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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교회가 보이는 특징 다섯 가지”

(요한계시록 3:1~6)

 

오늘 말씀의 제목은요? “죽은 교회가 보이는 특징 다섯 가지”입니다. 죽은 것과 살아 있는 것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저는 이 예화에서 답을 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거북이 한 마리가요? 부산에서 서울로 출발하였는데, 한참을 가다 보니까? 지렁이 한 마리가 가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물었어요? “애~ 어디 가니?”, “나? 서울 가.”, “그래? 나도 서울 가는데? 내 등에 타” 지렁이를 태우고 서울로 올라가고 있는데요? 굼벵이를 만났어요. 다시 물었습니다. “애~ 어디 가니?”, “나? 서울 가.”, “그래? 나도 서울 가는데, 내 등에 타” 거북이 등에요? 지렁이와 굼벵이가 같이 탄 것입니다. 그리고 서울로 가고 있었어요? 그 굼벵이가요? 지렁이에게 이런 말을 했어요? “지렁아~ 꽉 잡아! 되게 빠르다. 번개 같아~ 잘못 하면 떨어져~” 의미 있는 유머입니다. 왜냐? 살아 있다는 것은요? 아주 천천히 같은 것처럼 보여도 움직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죽었다는 것은 움직임이 아예 없습니다. 오늘 제목에 죽은 교회라고 했어요. 교회가 어떻게 생명을 잃어버릴 수 있을까요? 이 말 자체가 이상하게 들리지만, 오늘 우리가 이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의 현주소를 돌아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먼저 이 사데 교회를 생각해봅시다. 아마 멋진 교회 건물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멋진 글씨로 써진 교회 간판도 달렸을 것입니다. 왜냐? 아주 부요한 교회이었거든요? 사데라는 도시 안에 있는 교회로, 이 도시는 두아디라에서 남동쪽으로 약 50킬로 정도 떨어진 곳에 세워진 도시입니다. 주전 1,200년 정도에 세워졌어요? 리디아 왕국의 수도이었습니다. 특히 높은 언덕 위에 세워진 도시입니다. 그러니 삼면이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접근은 오직 남쪽으로만 가능했기에 난공불락의 도시이었습니다. 그런데 아 큰 금광이 있었고, 그리고 사데 도시 옆으로 흐르는 ‘팍톨루스’라는 강에는 사금이 많이 나와 많은 부를 누리게 하였습니다. 최대의 금맥이 흐르는 금 생산지답게 금과 관련된 산업이 발달하였고, 무역중심지가 되었으며, 돈이 많은 도시답게 교회 재정도 풍부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 교회가 죽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1절입니다.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사실 1절을 보면 시작이 희한합니다. 그것이 뭐냐? 서머나 교회와 달리 바로 책망이었다는 것입니다. 서머나 교회에 대해서는, 겉으로 보기에 심한 고난으로 마치 죽은 것처럼 보였어도, 실상은 부요했다고, 생명으로 충만한 교회였다고 하였습니다. 반면에 이 사데 교회는 겉으로는 생명력 있고 괜찮은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생명이 없는 죽은 교회, 그래서 ‘너는 죽은 자로다’라고 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 사데 교회가 가졌다는 이름이? “살았다”입니다. 그만큼 사데 교회가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인데, 주님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많은 이들이 너희를 보고 살았다고 해도, 실제로는 죽었다’라고 하셨습니다. 무엇 때문에 죽었다고 하신 것일까요? 그 근거가요? “그들의 행위를 아신다”입니다. 이것은 사데 교회의 성도가 얼마나 모이는지, 사데 교회의 재정이 얼마나 풍부한지, 주의 일을 할 때, 재정의 부족함이 없는지, 교회가 세상에 이름을 떨치고 있는 강도가 얼마나 큰지, 이 것들이 아닌 “네 행위를 아노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그들의 행위가 어떠했기에, 이 말씀이었을까요? 구체적으로 말씀하시지 않았으니까 알 수가 없지만, 본문 2절과 4절에 보면,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라는 말씀, 여기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다’라는 이 말의 의미는 ‘비어있는 부족한 상태였다’, ‘채워지지 못한 상태’, 즉 텅 비어있었다는 것이 증거입니다. 이 말은 사데 교회가 ‘사람이 없었다?’라는 것일까요? ‘하는 일이 없었다?’라는 것일까요? ‘예배와 섬김과 찬양과 기도가 없었다?’라는 것일까요?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떡을 떼며 교제하고 교회로서 수고가 없었다?’라는 것일까요? 어쩌면 사데 교회가 미국의 세들백 교회처럼, 리디미어 교회처럼, 브룩클린 케버너클 교회처럼 세계적으로 큰 교회이었을 수 있습니다. 그죠? 훈련도 봉사도 많은 교회, 화려했던 교회, 하지만, 속은 부실한 교회이었다는 것이고, 이름만 살았지, 실속이 없는 교회, 영적 부흥을 위해 교회력을 따라 부흥회도 가졌지만, 결과는 영적으로 무기력했으며, 경건의 모양은 있어도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모습, 예배의 형식은 있어도, 상한 마음은 없는 교회. 의에 주리고 목말라하는 갈급함이 없는 모습이고, 입술로는 주님을 공경하고 찬양하고, 높였어도, 순서에 지나지 않는 모습으로 남은 교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씀을 준비하다가 아주 오래전에 제가 사랑의교회에서 섬겼을 때의 일이 생각이 나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아마 4부 예배였을 것입니다. 4부 예배는 찬양이 많은 예배였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제 사무실로 올라가려는데요? 교회를 관리하는 안수집사님이 저에게 “목사님~ 이것 보세요?” 하며 휴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순간 저는 그것이 무엇이지? 하며 휴지를 쳐다보았어요? 집사님이요? 휴지를 손으로 짜는 것입니다. 순간 그 휴지에서 물이 나왔어요. 그리고 집사님은 이 말을 했습니다. “목사님~ 이것은요? 물이 아니라, 예배 때 이 휴지를 사용했던 그의 눈물입니다. 예배 가운데 주님을 만나 흘린 눈물입니다” 이런 교회가 예배의 형식은 있어도, 상한 마음이 없는 교회인가요? 이런 교회가 의에 주리고 목말라하는 갈급함이 없는 교회인가요? 이런 교회가 입술로는 주님을 공경하고 찬양하고, 높였어도, 순서에 지나지 않는 교회인가요? 아닙니다. “살아 있는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러한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살아 있는 교회가 되어 충실하게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말씀을 전하고, 효과적인 전도와 제자 훈련 사역으로 섬기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사데 교회가 죽은 이유가 무엇이에요? 관용이라고 봅니다. 세상으로부터 거부감을 느끼지 못한 것이고, 서머나 교회나 버가모 교회처럼 외부의 박해도 없었습니다. 세상이 원하는 대로 다 받아들여, 이단이 있어도 없는 것처럼 아주 평화로운 교회로 자리매김했어요. 예배도 드리고, 헌금도 많이 하고, 봉사도 많이 하고, 선교도 하고, 보기에는 아주 교회답게 보였어도, 많은 성도가 가고 싶은 교회로 보였어도 “죽은 자, 죽은 교회”였다는 것, 이유가 관용, 즉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즉 그들의 행위가 하나님 앞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표준에 차지 않았다는 것이에요. 왜요? 관용이 결국, 자기들의 마음과 생각대로 하기에 그렇습니다. 세상에 양보하고 굴복하고, 세상이 두려워 세상 법을 따르고, 사회법이 하나님의 법칙에 대항해도 동조하는 모습을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사도 바울이요? 딤전 5:5~6절에서 이렇게 선포했어요. “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 향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무엇이에요?, 산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가지고 항상 간구와 기도하는 자들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면 주님이 이어서 마치 환자를 수술하는 의사 처방처럼, 세 가지의 처방을 내려줍니다. 2~3절을 볼까요? “너는 일깨어, 그 남은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혼수상태에 빠진 교인들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으신 처방을 주셨는데, 그것의 첫째가 일깨어, 즉 깨어나라, Awake’입니다. 의식을 잃기 직전의 사람을 마구 흔들 듯, 사데 교회를 품에 안고 “정신 줄을 놓지 말라~”라고 외치셨습니다. 자는 것과 죽은 것의 차이는요? 깨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깨어있지 않으면요? 죽어가는 문화의 잠 속에 빠져듭니다. 그래서 결국, 부질없고 무익한 행위를 하게 되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깨어난다는 것은?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밤낮으로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합니까? 교회가 깨어나고, 교회가 깨어나면 예배가 삽니다.

 

두 번째는 남은 바 굳건하게 하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요? 타성에서 벗어나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부흥은요? 새로운 이벤트를 열고, 능력있는 설교자를 초빙하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은요? 특별히 다른 곳에서 임하지 않으십니다. 지루한 우리 곁에 항상 계세요. 핵심이 뭐에요? 종교로 안주한 신앙을 개혁하는 것입니다. 즉 습관을 깨는 것이고, 영적 잠에서 깨어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는요?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하나님께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실 자리가 없어요. 진리의 능력은 사라지고요? 세상과 다른 바가 없는 종교만 남았습니다. 갈수록 기독교를 향해 반대와 조롱의 목소리를 높일 것입니다. 지금 교회는 진정한 기독교를 보여주지 못하고, 종교적 습관에 젖어 능력을 잃어버렸어요. 해결책이 뭐라고요? ‘남은 바 굳건하게 하라’ 입니다. 이것 아세요? 오늘날 교회가 직면한 가장 큰 적이요?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을 그대로 만족스럽게 생각한다는 태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로부터 특별한 역사를 기대하거나 바라지 않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왜요? 습관적 상태가 되었기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성장이 이루어지는 곳에서는 예측 불가능이란 분위기가 존재합니다. 우리가 이 자리에 머물기를 원합니다.

 

세 번째는 내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할 것, 기억하라 입니다. 3절에 “네가 어디서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기억하라”라고 하셨습니다. ‘기억하라’라는 이 단어는요? 과거 시제가 아니라 현재 시제입니다. 그러니까, 받은 구원과 성령의 선물들을 계속 상기해야 한다는 말이에요. 자신들이 들은 복음의 기쁜 소식을 계속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네 번째는 그들이 받고 들은 진리를 지켜라고 주문하셨습니다. 이것은요? 행위를 수반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는 것만이 아니라 변화시키는 일, 바른 교리에 헌신하는 것 못지않게 순종에 헌신하는 행위를 수반합니다. 그리고 끝으로 회개하라고 말씀합니다. 회개가 뭐에요?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뉘우치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하나님에게 갈아타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행동의 변화가 따라와요? 뭐냐? “영적 삶에서 더이상 빈둥거려서는 안 된다. 옳은 행위를 말만 하고 있어서도 안 된다. 이제 행동에 나설 때가 되었다. 오늘 당장 시작하라!”입니다. 즉 죽은 자의 행동에서, 산자의 행동으로, 육적으로 행동하는 것에서, 영적으로 행동하는 변화를 하는 것입니다. 버가모 교회처럼, 두아디라 교회처럼, 세속에 빠진 모습으로, 죄에 관대한 모습으로 살면 이런 것은 없어요. 주님의 말씀이 뭐에요? 이 처방을 따르지 않는다면 3절,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라고 엄중한 경고를 하셨습니다.

 

따라서 교회를 살리는 능력은요? 오직 주님께 있어요. 주님이 주권자 되심을 기억하고 주님이 생명을 주관하고 계심을 기억하고, 주님께 매달리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할 때, 주님이 주신 생명으로 주님을 위해 살 때, 어렵고 힘들어서 세상과 타협하는 모습이 아니라 주님의 도우심을 끝까지 구하면서 나갈 때, 우리 주님이 4~6절에 이 약속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옷 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첫 번째 약속이 무엇이라고요?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입니다. 이것은 영원히 흠 없이 의로워진다는 약속입니다. 두 번째 약속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입니다. 뭐에요? 영원한 의를 옷 입은 사람은 영원히 안전한 미래가 보장된다는 말씀입니다. “생명책”은요? 영원한 안전을 상징합니다. 우리가 장차 받을 복은 마치 하나님이 천국 시민의 방대한 등록부에 우리의 이름을 기록하신 것만큼이나 확실하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세 번째 약속이 시인입니다. 5절에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심판 날에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의 보증을 서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무리할께요. 우리는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사데 교회를 통해 죽은 교회의 특징이 무엇인지를 보았어요. 그 뿌리가 관용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융통성이 없고 변화에 저항합니다. 과거에 집착하고, 결국, 육신적이고 게으른 모습으로 남습니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경시합니다. 교회에 젊은이들이 있어야 성장하는데, 젊은이들이 올 수 없는 환경을 만듭니다. 살아 있는 교회는요? 어린이와 청소년이 하나님께 귀한 존재이자, 교회의 미래를 짊어질 세대임을 압니다. 그래서 다음 세대가 중요합니다. 우리 교회가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특히 죽은 교회는요? 전도와 선교에 열정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욕구와 취향과 편리함을 따라 내부를 지향하기 때문에,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원하는 일에는 건성으로 임하기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타성에서 벗어나기를 원합니다. 종교적인 쳇바퀴에서 벗어나기를 원합니다. 그 안에 그루터기가 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우리가요? 우리 교회가요? 적기에 사람들 눈에는 죽은 자 같이 보일 수 있어요. 하지만, 하나님의 눈에 죽은 자가 아니라 산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잎만 무성하고 열매 없는 신자가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세속적이고 타락했다 할지라도 영적 생명을 가지고 살아 있어 이기는 자가 바로 우리 교회, 여러분이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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