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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안에 거함”

(요 15:1-7)

 

오늘 본문에 주님 당신이 참 포도나무이고, 아버지는 농부임을 선포하며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하셨던 그 당시 상황을 보면요? 예루살렘에서의 예수님 때문에, 종교 지배층의 음모가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주로 갈릴리에서 사역하셨어요. 이 말은 그리 그들에게도 부담이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종종 1년에 여섯 번 정도 예루살렘에 올라가 절기를 보내셨는데, 올라가실 때마다 종교 지배층을 긴장하게 하였습니다. 종교 지배층들을 긴장하게 했다는 이 말은, 제자들도 위험을 느꼈다는 이애기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무려 3km밖에 되지 않은 베다니 마을의 마르다와 마리아를 보러 가겠다고 할 때, 제자들 가운데 도마가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라고 하였습니다. 심지어 성난 군중은 예수님을 돌로 치려고 했었고,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이후로는 주님을 따르는 무리들이 많이 생기니까, 이 문제로 인한 긴급회의까지 열렸습니다. 그 이야기가 바로 요 11장 47절에서 50절입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을 죽이려는 음모가 시작된 것이에요.

 

하지만, 공개로 체포는 못 하고, 오히려 비겁한 지혜, 즉 마커스 리시니우스 크라수스 장군의 예를 듭니다. 오늘 주보에 소개하고 있죠? 이 장군이 전쟁에서 승리하였는데, 스파르타쿠스와 6천 명의 반항한 이들을 무찌른 뒤에, 스파르타쿠스의 고향으로 가는 길목에다, 일정한 간격으로 이 반항자들을 십자가에 매달았고, 그것을 한동안 두었습니다. 이유는 한마디로 경고에요. 이 소름 끼치는 이야기를 꺼내면서, 로마가 이런 일들을 벌일 수 있다는 생각을 나눴습니다. 그런데요, 이번 유월절을 보내려고 예루살렘에 도착한 예수님에게 일어난 일이 있는데, 옛날과 달리 이번에는 이 종교 당국자들을 아찔하게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초라한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이에요. 이것은 분명히 평화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명백한 메시아에 대한 스가랴의 예언에 근거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에 담긴 메시지를 종교 지도자들이 모를 리가 없었기에 경악한 것이에요. 이 메시지는 한마디로요? “내가 너희의 메시아로, 이스라엘의 약속된 제사장 겸 왕으로 임한다. 너희 권세를 나에게 넘기라. 지금부터 새 나라를 세우자”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수천의 사람들의 반응이 무엇이었냐면? 왕에게나 어울리는 환영이었습니다. 도시로 들어서는 길에 죽 늘어서서요? 예수님의 이름을 연호하였고, 자기네 옷과 꺾은 야자수 가지를 길에 깔고 “호산나”라고 외쳤습니다. 이 단어의 의미가 “이제 우리를 구원하소서”입니다. 사실 누구나 다 아는 전통을 한 것이지만, 여기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예전에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오시면요? 성전에서 예배하셨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으려는 사람들에게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어요. 성전에 대한 권세를 주장하신 것이었고, 대제사장직 막후 실세인 안나스 조직적인 범죄에 정면으로 맞서셨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격동의 일주일을 지내면서, 성전에서 어느 날, 앉아 가르치셨는데, 그 자리에 예수님을 추종하는 큰 무리들이 있었고, 음모를 꾀하는 세력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비유를 듣게 됩니다. 그 말씀이 바로 마 21장 33절부터 40절까지의 말씀입니다. 33절을 들어보세요. “다시 한 비유를 들으라. 한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고, 산울로 두르고, 거기 즙 짜는 구유를 파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이야기를 쭉 하시다가 40절에서요?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그 농부를 어떻게 하겠느냐?”라는 질문을 던지니까, 무리 중 누가요? 그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때에 열매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를 준다는 말로 답합니다. 이 말에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의 얼굴이 빨갛게 붉어졌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당신과 제자들의 관계가 어떻게 지속해야 할 것인지를 말씀하신 것이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 15장 1절에서 7절입니다. 먼저 1절입니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슨 이야기에요? 포도원의 주인 이야기가 이제 당신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참되고 건강한 포도나무로 자처하신 것이에요. 이유가 무엇이냐? 진짜가 무엇인지를 말씀하신 것이고요, 열매를 맺는 삶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신 것이며, 그전의 포도나무는 참 포도나무 되신 당신의 그림자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이전의 포도나무를 시 80편 8절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가져와 열방을 쫓아내시고 심었습니다. 그리고 이 그전의 포도나무가 이스라엘이며,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그렇게 선택하셨습니다. 그런데 올바르게 자라지 않았다고, 참 종자인데도 불구하고 다른 나무와 다른 종자가 되고 말았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제 당신이 친히 오셨다고 이 사실을 상기시키면서고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에요? 아주 은혜의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면, 이 정도면 버려야 되고, 제거하여야 하는 것이 정상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농부의 시선이 열매에 머물러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2절입니다.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무슨 이야기냐면요? 결국, 아버지가 원하지 않는 길로 가는 이 세상에, 하나님의 시선이 머물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참 포도나무를 농부이신 하나님이 심었다는 것, 바꿔 말하면,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의 역사와 인간의 공간 안으로, 인간이 알아볼 수 있도록, 인간의 몸을 입고 오게 하신 것이라는 이야기이에요. 왜요? 이루고자 하시는 결과 때문입니다. 이런 찬양이 있습니다. [아버지 사랑 내가 노래해 아버지 은혜 내가 노래해 그 사랑 변함없으신 거짓 없으신 성실하신 그 사랑 상한 갈대 꺾지 않으시는 꺼져가는 등불 끄지 않는 그 사랑 변함없으신 거짓 없으신 진실하신 그 사랑, 사랑 그 사랑 날 위해 죽으신 날 위해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 다시 오실 그 사랑 죽음도 생명 천사도 하늘의 어떤 권세도 끊을 수 없는 영원한 그 사랑 예수]

 

그러면 그 결과가 무엇일까요? 2절을 다시 보세요.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게 하시느니라” 하나님 아버지가 원하지 않는 길로 가는 이 세상에, 하나님의 시선, 즉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의 역사와 인간의 공간에 인간이 알아볼 수 있도록, 인간의 몸을 입고 오게 하신 이유가, 바로 과실을 많이 맺게 하려 함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과실을 맺지 않는 가지는 제해 버리고,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많은 과실을 맺게 하신다는 말씀이에요. 즉 과실을 맺지 못하면 일명 가지치기를 하실 것이고, 다른 가지들을 보호하려고 과감히 잘라내며, 깨끗하게, 열매에 병충도 막기 위해 제거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결과를 얻기 위함인데, 그 결과의 조건이 바로 ‘내게 있어’입니다. 이 가지가 나무 안에 있어야 하고, 이 나무는 그리스도이며, 열매를 맺어야 하는데, 열매를 맺지 못하는 상태를 “제해 버린다”라는 것에서 이제 “깨끗함”으로 이루게 하시려는 그 결과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들어 올린다”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왜? 들어 올립니까? 살리기 위해서, 즉 가지를 들어 올려 다시 살아나도록 하시기 위해서, 귀찮아 잘라버리는 것이 아니라 살리기 위해 친히 희생의 자리로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흙에 묻혀 내버리거나 단념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들어 올려 깨끗이 씻고 다시 잘 자라도록 도와주신다는 말씀, 왜냐하면? 열매의 풍성한 아름다움으로 옮기는 은혜를 주시려고, 즉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만큼, 성장하게 하시도록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아니 우리가 아니 내가 바로 주님의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하나님 아버지와 바른 관계에 놓이게 되고, 롬 8장 1절 말씀 그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가 되는 것입니다. 무엇이에요? 예수 님과 동일하게 의로운 신분으로 취급되는 것이고, 이것이 가지의 목적이며 포도나무의 목적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을 위해 오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즉 예수님 안에 거하여야만 하셨습니다. 4~5절 말씀입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농부의 요구가요? 포도나무, 즉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이고,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많은 열매를 맺기 때문에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요?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이고, 가지와 나무가 생명의 관계이듯이, 우리가 늘 주님 안에 있고, 주님이 우리 안에 계셔야만 참 생명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밖에 있으면 되지 않아요? 안으로 들어와야 하는 것입니다. 즉 객체에서 주체가 되는 것이고, 손님에서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또 다른 의미로 상호보완적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제가 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여러분,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라고 ADHD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이것은 산만함, 과잉행동, 충동성을 특징으로 하는 질환으로, 12세 이전에 발병하고, 만성 경과를 보이며, 여러 기능 영역에 지장을 초래하는 질환입니다. 이 질환 환자 중에는 도덕적인 자제력 부족이나 반항심, 이기심으로 오해받아 괴로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연구에 의하면요? 소아의 발병률은, 적게는 3~7%이고 많게는 20%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 미국에서 약 540만 명의 6~17세 아이들이 ADHD에 걸려있다고 합니다. 이 장애를 약물로 치료하는 경향이 많아요. 하지만 약물로 치료하면 인지에는 그 증상이 완화되는 것 같지만, 사실 치료는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 이 질병은 부모에게서 왔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불안 정서가 아이에게 그대로 투사되었던 결과입니다. 무슨 이야기냐면요? 치료는 상호 보완적이어야 한다는 이야기에요. 즉 부모의 사랑만이 이것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이요?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하신 이 말씀도요? 일방적인 요구가 아니라 쌍방이 함께 보완하는 말씀입니다. 즉 분리가 아니라 함께 공존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런데 이것 아세요? 우리의 과거에는요? 사망이라는 분리에 있었어요. 그래서 죄로 말미암아 가지처럼 밖에 버려졌습니다. 그랬지만, 분리된 우리를 위해 참 포도나무이신 당신이 오셔서, 나무에 붙어 있도록 아버지께로 돌아가도록 해결방법을 주신 것이고 그것이 바로 참 포도나무이신 당신께 붙어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참 생명의 회복이기에 그렇습니다. 붙어 있으면 주신 축복이 달라집니다. 그 답이 7절입니다. 7절을 볼까요?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이 말씀은 붙어 있는 자의 행동을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믿음도 심으셨고, 보혜사도 약속하셨고, 포도나무 되신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이 핵심이라 하셨지만, 현실은 예수님이 아니라 세상의 것입니다. 그래서 찾아오는 것이 걱정이고 허무와 고통의 열매 아닙니까?

 

거한다는 말에는요? 잠시 머무는 정도가 아닙니다. 그 안에 뿌리를 박는 것 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안에 뿌리를 내릴 때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시절을 좇아 풍성한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믿는 자의 행동은 결국 종자 자체가 어떻게 바뀌느냐는 것이고, 종자가 바뀌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랬다면, 당연히 이전 것은 지나갔고 새것입니다. 이것이 참 포도나무에 접 붙어 있어야 만 되는 것이에요. 이것을 위해 친히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것이고, 죽음의 길을 가시는 당신을 가리켜 “나는 참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라 하신 것이며,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것 아닙니까? 즉 이 열매는 반드시 맺어야 하는 주님의 부탁이고, 이것이 오늘 본문에 담긴 메시지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포도나무이지, 가지가 아닙니다. 이 관계는 오직 십자가로만 연결된 놀라운 연합입니다.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이고요, 유기적인 관계입니다. 그러기에 이것은 결국 우리가 어떻게 많은 과실을 맺을 수 있을지를 알게 되고, 우리의 농부이신 아버지의 목적이 무엇이에요?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이것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자는요, 주님이 주시는 강한 감동의 힘을 불러일으킵니다. 주님의 주신 은혜로 눈물이 가득합니다. 입에서 찬송이 넘쳐납니다. 이유는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 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에, 농부이신 아버지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닮은 자질들이 점차 열매로 맺힙니다. 당연히 하나님이 원하는 생각이 머물게 되고 그의 소원은 하나님의 소원들을 그대로 닮아갑니다. 그것이 바로 7절 말씀 그대로 기도 응답이고,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며, 사랑이 자라가고, 기쁨이 넘치는 것입니다.

 

기도 응답이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하나님이 우리 개인의 심부름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구하신 것마다 다 받으셨던 것처럼 우리도 구하는 것마다 받게 됩니다.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은요? 우리가 예수 님의 성품을 본받아 그분이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하신 것같이 그 명령들에 순종하며, 삼위일체 하나님께 모든 공로가 돌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우리를 보고 좋아하시며, 자녀들을 마음껏 사랑해주실 기회만 찾으십니다. 이 은혜가 가득하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사랑이 자라간다고 했어요. 여기에는 우리가 자라기 위해 기를 쓰지 않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성품들이 점차 나타납니다. 여러분, 포도는요? 건강한 가지에만 붙어 있습니다. 이것을 다른 사람들이 보게 되고 그들이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마지막은 기쁨이 넘친다고 했어요. 여러분, 이 기쁨은 피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어려운 환경을 초월하고, 모든 좋은 경험에서 최대의 즐거움을 얻어내는 깊은 만족감입니다. 그래서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웃음이 살아납니다. 여러분에게 정말로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웃음이 살아나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여러분, 오늘 주님이요? 우리가 포도나무이신 당신에게 붙어 있으라고 하십니다. 이 질문에 여러분은 어떤 답을 내리시겠습니까? 바빠서 나중에 하겠다고 하겠습니까? 그리고 혹시 우리의 가지도 말라 있지는 않습니까? 성령의 은혜로 촉촉해야 하는데, 은혜를 잃어버리지는 않았습니까? 진짜 삶은 세상이 주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에게서만 나옵니다. 그분이 오늘 우리에게 무교 병을 떼어 자신의 몸이라고, 의식의 포도주로 자신의 피라고 하시면서 먹고 마시게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 거함이 진짜 사는 길이기에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여러분은 정말로 거하십니까? 아니면 어디에 계십니까?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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