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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에서 풀려나는 길은 오직 예수밖에 없다”

(사도행전 13장 26~43절)

 

 

여러분, 아이러니하게도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타락한 사람들이 아니라 성경을 알고 있었고, 율법을 지켰으며, 종교적으로 매우 열심이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구원자, 메시아가 오셨는데도요? 구원자,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 사실을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하나의 불편한 진실, 즉 ‘죄는 무지에서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의 속에서도 자란다’라는 것을 꺼내고 있습니다. “죄를 짓지 말라”는 교훈이 아니라 “죄에서 풀려날 길이 어디에 있는가?”를 묻고 있어요? “그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하지만, 반복되는 죄, 끊어지지 않는 습관,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 하나님은 용서하셨다는데, 여전히 묶여 있는 상태가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바울은요? “너희가 모세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서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라고, 답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라는 사실을 전합니다. 아시다시피 오늘 본문은 비시디아 안디옥에 와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전하는 설교 본론 부분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전하고 있어요?

 

 

오늘 본문을 나눌 때 조금 지루할 수 있지만, 잘 듣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2025년 마지막 주일과 신년 감사 예배가 있어서 사도행전을 계속 나누지 못했어요? 그렇죠? 그러다가 오늘 드디어 사도행전 13장을 나누게 되었는데, 오늘 본문은, 지난번에 살펴본 것처럼, 바울과 바나바가 지금의 터키 중남부 지역인 비시디아 안디옥에 와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전하는 설교 내용입니다. 예수가 바로 이스라엘 민족이 기다리던 그 메시아임을 증거하고 있어요? 서론에서는 먼저 다윗을 언급하였고, 다윗에게 허락한 약속과 그 약속을 이루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연결하였고 대조하였습니다. 그러고 이어진 설교가 오늘 본문이에요? 26절입니다. “형제들아, 아브라함의 후손과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형제들아”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소환하고 있어요? 무엇이에요? 나는 너희와 같은 자리에서 이 말을 전한다는 것이고, 혈통은 구원을 보장하지 못한다,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도 여전히 구원이 필요하다, 선택받은 민족이어도, 자동 구원은 아니라고 소환하고 있어요?

 

 

이뿐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도 소환합니다. 회당에 있던 이방인 개종자들로 율법은 지켰지만, 할례는 받지 않은 자들, 항상 안과 밖의 경계에 서 있던 사람들이죠? 이들도 불러냈습니다. 왜? 구원의 말씀이 특정 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하려고 소환했습니다. 그러면서 모두들에게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이라고, 하나님이 먼저 보내신 말씀, 구원이 필요한 모든 사람에게 보내진 말씀, 로고스를 이어서 꺼냈습니다. 이 말씀 이신 그분이 천지를 창조하셨어요? “빛이 있으라”라고 말씀하시니까 빛이 생겼고, 요 1:1~3절 말씀대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무엇이냐면요? 이 말씀이 전능하신 창조의 말씀이고,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며, 곧 그 말씀이 인간의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이라고, 그분이 바로 말씀이고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냈다고, 그러기에 예수 믿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믿는 것은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알고 믿는 것임을 꺼낸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유대인들의 반응을 27절에 꺼내죠?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그들 관리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안식일마다 회당에 모여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을 큰 소리로 낭독한 그 소리가 회당을 가득 채웠다, 회당에 참석한 모든 유대인들의 귀에 크게 울렸는데, 이 낭독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이 땅에 오신 구원의 말씀, 다시 말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다, 이것을 알려고도 믿으려고도 하지 않았기에, 말씀 이신 예수님을 정죄하며 죽이고 말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예언한 하나님의 말씀이 응하는 결과, 응답이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어떻게 말씀 이신 예수님을 정죄하며 죽이고 말았는지 그 상황을 전합니다. 28~29절, “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나,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 하였으니, 성경에 그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예수님은 억울하게 죽은 희생자가 아니라, 죄가 없었고, 정죄할 근거가 없었고, 그래서 법적으로도 사형에 해당이 되지 않았다는 것, 즉 예수의 죽음은 ‘실수’가 아니라 ‘의도된 대속’이고, 죄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돌아가셨다는 사실이라고 밝히죠? 그런데 이것을 모르기에,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고, 종교와 정치가 손을 잡은 죄의 연합, 즉 유대 지도자들은 종교 권력으로, 빌라도는 정치권력으로, 서로 불편했던 두 권력이 한 사람,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손을 잡았지만, 아이러니하게 이것이 “성경에 그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가 되었다는 것이에요? 이 악한 선택들 위에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정확히 성취되었다고 전합니다. 그렇지만 당시 현실이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이었다는 것이지요? 끝난 것처럼 보였고, 완전한 패배로 보이는 절망의 정점이었고, 그가 죽어 십자가에서 내려졌고, 시신은 처리되어 무덤에 묻혔으니, 그의 무덤이 최종 결론처럼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결론이 아니라는 것이죠?

 

 

30~31절,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신지라,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 날 보이셨으니, 그들이 이제 백성 앞에서 그의 증인이라” “하나님이… 그를 살리신지라” 예수를 정죄했고, 무덤은 예수를 가두었지만, 하나님은 그 판결을 뒤집으셨고, 부활하셔서 “아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라고 예수님의 무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개적인 판결 내리심을 밝힙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후 “여러 날 보이셨으니”, 한 번 스쳐 지나간 신비 체험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다수에게, 공개적으로 확인되었다는 것이고, “그들이 이제 백성 앞에서 그의 증인이라” 두려워 숨었던 사람들이었지만, 도망쳤던 제자들이었지만, 침묵하던 자리를 떠나 죽음을 각오한 증인이 되었다고, 전하면서 이어서 32~34절을 말합니다.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이르시되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며”

 

 

예수님의 부활 증거, 시편을 통하여 인용하죠?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무슨 이야기에요? 부활을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이 사람이 바로 내 아들이다.”이었다는 것입니다. 왜? 당신의 아들을 죽음의 자리, 십자가로 보냈는지, 부활하신 이가 바로 당신의 아들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 즉 다시 죽을 생명으로 돌아감이 아니라, 썩지 않는 생명으로, 다시 사망의 지배를 받지 않는 생명으로, 모든 믿는 자에게 주어질 생명의 모델이라고,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라고, 즉 다윗에게 약속하신 언약,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왕국이, 아니 그 약속이 예수의 부활안에서 실현되었다는 것입니다. 35~37절, “또 다른 시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하나님께서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오래전에 예언된 말씀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두 이루어졌다는 사실, 다윗은 위대한 왕이었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겼고, 믿음의 사람으로 살았어도 그는 결국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의 몸은 썩었지만, 하나님이 살리신 이, 예수님은 썩음을 당하지 않았다고, 다윗은 죽음에 머물렀지만, 예수는 하나님이 살리셨다고, 아무도 죽음을 이길 수는 없지만, 오직 한 분, 하나님께서 친히 살리신 그분, 예수 그리스도만이 썩음을 당하지 않으셨기에 우리가 소망이 있고 이 우리의 소망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것이 바로 성경에 기록된 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밝히면서,십자가 사건과 부활이 이 말씀을 듣고 있는 사람들과 심지어 우리들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를 결론으로 말합니다. 38~39절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이 사람” 누굴까요? 당연히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또 부활하심으로, 우리가 죄 사함을 받게 되었다고,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심을 믿는 바로 그 믿음으로 우리가 의롭다 함을 얻게 되었다고 아주 중요한 말을 전합니다.

 

 

무엇이에요? ‘믿음을 통해 얻는 의롭다 함’, 이신칭의, 이신득의를 바울이 결론으로 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는 이 믿음을 통해 의롭다 함을 얻는 이 놀라운 말씀을 전하면, 이상하게 들릴 말, 40~41절을 전합니다. “그런즉 너희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 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멸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일러줄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이신칭의를 전한 후에 경고한 것일까? 이유는 이신칭의는 가장 은혜로운 복음이면서, 동시에 가장 위험한 복음이기에 그렇습니다. 무슨 이야기냐면요? 아무 공로 없이, 믿음으로만 의롭다 하심을 얻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위험하다는 것이에요? 이유가 그 은혜를 가볍게 여길 수 있기에, 복음을 들을 때조차 그 복음을 판단하려 들고, 자기 기준으로 재단하려 들기에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놀라운 은혜를 너희가 혹시 멸시하고 있지는 않은가?”라고 ‘멸시’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경고하였습니다. 그렇다고 이들이 무신론자냐? 아닙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야?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고 이미 안다고 여겨 새로운 것이 없다 느껴 복음 앞에서 놀라지 않았고, 결국 믿지 못했다고 결론을 바울이 내렸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울이 설교한 내용입니다. 바울은요? 이렇게 설교를 마쳤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비시디아 안디옥 사람들의 반응이 42~43절입니다. “그들이 나갈 새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더라. 회당의 모임이 끝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르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 생각해 보세요? 그곳 사람들과 바울 일행은 서로 처음 만난 사람들입니다. 그 지역도 바울과 바나바가 전혀 알지도 못하고 가본 적도 없던 지역입니다. 그렇죠? 회당에 처음 찾아간 그들 일행에게 말씀을 전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였더니, 그들이 큰 은혜를 받아 ‘다음 안식일에도 또 오셔서 또 설교를 해주세요.’라고 부탁한 것으로 오늘 본문은 끝을 맺고 있습니다. 우리도요? 제가 전한 말씀으로 인하여 바울의 설교를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들었습니다. 어쩌면 지루할 정도로 들었을 것입니다. 안 그래요? 여러분, 바울이 전한 설교는 화려하지 않을 수 있지만, 분명한 한 가지는,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율법으로는 풀리지 않던 모든 죄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사실을 전하였습니다. 사람은 예수를 버렸고, 사람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고, 사람은 예수를 시체로 만들어 무덤에 가두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 시체를 살리셨고, 그 무덤을 비우셨고, 그 십자가를 구원의 보좌로 바꾸셨다, 사람은 끝났다고 했지만, 하나님은 “지금부터다”라고 말씀하셨고,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부활이고, 이 부활은 우연이 아니고, 기적의 한 장면도 아니며, 오래전부터 약속된 말씀의 성취이었다고 전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다윗은 위대한 왕이었지만 썩음을 당했고, 율법은 거룩했지만, 죄를 제거하지 못했으며, 종교는 열심을 요구했지만, 자유를 주지 못했습니다. 그렇죠?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죽임을 당하셨으나 썩음을 당하지 않으셨고, 하나님께서 친히 살리심으로 영원한 생명의 길이 되셨다는 사실을 전하면서 우리에게도 “이 은혜를 멸시하겠는가, 아니면 믿음으로 붙들겠는가?”라고 묻고 있습니다. 여기에 여러분은 어떤 반응을 보이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복음 앞에는 중립이 없습니다. 흘려보내면 심판이 되고요? 붙들면 생명이 됩니다.

 

 

바울의 이 말에 비시디아 안디옥 사람들 중 어떤 이들은 멸시했을 것이고, 어떤 이들은 갈망했습니다. 그렇죠? 이 갈망한 사람들의 반응이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들려주십시오.”이었습니다. 이 반응에 사도들의 말이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이었습니다. 신앙의 방향을 정하라는 말이에요? 은혜는 출발점일 뿐 아니라 머무는 자리고, 결심의 순간만이 아니라 매일 매일, 우리가 사는 공기라는 이야기입니다. 그것도 항상, 상황이 좋을 때만이 아니라 흔들릴 때도 은혜 가운데 있어야 하고요? 하나님의 은혜는 내가 붙드는 무엇이 아니라,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 그 손 가운데 있으라고, 예수님을 가장자리가 아니라 우리 중심에 거하도록 초대하라고 마무리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은혜 안에 산다는 것은요? 더 잘해 보겠다는 다짐이 아니라, 이미 베풀어진 은혜에 의지하며 걷는 삶입니다. 과거가 아무리 무겁다 해도, 죄가 아무리 깊다 해도, 스스로 풀 수 없었던 인생이라 해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율법으로는 풀리지 않던 모든 일에서도 믿음으로 자유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나를 의롭게 할 수 없지만, 예수는 나를 의롭게 하셨고요? 나는 나를 살릴 수 없지만, 하나님은 예수를 살리심으로 나의 길이 되게 하셨습니다’ 즉 죄에서 풀려나는 길은요? 오직 예수밖에 없습니다. 이 놀라운 은혜를 믿음으로 붙드는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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