가 힘들다고 말하지 못할 때에도 마음으로 품으셨습니다. 그 기도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 사랑의교회를 붙들어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세월이 흘렀습니다. 마음은 여전히 청춘인데 몸은 예전 같지 않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교회를 향한 사랑도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지만, 몸은 조금씩 약해지고 있습니다. 한 시간 운전하는 일이 점점 힘들어지고, 매주 오던 길을 이제는 멈추어야 하나 생각하시는 사모님의 마음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오고 싶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 마음은 얼마나 서럽겠습니까? 그래서 정리하는 마음들이 하나씩 보였는데, 우표책과 육영수 여사님과 찍는 사진들, 그것을 받을 때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사랑하는 곳에 가고 싶지만 갈 수 없고, 보고 싶은 얼굴들이 있지만 쉽게 만날 수 없고, 듣고 싶은 말씀과 함께 부르고 싶은 찬송이 있지만 몸이 허락하지 않을 때, 그 마음속에는 얼마나 많은 눈물이 흐르겠습니까?
그러나 사모님, 교회에 오지 못하는 날이 생겨도 사모님의 사랑이 멈추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 주시기를 원합니다. 사모님의 몸은 그 근처에 계셔도 사모님의 기도는 교회보다 먼저 와 있을 것입니다. 의자에 앉아 계시지 못해도 사모님의 사랑은 여전히 예배당 곳곳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사모님이 늘 앉으셨던 자리, 사모님이 아멘 하셨던 순간, 사모님이 건네주셨던 따뜻한 커피, 사모님이 이름을 불러 기도해 주셨던 그 사랑을 우리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어쩌면 사모님은 “이제 내가 교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사모님,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오랜 세월 믿음을 보여 주셨고, 교회를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으며, 목회자를 존중하고 말씀을 귀히 여기는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작은 교회를 크게 보는 믿음의 눈을 가르쳐 주셨고, 나이가 들어도 예배를 사모하는 것이 무엇인지 몸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사모님이 걸어오신 그 한 시간의 길은 단순한 도로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남겨 주신 믿음의 길입니다. 다음 세대는 “한 사모님이 연세가 많으셔도 한쪽 눈이 불편하셔도 주님께 맡기고 한 시간씩 운전해 예배하러 오셨단다.”라는 그 길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이야기는 우리 자녀들에게 믿음의 유산이 될 것입니다.
“너희의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히 6:10)
사람은 잊을 수 있지만 하나님은 잊지 않으십니다. 사모님이 운전대를 붙들고 기도하셨던 시간도, 성도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흘리신 눈물도, 커피 한 잔을 준비하시며 담았던 사랑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도 잊지 않으십니다. 사모님의 섬김은 하늘나라 생명책에만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사랑의교회 성도들의 마음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모님, 우리 사모님.
이제 몸이 약해져 교회 오는 것을 멈추어야 할 때가 오더라도 미안해하지 마세요. 서운해하지도 마세요. 사모님은 이미 누구보다 오래, 누구보다 깊이, 누구보다 아름답게 이 교회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사모님을 사랑할 차례입니다. 사모님이 우리를 위해 기도하셨던 것처럼 우리가 사모님을 위해 기도할 차례입니다. 사모님이 따뜻한 커피를 건네셨던 것처럼 우리가 따뜻한 사랑을 돌려드릴 차례입니다.
장행자 사모님, 사랑합니다. 사모님이 사랑하신 우리 사랑의교회는 사모님을 사랑합니다. 사모님이 기도해 주신 목회자인 저는 사모님을 사랑합니다.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사모님을 사랑하십니다. 이 땅에서 걸어오신 수많은 길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홀로 운전하던 그 시간마다 주님이 옆자리에 함께 계셨고, 보이지 않는 눈물을 흘릴 때마다 주님이 닦아 주셨으며, 약해진 몸으로도 교회를 사랑한 그 마음을 주님은 가장 귀하게 받으셨습니다.
사모님의 마음은 여전히 청춘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에는 나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몸은 약해져도 믿음은 약해지지 않습니다. 걸음은 느려져도 사랑은 멈추지 않습니다. 사모님이 남기신 믿음의 향기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사모님이 내려 주신 커피의 향기는 언젠가 사라졌지만, 그 커피에 담긴 사랑의 향기는 지금도 우리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사모님, 우리 사모님, 오래오래 건강하십시오. 장행자 사모님,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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