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이 시작되었어도”
(사도행전 4장 1~12절)
처음에는 성도 수가 120명이었죠? 교회라고 보기에는, 마가 다락방에 기도하기 위해 모인 이들이지, 아직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 120명에서 갑자기 성도가 3,000명이나 들어오면, 그것도 하루 만에 그렇게 되었다면, 정신없는 것은, 기본이었을 것이고,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랐을 것입니다. 새벽기도 후에 어느 목사님들과 아침 교제를 나눴는데, 갑자기 한 목사님이 자기 교회에 [주일 학교]가 생겼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 소리에, 옆에 계신 목사님이 한숨을 쉬었어요? 우리는 나이 드신 분들이 너무나 많은데 우리는 언제 그날이 오냐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서로를 위로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생각해 보세요? 늘어난 성도로 인하여 장미꽃 같은 생각이 들지 않았겠어요? 그러나 과연 장미꽃 같았을까요? 초대 교회가 장밋빛 꽃길만 걸으며 쉽게 성장한 교회였을까요? 아니었습니다. 고난과 역경과 핍박과 시련을 통과하면서, 더 강해지고 더 뜨거워진 교회가 되었습니다. 즉 성령이 강하게 역사한 만큼 어둠의 세력도 강하게 저항하였다는 이야기에요?
우리가 지난 주일에 나눴던 베드로의 능력 있는 설교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예수 믿고 세례를 받아 하루에 3천 명이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특히 성전 미문에서 날마다 구걸하던, 나면서부터 다리를 못 쓰던 자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는 놀라운 역사로 인하여, 교회는 엄청난 성장을 만났죠? 하지만, 사탄도 정확한 타이밍으로 강하게 역사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이것을 보여줍니다.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하는 것이, 몹시 싫어하는 자들이 등장하죠? 그것도 아주 정확한 타이밍에 등장합니다. 1~2절입니다.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 지금 베드로가 있는 곳이 어딥니까? 솔로몬 행각이죠? 이곳에 모인 이들에게 “왜 이 일을 놀랍게 여기냐? 우리를 주목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아니고 예수의 이름의 능력이 이 사람을 고쳤다.”라고 가르치고 전함에, 싫어한 자들이 등장했고, 굉장히 마음이 불편했던 자들이 온 것입니다.
이들을 누구라고 했습니까? 본문은 제사장들, 성전 맡은 자, 사두개인들이라고 하였어요. 제사장들은 성전에서 행해지는 종교의식을 주관하는 사람들을 말하죠? 원래는 아론의 자손들이 이 일을 감당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자리를 돈을 주고 샀습니다. 그래서 로마가 임명한 자들이에요. 6절에 당시 로마에서 임명한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를 거론하죠? 예수님을 죽이게 만든 장본인들이고, 유대인들을 선동하여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했던 자들이며, 로마의 유대 총독 빌라도에게 압력을 가했던 이들이 등장하죠. ‘성전 맡은 자’도 왔습니다. ‘경비대장’을 말해요. 예루살렘 성전의 치안과 경비의 총책임자로 대제사장 서열입니다. 그리고 사두개인들이 왔어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실권을 쥐고 있는 자들로, 로마제국과 아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자들이 왔습니다. 그러니까 권력과 부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던 이들이 왔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안나스와 가야바도 사두개인이고, 성전 맡은 자도 사두개인이고, 사두개인들이 온 것입니다.
왜? 왔어요? 하나님의 외아들임을 자칭하는 나사렛 출신 예수가, 자신들의 권력과 부를 지탱해 주는 기존 사회와 종교의 질서와 자기들의 기초를 흔드는 위험인물로 간주하여 제거하는데 앞장을 섰었는데, 지금 갈릴리 출신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 한마디로 촌뜨기들이 자기들의 허락도 없이, 그것도 자기들이 맡은 성전 안의 솔로몬 행각에서, 자기들이 제거해 버린 예수가 부활했다고, 유대인들이 그렇게 기다리던 메시아가 예수라고, 마지막 날 만물을 회복하실 심판 주라고 가르치니까, 부활이 없다고 가르쳤던 자신들에게 어려움이 생길까 봐 급히 왔어요? 사도들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떼로 몰려와 냥 두었다가는 어려워지니까, 체포해 버립니다. 3~4절입니다. “그들을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유대 종교 관습에 날이 저 무면, 죄인을 심문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주 깜깜한 밤에 잡혔죠? 재판을 받을 수 없는 불법을 저질렀어요?
안나스의 집으로 끌고 왔고, 바로 가야바 집으로 끌고 갔습니다. 해가 지면 죄인을 심문할 수 없다는 규정을 이때는 어겼습니다. 그런데 웬일로 이 법을 지켜요? 해가 저무니까 베드로와 요한을 감옥에 가둡니다. 그러면 여기까지 한번 정리해 보죠? 베드로와 요한이 12시, 그러니까 오후 3시에, 유대인들의 정한 하루 마지막 기도 시간에 기도하려고 성전 미문으로 들어가죠? 그런데 거기에서 나면서부터 다리를 못 쓰던 그 사람을 보고 예수의 이름으로 일으킵니다. 고침을 받은 그가 성전으로 같이 들어갑니다?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그런데 이 나은 사람을 모두가 알잖아요? 그가 나은 것에 대한 것도 놀랍고 고침을 받은 그가 예배당에 들어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에 놀랐습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어요? 그들에게 베드로가 설교했는데, 해질 때까지 전했습니다. 그러다가 저녁때에,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하니까, 몹시 불편했고, 몹시 싫어하는 이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때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예수를 믿은 자들이 남자만 오천 명이었다는 것입니다. 현실은 베드로와 요한이 감옥에 갇혔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박해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오히려 부흥했어요?
베드로와 요한이 한 게 아니죠. 하나님이 하신 일이죠. 이 박해하는 자들의 실체를 본문은 드러냅니다. 5~7절입니다. “이튿날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하여,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베드로와 요한 때문에 ‘공회’가 소집되었어요? 이 공회는 유대인들의 종교 문제 최고 의결기관이에요. “장로들과 서기관들”도 모였다는 것은 바리새파와 사두개파가 같이 모였다는 말입니다. 평소에는 원수인데, 예수님을 죽이는 데에 모였듯이 베드로와 요한을 처리하는 데에 같은 목적으로 모였다는 것입니다. 왜냐? 이들이 바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장본인들이기에 그렇습니다. 성전 문 앞에서 다리 못 쓰던 사람이 일어나도록 기적을 일으킨 자들이 바로 ‘베드로와 요한’이고, 이 둘은 자신들이 못 박아 죽인 ‘예수의 제자들’이라는 것도 아는데, 문제는 이들이 전한 메시지가 자기들이 죽인 예수가 부활했고, 그 메시지를 들은 청중들이 믿었는데, 남자만 5천 명이라는 사실, ‘나사렛 예수를 죽이면 다 끝났다고 생각했던 이 일이, 이제는 예수의 제자들이 더 큰 영향력으로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미치고 있으니 어떻게 하면 좋으냐?’라는 문제로 비상대책회의가 소집된 것입니다.
그들 마음 한쪽에는 사도들이 나면서부터 다리 못 쓰던 사람을 고친 큰 기적 때문에 구름 떼같이 모인 그 자체를 너무나 싫었고, 너무나 불편했습니다. 게다가 베드로 설교에 백성들이 귀 기울여 들었다는 것도 몹시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이 조작과 조종에 능한 이들의 질문이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입니다. 한마디로 무엇이에요? ‘여기는 우리 구역이야? 누구 허락 받고 이 짓을 해?’입니다. 심지어 부활 이야기는, 사두개인들 자체가 부활을 안 믿는 자들이기에 더 불편했어요? ‘부활이 있다. 너희들이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다’라는 열광적인 반응을 막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성전 맡은 자, 즉 경비대장이 왔고 그들을 잡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미 일어난 기적을 막을 수 있나요? 없죠? 왜냐? 이미 일어났고요? 그리고 사람들이 다 봤기에 그렇습니다. 성령 충만한 베드로가 이어서 공 회원들에게 이 말로 시작하죠? 8절입니다.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라는 의미는요? “그 안에 계신 성령이 충만하게 하여, 그가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그가 성령의 지배를 받아, 그에게 성령이 역사하셔서”입니다. 담대히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할 말을 생각나게 하심을, 아니 이미 주님께서 말씀하셨던, 마 10장 19~20절이죠? “너희를 넘겨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성령이 역사하셔서 담대히 전하는데, 종교 지도자들의 겁을 주는 말을 했어도, 담대하게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라고 문을 열며 이어서 이 말을 전합니다. 9절입니다.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베드로는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이라고 말을 먼저 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이 사람에게 있어서 ‘아주 유익한 일’이기에 그렇습니다. ‘너희들도 알고 있듯이 이 사람은 나면서부터 다리를 못 썼으니 얼마나 불쌍하냐? 그런데 그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어났다. 그러면 하나님께 너무 감사해서 찬양하고 기뻐해야 하는 것이 정상 아니니? 이 불쌍한 사람이 회복되었으니 축하 해주는 게 당연한데, 너희들은 그것이 아니네?’라고 말을 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너희의 질문이 잘못되었다.’라고 것이죠?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라는 질문이 잘못된 질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누가 했고? 누구 권세냐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받았는지를 먼저 질문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베드로이고, ‘하나님이 어떻게 이런 일을, 일으키셨는가? 하나님이 해주셨구나?’ 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지, ‘누구 권세로 했냐? 너희는 권세도 없는데 왜 함부로 이 일을 했느냐’라는 데 왜 관심을 가지느냐는, 완전히 다른 관점을 이야기하죠? 여러분,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질문이 무엇이에요? ‘하나님의 이적도 우리를 통해야만 한다’ 이것이 건요. 반면에, 베드로는 ‘어떻게 이 사람이, 구원을 받았는가?’ 이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음과 주님이 하셨으면 되는 것이지, 본질을 제쳐놓고 왜 자꾸 비본질적인 문제로 본질을 흐려 놓느냐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 본질적인 이야기를 하죠? 이 역사의 주인공인 예수 그리스도, 능력의 이름 예수 그리스도를 이들 앞에서 담대히 전합니다.
10절입니다.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기적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예수님이시다.’임을 선포하죠? 그러면서 이어서 그분이 어떤 분? 11~12절에 밝힙니다. 우리 다 같이 읽어봅니다.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이 말씀이, 오늘 본문의 핵심이자 결론입니다. 베드로가 전한 이 말씀의 내용이 무엇이에요? ‘율법과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 다, 예수를 버렸다. 공사장에서 쓸모없는 돌을 버리듯이,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그러나, 하나님이 예수를 다시 살리셨다, 그리고 우리 구원의 머릿돌, 하나님 나라의 머릿돌이 되게 하셨다’입니다. 즉 시편 118편 22~24절을 이루신 것입니다.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이날은 여호와께서 정하신 것이라 이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
이것이 오늘 말씀의 내용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머릿돌, 영어로 cornerstone이죠? cornerstone은, 건물의 핵심입니다. 건축할 때 머릿돌이 없으면 건물이 무너져 내립니다. 그래서 아주 중요한 돌입니다. 무슨 이야기냐면요? 예수님을 빼면 구원도 없고요? 하나님 나라도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기에 “오직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입니다. 예수 외에 다른 길도 없고요? 오직 예수만이 유일한 길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주님이 이미 요 14장 6절에 말씀하셨어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누구도 아버지께로 올 수 없느니라” 예수님만이 유일한 길입니다. 교파가 아니에요? 모태신앙이라 할 지라도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해야만 합니다. 감리교 창시자 존 웨슬리 목사님이요? 기도하다가 순간 깊이 잠이 들어버렸데요. 꿈에 천국에 들어섰는데, 직전에 천국 문을 지키는 천사가 계시기에 이 질문을 던졌답니다. “천사님, 나와 함께 영광스러운 복음 운동인 감리교 운동을 하던 친구들이 얼마나 천국에 들어와 있나요?”
그 질문에 천사가 잠깐 기다리라고, 명부를 한참 뒤져보더니 “미안하네요? 감리 교인은 한 명도 없네요?”라고 말해주었답니다. 너무 놀라 다시 물었데요? “그렇다면 장로 교인들은 천국에 몇 명이나 왔나요?” 아무래도 장로 교인들과 불편함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이 질문에 천사 왈, “미안하지만, 장로 교인도 한 명도 안 왔네요?” 천사의 그 말에 속으로 “아무래도 종교개혁이 실패했나?” 중얼거리면서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면 천주교 교인들은 얼마나 들어와 있나요?” 이번에도 똑같은 답을 하였습니다. “천주교 교인이요? 한 명도 없습니다.” 그의 이 대답에 너무 괴로워서 또 물었답니다. “그렇다면 누가 천국에 들어왔는데요?” 천사가 이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천국에는요?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한 사람만이,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만이 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를 믿는 사람만이 천국에 들어갑니다. “이 예수 밖에는, 다른 아무에게도 구원은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주신 이름 가운데, 우리가 의지하여 구원을 얻어야 할 이름은, 하늘 아래에 이 이름밖에 다른 이름이 없습니다.” 이 예수 이름 때문에, 초대 교회는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담대히 예수를 전했습니다. 왜요? 그들 안에는 이 고백으로 가득했기에 그렇습니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영 죽을 내 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 우리 또한 고난이 시작되든 그 가운데 있더라도 담대히 예수를 전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예수의 능력을 날마다 체험하시는 여러분, 우리 사랑의교회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