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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의 제목은요? ‘씨 뿌리는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것은요? 총 7가지이에요? 그 7가지 비유 중, 첫 번째 비유가 오늘 이 ‘씨 뿌리는 비유’입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이 말씀하신, 이 ‘씨 뿌리는 비유’를 알려면요? 팔레스타인의 농사법을 알아야 합니다. 아시다시피 기후는 농사와 아주 밀접하잖아요? 특히 이스라엘의 기후는요? 캘리포니아처럼 건기와 우기로 나뉘어 있어요? 니산월, 그러니까 3~4월부터 엘룰월, 8~9월까지가 건기인데, 이 6개월 동안에는요? 전혀 비가 내리지 않습니다. 뜨거운 동풍까지 불어요? 그러다 보니, 온 땅이 극도로 건조해져서 땅이 돌같이 굳어지는 시기가 이 건기입니다. 그런데요? 우기는, 티쉬리월, 10~11월부터 2~3월까지입니다. 이때 이른 비가 내리게 되고, 이 비로 인하여 마른 땅이 부드럽게 됩니다. 이때 농부들이 파종해요? 이른 비가 그치면요? 경작을 시작하고, 니산월, 이 나산월 끝부분이겠죠? 이때 내리는 늦은 비에 마지막 결실, 즉, 추수합니다. 신명기 11장 14절에 이 말씀이 나와요? 들어보세요?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그런데 이스라엘의 밭이 온전한 밭이냐?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정답입니다. 돌이 많이 섞여 있는 밭이에요? 그러다 보니 고랑을 파기가 쉽지 않아서, 쟁기로 간 땅에 씨를 일일이 심는 것이 아니라 씨를 던지는 것이 이들의 농사법입니다. 씨를 뿌린다는 것입니다. 손으로 뿌리기도 하고, 어떨 때는 가축에 단 씨주머니에서 씨를 떨구기도 합니다. 그렇게 씨를 뿌리다 보니, 이 과정에서 일부 씨들은 바람에 날려, 인근 길가나 가시덤불 사이로 떨어지는 것이에요. 이것을 농부들이 새가 쪼아 먹지 못하도록, 밭을 쟁기로 갈아서 흙으로 씨를 덮습니다. 오늘 본문이 이 이스라엘 이 농사법을 배경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호수 해변에서 말씀을 전하실 때, 아마 반대편 들판에서 어떤 농부가 씨를 뿌리고 있었겠죠? 이것을 보시고 이 비유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요? 아주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천국 비유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비유이기에 그렇습니다. , 이 비유를 이해하지 못하면, 다른 비유들도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예수님이요? 이 씨 뿌리는 비유만큼은, 이 비유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설명해 주었어요. 오늘 우리는 9절까지 읽었어요? 그렇죠? 하지만, 예수님이 비유를 설명하신 그 내용까지 다루면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성령 하나님이요? 우리에게 큰 은혜를 주시리라 믿습니다.

 

 

첫째로 이 씨뿌리는 자의 비유에는 이라는 큰 핵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이 씨뿌리는 비유는요? 농부들이 아니면 이해하기 힘든 비유입니다. 그리고 어떤 씨는 길가로, 어떤 씨는 돌밭으로, 어떤 씨는 가시밭으로, 어떤 씨는 옥토로 떨어진 이 비유도, 엄밀하게 말해서는? 뿌리는 자의 뿌림이 문제이지, 밭은 문제가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말씀하시는 큰 핵심이 뭐라고요? ‘밭’이라는 것입니다. ? 이것이 큰 핵심일까요? 사실 이 씨 뿌림은요? 팔레스타인의 농사법에 적용되어도 그리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 이스라엘의 땅들은 워낙 돌이 많은 지역이라, 돌을 골라내고, 가시나무도 뽑아내고, 그렇게 깨끗하게 만드는 것이 우선이고, 워낙 많다 보니까, 대충 정리하고, 다니는 길이 필요해서, 가운데 좁은 길을 만들고, 농부가 왔다 갔다 하며 씨를 뿌리는 것이 정상이거든요? 그러다 보니, 어떤 씨는 돌밭에, 어떤 씨는 가시넝쿨 안에, 어떤 씨는 길가에 떨어진다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중요한 것이 이 옥토거든요. 좋은 땅에 뿌려지는 것이고, 이것에 관한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밭은 무엇일까요? 마음입니다. 마음을 주님은 네 개로 말씀하셨어요. 그 첫째의 마음이 길가라는 것이고, 둘째 마음이 돌밭이고, 셋째 마음이 가시넝쿨 안이라는 것이고, 마지막은 옥토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설명하셨는데, 첫째, 길가에 떨어진 씨는 무엇이라 했어요? 뿌리를 내리거나 잎을 피우거나 꽃을 피우지 못하고,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다고 하셨습니다. 읽지는 않았지만, 19절을 볼까요?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려진 자요.” 여러분, 이 말씀을 근거로 볼 때 씨는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렇죠? 그리고 밭은 사람의 마음입니다. 따라서 길가에 떨어진 씨앗은,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졌는데, 그 말씀을 들었지만, 깨닫지 못한 마음이라는 것이고, 들은 말씀이 마음에 자리 잡지 못한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 된다고 해요? 악한 자가 그것을 빼앗아 갔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 마음이 굳어져 있으니까, 바위같이 단단해졌으니까, 말씀을 들었어도 튕겨 나가 노출되어, 결국 새가 와서 먹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이 새는 예수님이 말씀하기를, 마귀를 가리킨다고 했어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요? 어느 곳이든 떨어져,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완악한 마음, 불순종, 불신, 자기 고집, 세상 철학과 심리학으로 마음이 굳어지면, 마귀가 먹어버립니다.

 

두 번째는 이 씨가 돌밭에 떨어졌다고 했어요. 돌밭, 즉 ‘흙이 있지만, 이 흙이 얕은 돌밭’이라는 것이고, 얇다 보니까, 흙이 깊지 않아, 싹이 나왔어도,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어지는, 말라버리는 상황에 놓인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주님의 해석이 20~21절입니다.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뭐에요? 말씀을 기쁨으로 받기는 받지만, 그 속에 뿌리가 없으니까, 환란이 오면 곧 넘어진다는 것이고, 보기에는 부드러운 흙 같아도, 흙이 얇게 덮어 있는 곳, 뿌리를 내리지 못한 곳이기에, 뜨거운 태양 앞에 곧 말라버리고 만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믿음의 기초가 약한 모습을 말합니다. 은혜를 받았어도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을 말하고, 의심하게 되고 신앙의 기복이 큰 결과에 머무는 것을 말합니다. 환난과 핍박이 오면 신앙도 헌신짝처럼 버리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에요. 말씀이 떨어진 즉시 반응하고 금방 자랍니다. 문제는,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환난이나 핍박이 오면 잠시 견디다가 넘어진다는 것이에요.

 

세 번째는 가시덤불위에 떨어졌다고 했습니다. 싹이 나지만, 가시가 기운을 막으니까 결국 자라지를 못하는 모습입니다. 근거가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라 했습니다. 여기 이 땅은 아마 좋은 땅을 가졌을 것입니다. 흙의 질도 좋았을 것이고, 돌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억센 가시나무들이 점령하니까 줄기를 뻗고 올라가지 못하는 것이에요? 결국, 이 가시덤불 때문에 죽어버리고 만다는 것 아닙니까? 22절입니다.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무엇이에요? 세상의 근심과 걱정이나 재물의 유혹이 신앙을 덮어버려, 자라나려고 해도 못 자라나게 한다는 것, 좌절하도록 만들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자리에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신앙의 영양실조가 걸린 자, 신앙의 빈곤한 삶을 사는 자입니다. 왜? 영적 영양실조가 되는 것일까요? 근심과 걱정과 유혹의 가시덤불을 몰라서가 아니에요. 알면서도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경우가 되어 버리는 이유는요? 하나님의 말씀을 불 순종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것 때문이고, 단 한 말씀이라도 그대로 살려는 의지가 없다는 것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에는요? ‘적당히’가 없습니다. 신앙생활은 분명하고 확실해야 하며 삶으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먹고 그 말씀을 꼭꼭 씹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아서, 그냥 설사하고 배설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네 번째는 옥토입니다. 8절에,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의 설명이 23절이에요?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여기에서 주님은 옥토가 말씀을 듣고 ‘깨달았다’라고 했습니다. 이 의미가 무엇일까요? 원 뜻으 찾아보니까 ‘합하다’이었습니다. 무엇에 합하는 것일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합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하나가 되는 것이고, 이것은 예수님이 내 안에 살아계신 것, 내가 주님 안에서 살아있는 것을 말합니다. 즉 계 3장 20절 말씀대로,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내 안에서 뿌리를 사방으로 뻗어 내려가는 것이고, 내가 주님 속으로 뿌리를 뻗어 나가는 것, 그래서 주님의 말씀이 내 안에서 살아있고, 말씀과 성령을 통해서 주님께서 내 안에 살아계신 것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빌립보서 3장 7~12절입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 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아멘.

 

이러한 자의 특징은요? 주님의 마음을 품습니다. 고전 2장 16절의 마음이에요.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그러기에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요? 주님의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나의 완고한 고집과 세상 욕심을 내던지고, 주님의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나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마음으로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 아세요? 유일하게 열매를 맺 밭이 좋은 밭이고 옥토라는 것을 주님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열매가요? 삼십 배, 육십 배, 백배라고 했습니다. 그러기에 옥토는 주님께 열려있는 마음이고, 주님을 위해 준비된 마음이고, 주님을 위해 행동으로 옮기는 마음입니다. 이것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묵은 땅을 기경했을 때 되는 것입니다. 묵은 땅을 갈아엎었을 때 옥토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갈아엎어야 할까요?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본문에서 이 말씀을 ‘씨’로 비유하셨습니다. 그러나 렘 23장 29절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말이 불같지 아니하냐 바위를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방망이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옥토가 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깨뜨려 주셔야만 바뀝니다. 이것은 역사하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합니다. 겔 36장 26절에요?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성령 하나님이 새 마음을 만들어 주십니다. 그러기에 옥토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23절에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다른 말로 하면 사모하는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시편 107편 9절 말씀처럼?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가 되기를 원합니다. 주를 향한 사모함으로 옥토가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으로 즐거워하는 것이 우리 영혼을 만족게 하는 유일한 행복입니다.

 

옥토는? 겸손함을 만듭니다. 눅 8장 15절에요?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착한 마음과 좋은 마음을 의미합니다. 착한 마음은요? 겸손한 마음에서 나옵니다. 돌밭같이 완고한 마음을 내려놓는 데서 나옵니다. 어린아이의 마음을 만듭니다. 고 이어령 교수는 이 시대 최고의 지성으로 불리던 분이고, 학자요 문인으로,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낸 인사, 세상의 부귀영화와 명예를 가졌던 분입니다. 그의 따님, 고 이민아 목사가 먼저 예수를 영접했지요? 누차 아빠에게 예수를 전했지만, 워낙 지성이라 예수가 그의 마음에 들어올 리 없었습니다. 그런데 따님의 암 투병과 실명 위기, 손자의 사망 등 인간적인 한계에 부딪히면서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게 되고 나중에는 세례를 받으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때 그는 마치 어린아이가 된 것 같다며 눈물로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나온 책이 바로 「지성에서 영성으로」입니다. 세상의 학문이나 지식을 넘어선 신앙의 여정을 간증한 책이에요.

 

이 책에서 옥토는 ‘순수한 마음이 되는 것’이라고, 최고의 축복이라고 했습니다. 길가, 돌밭, 가시덤불은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단단한 묵은 땅을 갈아엎어서 옥토가 되는 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고, ‘말씀’의 쟁기로, 주님께로 나와 옥토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말씀입니다. 핵심은 이것을 위해 당신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옥토가 되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삼십 배, 육십 배, 백배의 열매를 맺는 우리가 되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것이 바로 옥토이고 이것을 이루려고 십자가를 향하여 가시는 예수님입니다. 우리가 계속 옥토의 자리에 있기를 원합니다. 옥토는 위의 것을 찾는 자입니다. 이번 한 주간 이 은혜를 깊이 묵상하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지금은 사순절 기간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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