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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협아, 이젠 Stop”

(요한계시록 2:12~17)

 

여러분, 이 말은요?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총리로서의 마지막 대중 연설을 한 내용입니다. 들어보세요? “사람들이 듣고 싶은 것을 말하는 것이 지도자의 역할이 아니다.” 맞는 말이에요? “타협은 더러운 말이 아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타협이라는 이 단어에서 어떤 느낌이 듭니까? 솔직히 부패한 정치가나, 밀실에서 이루어지는 거래? 그리고 인기에 영합하는 행위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이런 부정적인 측면도 있는 반면에, 긍정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양측의 이견을 조율한다든지, 이해관계가 상충할 때 현실성 있는 합치점을 찾는다는지, 등등 긍정적인 면이 있습니다. 그러면 타협이요? 일치를 보는 것일까요? 아니면 비위를 맞추는 것일까요? 아니면 쌍방 협력이든지, 일방적 양보일까요? 아니면 흥정, 아니면 거래일까요? 화해, 아니면 내 입장을 버리는 것일까요? 타협을? 원칙 위배라고 생각하지만, 상황과 관련된 사람과 예상된 결과에 따라,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핵심 단어는요? 바로 타협입니다. 아시다시피 요한계시록의 일차적인 수신자는? 소아시아, 그러니까 지금의 터키에 있었던 일곱 교회입니다. 에베소를 시작으로 시계 방향으로 위치한 이 일곱 교회는 사실 종말까지 있을 모든 교회의 모형이에요.

 

오늘 본문 12절에 보니까, 주님은 당신을 “좌우에 날 선 검을 가진 이”라고 소개하고 있어요. 그가 오늘 나누고자 하는 이 버가모 교회에 대한 칭찬과 책망과 권면과 약속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를 나누면서 함께 은혜를 받고, 우리의 현주소를 돌아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칭찬입니다. 13절입니다.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주님은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다’라고 칭찬하고 있습니다. 여기 ‘사단이 거한 곳’을 알려면, 버가모 교회가 어디에 세워졌는지를 알 필요가 있어요? 버가머 교회는요? 소아시아 북쪽, 390m 높이의, 험준한 산 위에 세워진 천혜의 요새 도시에 있는 교회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후, 디아도키 시대에, 리시마쿠스가 건축한 도시로서, 로마 시대에는 소아시아 지역의 수도이었고, 알렉산드리아 다음가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도서관과 ‘아스클레피움’이라는 병원이 있는 곳, 로마 황제가 진료받기 위해 방문할 정도의 큰 도시이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를 신격화한 신전과 하드리아누스나 트라얀 황제의 신전과 그리고 높이가 12m나 되는 제우스 제단과 각종 그리스 신의 신전과 ‘알지 못하는 신을 위한 제단’까지 있었던 도시이고, 특별히 가장 오래된 신전인 이집트 신 세라피스의 신전의 한 부분을 개축해서 세운 교회가 바로 버가모 교회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요? 주님께서 이 버가모 교회를 가리켜 ‘사단의 위’, 즉 ‘사단이 있었던 곳’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뭐에요? 어려운 상황 속에 이 버가모 교회가 존재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주님의 칭찬은 이렇게 사탄의 권좌이었던 곳에 세워진 이 교회가, 극도의 압박을 피하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힘든 환경을 견디는 쪽을 택하였다는 것, 한마디로 소음과 폭력과 부패와 유혹 속에서도, 어두운 도시를 향해 빛을 비추는 교회였다는 말씀입니다. 이 핍박의 극이 바로 이 교회의 담임목사인 안디바의 순교이에요. 그를 붙잡아 놋쇠로 만든 황소에 넣어, 그리스도를 부인하면 살려주겠다고 했지만,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않아 결국, 불에 달궈져 순교하였습니다. 그의 순교가 얼마나 놀라웠던지, 주님이 계시록 3장 14절에서 자신에게 붙이신 “충성된 증인”이라는 호칭으로 안디바를 부르셨습니다.

 

이렇게 사태가 험악한데도, 나머지 교인들은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부인하면 편안할 텐데, 예수님의 이름을 고수한 것입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사람들이 이 미국은 점점 희망이 사라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 자료를 봤습니다. 이 말에 조사하면서 본 기록은 그 반대였습니다. 퓨리서치 센터라는 조사 센터가 있는데, 이 조사 센터의 결과가요? 이 미국인은 캐나다, 호주, 그리고 다른 대부분 유럽 국가의 국민보다 더 자주 기도하고, 매주 교회를 비롯한 종교 시설에 가는 사람도 많고, 자신의 삶에서 신앙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특히 미국인 성인의 55%는 매일 기도한다고 답했어요? 높은 수치죠? 사람들이 얼마나 기도를 많이 하느냐와 국가의 경제력 사이에는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없지만, 어쨌든 매일 기도하는 이들을 놓고 보면, 이 미국은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버가모 교회의 남은 교인들의 상황을 지금으로 이야기하면, 자기 집 옆에 점집이 있어도, 여러분 가게 옆에 사탄이 가계를 내도, 동성애를 지지한다는 무지개 깃발이 있어도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인하지 않은 모습, 어떤 희생에도 아랑곳없이 꿈쩍도 하지 않고 그곳을 사수한 칭찬받을 만한 믿음의 본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여러분, 신앙생활은요? 신자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 전까지, 이 땅을 살아가면서, 무조건 손해를 보며, 하고 싶은 일 하지 못하고, 기쁨과 즐거움도 포기하고 이를 악물고 살아야 하는 그런 삶이 아닙니다. 손해가 아니라, 엄청난 은혜 속에 사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 얻을 수 없는 행복을, 하나님을 통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우리 안에 내주하셔서 인도하시는 성령을 통하여 늘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결코, 하나님은 이 땅에서의 우리 삶을 괴롭히기 위해서 죄에서 구원해 내신 것이 아니에요? 구원 얻은 신자가요? 이 땅에 사는 날 동안에,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천국을 미리 맛보고 사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버가머 교회가 이렇게 하였는데, 이들에게 몇 가지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가 책망입니다. 14~16절을 볼까요?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무엇이에요? 교회가 중요한 이슈에서 타협의 길을 택하였다는 것이에요. 그것이 바로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과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에게 활동의 근거지를 제공한 것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안디바의 순교 이후에요? 교회는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과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어서 교회가 혼란을 겪었다는 말씀이에요. 여러분, 발람이 누구이에요? 민수기 22~25장에 기록된 사건에 등장하는 인물이잖아요? ‘돈 밝히는 예언자’이고, 이스라엘을 나쁜 길로 꾀하려고 했던 자이고, 광야에서 이방 종교와 타협하게 하고, 음행을 저지르는 종교 혼합주의의 모습을 갖게 한 자, 모압왕 발락에게 뇌물을 받고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세 번이나 시도했지만, 끝까지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자, 하나의 꾀를 내어 이스라엘을 타락시키는 방법을 발락 왕에게 가르쳐 주죠? 그것이 모압 여자들을 통한 이스라엘 청년들을 유혹하는 것이고, 음행하도록 하여, 스스로 하나님의 저주를 받도록 한 것 아닙니까? 이 꾀가 사탄의 수법이잖아요?

 

이 발람의 악한 수법이, 니골라 당이라는 이름으로 에베소교회에 나타났었고, 지금 버가모 교회에도 나타난 것입니다. 사탄은요? 발람을 통해 이스라엘을 저주받게 했던 것처럼, 니골라 당을 통해, 버가모 교회를 저주받도록 했다는 것이에요. 여기에서 주는 교훈이 있어요? 하나는, 쾌락과 음행의 유혹에 매우 약한 존재가 인간이라는 사실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을 무너뜨리는 것이 무엇인지 아세요? 박해나 고난이 아니에요? 달콤한 쾌락과 음행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물질의 유혹입니다. 니골라 당은요? 육체적인 쾌락과 음행과 더불어 성도들을 물질 만능주의로 빠지도록 유혹했습니다. ‘발람’이라는 이름의 의미가 뭔지 아세요? ‘백성을 정복하라’입니다. ‘니골라’라는 의미도요? ‘백성을 이긴 자’입니다. 그러니까 같다는 것입니다. 음행과 물질로 유혹하여 죄의 길로 빠지게 했다는 것, 특히 니골라 당의 교리가 한국의 박옥수가 만든 구원파와 같은 교리입니다. 뭐에요? “한번 구원받은 사람은 어떠한 범죄를 저질러도 구원을 받는다”라는 이 엉터리 교리잖아요? 예수를 믿어 구원받은 사람은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구원받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이 이단 교리가 처음 예수를 믿은 사람들과 믿음을 무거운 짐으로 여기던 일부 버가모 교인들에게 큰 인기가 있어서, 많은 교인들이 니골라 당을 따랐습니다.

 

여러분, 교회가 요? 세속적인 행사들에 참여하면 처음에는 화합과 포용이라는 아름다운 가면을 갖지만, 그것은 결국 니골라 당 활동의 첫 삽입니다. 니골라 당은, 버가모에서 발람을 추종하는 무리와 비슷하게 하여 우상 숭배와 성적 부도덕을 조장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만, 이방 신도 함께 믿고, 영적으로 간음한 모습을 취한 이것을 교회가, 묵인한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은, 회개하지 않는다면, 입에 가지신 좌우의 날 선 검으로 그들과 싸우시겠다고 책망하셨던 것이고, 벌려진 틈을 손보겠다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타협은요? 처음이 어렵지만, 하다 보면 쉽습니다. 습관이 되면 발람도 수용하게 되고 니골라 당도 수용합니다. 에베소 교인들은요? 니골라 당을 미워했어요. 그런데 보세요? 버가머 교인들은 이 니골라 당을 받아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라고 하셨고요? 이것을 책망하시는 예수님의 검이, 신속하게 그리고 단호하게, “그만하라”고, “회개하라”고 하셨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약속입니다. 17절입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무슨 이야기냐면? 옳은 길로 돌아설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지키는 자들, 즉 끝까지 충실하게 진리와 도덕성을 지키는 자들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이들을 가리켜 “이기는 자”라고 했어요? 그들에게 임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세 가지, 하나님의 양식, 감추었던 만나이고, 특별한 은총, 흰돌이고, 새로운 성품, “새 이름입니다. 이 큰 상을 주신다고 하셨는데, 누구에게?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에게,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김의 방법이 뭐에요? 회개입니다. 영적으로 간음하여 혼잡한 상태로는 감추었던 만나와 새 이름이 기록된 흰 돌을 받을 수 없습니다. 철저한 회개하는 자에게 새 말씀과 새 이름을 주시고 구원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누구든지,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아니 목사라 할지라도, 세상 유혹의 함정에 빠지면, 영적 감각이 무뎌지고,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점점 더 깊이 쾌락과 음란, 인생무상, 허무, 절망의 깊은 늪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바늘도둑이 소도둑이 되는 것처럼, 한번 용납은 점점 더, 죄에 대한 감각이 둔해지게 하여, 결국에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부패에서 회복은요? 회개이고 주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네가 어디에 사는 지를 내가 아노니”라고 하셨어요. 이 말씀은요?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여러분의 아니 우리의 머리털까지 다 세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를 너무나 잘 아시는 주님 앞으로 나가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세속적인 것을 용납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세상의 유행과 프로그램들을 좋아해서 타협하고 부추기는 결과를 만들지 말자는 것입니다. 목적을 위해 거짓 교훈과 설교를 허용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왜냐? 이것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능력을 상실하게 하기에, 사랑과 은혜와 회개와 용서가 사라지게 하기에 그렇습니다. “뭐 요즘 그럴 수도 있지”라는 타협의 용납이요? 아무리 좋은 화합과 포용, 자유라는 이름을 가졌어도, 성령의 역사는 사라지게 하고, 교회는 분열되게 하고, 깨어있는 성도들은 떠나가게 만듭니다. 동성애를 인정하는 교단의 모습이 이 모습으로 바뀌잖아요? 이것이 바로 니골라 당의 모습 아닙니까? 그러기에 여러분, 우리가 이제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통을 세우고요? 오직 믿음과 사랑으로 교회와 여러분들의 가정을 지켜나가시기 바랍니다. 발람의 악한 유혹을 이겨 나가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주시는 만나와 흰 돌, 하늘의 양식과 천국 초청장을 다 소유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우리 몸이 바로 거룩한 교회잖아요? 이것을 끝까지 지키기를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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