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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여신상이 아니라 자유의 예수님이다

(요한복음 8:31~36)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의 제목은요? ‘자유의 여신상이 아니라, 자유의 예수님이다’입니다. 여러분, 오늘은 맥추 감사 주일이면서요? 어제 있었던 미 독립 250주년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뉴욕 맨해튼에는 이민자들과 세계인에게 자유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던 자유의 여신상이 있습니다. 그죠? 그러나 이보다 더 깊은 자유가 있다는 사실을, 즉 상징이 주는 자유가 아니라, 아들이 주시는 참 자유가 있다는 이 사실을 오늘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특히 오늘은 무엇보다도 한 해의 절반을 돌아볼 때,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먹이시고 입히시고 지키신 은혜를 기억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특히 우리가 이 미국에 살다 보니까, 뜻밖에 미국 독립 250주년까지 기념하는 날까지 보게 되고 맞이하였습니다. 사실 1776년 독립선언 이후에요? 25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이 나라는, 자유라는 가치를 붙들고 걸어 왔고, 싸워서 지켰고, 그래서 뉴욕 항구에 서 있는 자유의 여신상은, 그 자유를 말하는 상징입니다. 즉 많은 이민자들이 배를 타고 이 미국에 들어올 때, 멀리 보이는 그 횃불을 바라보며 “이제 살았다, 새 인생이 시작된다, 억압이 아니라 자유의 땅에 왔다.”라고 하면서 울었다고 합니다.

 

 

무슨 이야기에요? 그만큼 자유의 여신상은 많은 사람에게 희망의 상징이었고, 그 횃불은 어둠 속에서 새 출발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자유의 여신상이 인간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을까? 정치적 독립이, 인간 영혼의 모든 쇠사슬을 풀 수 있었을까? 경제적 풍요가 마음의 감옥을 열어 줄 수 있었을까? 아니 원하는 것을 말하고, 원하는 곳에 가고, 원하는 것을 소유하는 것이 참 자유이었느냐? 이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분명하게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고 하셨고,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쉽게 말하면, 미국은 자유의 여신상을 자랑할 수 있지만, 교회는 참 자유를 주신 예수님을 자랑해야 하고, 세상은 횃불을 높이 든 여신상을 바라보지만, 우리는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것을 나눌 것입니다. 본문이 말하고 있는 참 자유가 무엇인지? 이것에 대하여 몇 가지를 같이 나누면서 함께 은혜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참 자유는, 예수님의 말씀 안에 거할 때 시작된다는 이야기입니다. 31절을 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예수님의 말씀이 무엇이에요? “너희가 내 말을 들으면”이 아니라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입니다. 이 의미는, ‘살다, 머물다, 자리 잡다’입니다. 즉 관계 문제입니다. 예수님을 잠깐 생각하라는 것이 아니에요? 예배 시간에만 주님을 찾으라는 것도 아닙니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와의 관계를 떠나지 말고, 내 말씀 안에 계속 살아라, 내 생명에 붙어 있어라, 너의 삶의 중심을 내 안에 두어라.”입니다. 한마디로 무엇이에요? 지속성이죠? 계속 머무는 것입니다. 기도가 잘될 때도 주님 안에 있는 것이고, 기도가 잘 안될 때도 주님 안에 있는 것이고, 형편이 좋을 때도 주님 안에 있는 것이고, 형편이 무너질 때도 주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주님의 지배를 받아야 하죠? 그래서 주님의 말씀과 사랑과 생명의 지배를 받아 주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게 됩니다. 필요할 때만 찾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과 말과 선택과 인생의 방향을 주님 안에 두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바른 신앙생활입니다. 주님은요? 우리가 말씀을 듣는 데서 끝나지 않고, 말씀 안에 거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이 내 삶의 집이 되고, 주님의 말씀이 내 판단의 기준이 되며, 주님의 말씀이 내 아픔을 해석하는 빛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듣지만, 많은 이들은요? 믿는다고 해도 정작 말씀 안에 거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위로는 받고 싶은데, 순종이 부담스럽고, 복은 받고 싶은데, 자기 뜻을 내려놓지 않기에 그렇습니다. 은혜는 원하지만, 진리 앞에서 자기를 고치려고 하지 않기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분명한 말씀은요?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입니다. 참 자유는 제자 됨에서 시작된다는 말씀입니다.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자유가 아니라는 것이에요? 내 욕망대로 사는 것도 자유가 아니고, 내 감정이 시키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자유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참 자유는 예수님의 말씀 안에 거할 때 시작됩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말씀은 우리를 살리는 말씀이고, 죄의 종살이에서 풀어 주기에 그렇습니다.

 

 

두 번째는 그래서 진리를 알아야 자유롭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32절을 볼까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여러분, 그러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진리가 무엇일까요?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요? 요 14장 6절에 나오죠?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이 말씀은, 단순히 많이 배우면 자유로워진다는 뜻이 아니라 예수님을 알아야 자유롭게 된다는 말씀이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알아야 자유롭게 되는 것이, 예수님의 은혜를 알아야 자유롭게 되고, 예수님 안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자유롭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사탄은요? 죄책감과 수치심과 두려움과 죽음과 상처와 비교 의식으로 묶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자유인처럼 살아가도 속으로는 갇혀 있게 만듭니다. 그러기에 진짜 필요한 것은요? 자유의 여신상이 아닙니다. 자유의 예수님이 필요해요? 왜냐하면, 자유의 여신상은 상징으로 끝나지만 예수님은 구원자이시기에 그렇습니다. 상징으로 구원받지 못해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원을 받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로 자유롭게 됩니다. 아멘.

 

 

세 번째로 가장 무서운 노예 상태가 죄의 종으로 사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입니다. 33절입니다.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예수님이 쭉 말씀하셨잖아요? 그런데 유대인들은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매우 불쾌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왜 자유롭게 되어야 하냐?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우리는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다.”라고 쏟아내고 있지만, 솔직히 역사적으로 애굽의 종살이와 노예 생활을 했었고, 바벨론 포로 생활도 했었으며, 심지어 예수님 당시에는 로마의 지배 아래 있는 이들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종이 된 적이 없다.”라고 자신들이 묶여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말할까요? 묶었는데, 묶여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도록 만들었기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죄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요? 34절을 보세요? 분명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무슨 이야기냐? 죄는 처음 우리에게 “네 마음대로 해봐, 한 번쯤은 괜찮아? 아무도 몰라, 너의 인생은 네가 주인이다”라고 말해도 솔직히 마지막은 종살이이고, 죄가 나를 끌고 간다는 말입니다.

 

 

네 번째는 아들 안에서 자유를 얻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35절을 보세요?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예수님은 지금 종과 아들을 비교하시면서 말씀하고 계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종은 어떻습니까? 집에 있어도 불안하죠? 언제 쫓겨날지 몰라요? 소속감이 없고, 마음은 밖에 있고, 아무리 수고를 하여도 유업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의 사랑 안에 있고, 유업도 받고, 아버지와 관계 안에서 삽니다. 예수님이 무엇을 말씀하고 계시나요? 예수님이 당신이 우리를 종의 자리에서 아들의 자리로 옮기러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죄의 종이었던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기 위해 오셨다는 사실, 그래서 우리의 죗값을 대신 지셨으며 우리가 묶여 있던 쇠사슬을 십자가에서 끊으셨고, 우리가 갚을 수 없는 빚을 자기 피로 갚으셨고, 우리가 들어갈 수 없는 아버지의 집 문을 열어 주셨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참 자유는 내 힘으로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주시는 것이고, 그러기에 36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입니다. 아멘.

 

 

핵심이 무엇이에요? “아들이”입니다. 오직 아들이 자유롭게 하시는 것이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오직 예수님이 참으로 자유롭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있기에 우리는요? 이 미국 독립 250주년을 감사할 수 있는 것이고, 이 땅에서 누리는 신앙의 자유와 예배의 자유와 말할 자유와 살아갈 자유에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코 가벼운 은혜가 아닙니다. 죄에서 독립하게 하신 예수님입니다. 죽음에서 해방을 시키신 예수님입니다. 지옥의 권세에서 건져 내신 예수님입니다. 사탄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옮겨 주신 예수님입니다. 아멘. 여러분 아들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감사하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특히 오늘은요? 맥추 감사 주일에요? 먹을 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날이고요? 구원의 하나님께 감사하는 날입니다. “올해도 먹이심에 감사합니다.” “올해도 지키심에 감사합니다.” “올해도 길을 여심에 감사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주님, 저를 죄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자유롭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이 은혜가 가장 큰 감사입니다. 안 그래요?

 

 

그러기에 다섯 번째는요? 감사로 살자는 이야기입니다. 자유는 절대로 방종이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이 주신 자유는요? 마음대로 죄짓는 자유가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 자유입니다. 죄의 종은요? 하나님께 순종하고 싶어도 못해요? 그러나 예수님 안에서 자유를 얻은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고, 이웃을 섬길 수 있으며, 용서할 수 있고, 감사할 수 있고, 복음을 위해 삽니다. 이 부탁을요?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 13절에서 전합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 바울이 말하는 것은, 이것이 진짜 성도의 자유라는 이야기입니다. 자유를 받았기에 섬기는 것이고, 사랑을 받았기에 사랑하는 것이고, 용서받았기에 용서하는 것이며, 구원받았기에 복음을 전하는 것, 이것이 성도의 자유입니다. 여러분, 이 미국도 독립 250주년을 맞이했죠? 어제 기념식을 가졌습니다. 원하기는 우리의 자녀들이 자유의 여신상만이 아니라 자유의 예수님을 진정으로 알기를 위해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미국의 독립도 배워도 십자가의 해방도 알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권리는 주장할 줄 알아도 은혜에 감사할 줄 모른다면 가난한 영혼이 되기에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 전해야 할 가장 큰 유산도요? “예수님만이 참 자유를 주신다.”입니다.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롭다.” “자유의 여신상이 아니라 자유의 예수님이다.”입니다. 자유의 여신상은 오늘도 손에는 횃불을 들고 뉴욕 항구에 서 있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희망, 즉 새 땅, 새 기회, 새 인생을 꿈꾸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 횃불이요? 인간의 죄를 태워 없애지는 못하였고, 그 동상이요? 인간의 죽음을 이기게 하지 못합니다. 마음속의 수치와 두려움과 죄책감을 풀어 주지는 못했어요? 우리에게는 더 큰 자유가 필요하죠? 더 깊은 해방이 필요하고, 영혼의 쇠사슬을 끊는 구원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게 하셨습니다. 손과 발에 못을 받게 하셨고, 죄인들을 위해 피 흘리게 하셨습니다. 왜요?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가 정답이기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예수님만이 진짜 자유롭게 합니다. 예수님이 오늘 우리를 아들의 자리로 부르십니다. 맥추 감사 주일을 맞이한 우리가 드릴 가장 큰 감사가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당연히 ‘먹이시니 감사합니다, 입히시니 감사합니다, 여기까지 인도하시니 감사합니다’와 함께요? ‘나를 죄에서 자유롭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나를 죽음에서 자유롭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나를 두려움에서 자유롭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나를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자유의 여신상 앞에 서 있는 백성이 아니에요? 십자가 앞에 엎드린 백성이고, 세상 자유를 누리는 시민이기 전에, 예수님이 피로 사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독립을 기념하는 사람일 뿐 아니라, 십자가의 해방을 찬양하는 사람입니다. 이제 종처럼 살지 말고요? 죄에게 끌려가지 말고요? 과거의 상처에 갇혀 살지 말고요? 예수님 안에서 자유하고, 말씀 안에 거하며 진리 안에 서시기를 원합니다.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우리를 여기까지 먹이시고 입히시고 지키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한 해의 절반을 지나왔습니다.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삶을 붙들어 주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또한 이 땅 미국이 독립 250주년을 맞이하게 하시고, 자유와 신앙의 기회를 누리게 하신 것도 감사합니다. 자유의 여신상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의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우리를 죄의 종에서 풀어 주옵시고, 두려움의 종에서 풀어 주옵소서. 온전히 주의 말씀 안에 거하게 하옵시며 진리를 알게 하옵시고, 예수님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리게 하옵소서. 아들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으니, 우리가 참으로 자유한 자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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