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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갇혔는데 예배가 시작되었다”

(사도행전 16장 25~34절)

 

 

여러분, 우리의 인생은 늘 우리가 계획한 대로만 흘러가지 않습니다. 기도하며 방향을 정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데도 어느 날 갑자기 폭풍우가 몰아칠 때가 있어요? 건강 문제, 관계 문제, 경제 문제, 자녀 문제,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답답함이 한순간에 우리를 깊은 밤으로 밀어 넣습니다. 그럴 때 우리의 마음에는 이 질문이 올라옵니다.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 바울과 실라도 사람의 눈으로만 보면 충분히, 아니 마땅히 이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보세요? 복음을 전하다가 매 맞았죠?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산 것도 아닌데 억울한 일을 당했죠? 잘못한 것도 없는데 감옥에 갇혔죠? 더구나 발에는 차꼬가 채워졌어요? 몸에는 엄청나게 맞은 상처가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정말 나와 함께하신다면, 왜 나는 지금 이런 자리에 있습니까?”라고 물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태양이 구름에 가려졌다고 해서 사라진 것이 아니죠? 다만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잖아요? 마찬가지로 태양을 창조하신 하나님도 사라지시거나 거처를 옮기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내가 어디에 있든지, 병실에 있든지, 눈물 가운데 있든지, 문제 한복판에 있든지, 심지어 감옥 같은 현실 속에 있든지 하나님은 여전히 함께 계십니다. 오늘 본문이요? 이 사실을 보여 주고 있고, 감옥이 예배 처소가 되어 드리는 예배의 현장으로 우리를 안내하고 있습니다. 말씀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큰 은혜를 주시리라 믿습니다.

 

 

첫째로 한밤중에 시작된 예배입니다. 25절입니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여기서 먼저 눈에 들어오는 단어는 “한밤중에”입니다. 이것은요? 단지 시간이 늦었다는 뜻이 아니라 바울과 실라의 형편이 얼마나 어두운지를 보여 주는 말입니다. 무슨 이야기냐? 그들은 몹시 맞았습니다. 본문은 간단히 기록하지만, 실상은 매우 처절했어요? 겨우 정신을 차리니까 한밤중입니다. 옷이 벗겨진 채 많은 매를 맞았고, 깊은 옥에 던져졌으며, 발에는 차꼬가 채워졌습니다. 이 차꼬는 단순히 발목만 묶는 수준이 아니라 두 다리를 벌려 고정시키는 형틀과도 같았습니다. 그러니까 등을 벽에 편히 기대고 앉을 수도 없고, 몸을 편히 눕힐 수도 없는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등은 매질로 찢어져 있었고, 몸은 고통 속에 있었고, 마음은 억울함과 분통으로 가득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같으면 이럴 때 무슨 말이 먼저 나오겠습니까? “하나님, 왜 이러십니까?” “주의 일하다가 이렇게 되었는데 그냥 두십니까?” “주님, 너무 아픕니다. 너무 억울합니다.” 이런 신음이 먼저 나오는 것이 당연합니다. 안 그래요? 그런데 본문은 이렇게 말합니다.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여러분, 바울과 실라에게 아픔이 없었다는 뜻일까요? 아닙니다. 그러면 그들이 특별히 강한 체질이었을까요? 그것도 아닙니다. 감정이 없는 사람들이었을까? 더더욱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나 아팠을 것입니다. 너무나 괴로웠을 것입니다. 몸도, 마음도, 자존심도 다 무너질 만큼 쓰라렸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기도했고 찬송했습니다. 왜입니까? 그들의 환경보다 하나님이 더 크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눈앞에는 감옥이 있었지만, 그들의 믿음은 감옥보다 크신 하나님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몸은 매여 있었지만, 그들의 영혼은 하나님께 묶여 있었습니다. 그들의 등은 찢어졌지만, 그들의 신뢰는 찢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상황은 처참했지만, 그들의 하나님은 여전히 선하셨습니다.

 

 

이것 아세요? 믿음은요? 아프지 않은 척이 아닙니다. 울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고통이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고통보다 하나님이 더 크시다는 사실을 붙드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 시간에 부른 바울과 실라의 찬송은요? 분위기 좋은 집회에서 나온 찬양이 아니었습니다. 피 위에 세워진 찬송이었고, 눈물 속에서 올라간 찬송이었으며, 신음 사이를 비집고 하늘로 올라간 예배였습니다. 정신력이 있어서요? 아닙니다. 성령께서 그들의 중심을 붙드셨기 때문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고통보다 하나님을 더 선명하게 보게 하셨고, 상처보다 사명을 더 분명하게 붙들게 하셨으며, 감옥보다 하나님의 임재를 더 크게 느끼게 하셨기에 그 한밤중에 기도와 찬송을 부르는 이것이 가능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인생에도 이런 한밤중이 있지 않습니까? 설명할 수 없는 밤, 왜 이런 일이 내게 왔는지 알 수 없는 밤, 몸이 아프고 마음이 무너지고 억울하고 답답하고, 누구도 내 사정을 다 모르는 밤이 있습니다. 그 밤에 우리는 선택의 자리에 사게 되죠? 원망할 것인가, 기도할 것인가, 무너질 것인가, 찬송할 것인가, 환경에 묶일 것인가, 하나님께 매일 것인가, 한밤중은요? 하나님이 안 계신 시간이 아니라 오히려 믿음의 진짜가 드러나는 시간입니다.

 

 

두 번째는, 예배가 시작되자 감옥이 흔들렸다는 사실입니다. 26절입니다.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여기서 중요한 단어가 바로 “이에”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가 왜? 중요하냐면요? 하나님께서 바울과 실라의 기도와 찬송을 들으시고,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식으로 응답하셨다는 뜻이 되기에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바울과 실라는 찬송할 때 “곧 문이 열릴 것이다”라는 것을 알고 찬송한 것이 아니라, 결과와 상관없이 하나님을 찬송했는데, 하나님은 그 찬송 위에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응답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무엇이에요?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이것이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역사는요? 종종 이렇게 오는데, 우리가 계산하지 못한 때에,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친히 개입하십니다. 이 은혜는 경험해본 사람만이 압니다. 아멘. 그리고 “옥터가 움직이고”, 무엇이냐? 감옥 문만 흔들린 것이 아니라 기초까지 흔들렸습니다. 사람이 만든 감옥, 사람이 만든 구조, 사람이 만든 권력이요? 하나님의 손 앞에서 흔들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일하시면서요? 표면만 건드리지 않으십니다. 근본을 흔드십니다. 내가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 같다고 여긴 문제, 도무지 움직이지 않을 것 같던 상황, 너무 굳어 버린 관계와 환경까지도요? 하나님은 그 뿌리를 흔드시는 분이십니다. 아멘. 또 “문이 곧 다 열리며”라고 했어요? 문 하나만 열린 것이 아니라 다 열렸습니다. 하나님은 닫힌 문을 여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요?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바울과 실라만 풀린 것이 아니라, 감옥 안의 모든 사람에게 영향이 미쳤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에서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한 사람의 기도다, 두 사람의 찬송이요? 그 자리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기에 예배는요? 결코 개인적인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주변까지 흔듭니다. 한 사람의 믿음이 가정을 살리고요? 한 사람의 찬송이 공동체를 깨우고요? 한 사람의 기도가 묶인 영혼에게 자유의 통로가 되게 합니다. 우리는 보통 문이 열려야 찬양할 수 있다고 생각하죠? 문제가 풀려야 감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죠? 그런데 바울과 실라는 문이 열려서 찬양한 것이 아니라 문이 닫혀 있을 때 찬양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찬양 위에 문을 여셨습니다. 아멘.

 

 

마지막 세 번째는, 하나님은 감옥에서 한 영혼과 한 가정을 구원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나죠? 지진이 났고, 옥문이 열렸고, 사슬이 풀렸는데도, 아무도 도망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27절과 28절을 볼까요?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이 장면은 매우 중요한 데요? 그 이유는, 바울과 실라의 기도가 단순히 “우리만 살려 주십시오” 하는 기도가 아니었다는 사실이기에 그렇습니다. 만약에요? 자기들만을 위한 기도였다면, 문이 열리고 사슬이 풀렸을 때 곧바로 도망갔을 것입니다. 안 그래요? 그러나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왜? 일까요? 하나님이 감옥을 흔드신 목적이요? 단지 문 하나를 여는 데 있지 않고, 한 영혼을 살리는 데 있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간수의 생각은 단순했습니다. 그가 잠에서 깨어 열린 문을 보고 한 가지 생각밖에 하지 못했습니다. “끝났다.” 그 이유가 로마법입니다. 죄수가 도망하면 간수가 책임을 지는 로마법 때문입니다. 그래서 칼을 빼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죠?

 

 

여러분, 사실 겉으로 보면 간수는 죄수와 감옥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그죠? 그런데 실제로는 자기 인생의 감옥에 갇힌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책임이라는 감옥, 두려움이라는 감옥, 절망이라는 감옥, 죽음이라는 감옥에 그도 갇혀 있었다는 말입니다. 문이 열렸는데도 그는 자유를 보지 못하고 죽음만 보았습니다. 즉 그는 지키는 사람이지만, 그도 감옥에 갇힌 사람이었기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때 바울이 외치죠?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왜? 외쳤습니까? 그를 살리기 위해 외쳤습니다. 그러기에 이 외침은요? 생명을 살리는 외침이고, 복음의 외침입니다. 즉 바울이 자기 상황보다 먼저 그 간수의 생명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바울과 실라는 피해자 아닙니까? 안 그래요? 그리고 간수는 그들을 가두고 묶고 고통을 준 시스템이잖아요? 그런데 “이제 네가 당해 봐라” 하지 않았고요? 도망가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살리기 위해 외칩니다. 여러분, 이 장면에서 우리에게 주는 은혜가 있죠? 그것이 뭐냐? 복음이라는 정의입니다. 복음은요? 나를 괴롭게 한 사람에게도 생명을 말합니다. 복음은요? 나를 가둔 사람에게도 구원의 길을 열어 줍니다.

 

 

주님께서 그를 어떻게 하시는지 29절을 보세요?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생각해 보세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바울과 실라는 죄수였습니다. 그죠? 그런데 이제 간수가요? 그들 앞에 엎드립니다. 왜 엎드려요? 사도 바울과 실라가 위대했기 때문에요? 아니에요? 이 감옥 안에 하나님이 계셨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무엇이에요? 예배가 시작되면 하나님이 역사 하시고요?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사람이 깨어나고요? 깨어난 사람은 결국 하나님 앞에 엎드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멘. 그리고 마침내 이 질문을 하죠?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그가 던진 이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의 질문이 아니라 이제 영혼의 질문으로 바뀝니다. 한 마디로 무엇이냐?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고, 나는 어디로 가야 하며, 나는 무엇으로 안전합니까?” 이 질문입니다. 그러자 바울과 실라의 대답이 무엇이에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요? 오늘 본문의 핵심입니다. 왜? 일까요? 구원의 길은 복잡하지 않기에 그렇습니다. 조건이 많지도 않기에 그렇습니다. 단 한 문장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예수님을 좋은 분 정도로 아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생, 내 인생의 주인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내가 중심이 아니라 예수님이 중심이 되고요? 내가 왕이 아니라 예수님이 왕이 되고, 내가 붙들고 살던 것을 내려놓고, 예수님을 붙드는 것, 이것이 사는 길입니다. 그러면서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라고 하였죠? 이 말씀은? 자동 구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의 문이 그 집 전체에 열렸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었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으로 인하여 여러분의 가족이 구원받는 길이 열렸다는 의미입니다. 그러기에 이어서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고 한 것입니다. 구원은요? 한 사람에게서 시작되지만, 그 영향은 가정으로 흘러갑니다. 한 사람의 믿음이요? 가정의 방향을 바꾸고, 집안의 영적 흐름을 바꾸고, 다음 세대를 바꾸는 역사가 임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그 밤의 마지막은 너무 아름답지 않았을까요? 그 모습을 33절과 34절에 이렇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상처를 씻어 줍니다. 세례를 받습니다. 집으로 데려가 음식을 차려 음식을 먹습니다.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크게 기뻐합니다. 아름답죠? 처음에는 매를 때리던 자리였고, 묶고 가두던 자리였습니다. 고통과 억울함이 가득한 자리였는데, 이제는 상처를 씻는 자리, 세례를 받는 자리, 식탁의 자리, 기쁨의 자리로 바뀌었습니다. 복음이요? 사람의 삶 전체를 바꾸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의 삶 전체를 바꾸십니다. 나 중심의 삶에서 예수 중심의 삶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으로 변화되게 하십니다. 무엇보다도 죄로부터의 자유를 얻게 하고, 예수님의 십자가로 죄 사함을 받아, 죄의 노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되게 하십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과 소망을 가지게 하십니다. 불안한 미래가 아니 예수님을 통한 영원한 소망과 평안을 누리게 되는 근본적인 변화,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개혁을 이루는 대혁명이 일어나게 하십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 내용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여러분, 그날 밤은 분명히 절망의 밤이었습니다. 피가 흐르고, 몸은 묶이고, 마음은 찢어지는 밤이었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끝난 밤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과 실라는 그 밤에 원망을 시작하지 않았고, 예배를 시작했습니다. 절망을 붙들지 않았고 하나님을 붙들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일하시기 시작했습니다. 땅이 흔들렸어요? 문이 열렸습니다. 쇠사슬이 풀렸습니다. 한 사람, 간수가 깨어났습니다. 무릎을 꿇었습니다. 구원을 물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가정이 바뀌었습니다. 눈물의 밤이요? 기쁨의 밤으로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죠? 하나님은요? 감옥을 그냥 두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요? 고통을 낭비하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은요? 눈물을 헛되게 흘리게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요? 그 감옥에서 예배를 시작하게 하시고, 그 예배를 통해 문을 여시고, 그 문을 통해 한 사람을 살리시고, 그 사람을 통해 가정을 살리시는 분이십니다.

 

 

혹시 여러분의 삶에도 감옥이 있습니까? 몸이 아픈 감옥, 관계가 막힌 감옥, 마음이 눌린 감옥, 사업의 어려움이 찾아온 감옥,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의 감옥이 있습니까? 그런데요? 갇힌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그 자리에서 예배가 시작되면요? 하나님은 일하기 시작하십니다. 문이 열리기 전에요? 먼저 예배가 시작되고, 문제가 풀리기 전에 먼저 찬송이 올라가고, 상황이 바뀌기 전에 먼저 믿음이 하나님을 붙드신다면, 바울과 실라처럼 “한밤중에…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할 때, 닫힌 문보다 크신 하나님께서 일하기 시작하십니다. 그러기에 지금 문이 닫혀 있고, 길이 막힌 것처럼 보여도요? 낙심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그 자리에 여러분과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면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라는 은혜를 반드시 보게 하실 것입니다. 시편 50편 15절의 역사,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가 반드시 임할 것입니다. 이 주인공이 바로 여러분이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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