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GPS: 성령”
(사도행전 8장 26~40절)
여러분도 경험하셨겠지만, “네비게이션이 없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어디를 가려면 지도책을 들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어딜 가든 스마트폰 GPS가 안내를 해주어서, 목적지만 입력하면, 정확하게 목적에 도착합니다. 심지어 가다가 잘못 가도 다시 경로를 재탐색해서 올바른 길로 인도해 줍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예수님 다음으로 믿을 만한 것이 ‘네비게이션’이라 합니다. 세상의 GPS는 [갈멘]이라는 회사가 최초로 내놓았죠? 하지만 이것보다 훨씬 일찍 나온 신앙 인생 GPS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 하나님”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현장 지휘관”으로, 우리가 이해할 수 없어도, 정확히 주님의 길로 이끄시는 내비게이터입니다. 안내하는 길이 때로는 우리가 기대한 길이 아니더라도, 아니 넓은 고속도로가 아니라, 황량한 광야일 수도 있고, 낯선 사람의 수레 옆일 수도 있더라도, 하나님께서 준비한 영혼을 만나게 합니다. 오늘 본문이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성령은 빌립에게 ‘광야로 가라’고 합니다. 그가 즉시 순종하죠? 광야에서 누굴 만나요? 에티오피아 내시를 만납니다. 에티오피아의 고위 관리죠?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내시입니다. 오늘날 수단 남부 지방의 여왕의 국고를 담당한 고위 관료입니다. 그가 예루살렘에서 예배하고 돌아가는 길에 이사야서를 읽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 의미를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광야로 이끈 성령이 빌립에게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다가가 “읽는 것을 깨닫느냐?”라고 묻죠? 그 말에 내시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으면 어찌 깨달으리요”라고 답하였고, 빌립은 이 말씀을 풀어주면서 예수님을 전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나의 구주로 영접한 그는 가는 도중에 물이 있기에 “내가 세례를 받는 데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라고 하면서 “당신이 전심으로 믿으면 가하니라.”라는 세례 문답,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다”라는 고백 후에, 즉시 세례를 받습니다. 물에서 올라와 기뻐하며 그의 길을 갔고, 주의 영은 빌립을 이끌어 다른 곳, 즉 아소도에 나타나 가이사랴까지 복음을 전했다는 말씀이 오늘 본문입니다. 하나님의 GPS인 성령이 이렇게 움직였는데, 이 움직인 현장에 오늘 우리가 다시 가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를 나누면서 하나님의 GPS인 성령께서 주시는 큰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몇 가지를 같이 생각해 봅니다.
첫째로, ‘광야도 사명의 자리’라는 말씀입니다. 26절입니다.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하나님의 GPS 성령은 빌립을 사마리아의 큰 부흥의 현장을 뒤로 두게 하고, 사람 하나 없는 광야 길, 논리적이지 않은 길로 가라는 황당한 명령을 받습니다. 가라고 하신 그 광야 길에서 에티오피아 내시, 즉 아프리카 고위 관리를 만나게 하시죠? 27~28절입니다.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데 수레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그가 예루살렘에서 예배하고 돌아가는 중에 마차 위에서 이사야서를 읽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를 위하여 하나님의 GPS 성령은, 광야의 그 자리가 사명의 자리가 되게 하였습니다. 즉 복음을 전할 특정한 사람을 정확히 염두에 두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광야로 내려가라”, “그 수레로 가까이 가라”라고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어요? 어떤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정밀한 명령이고 만나야 할 ‘그 사람’을 하나님께서 이미 정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조직신학에서는 “복음을 전할 ‘그 사람’을 하나님께서 이미 정하셨다”, ‘하나님의 예정’, ‘특효적 부르심’에 근거한 구원의 섭리라고 합니다. 여러분, 예정이라는 의미는 하나님께서 세상이 창조되기 전부터 어떤 사람들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이 은혜를 위해 하나님은 세상이 창조되기 전부터 작정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롬 8장 29절에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미리 정하셨고”라고 말씀하셨고, 엡 1장 4절에서도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에티오피아 내시가 바로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자”였습니다. 말씀을 찾고 있었던 그를 위해 하나님은 빌립을 보내어 ‘부르심의 자리’로 인도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GPS인 성령님은, 구원의 길을 단지 제시하시는 분이 아니라, 그 길을 걸을 사람을 ‘정하신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목적지를 알고 계셨어요? 빌립은 그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한 사람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작전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 우리는 무심해도, 하나님은 누군가를 ‘염두에 두고 계신다’라는 이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자세는 ‘보내심의 확신’입니다. 지금도 우리에게 예루살렘에서 가사, 지금의 가자 지구로 내려가는 길로 가라고, 친절하게 설명까지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 길이 복음의 길목이고, 생명의 장소이며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길이고, 광야도 사명의 자리이기에 “그 수레로 가까이 가라”고 하십니다. 이 성령의 명령에 순종하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두 번째는, 그러면 ‘어떻게 순종하느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타이밍에 맞추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타이밍은 인간의 계산에 맞추지 않습니다. 초월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시간표를 기준으로 움직이지만, 하나님은 자기 시간 안에서 가장 정확하게, 가장 선하게 일하십니다. 이것을 다른 표현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때’입니다. 예를 들어서요? 아브라함은 아들이 없었죠?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신 기한에 사라가 잉태하고…” 하나님의 때에 이삭이 탄생합니다. 인간의 시간으론 늦은 시간이지만, 하나님의 시간은 정확했습니다. 모르드개가 왕후 에스더에게 이 말을 하죠?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유다 민족을 향한 하만의 음모 속에서, 에스더가 침묵하지 말고 왕에게 나아가 달라고 요청하며 이 말을 합니다.
무엇이에요? 하나님은 그녀를 “이 때”를 위해 준비시키셨다는 것입니다. 만약에요? 빌립이, 광야로 늦게 출발했거나 주저했다면, 에티오피아 내시를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생각이 정리된 다음에 움직이지 않았어요? 말씀을 들은 그 순간, 움직였습니다. 즉 하나님의 타이밍에 맞추었습니다.
제가요? 사랑의교회 부목사로 섬기고 있었을 때입니다. 사랑의교회에 부목사 중 최재하 목사님이라고, 우물가 사역을 하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강남 유흥가를 중심으로 전도사역을 하시는 분입니다. 하루는 수요 예배 시간에 그 목사님이 설교하셨습니다. 말씀을 전하면서 이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하루는 본인이 동네 목욕탕에 들어갔답니다. 그 시간이 늦은 오후 시간이었데요. 그러니 목욕하려는 손님도 없었답니다. 혼자 ‘목욕하는구나’ 하면서 “야, 시원하다!” 하며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반대편에 어떤 분이 목욕하고 있는 것입니다. 수증기 때문에, 자세히는 안 보였지만, 그의 몸에 새겨진 호랑이 문신은 정확하게 보였습니다. 순간 콧노래도 멈추고 침묵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그의 마음에 예수님을 전하라는 성령의 음성을 들렸습니다. 그 음성에 그는 순종하지 못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문신이 주눅 하게 만들었기에 그렇습니다. 그래도 성령님은 계속 전하라는 것입니다. 망설였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러다가 그에게 다가 이렇게 말을 건넸습니다. “저, 선생님, 등 좀 밀어드릴까요?” 그랬더니 퉁명스럽게 “괜찮습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 말에 더욱 위축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용기를 내고 다시 말을 걸었습니다. “지금 이곳에 선생님과 저밖에 없어요? 제가 먼저 선생님의 등을 밀어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선생님도 제 등을 밀어주면 어떻습니까” 간신히 허락받고 그분의 등을 밀기 시작했습니다. 목사님은 열심히 그분의 등을 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정도 등을 밀다가, 이제 복음을 전하려고 말문을 열려는데, 갑자기 그를 찾는 전화가 온 것입니다. 밖에서 “이봐 형씨, 형님이 찾아! 전화 받아?” 그 소리에 그는 나가버렸어요? 복음도 전하지 못하고, 끝나고 말았습니다. 목사님은 설교 도중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성령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는데, 하나님의 타이밍을 주셨는데, 저는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왜? 문신 때문에 망설였는지, 무척 회개하였습니다”라고요.
하나님은 목사님과 조폭의 만남이라는 타이밍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이해가 앞섰습니다. 순종은요? 이해보다 앞서는 것입니다. 빌립은요? 사마리아 부흥 한가운데 있었지만, 하나님의 지시로 순종하였습니다. 이해한 후가 아니었습니다. 합리적인 결정만 하려고 한다면 하나님의 역사는 없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하나님의 영적 인터뷰’입니다. 하나님의 영적 인터뷰이라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에서 강조가 무엇이에요? 하나님의 GPS인 성령님은? 이 내시 한 사람을 위해서요? 사마리아 도시 전체를 섬기던 사역을 잠시 보류하고 빌립을 광야 길로 오게 합니다. 이방인이지만 하나님을 향한 목마름이 있는 이 순례자를 위해 이방을 향한 구원의 길을 활짝 열고 있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은요? 이스라엘의 남부 중심부에 있어요? 사마리아는 팔레스타인 지역, 나블루스 인근 즉 이스라엘 북부에 있습니다. 이 둘 사이의 거리는, 약 55~60km, 걸어서 가는 거리는 약 65~70km입니다. 산지와 언덕을 통과하는 길입니다. 그래서 약 3일 걸립니다.
수레가 사람 발보다 빠르죠? 그런데 이 한 사람을 위해 성령께서는요? 빌립이 사마리아로부터 광야 길까지 달려올 시간과 이 내시가 예루살렘에서 그 지점을 통과할 시간을 정확하게 맞춥니다. 그리고 이 내시는 예루살렘까지 올라와 예배드리고 돌아가던 중, 이사야서 53장을 읽고 있는 가운데 그 뜻을 알지 못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탁월하게 준비하신 ‘영적 인터뷰’라는 이야기예요?
하나님이 철저히 준비하신 시간, 장소, 사람, 질문, 메시지의 맞춤 만남, 하나님께서 구원의 은혜를 전하기 위해 복음을 전할 자와 들을 자를 동시에 준비하신, 단순한 우연이 아닌 섭리이었고, 목적 있는 영적 만남이기에 이것이 영적 인터뷰입니다. 특별한 만남이죠? 왜 특별합니까? 성령이 철저히 이끄셨거든요? 사마리아의 부흥보다 내시 이 한 사람에게 집중하셨습니다. 말씀이 준비되어 있었다는 것이 무엇이에요? 내시는 이사야 53장을 읽고 있었고, 사람도 준비, 누굽니까, 빌립, 그리고 그는 순종했습니다. 29~30절,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냐” 수레로 가까이 가라고, 뛰어 마차에 따라붙으라고 하죠?
‘아 성령님, 제가 살이 쪄서, 심장이 약해서 천천히 걸을게요?’가 아닙니다. 머뭇거리지도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에티오피아, ‘검은 피부’입니다. 당시 이방인 중, 더 큰 경멸의 대상이죠? 히브리어로 ‘쿠쉬’, 우리말로 구스, 노아의 세 아들 가운데 저주받은 함의 후예, 게다가 내시,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고자입니다. 고자는요?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받은 사람으로 간주하여 인간 이하의 존재로 취급받은 이 자를 하나님은 영적 인터뷰를 하십니다.
그 인터뷰 시작이 내시의 질문이죠? 31~33절, “대답하되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하고, 빌립을 청하여 수레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읽는 성경 구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그가 도살자에게로 가는 양과 같이 끌려갔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이 조용함과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굴욕을 당했을 때 공정한 재판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말하리요? 그의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 “청컨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뇨?” 그의 질문에, 답할 말씀의 사람, 빌립을 준비하셨고, 즉각적인 결단, 가르침을 받고 마음이 뜨거워졌고, 예수님을 믿겠다고 결단하고, 물이 있으니까 “세례받을 만한 이유가 무엇이냐?” 바로 세례를 받겠다고 합니다.
‘아무도 내가 세례받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그것도 자기를 따라온 수많은 부하들과 수행원들 가운데서 신앙고백과 세례를 받았습니다. 유대인들이 경멸하던 이방인이자 피부가 검은색입니다. 친절하게 대해줄 만한 자격이나 가치가 전혀 없는 사람, 사람으로 불릴 수도 없는 그를 위해 하나님의 관심은 이 한 사람에게 있었습니다. 그것도 이 한 사람을 위해서 사마리아 도시 전체를 섬기던 사역을 잠시 보류하고, 빌립을 광야 길로 데려오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에게도 있지 않았나요? 이 영적 인터뷰가 있었잖아요? 진리를 찾게 하시고, 적절한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한 그 시간, 영적 인터뷰가 저와 여러분에게 있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어요? 1원 반 푼어치도 안 되잖아요? 그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무엇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고, 죄로 타락한 세상, 아니 우리를 정죄하지 않으시고, 사랑으로 구원의 길을 여셨어요? 이 행동으로 나타난 사랑이 바로 독생자를 주심 아닙니까?
단순한 선물이 아닌 이유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대속의 희생이 되셨기에 그렇습니다. 이 은혜에 반응하는 통로가 바로 믿음이잖아요? 우리의 공로나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반응하는 선물이잖아요?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는요? 주님이 주신 것입니다. 요 1장 12~13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우리에게 임한 영적 인터뷰는요? 우리의 능력이나 노력, 자격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고, 예수님을 주셨고, 성령으로 믿게 하셨으며,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신 것입니다. ‘sola gratia’, 전적인 은혜입니다. 여러분에게 누군가를 보내셨어요? 그는 분명히 하나님의 GPS, 성령의 순종한 자입니다. 저와 여러분을 당신의 자녀 삼으시려고 준비해 놓으셨던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고, 광야로 주저 없이 가게 하셨을 것이에요? ‘그 한 사람’, 바로 여러분을 위해, 아니 나를 위해 그렇게 하신 영적 인터뷰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하나님의 GPS인 성령님은 확 낚아채서 빌립을 다른 데로 보내죠? 둘은 헤어져 서로 다시는 못 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돌아간 내시는 에티오피아 복음화에 가장 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고, 빌립은 하나님의 GPS에 순종하여 40절의 모습을 보입니다.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으로 다니며 복음을 전하다가 해안 도시요, 로마 총독이 머물던 ‘가이사랴’까지 이르렀다고, 에티오피아 내시같이 높은 사람을 전도했다는 거기에 취하거나 머물지도 않고, 계속 복음 전파의 길을 갔다고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무엇이에요? 하나님께서 빌립을 에티오피아 내시에게 보내셨듯이 우리도 보내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GPS는요? 목적지를 기록하면 가야 할 목적지로 인도하지만, 하나님의 GPS는 우리가 아는 목적지가 아닌 곳, 하나님의 타이밍에 당신의 관심이 있는 그 누구를 위해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지금 연락해라” “지금 가서 기도해 줘라” “지금 그에게 복음을 전해라” 하십니다. “나중에요”라고 말하면 목욕탕의 결과가 되고 맙니다.
기회는 지나가고, 생명은 닫힙니다. 하나님의 GPS인 ‘성령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이 한 사람이 바로 저이고 여러분입니다. 여러분, 순종은 환경을 뛰어넘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지금의 시간에 하나님의 GPS인 성령 하나님께, 반응하는 우리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