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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음과 한뜻이 되어”

(사도행전 4장 32~37절)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의 제목은 “한마음과 한뜻이 되어” 입니다. 아주 오래전입니다. 지인들과 함께 ‘기독교 공동체 브루더호프’라는 곳에 가본 적이 있었습니다. 이 공동체는 초대교회의 모형을 따라가고 있는 곳으로, 뉴욕주에는 5곳, 펜실베이니아주에는 2곳이 있습니다. 제가 가본 곳은, 87번 North 방향으로, 그러니까 [알바니] 방향으로 올라가면요? 먼저 [우드버리 아울렛]이 나오고, 그곳에서 1시간을 조금 더 올라가면 나오는 [브루더호프]입니다. 모든 것을 함께 나누는 곳이었고, 개인의 재산을 소유하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산상 수훈을 실천하는 제자들이 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시골 에서 구별되어 사는 공동체입니다. 제가 가본 그곳은 경찰대학 건물을 인수해서 만든 공동체이었습니다. 집과 토지 등 모든 재산을 함께 나누면서, 자체 학교도 있었어요? 같이 운영하는 공동 사업인 어린이용 나무 인형은 세계 일등제품입니다. 아미쉬, 메노나이트도, 퀘이커, 모두가 전통적인 기독교 공동체죠? 그런데 이 공동체는, 이들보다 더 개방적이었고 적극적이었습니다. 제가 이곳을 방문하면서 가진 생각은 ‘과연, 이것이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정말로 대단하다’ 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요? 이것보다 더 멋지고, 더 대한 모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누가는 4장 마지막으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에 성령이 함께함으로 놀라운 역사를 써간 이 아름다운 공동체의 모습을 나누면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먼저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사도행전의 내용들이 잠시 복습해 봅니다. 오순절에 성령을 받은 초대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에게 놀라운 변화와 사건들이 있었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방언하였고, 여러 나라 언어로 하나님의 큰일을 선포했습니다. 베드로의 담대한 설교로 인하여, 그날 3천 명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고, 교회로 들어오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성도들은 기쁨과 감격으로 넘쳐 매일 성전에 모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으며, 가정마다 소그룹으로 모였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들을 더해주시는 놀라운 참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어요? 심지어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에 기도하러 가다가, 나면서부터 다리를 못 쓰던 사람을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으켰습니다. 그날 그것을 본 사람 중 남자만 5천 명이 믿었어요?

 

 

베드로와 요한이 공회에 붙잡혔죠? 그러나 예수님을 죽였던 그 공권력의 핵심적인 인물들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두려워하지 않았고, 담대히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선포하였으며, 담대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돌아와 초대교회 교인들에게 있었던 일을 나누었고, 그들은 함께 모여 합심해서, 소리 높여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마치매 그곳이 진동하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셨죠? 모두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복음을 담대히 전했습니다. 이전에는 이런 사람들이 아니었는데, 예수 믿고 성령 받아 교회 공동체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 변화의 내용이 오늘 본문이에요. 32절입니다.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무슨 이야기에요? 그들의 인생관, 그들의 세계관, 그들의 물질관이 바뀌었다는 이야기죠? 분명히 자기 재물인데, 자기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누가 시켜서나 강제가 아닌 자유로운 마음으로 섬겼어요.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았다.’가 되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성령께서 역사하시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실천하는 것입니다.

 

 

마치 큰 통에 물이 가득 차서, 그 물이 밖으로 흘러넘치는 것처럼, 성령이 이들에게 가득 차, 충만해져,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나게 하였습니다. 누가? 본문은 “믿는 무리”라고 하였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는 이 초대교회 성도들이, 초대교회 공동체가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고,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물질에 대한 개인적인 태도의 변화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공동체적으로 변화가 생겨, 예루살렘 교회 공동체 차원에서 돕는 것입니다. 이것을 “한마음과 한뜻”으로, 돈을 사용 함에 마음이 하나가 되었고, 모두가 구제와 사역도 한마음, 한 뜻이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가 되었습니다. 다 같이 나누고 다 같이 썼다는 말이에요. 다른 사람의 필요가 눈에 띄어, 자기 물건이 아깝지 않았습니다. 내가 뭔가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나보다 저 사람이 더 필요하다고 여겨져 나눠주고, 또 받는 그도요? 어떤 것이 있는데, 그것이 나에게 필요할 것으로 여겨 가져다주고, 이렇게 서로의 필요에 따라 공급해 주는 아주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자기 재물을 조금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가 되었습니다. 물건만이 아니라, 자기 돈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합니까? 너무나 비현실적이잖아요? 즉 솔직히 불가능한 일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안 그래요? 어떻게 자기 것을 자기의 것이라 주장하지 않습니까? 바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아니 바보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분명히 내 물건이고 내 돈인데, ‘내 물건, 내가 가진 돈,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위해서라면 내가 당연히 쓸 수 있지.’라고 기뻐하며 스스로 내놓아요? 성령이 임하니까, 성령께서, 실천하게 하십니다. 저는 말씀을 준비하면서 성령께서 이 역사를 이루시지만 이것이 주는 의미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계속 묵상하다가 이사야서 11장에 나오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중에 6~8절 말씀인데, 들어보세요?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여러분, 이 구절은요? 천국에 관한 비전의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결과가 이렇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천국이 이와 같은 평화의 상태에 놓여 있음을 말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게 됨으로 이 믿음이 죄와 사망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되어 이 결과를 누린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어떻게 이리와 표범이 어린 양과 함께 잘 지내요? 어린양이 그들의 밥이 됩니다. 어떻게 어린아이가 독사 굴에 손을 넣어도 아무렇지 않아요? 독사에 물리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지만 이사야가 말하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이 세상의 방식 또는 가치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방식과 가치를 변화시켜 가는 것이, 천국을 이루는 길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천국을 만들 수 있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죄로 인하여 조화가 부조화로 되었기 때문에, 진짜 회복은요? 주님이 다시 오심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이 되어야만 가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통치를 받게 되면, 세상의 방식과 가치를 따르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하나님의 통치를 따르게 하고 세상의 가치를 따르지 않도록 인도하시기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계속 보면, 이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33~35절입니다.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그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교회도 은혜를 받고, 믿는 무리들도 은혜를 받고,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고, 이로 인하여 더더욱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았는데, 놀라운 결과는 그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 일까요? 물질 중심적인 가치들이, 아니 이기주의적인 가치들이 배격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존재 중심적인 가치로 바뀌고요? 이타주의적인 가치로 전환되어, 그 변화를 드러내었기에 이런 결과가 생겼습니다. 천국을 경험하게 한 것입니다. 세상의 방식과 가치를 거스르는 일이 일어난 것이고요? 하나님의 통치를 따르니까, 현실은 불가능이지만, ‘이것이 가능하구나’라는 모습이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은혜를 받은 분들이 밭과 집을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가지고 왔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께 헌금을 드렸습니다. 이 헌금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교회가 나누어주었고, 나누어 줄 때, 아무도 자기 것을 자기 것이라 주장하지 않은 것입니다.

 

 

자기보다 힘든 이웃을 보면 바로 내놓았어요. 있는 사람들이 앞장을 서서 한 것이 아닙니다. 부자 성도들이, 돈이 있다고 해서 가난한 성도들을 도운 것도 아닙니다. 모두가 자기 형편대로 했습니다. 밭과 집이 있는 사람들은 팔아 헌금했고, 그 외에도 많은 사람은 물건을 서로 나누었어요? 나누면서 자기 재물도 자기 것이라 하지도 않았습니다. 이 일을 모두가 동참한 것이에요. 그러면서 오늘 본문은요? 그중에 대표로 이 한 사람을 소개하면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36절을 볼까요?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누가는 대표로 이름은 바나바, 본명은 요셉이라고 그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나바라는 의미가 ‘위로의 아들’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진짜 이름은 요셉인데, 바나바라고 사람들이 불렀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사람들을 잘 위로하고 격려하니까 위로의 은사가 있었으니까, 착한 그에게 붙은 이 이름 바나바를 대표로 소개하면서 오늘 본문을 마무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의 고향까지 이야기해요? [구브로]라고 했습니다. 사이프러스라는 지중해 한가운데 있는 섬인데, 그리 작지 않은 섬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첫 전도 여행을 한 곳이죠?

 

 

그를 ‘레위 족’이라 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교역자 집안의 아들, PK입니다. 왜? ‘레위 족’임을 말할까요? 하나님이 열두 지파 중에 레위 지파를 택하셨고, 그중에서 아론과 그 후손들을 제사장으로 세우셨고, 나머지 레위 사람들은 성전을 돌보는 사람으로 세움을 받았지만, 여호수아서나 민수기에 나오듯이 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땅, 즉 기업을 주지 않으셨는데,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그에게 땅이 있었다는 것,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인지 모르지만, 그가 그 땅을 조용히 팔아 교회에 헌금했고, 사랑의 행동을 보였다고 대표로 그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즉 많은 사람들이 이 일을 하였지만, 누가는, 유독 이 바나바를 소개하면서 오늘 본문을 마무리했다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바울 때문에, 바울을 소개하려는 누가의 의도입니다. 미리 소개하는 이유가 사도 바울을 이야기하려고, 사도 바울이 위대한 사도가 될 수 있었던 큰 인물이 있었는데, 바로 위로의 아들인 자, 그가 바로 바나바라고, 그가 이렇게 헌금하였다고 소개하면서 오늘 본문은 끝을 맺고 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부터 사도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은요? 박해에 들어갑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하나님을 섬기다가, 잡혀 온갖 잔인한 방법으로 순교합니다. 이들의 모습을 보면요? 처참하고 불쌍한 인생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들은요?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유효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valid 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이 유효하다고 인정해 주시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역사 속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들은요? ‘교회’라는 이름의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그것도 팔레스타인 지역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 이 교회는 오늘날 온 세계로 확장되었고, 우리 또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를 누리며, 우리는 우리 사랑의교회의 공동체로 모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나중에 나누겠지만, 이들에게 임한 박해로 인하여 복음은, 예루살렘과 유대로부터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전해졌고, 그 시작이 스데반의 순교함으로, 빌립은 사마리아로 갔으며, 스데반의 죽음에 관여했다가 이후에 개종한 바울은 안디옥을 기지로 삼아 온 세계를 향해 복음을 들고 나아갑니다.

 

 

베드로도 박해를 피해 로마를 떠나려다, 로마로 향하는 주님을 보고 ‘쿼바디스 도미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나는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러 로마로 간다’라는 주님의 말씀에 발길을 돌려, 로마에서 담대히 복음을 전하다가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순교하였다고 전해지죠? 야고보도 예루살렘에서 헤롯 아그립바에 의해 44년경 순교합니다. 기원후 54년에는 어떤 일이 있었나요? 로마 황제 네로가 로마를 불태우죠? 대화재를 일으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을 희생양으로 삼습니다. 짐승 가죽을, ‘믿는 무리들’에게 입혀 개들에게 찢겨 죽게 했고, 십자가에 달거나 불태워 죽였고, 날이 캄캄해질 때는 이들을 태워 횃불로 사용하였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이렇게 순교하였습니다.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는요? 그리스도인들은 지하, 즉 카타콤으로 숨습니다. 이 카타콤의 길이가 무려 약 1,700km나 된다고 합니다. 사도행전 17장 6절에서 밝히듯이 세상은, 이 믿는 무리를 가리켜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사람들!”이라고, “세상을 뒤집어엎는 사람들”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근거가 바로 그리스도인, 예수 믿는 이유입니다. 이 이유, 한 가지 때문에 붙잡혔고 순교했습니다. 그들은 신앙을 지켰고, 기꺼이 고난의 잔을 당당하게 마셨습니다. 정말로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유효한 인생, valid 한 인생, 하나님이 유효하다고 인정해 주시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우리도 이 인생으로 마무리되기를 원합니다. 영원한 것에 가치를 두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초대교회 공동체처럼 똑같은 모습은 아니어도, 한 마음과 한뜻이 되어 구제하고 예수를 전하는 우리들, 우리 사랑의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랬을 때 우리도 하나님의 칭찬이 임하리라 믿습니다. ‘아무개야!~ 네 인생은 유효하였구나. 참 잘했다.’라는 칭찬을 받으리라 믿습니다. 무엇이 이들에게 있기에, 이들은 이처럼 살아갈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께 받은 복음의 은혜입니다. 이것이 너무 컸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행 20장 24절,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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