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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자

(갈 5:5~6)

 

 

오늘 말씀의 제목은요?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자”입니다. 이 제목은,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주신 2025년 표어입니다. 이 말씀 속에 담긴 의미를 나누면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본 구절은요? 갈라디아서 5장의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서는, 이미 우리가 [실라의 일기]라는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접했죠? 수신자는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등 남부 갈라디아 지역의 교회들이고, 바울이 제1차 전도 여행 때, 즉 행 13장과 14장에 나오는 이 전도 여행 때, 바나바와 함께 고난을 무릅쓰고 세운 교회들이 바로 갈라디아서 수신자입니다. 이곳은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핍박당한 곳이죠? 심지어 돌까지 맞아 죽을 뻔까지 했던 곳입니다. 그런데도 이 지역의 이방인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요? 올바르게 잘 믿었습니다. 큰 기쁨과 성령 충만을 경험하였습니다. 그 증거를 행 13장 48절에 찾을 수 있습니다. 들어보세요?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 된 자는 다 믿더라”

 

 

그런데 이것만이 아니에요? 하나님은 바울의 손을 통하여 표적과 기사를 행하였고, 은혜의 복음을 더욱 증거 하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제자들이 생겨났다고, 행 14장 21절에 나옵니다.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그러니까 이렇게 바울이 고난 중에 얻은 수고의 첫 열매가 바로 갈라디아 지역의 교회들입니다. 문제는요? 바울이 떠난 후, ‘다른 복음’에 미혹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다른 복음’이란, 그리스도를 믿는 것만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고, 할례 의식을 비롯하여, 구약 율법을 준수해야만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유대 율법주의적 가르침이었습니다. 이 ‘다른 복음’을 전한 자들이 누구냐? ‘율법에 열심 있는 자들’로, 자기만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과격분자들, 즉 열성적인 유대인 율법주의자들입니다. 여러분, 당시 초대교회 교인들의 구성은요? 히브리말을 하는 유대인인 히브리파 그리스도인이 있었고, 헬라어를 사용하는 유대인인 헬라 파 그리스도인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같이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후자를 이방인 성도라고 불렀죠?

 

 

그런데 이 이방인 성도가 배로 증가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서 히브리파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유대 전통이 허물어지는 것에 염려하는 자들이 생겨났어요?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믿는 것과 할례를 행하는 것을 함께 요구하였습니다. 우리가 새벽기도회 때 나눴듯이 이것 때문에 예루살렘 회의, 즉 총회까지 열렸잖아요? 모든 것이 잘 해결되었어요? 그런데도 히브리파 유대인들은 인정할 수 없다고, 계속해서 멀리 이방인 지역에까지 나아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라는 주장을 퍼뜨리며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바울이 간 곳을 일부러 찾아다닌 것 같아요? 그들은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는 것은 인정했지만,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외에 할례 의식을 비롯하여, 구약 율법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이 갈라디아 교회까지 와서 가르쳤습니다. 이 가르침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는 마치 ‘다른 복음’처럼 받아들여진 것이에요. 이들은 자기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려고, 바울은 다른 사도들보다 열등하다고, 사도도 아니라고 주장하였고, 바울은 정통 선교사가 아니라, 즉 예루살렘 교회에서 파송된 선교사가 아니라 ‘안디옥 교회에서 파송한 선교사’라고 깎아내리기까지 했습니다.

 

 

이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에 때문에 갈라디아 교인들의 신앙이 뿌리째 흔들리는 총체적인 위기 상황에 놓이니까, 바울은 이신득의의 복음,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의로워지게 된다는 복음 진리를 수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 갈라디아서를 기록하였던 것입니다. 이 율법주의자들의 주장이 무엇이었어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도 좋지만, 할례의 징표가 없으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도 없고,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의 수에 들 수도 없다는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더 깊이 들어가면, 이들은 결국 할례만이 아니라, 모든 율법을 다 지켜야 하는 문제에 놓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요? 본성상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아무리 율법을 완전하게 지키려 해도 불가능한 일이기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율법 아래 죽었던 우리들에게, 아니 죄로 인하여 죽었던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그를 믿는 믿음 안에서 그의 의를 우리에게 전가, Imputation을 시켜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법정적으로, forensic으로, 의롭다고 선언을 해 주신 것입니다. 구무엇이에요? 원의 길을 열어주신 것이에요.

 

 

그러기에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는 자”라고, 즉 ‘믿음을 좇은 참된 신자’라는 의미의 말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구원의 완성을 간절히 소망하며 기다려야 한다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믿음도 그냥 믿음으로라고 하지 않고, 성령으로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말을 했습니다. ? 이 말을 했을까요? 먼저 이 말을 한 이유는? 율법주의자들은 자신들의 공로, 즉 율법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 있다고 보았다는 것을 사도바울은 지적한 것입니다. 율법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 있다고 보는 예를, 마가복음 10장 17절에서 볼 수 있죠? 한 부자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와 들어가지 못할 자를 대조적으로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자신들의 공로, 즉 율법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 있다고 보는 좋은 예입니다. 막 10장 17절입니다.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앉아 묻자 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여기 한 사람은요? 부자요, 또 청년입니다. 누가는 그를 관원이었다고 소개해요. 여하튼 이 자가 예수님에게 찾아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는지를 물어요? 생각해 보세요? 돈도 많죠? 젊죠? 권력까지 가지고 있죠? 한마디로 성공자, 엘리트 아닙니까? 그런 이 청년이 찾아와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냐고” 묻습니다.

 

 

언뜻 보면 그의 질문은 교만이 가득한 자의 질문처럼 보이지만 아닙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있는, 지각이 있고 선량한 사람의 질문입니다. 더구나 그는 달려와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물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라고, 예수님의 주목을 받을 만한 청년이죠. 그는 선한 일을 해야 영생을 얻을 줄로 생각한 것입니다. 여러분, 구원은 무엇을 행함으로써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었기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부자 청년과 같이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는 질문을 할 필요가 없어요? 이미 영생을 얻었습니다. 그러기에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사는 자입니다. 그는요? 모든 율법을 준수했어요?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이었습니다. 그러나 영생은 자기 자신의 노력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만이 가능하기에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는 자는 참 자유를 누리는 자이고, 가장 큰 특징은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따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의의 선물, 즉 구원의 선물로 인하여 의의 소망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믿음도요? 나의 의지로 믿게 된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택하심과 때가 되어 부르심을 입어, 주의 성령님이 이루어 주신 선물입니다. 이 사실을 롬 8장 29~30절에 이렇게 밝히잖아요? 들어보세요?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그래서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는 자가 된 것이에요. 그러면 이 소망은 어떤 소망일까요? 여러분, 확실한 것은, 그리스도인은,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은? 그리스도가 주신 의를 이미 소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유했다고 해서 이것이 완성되었고 완전히 이루어진 의입니까? 아니죠? 의가 영광에 도달했을 때, 이루어질 것이기에 기다립니다. ​이 말은요? 구원받고 완전히 성화 되어 영화롭게 됨을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출발 되었습니까? 아버지께서 구원을 시작하셨고, 아들은 십자가에서 이를 이루시고 삶으로 보여주셨고, 이 구원을 우리에게 적용하셨는데, 그분이 누구냐? 바로 성령님입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일을 실행하신 것이에요.

 

 

여러분, 성령 하나님은요? 때로는 우리를 회개로 이끌고,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책망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믿을 수 있도록 생명과 이해력을 주십니다. 우리에게 구원의 확신을 주시고 거듭남과 성화로 이끄시며, 언젠가는 영화롭게 하실 이것을 기다린다는 것이에요. 그러기에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이 영광은 우리가 미래에 받을 영광이에요. 그래서 오늘 본문은 6절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 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이 믿음과 의의 소망도,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선물이기에, 결코 율법주의자들이 말하는 바와 같은 공로가 될 수 없다는 것이에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의 결과로 우리에게 주어진바 믿음의 선물만이 유효한 의의 소망을 갖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어서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을 이야기합니다.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란 구원의 믿음은, 사랑을 행함으로 진정한 성격이 드러나는 것을 말합니다. 즉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내면에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사랑하고자 하는 동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동기가 어디로 이끕니까? 가장 먼저는 예배를 사모하게 합니다.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합니다. 2024년도도 예배를 사모하는 우리였는데, 2025년에는 더욱 사모하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요? 말씀에 순종합니다. 신 28:1~10절입니다. 이 축복이 여러분에게 가득하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여호와께서 너를 대적하기 위해 일어난 적군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라.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며, 여호와께서 네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세워, 자기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니, 이는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할 것임이니라. 땅의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이름이 너를 위하여 불리는 것을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

 

 

여러분, 말씀을 잘 들을 때도 복을 받지만요? 순종할 때 복은 배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1절 하반부 말씀을 보세요.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축복은, 말씀을 잘 듣고 나서 그 말씀대로 잘 행하는 사람에게 주어진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뜻과 다를 때가 있어요? 그때가 축복의 기회입니다. 그때 순종하면요? 축복받고 그때 불순종하면 축복이 사라집니다. 요셉과 다니엘을 보세요? 그들은 이방 왕의 포로였어요? 그런데도 말씀대로 살았습니다. 축복이 임하였습니다. 사렙다 과부도 보세요? 한 병 기름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순종하였습니다. 병에 기름이 끊이지 않았잖아요? 축복의 기회는요? 늘 찾아옵니다. 그 가운데 순종은 축복과 직결된 신호입니다. 순종의 기회가 왔을 때, 순종하면 여지없이 축복이 찾아옵니다. 그런데 이것을 깨닫지 못해요? 왜 순종의 축복을 깨닫지 못할까요? 말씀에 순종해도 당장 복이 임하는 것 같지 않은 생각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에게는요? 어떤 모양으로든지 반드시 축복이 주어집니다. 복을 받고 복을 받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세요? 순종의 차이입니다.

 

 

그리고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을 가진 자는 이웃을 위한 희생적인 사랑을 드러냅니다. 여러분, 믿음도 선물이듯이 사랑도 또한 선물입니다. 그러기에 “사랑을 통하여 역사한다.”가 되는 것입니다. 왜요? 그 사랑을 실천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사랑으로 그리스도의 계절을 앞당기는 역사가 임하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이제 말씀을 마무리할게요. 오늘은 2024년 마지막 주일예배입니다. 그리고 우리는요? 오직 은혜로 구원받은 존재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습니다. 율법으로는 구원을 받지 않았어요? 심지어 할례를 행함으로도 구원을 받지 않았습니다. 구원은 단 한 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오직 믿음을 통해서 얻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 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입니다.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린 자가 되었습니다. 성령을 힘입어서, 믿음으로 의롭다고 하심을 받을 소망을 간절히 기다리는 자가 되었습니다. 2025년에 우리 사랑의교회에 성령의 역사가 가득하기를 소원합니다. 성령님 안에서의 믿음의 삶이 넘치는 교회,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의 삶을 보여주는 교회와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성령님 안에서 걷고요? 성령님 안에서 살고요? 성령님께 순종하고, 지속적으로 성령 충만 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 위에 계시는 하나님의 권위를 가진 성령님과 함께 사랑으로 역사가 임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가 소유한 믿음의 뿌리는 사랑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그의 아들을 보내시어 십자가에서 속죄케 하심으로 우리에게 믿음을 가지게 하셨습니다. 이 같은 사랑이 없다면 믿음이 역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 은혜를 우리만 간직한다는 것은 모순입니다. 다른 이들도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사랑을 다른 이들에게 베풀고, 허다한 것을 덮으면서, 아끼고 감싸고, 품어주고, 그래서 그들을 하나님 품으로 인도하는 역사가 임하기를 원합니다. 말씀에 순종하고 성령님의 권위에 복종하고, 사랑을 통하여 역사를 체험하는 우리 사랑의교회, 2025년을 기대하는 우리와 우리 사랑의 교회가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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