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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문, 모든 사람에게 열리다”

(사도행전 11장 1~18절)

 

 

제가 전도사 시절 때의 일입니다. 아주 오래전 영등포 어느 교회에서 성가대를 지휘하고 있었을 때 일인데, 지휘하면서 드는 생각은, 이분들이 자기 파트가 아닌 파트로 노래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파트를 구분하려고 각각 노래를 시켰습니다. 그런데 어느 여 집사님이 기분이 나빴는지, 그다음 주일에 이야기 좀 하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첫 마디가 ‘아니 우리가 주는 사례나 받지 왜? 파트 구별을 시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에 황당하고 화나 났지만,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이해를 안 하는 것입니다. 작은 교회이기에 받는 사례도 아주 작았어요? 모교 선배 전도사님의 부탁으로 섬겼습니다. 사실 이분은 알토가 맞는 분이에요? 힘들게 소프라노를 하고 있어서 조정되어 좋았을 텐데 오히려 기분이 나빴던 것 같았습니다. 나중에 그 교회에서 나와 사랑의교회로 갔을 때 미안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는요? 살면서 전혀 그렇지 않은데도 오해를 받는 일이 흔하게 만납니다. 누군가가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하거나, 한 일을 안 했다고 하면, 억울함이 들고, 화가 나요? 하지만 그 두 가지는요? 사실 확인만 하면 금방 해결됩니다. 그런데 아무리 이야기해도, 이해하지 못하면, 답답하고 억울합니다. 안 그래요?

 

 

오늘 본문이 이 경우입니다. 하지만 이 문제를 베드로가 어떻게 해결하였는지, 그리고 그가 가진 태도를 가르쳐주고 있고, 하나님의 원하심이 무엇인지를 담고 있는 말씀이 오늘 본문입니다. 이것을 나누면서 오늘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면서 큰 은혜를 주시리라 믿습니다. 몇 가지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로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의 비난입니다. 그들이 한 이 비난은, 이방인과 같이 먹고 머물렀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2주 전에 나눴듯이, 베드로에게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세례까지 받은 고넬료와 그의 집안사람들이, 베드로에게 자신들과 함께 며칠 더 머물러 달라고 간청했다고 하였습니다. 이유는 더 많은 진리의 말씀을 듣고자 하였던 것이죠? 식사 시간이 다 되었다고 알려줘도 관심이 안 갔고, 말씀의 은혜가 배고픔을 잊게 하였을 것입니다.

 

 

마치 이것의 경우, 눅 10장 38~39절에 보면요? “그에게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예수를 영접하더라.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마리아의 가장 큰 기쁨이 무엇이에요? 주님의 발 앞에 앉아 주의 말씀을 듣는 것이었습니다. 그에게 주의 말씀이 꿀보다 더 달았던 것이죠? 그래서 주님이 “마리아는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과 같은 것입니다. 언제 다시 볼지 모르니까, 베드로와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이 가득했을 것이고, 주의 말씀을 더 듣고자 하는 갈망으로 가득한 이들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에 대한 소식과 그리고 그들도 성령을 받았다는 소식이 유대에까지 전해졌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 1절입니다.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었더니” 베드로가 유대로부터 북쪽에 있는 가이사랴의 고넬료 집에 머무는 동안,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고, 사도들과 믿음의 형제들에게까지 전해졌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놀라운 소식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유대 지방에서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하고 있던 사도들과 그리스도인들이었기에 그렇습니다. 이렇게 알려진 것도 모르고 며칠을 같이 보낸 베드로는 놀라운 은혜와 감격을 안고 돌아가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어느 특정한 민족에게만 하나님의 은혜가 머무는 것이 아니라, 열방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가슴에 품고 돌아갑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이방인을 향한 전도의 방향임을 정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돌아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교회가 정반대의 모습을 보입니다. 2절,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 자들이 비난하여” 할례 자들이 약간의 질책이나 이의 제기가 아닌 정죄의 비난을 한 것입니다. 이유가 바로 3절입니다. “이르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한 문제가 아니라 ‘왜 우리 할례자들의 전통과 관습을 깨고 무 할례자들,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들의 집에 가서 함께 먹었느냐?’고 강한 반응을 보인 것입니다. 왜? 일까요? 유대인들이 “함께 먹는다”라는 이것은요?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하나 됨의 상징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왜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들과 같은 식탁에 앉았느냐?”는, “왜 우리의 경계와 전통을 깨뜨렸느냐?”라는 것이고, 쉽게 말하면, “왜 개나 돼지 같은 사람들과 함께 먹느냐?”는 모욕적인 말입니다. 왜냐? 이방인을 부정한 존재로 여겼기에, 이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은, 그들의 신앙과 문화의 경계를 넘는 일이라 여겨,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들어가 교제하고 음식을 함께 먹은 이것이 당시 유대 신앙 공동체에 있어서 너무나 충격적인 사건이었기에 이렇게 과민 반응을 보였습니다. 솔직히 베드로 스스로 찾아간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보여 주신 환상, 하늘에서 내려온 보자기 환상이죠?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 하지 말라”는 메시지, 곧 복음이 유대인만이 아니라 모든 민족에게 열렸다는 선언이었고, 이방인들과의 식탁도 나눈 것은 단순한 문화적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민족과 경계를 넘어 확장되는 상징적 사건인데도, 이들이 이것을 부정하고, 이방인을 ‘무 할례자’라고, ‘할례도 받지 않은 짐승 같은 것들’이라고 경멸의 의미를 담은 말을 내뱉었다는 것입니다. 랍비의 유전 즉 그들의 전통과 관습이 몸에 배어있었던 것이죠.

 

 

그러니 할례를 받았다는 우월감에 젖어 있어서, ‘무 할례자’라고 경멸하면서까지, 베드로까지 비난하였고, 자신들은 베드로보다 더 우월하다고 여기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이유? 아니 이스라엘을 선택하셨다기보다는 아브라함 한 사람을 선택하셨던 이유가 무엇이에요? 그를 통해 그의 후손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심입니다. 그리고 이것의 공식화가 바로 애굽에서 나올 때, 출애굽할 때 모세를 통하여 시내 산에서 이제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다.’라는 확인이었습니다. 출애굽기 6장 7절에,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레위기 26장 12절,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니라.” 그리고 예레미야 31장 33절,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라고 나오죠?

 

 

무슨 이야기에요?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부터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이고, 이유가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보다 잘났거나 그럴 만한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입니다.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서 가장 적은 민족을 당신의 백성으로 선택하셨어요? 왜요? 하나님의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로 거저 베풀어 주시는 선물임을 온 세계에 보여 주시기 위함이기에, 그들을 제사장 민족으로 삼으셔서, 그들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 주고, 모든 민족이 하나님 앞에 나오도록 하는 도구로 부르신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부터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증표가 바로 할례이고, 이 할례가 우월감을 드러내는 표시나 자기 의가 아닌 자신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불러주신 하나님을 따라 살겠다는 순종과 겸손과 결단의 표시이었습니다. 그렇죠?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할례를 자기 우월감의 과시와 자기 의로 삼는 자기 교만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오늘 본문의 이들도 예수 믿고 구원받은 크리스천인데도, 여전히 할례 그 자체를 자기 의로 삼는 자기도취에 빠져 있었기에, 유대인이기에 구원을 받은 것처럼 착각하여, 주님께서 구원하시려는 이방인을 마치 구원받지 못할, 무 할례자로 경멸하고, 땅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될 것이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이룬 베드로까지 비난했습니다.

 

 

두 번째는 그럼에도 베드로의 태도입니다. 4절, “베드로가 그들에게 이 일을 차례로 설명하여” 솔직히 가기 싫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명령에 순종해서 갔습니다. 결과가 비난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근거한 베드로 성격 아십니까? 충동적이고 직설적이며, 생각보다 먼저 행동합니다. 예를 들면,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를 잡으러 온 사람을 향해 칼을 뽑아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잘랐던 자이고,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영광을 보았을 때, 깊이 묵상하기보다 즉시 “여기 초막 셋을 짓자”라고 말했던 자입니다. 그렇지만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성격의 소유자죠?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즉시 그물을 버려두고 따랐던 자이고, 제자 중 가장 앞서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신앙 고백을 한 사람입니다. 심지어 쉽게 흔들립니다. 예수님께 “주와 함께라면 옥에도, 죽음에도 가겠다”라고 장담했었지만, 실제로는 계집종 앞에서조차 세 번 부인하였던 그가요? 화가 아니라 왜 자기가 가이사랴까지 갔는지, 이방인 고넬료를 왜? 만났고, 어떻게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례까지 베풀었는지, 고넬료의 집에서 며칠씩이나 머물면서 식사를 나누었는지, 빠짐없이 성의를 다해 차례대로 죽 설명합니다.

 

 

그것이 5~10절부터입니다. “이르되 내가 욥바 시에서 기도할 때에 황홀한 중에 환상을 보니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이 네 귀에 매어 하늘로부터 내리어 내 앞에까지 드리워지거늘, 이것을 주목하여 보니 땅에 네 발 가진 것과 들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보이더라. 또 들으니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내가 이르되 주님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거나 깨끗하지 아니한 것은 결코 내 입에 들어간 일이 없나이다 하니, 또 하늘로부터 두 번째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고 하지 말라 하더라.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에 모든 것이 다시 하늘로 끌려 올라가더라” 환상 후에, 들은 목소리가 “일어나 잡아먹으라”이었고, ‘못한다’고 하니까,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고 해서는 안 된다.” 하는 꾸짖음을 들었다고, 이 거부를 세 번이 했었다고 성실하게 설명합니다. 과거의 성격을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자의 모습은 다 이렇습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의 명령이죠. 주님은 가이사랴에서 온 세 사람과 함께 가라고 명령하셨다고 하죠? 11~12절, “마침 세 사람이 내가 유숙한 집 앞에 서 있으니 가이사랴에서 내게로 보낸 사람이라. 성령이 내게 명하사 아무 의심 말고 함께 가라 하시매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가서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바로 그때’ 그 환상이 끝난 직후에,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베드로가 머물던 집에 도착하였고,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들을 아무 의심 말고 함께 가라고 하신 성령에 순종하여 갔다고, 그리고 같이 갔던 이 여섯 형제, 욥바 공동체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죠? 이들과 함께 갔다고, 하면서 네 번째, 하나님의 준비하심을 말합니다. 13~14절, “그가 우리에게 말하기를 천사가 내 집에 서서 말하되 네가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가 너와 네 온 집이 구원받을 말씀을 네게 이르리라 함을 보았다 하거늘” 고넬료의 집에 들어섰을 때, 하나님이 어떻게 그를 준비시키셨는지, 한 천사가 나타나 욥바로 시몬 베드로를 찾으러 보내면 그가 구원의 말씀을 갖고 올 것이라는 말했음을 말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의도적인 둘의 만나도록 하신 하나님의 기가 막힌 직접 연출을 이야기합니다.

 

 

다섯 번째는 하나님의 행동하심을 말하죠? 그것이 바로 성령이 임하심입니다. 15~16절,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베드로가 아직 말이 끝나지 않았는데, 성령이 그들에게 내리셨다고,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았다”, 하나님의 행동하심이 바로 성령이 임하심인데, 오순절에 불같이 또 소리로 임하셨던 그 성령님이, 그곳에서도 일어났고 그때와 너무 비슷하다고, 유대인들에게 주신 것과 똑같은 성령의 선물을 주셨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이어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라고, 17절,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이방인 회심자들이 성령을 받았는데 왜 물세례를 금하겠느냐? 이미 ‘하나님께서 성령 세례를 주셨는데, 외부의 힘으로 하나님이 하신 일을 어떻게 금지하겠느냐?’라고 베드로가 말합니다.

 

 

그가 말한 핵심이 무엇입니까? ‘답은 모두 하나님, 예수님이었다, 하나님이 이 사건을 일으키셨고,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 이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고, 이렇게까지 해주셨는데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고 세례를 베풀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막는 것이라는 말을 하면서 그가 말을 마칩니다. 이에 대한 결론, 여섯 번째, 예루살렘 교회가 내린 결론입니다. 18절,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베드로의 설명이 끝났을 때, 베드로를 비난하던 사람들 가운데 감히 입을 열어 베드로를 다시 공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 예루살렘 교회의 결론입니다. 짐승처럼 취급하던 이방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베드로를 통해 행하신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하셨던 것이었고, 그 앞에서, 그 누군들 또다시 비난할 수 있었겠느냐는 것에, 그들은 입을 열어서 이방인도 구원하신 하나님을 진심으로 찬양했고, “이방인들도 하나님이 구원하셨다.”는 선포로 오늘 본문은 끝을 내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그러면 이제 말씀을 마무리하면서요?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 것일까요?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하여 누구에게나 아무 차별 없이 내리시는 은혜를 보여 주셨다입니다. 여러분, 이 진리는 복음의 심장입니다. 아시다시피 세상은요? 늘 차별합니다. 피부색, 재산, 학력, 출신, 국적, 신분, 이것으로 차별합니다. 요즘은 특히 중국을 가장 싫어하는 분위기죠?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모든 장벽을 무너뜨리셨고, 십자가 앞에서는 모두가 죄인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동시에 모두가 은혜의 대상이라는 사실입니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지혜로운 자나 어리석은 자나,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남자든 여자든, 오직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 들어온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고, 우리 하나님의 마음이고, 오늘 본문이 보인 차별 없는 복음의 은혜입니다. 그러기에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요구를 하죠? 무엇이에요? 회개와 믿음이고, 동일한 약속, 무엇이에요? 구원과 영생입니다. 그리고 구원의 조건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놀라운 특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십니다. 이것은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주어지는 권세입니다. 오늘도 세상이 아닌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 됨의 권세를 붙잡고 차별 없는 복음의 은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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