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5 주일설교
“성령은 국적을 묻지 않으신다”
(사도행전 10장 34~48절)
여러분, 세계는요? 난민을 수용하는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습니다. 이들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경제적 부담과 사회 문제 및 범죄 우려가 있고요? 난민 인권 보호와 같은 다양한 문제와 갈등이 발생하기에, 많은 국가는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 어려움의 원인을 어느 학자는 ‘틀렸다’라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무너지는 사건이 바로 고넬료 사건입니다. 무슨 이야기냐면요? ‘나는 너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라는 이 장벽이요? ‘나는 다 받아준다.’라는 놀라운 결과를 이루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열방을 향하신 하나님의 일하심을 말합니다. 우리가 두 주에 걸쳐 베드로와 고넬료를 나누고 있는데요?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의 제목은? “성령은 국적을 묻지 않으신다”입니다. 이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무엇을 전하려고 하는지를 나누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주에 나눈 말씀의 제목이 바로 [하나님이 짜신 기가 막힌 만남의 드라마] 이었죠? 하나님이 짜신 기가 막힌 만남에서 마지막 말, 33절, 고넬료가 베드로에게 “이제 당신이 오셨으니 참 잘하셨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기억나시죠?
이 말은 고넬료는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깊은 장벽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하지만 천사의 지시로 베드로를 청했지만, 하나님의 종, 유대인인 베드로가 이방인의 집에 들어온다는 파격적인 선입견을 넘어, 온 것에 대한 진심의 감사 마음이 “이제 당신이 오셨으니 참 잘하셨습니다”입니다. 하나님이 무언가 새로운 일을 하시려 한다는 기대가 있었기에 단순한 방문이 아닌, 하나님께서 이루실 무언가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우리가 다 하나님 앞에서 당신이 말씀하신 것을 듣고자 하여 모였다”라고 하면서, 고넬료가 어떤 이유로 자신을 청했는지 말을 듣게 되죠? 이것이 지난주 마지막 부분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으로 이어져요? 하나님이 보여 주신 환상의 뜻이 무엇인지 깨달은 베드로가 감탄하며 하는 말이 바로 오늘 본문의 시작입니다. 34~35절입니다.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가리는 분이 아니시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어느 민족이든 관계없이 다 받아주신다는 놀라운 선포를 합니다. 아시다시피 베드로는, 정통 유대인입니다. 유대인의 전통과 율법, 그리고 하나님이 택하셨다는 투철한 선민의식을 가진 자이에요? 이것은 당시 유대인들이 다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하늘에서 보자기를 내려보내, 보자기 안에 있는 먹지 말라는 각종 짐승들을 잡아먹으라고 하셨을 때, 강한 거부를 세 번이나 했잖아요? 그래서 들은 말씀이,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이것이었습니다. 이 의미를 몰랐는데, 이제야 정확히 깨달았다는 것 아닙니까? 각종 짐승들이 바로 이방인들이었고, 유대인들만이 택함을 받은 민족이 아니라 유대 민족 외의 각 나라, 즉 그들이 이방인이라고 멸시하던 민족들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주께로 나오면 기뻐 받으시고, 이것이 바로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온 땅에 가득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깨달았다고 말하고 있는 베드로입니다.
무슨 이야기냐면요? 사실 하나님이 처음부터 원하신 것이 이것이기에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내가 너에게 복을 주겠다.”라는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신 것도 “너를 통하여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하겠다.” 이것이었다는 것, 모든 민족이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을 통해 이방인들도 복을 받기 원하시는 하나님인데, 대인들은 애써 외면하였고, 베드로도 마찬가지이었다는 것이죠? 즉 성령은 국적을 묻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국적을 묻지 않은 성령님이 이방인인 고넬료를 만나 복음을 전하게 하십니다. 이것 때문에 다음 장인 11장에 가면요? 베드로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나와요? 이 편견 때문에 15장에 가면, 할례로 논란이 번져서 최초 예루살렘 총회까지 열립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논란이 일어날 때마다 그 의미를 알려 주고 방향을 보여 주는 확고한 원리와 지침이 바로 이 고넬료와 베드로의 만남이라는 사건입니다. 이것은 고넬료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를 행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방인인 고넬료를 택정하신 것이고, 그 시작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을 아직 알지 못한 그에게 생명의 복음을 전해주시려고, 욥바에 있는 베드로를 고넬료의 집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가진 것이 많아서, 잘 생겨서, 학력이 좋아서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를 먼저 베풀어 그가 내민 당신의 손을 붙들도록 성령 하나님이 하신 것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 하나만 가지더라도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하나님의 이 크신 사랑을 다 기록할 수 없다고 고백하는 우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아멘. 자, 모든 민족의 구원을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확실히 깨달은 베드로가 모든 비난과 어려움을 겪을 각오를 하고 고넬료의 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죠? 36절입니다. “만유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 그의 첫 말이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서 이 땅에 오셨고, 선지자들로부터 예언된 그분이며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으셨고, 우리가 그를 못 박아 죽였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사망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셨고, 다시 오실 것을 우리에게 약속해 주셨다. 오직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가능하다.” 이것보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유의 주’, ‘만민의 주’라고 시작합니다.
무엇을 말해요? 단순히 특정 민족이나 지역의 주님이 아니라, 온 우주와 피조 세계 전체의 주인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이방인에게도 동일한 구원을 열어주셨다는 것이며,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메시아를 넘어 모든 인류의 주님이시면서, 역사의 주인이고, 영원한 왕이심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즉 영원한 왕은 “로마 황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다”라는 신앙고백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종과 자유인, 남자와 여자, 가난한 자와 부자 모두에게 같은 은혜가 주어진다는 “만유의 주” 되신 그리스도의 복음이 모든 경계를 허물고 있다, 성령은 국적을 묻지 않는다는 이야기이고 그 만유의 주가 ‘화평의 복음’을 전하셨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해 먼저 시작되게 하였고, 그들을 통해 열방에 흘러가도록 하신 것이라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셨다”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어서 평화가 되시는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전합니다.
37~38절입니다. “곧 요한이 그 세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하셨음이라” “너희도 알거니와”라고 하면서, 거기 있는 모든 사람들도 다 아는 내용을 이어서 전하죠? 39~41절입니다.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가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여기 아주 놀라운 구절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미리 택하신 자기들에게 나타나셨다고 전합니다. 무엇이냐면? 보여 주는 “기적의 쇼”가 아니라, 아무나가 아닌 예수님과 실제로 동행하며 먹고 마셨던 사람들을 택하셔서 부활의 증거를 세우셨고, 이 부활의 사건을 역사적 사실로만 남겨두지 않고, 사람을 통해 증언하게 하셨다고 전합니다.
그리고 그가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을 뿐 아니라, 다시 오셔서 심판하실 재판장이심을 전합니다. 43~43절, “우리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언하게 하셨고,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무엇이에요? 예수님이 처음 오셨을 때는 하나님의 사랑을 완성하러 오셨고, 그리고 두 번째로 오실 때에는 하나님의 공의를 완성하러 오신다는 것, 예수님은 다시 오실 재판장이자 심판 주이시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것’이라고 전합니다. 우리가 예배 때마다 고백하는 사도신경의 내용이죠? 구원받을 사람과 구원을 못 받을 사람을 정확히 구분해 주는 고백입니다. 이렇게 베드로가 복음을 전하고 있는데, 그때 성령이 내려옵니다. 44절,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이것으로 인하여 유대인 중 믿은 사람으로 베드로와 함께 온 사람들은 다 놀랍니다. 45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지금이야 이것은요? 당연하게 여길 일이지만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정말 깜짝 놀랄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어떻게 이방인에게도 성령을 내려주시나?’를 아는 그 증거가 46절입니다.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눈에 안 보이는 성령께서 눈에 보이도록 성령의 은사 중 특별히 방언이 나타났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나타났습니다. 사마리아처럼 다른 곳에서와는 달리 안수를 한 것도 아니고 세례를 준 것도 아니었지만, 하나님을 높이는 찬양과 방언으로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어 바로 세례를 행하죠? 47~48절,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하고,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하니라 그들이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하니라” 베드로와 같이 온 여섯 명의 형제가 베드로를 도와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한 성령을 받은 이들이 한 세례를 받았고, 감격스러운 요청, “우리와 함께 며칠 더 머물러 주십시오!”을 합니다. 한 성령, 한 세례를 받은 데서 더 나아가, 한 교제로 나아가는 모습, 즉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넘을 수 없었던 편견과 장벽이 무너진 복음의 능력, 성령은 국적을 묻지 않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고넬료 일행은 하나님을 경외한 자, 모든 자들에게 칭찬받는 자에서 이제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새로운 생명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 은혜가 멈추기를 싫어, 하나님의 말씀을 베드로로부터 더 듣고 싶어, “우리와 함께 며칠 더 머물러 주십시오!”라고 하면서, 오늘 본문은 끝을 맺습니다. 이제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여러분, 이렇게 성령 하나님은 국적을 묻지 않았습니다. 유대인에게만 머무르던 복음이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도 임했습니다. 이는 피부색이 다르든, 언어가 다르든, 문화가 다르든 하나님의 구원은 차별 없이 열려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제가 아는 장로님이 계십니다. 그는 LA에 사시는 나이가 많은 분입니다. 어느 날, 네팔 선교사로 나갔습니다. 지금도 그곳 소식을 종종 기도 제목과 함께 전달받고 있습니다. 그곳에 교회도 세우고, 학교도 세우고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네팔 사람, 얼굴 피부가 검죠? 인도 사람과 비슷합니다. 히말라야산맥 때문에, 매우 낙후된 나라입니다. 그곳으로 성령 하나님이 국적을 묻지 않음에 순종하여 나가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사람을 구분하고 나눕니다. ‘내 편, 네 편’, ‘우리 민족, 저 민족’이라 나누지만, 성령 하나님은요? 인간의 경계를 넘어 역사하십니다. 국경도, 인종도, 피부색도 묻지 않으시고, 단 하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보십니다.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가 바로 그 증인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여전히 인종 갈등과 국적의 장벽, 사회적 차별로 가득해요? 그러나 교회는요? 세상의 기준을 따라가는 곳이 아니라, 성령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곳입니다. 성령은 국적을 묻지 않습니다. 피부가 검든, 피부가 노랗든, 하나님은 오늘도 당신의 백성을 부르고 계십니다. 그 부르심에 응답한 우리가 이제는 세상의 차별과 벽을 무너뜨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나 되는 공동체를 세워 가야 할 줄 믿습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사명이며, 우리가 받은 복음의 능력입니다. 성령께서는 모든 사람을 부르십니다. 그 부르심 앞에 우리도 응답해야 합니다. 세상의 구분과 벽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너도 내 증인이라. 가서 나의 사랑을 전하라.” 우리 모두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민족과 국경을 넘어 복음을 전하는 참된 성령의 증인으로 서고요? 믿음으로 살아가는 고귀한 인생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