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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것에 목마른 도시, 영원한 복음을 만나다

(행 17:16~21)

 

 

여러분,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목마름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겉으로는 웃고, 일하고, 가족을 돌보고, 교회도 다니고, 하루하루를 살아가지만, 마음 한쪽에는 늘 목마음에 대한 질문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영혼 깊은 곳에 채워지지 않는 갈망 때문입니다. 사람은 육신만 가진 존재가 아니기에, 그 안에는 하나님을 향해 열려 있는 영혼이 있기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세상 것으로 어느 정도 위로는 받을 수 있어도, 영혼의 깊은 목마름은 하나님이 아니면 채워지지 않습니다. 바닷물을 마시면 마실수록 더 갈증이 나는 것과 같아서, 하나님 없이 세상 것으로만 마음을 채우려 하면 잠시는 즐겁지만 결국 더 허전해집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아덴, 곧 아테네가 그렇습니다. 철학이 있고, 예술이 있고, 지식이 있고, 화려한 건축이 있고, 토론이 끊이지 않아, 새로운 사상과 문화가 넘쳐난 이 도시이지만, 늘 허전하였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본 현장으로 우리 함께 들어가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로 이 도시 사람들의 영혼 상태입니다. 16절입니다. “바울이 아덴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 아시다시피 바울은, 베뢰아에서 급하게 이 아덴으로 왔습니다. 실라와 디모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시 만나려면 최소 8일이나 걸리는데, 이때, 소문으로만 듣던 이 아덴, 즉 아테네를 직접 둘러봅니다. 오늘날도 많은 관광객이 있지만, 당시에도 많은 관광객으로 붐볐을 것입니다. 특히 이 아덴의 아크로폴리스, 헬라어로 아크로, 높은, 맨 위의, polis 도시, 높은 곳에 있는 도시라는 뜻을 가진 이 아크로폴리스 안에 처녀, 순결한 의미인 파르테논 신전이 있고, 그 신전 안에 금과 상아로 만들어진 높이가 무려 12미터나 되는 거대한 아테나 여신상과 승리를 기념하고 승리를 구하던 승리의 여신인 니케 신전, 아테네 여신의 야외 조각상, 아테네의 전설적인 왕인 에레크테이온 신전과 아테나 제단, 당시 최대 만 7천 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디오니소스 극장이 웅대하게 자리 잡고 있었고, 아래 동남쪽으로 기둥만 100개가 넘는 제우스 신전이 ‘떡’ 하게 있었으니, 당연히 ‘와, 대단하다. 아름답다, 웅장하다.’라고 하는 것이 맞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 도시의 아름다움과 웅장함과 넘쳐나는 철학과 지혜가 아닌 우상 숭배, ‘우상이 가득하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도시는 우상들로 완전히 뒤덮여 있었기에 그렇습니다. 한마디로 우상들의 숲이었습니다. 즉 도시의 아름다움이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 아니었고 하나님이 아덴 사람들에게 주신 예술적 창조성을 우상숭배에 사용되는 것에 대한 슬픔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로 거룩한 아픔입니다. 16절 마지막 부분에 “마음에 격분하여”라고 나옵니다. 이 말의 의미는 화를 냈다는 것도 기분이 상해서 분노한 것도, 아닌 하나님을 잃어버린 도시를 보며 가진 아픔입니다. 이 사람들이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참 하나님은 모르고 있구나, 이토록 많은 신을 섬긴다고 하지만, 정작 진짜는 모르는구나? 살아 계신 하나님은 알지 못하네, 헛된 것 앞에 절하며 자기 영혼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에 대한 아픔을 가졌습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바울이요? 행동으로 옮기죠? 세 번째는 복음을 전한 바울입니다. 17절,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장터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회당으로 가 유대인들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들에게 성경을 가지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전했고, 장터로 나가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대화했습니다. 회당도 선교지, 장터도 선교지, 예배당 안도 복음을 전할 자리, 사람들이 살아가는 거리도 복음을 전할 자리라고 믿고 복음을 전했더니 18~19절의 일이 일어났습니다. “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기 때문이러라. 그를 붙들어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네가 말하는 이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겠느냐” 에피쿠로스학파는, 인생의 목적은 평안이고, 마음의 불안을 없애는 것이 행복이라고 본 학파입니다. 그리고 스토아 철학은 인간이 욕망과 감정에 끌려다니지 않고, 주어진 운명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철학입니다.

 

 

이들과 논쟁하였더니 그를 붙들어 아레오바고로 데리고 가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라고 말하였다는 것, 그러니까 오늘 만나는 사람, 장터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 대화할 수 있는 사람, 하나님께서 붙여 주신 사람에게 복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네 번째로 변하지 않는 아덴입니다. 21절입니다.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철학과 지식의 도시였기에 새로운 사상, 새로운 철학, 새로운 이야기, 새로운 종교를 듣는 것을 즐겼지만 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여러분,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것은 새로운 정보가 아니라 영원한 복음이고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영혼은 여전히 비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하면 영혼 깊은 곳의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습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인생은요? 아무리 많은 것으로 자신을 채워도 결국 빈 그릇처럼 울립니다. 예수님을 만나야 비로소 영혼이 살아나고, 십자가의 사랑을 알아야 죄책감이 내려놓아지고, 부활의 생명을 붙들어야 절망 속에서도 다시 일어납니다.

 

 

아덴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찾았지만, 바울은 영원한 것을 전했습니다. 사람들은 귀를 즐겁게 할 이야기를 원했지만, 바울은 영혼을 살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새로운 소식보다 더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새로운 유행보다 더 필요한 것은 십자가의 은혜이며. 새로운 지식보다 더 필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여러분, 세상은 날마다 새것을 찾지만, 성도는 영원한 복음을 붙듭니다. 세상은 귀를 즐겁게 하는 말을 찾지만, 성도는 영혼을 살리는 말씀 앞에 섭니다. 세상의 새것은 곧 낡아집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 생명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 담긴 내용들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여러분, 가나에 혼인 잔치가 있었습니다. 잔치는 한창 무르익어 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있었고,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잔치 가운데 갑자기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진 것입니다. 당시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단순히 음료가 부족하다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신랑과 신부의 가문에 큰 수치가 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잔치의 기쁨이 멈추고, 부끄러움이 드러날 위기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위기를 신랑 신부는 알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 위기를 먼저 알아차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였습니다. 마리아는 그 문제를 사람들에게 떠들지 않았습니다. 신랑 신부를 탓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인들을 책망하지도 않았습니다. 조용히 예수님께 나아가 말합니다.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깊은 믿음이 담긴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마리아는 문제를 사람에게 먼저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 가져갔습니다. 해결 방법을 자신이 정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예수님께 아뢰었습니다. 문제를 주님께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예수님께서 아직 공생애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시기 전이었습니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누구신지 분명히 알지 못할 때였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님에게 믿음을 담긴 부탁을 하였고, 하인들에게 이렇게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실지 몰랐습니다. 다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 말씀에 순종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항아리에 물을 채웠습니다. 그것도 대충 채운 것이 아니라, 아귀까지 가득 채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주라고 하실 때,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물입니다. 이걸 갖다주면 우리가 부끄러움을 당합니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해되지 않아도 순종했습니다. 납득되지 않아도 말씀을 따랐습니다. 바로 그 순종의 자리에서 물이 포도주가 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결과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핵심이 무엇이에요? 이 자리에 예수님이 계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그 자리에 안 계셨다면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라는 말을 듣지 못합니다.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좋은 것을 잃어버립니다. 처음에는 기쁨이 있어도 나중에는 식어버리고, 사랑이 있어도 나중에는 메말라집니다. 열정이 있어도 나중에는 지쳐갑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만남 이후 바울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는 더 이상 자기 의로 사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더 이상 자기 이름을 높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가득했습니다. 그의 가슴에는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불붙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덴, 지식의 도시, 철학의 도시, 문화와 예술의 도시를 사람들은 “참 대단한 도시다.” “참 지적인 도시다.” “참 세련된 도시다.”라고 감탄했을지 몰라도, 바울은 아덴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았고, 참 하나님을 모르고 있음을 보았고, 영혼은 비어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한 거룩한 아픔, 하나님의 영광이 우상에게 빼앗기는 것에 대한, 거룩한 분노를 가졌습니다. 핵심이 무엇일까요?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지 오래되었지만, 그의 마음은 식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세월이 흘렀어도, 복음의 열정은 메마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핍박을 받았지만,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마음에는 더 깊은 은혜, 더 뜨거운 사랑, 더 분명한 사명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울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처음만 좋은 분이 아니라, 끝까지 좋은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처음만 뜨겁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은 은혜로 우리를 이끄시는 분입니다. 가나 혼인 잔치에서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바꾸셨습니다. 아덴에서 예수님은 바울의 마음을 통해 죽어가는 영혼들을 향한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가나에서는 떨어진 포도주를 채우셨고, 아덴에서는 하나님을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생명의 복음을 들려주셨습니다.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우리 안에 포도주가 떨어졌다면, 처음 사랑이 식었다면, 예배의 감격이 희미해졌다면, 영혼을 향한 눈물이 말라버렸다면, 다시 주님께 나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마음의 빈 항아리에 주님의 은혜를 채워달라고 구하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만나면 끝이 좋아집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식어진 마음이 다시 살아납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잃어버린 기쁨이 회복됩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무뎌진 영혼이 다시 하나님의 마음으로 뛰기 시작합니다. 바울처럼 우리도 이 시대를 바라볼 때 단지 세상의 화려함만 보지 않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린 영혼을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상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거룩한 아픔을 품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다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람으로 서기를 원합니다. 주님은 지금도 좋은 것을 남겨두셨습니다. 우리의 마지막은 메마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의 끝은 식어짐이 아니라 하나님의 회복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포도주가 떨어진 잔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으로 인해 더 좋은 은혜를 맛보는 자리로 바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마리아처럼 문제를 주님께 가지고 가야 합니다. 그리고 하인들처럼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바울처럼 크지 않아도 일터에서 만나는 사람과의 자리에서 예수님을 전하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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